‘앱솔루트’를 향한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다.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 2011년 8월 20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앱솔루트 클래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장한나
협연:조성진(피아노)
프로그램:
글린카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프로코피에프 5번 교향곡
매년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 콘서트는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많은 화제가 되곤 한다. 아마도 첼리스트로 활발히 활동을 하다가 돌연 지휘를 병행하겠다고 나선 장한나의 행보가 처음에는 화제가 되었을 것이고, 지금은 일회성 이벤트로만 생각했었던 앱솔루트 클래식이 매년 개최되는 것에 대해-그래서 지휘자 장한나의 입지가 굳혀져 가고 있는 것에 대해-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리라. 평소 지휘자 장한나에 대해 과연 어떤지 궁금했던 차에, 좋은 기회가 생겨 그간의 의문점을 말끔히 해소할 겸 다녀오게 되었다.
첫 곡으로 글린카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이 연주되기 시작하자 프로젝트 유스 오케스트라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훈련이 잘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특히 바이올린 파트의 연주가 생각 외로 좋았었다. 다만, 꼭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아무리 프로젝트 유스 오케스트라라고는 해도 현악부에 있어서 바이올린은 너무 많고 비올라, 첼로 및 콘트라베이스는 수가 적어서 밸런스가 현저하게 안 맞았었는데 이 점은 다음 연주회 때에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밸런스의 문제는 프로코피에프 5번 교향곡 때도 나타났었는데, 관악기군은 왼쪽에, 타악기군은 오른쪽에 배치해서 사운드의 불균형이 일어났으며 다른 악기에 비해 팀파니 소리가 너무 큰 것도 옥의 티였다. 물론 첼로를 연주할 때와는 다르게 모든 단원들이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사운드를 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유일한 악기인만큼 좀 더 세심한 사운드 밸런스 조절을 해야 하는 것 역시 지휘자가 감당해야 할 의무일 것이다.
프로코피에프 5번 교향곡은 프로코피에프 특유의 은근한 신랄함이 여지없이 표출되는 곡이었는데(어떻게 보면 쇼스타코비치보다 더욱 은근해서 더 난해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젊은 나이의 유스 오케스트라가 이 곡에 담긴 정서를 소화해 내기엔 벅차 보이는 듯 싶어 솔직히 듣기 전부터 의구심은 들었다. 1악장에서는 처음에 현악파트부터 앙상블이 잠시 흐트러져서 걱정을 했는데 이내 수습을 했고, 3악장은 상당히 좋았었다. 다만 역시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을 하기에는 단원들의 성숙도가 조금 이른 듯한 감은 들었고(7번 정도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장한나는 전에 MBC 기획으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지휘한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그리고 이번에도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연주하긴 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프로젝트 유스 오케스트라에게는 장기적으로 베토벤이나 브람스 교향곡 같은 곡을 연습시키며 기초부터 튼튼히 다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향도 정명훈 마에스트로 취임 직후 베토벤과 브람스 사이클로 뼈대를 구축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오늘의 연주를 들었기에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지휘자 장한나에 대한 의구심은 말끔하게 털어버리고 뛰어난 첼리스트로서 뿐만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지휘자로서 인정할 수 있게 된 것도 기뻤으나, 정작 오늘 가장 큰 기쁨을 안겨 준 것은 협연자 조성진군이었다. 그 동안 서울시향을 통해 조성진군의 연주를 많이 들어왔다고 자부해 왔지만, 오늘 들은 조성진군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그 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조성진군의 연주가 아니었다. 막연히 지금껏 그래왔었던 것처럼 잘하겠지라는 생각은 조성진군의 첫 타건이 내는 음을 듣자마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조성진군의 그 전 연주가 좀 뭉글뭉글하고 밝았었다면, 오늘의 연주는 짙음이 드리워지기 시작했고 예리하게 날이 선 연주였다. 진실로 작곡가의 음악 앞에 맞선 고뇌와 절대고독을 이해하고 있는 연주이자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 앞에서의 격정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연주였고 이것은 분명 인격적인 성숙이 기반이 되었기에 가능한 연주라고 보였다. 누구나 펜과 종이를 손에 잡을 수는 있지만 아무나 걸작을 그려내지는 못하고, 누구나 ‘미레미레미시레도라’라고 건반을 두드릴 수는 있지만 아무나 ‘엘리제를 위하여’를 단순히 동요처럼 연주 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베토벤의 곡으로 연주할 수는 없는 것처럼. 물론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에 나타난 구조적인 결함(1~3악장간의 유기적이지 못한 구조)을 극복하는데는 아직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하긴 하지만(사실 이것을 극복한 연주자도 많지는 않다), 조성진군은 분명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고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욱 기대되는 연주자이다. 오늘의 벅찬 감동을 미약한 글줄로나마 옮기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기록해두는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
첫댓글 행복한 순간을 만끽한 마리솔님이 살짝 부러워지는 후기입니다.
조성진군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행복을 선사할지가 정말 기대되네요. 지휘자 장한나에게도 끊임없는 애정과 격려를!
세밀화를 보는듯 날카로운 지적과 아쉬움이 동반된 설명이 프로그램곡들을 다시 들어보게 만들것 같습니다.
한국의 엘 시스테마를 잠시 꿈꿔보게 만든 멋진 후기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전 연주된 프로그램도 조성진군의 연주도 본적이 없었는데 후기만 봐도 쏙쏙 들어오게 잘 써주셨네요. 마치 옆자리에서 설명해주시는듯한...프로그램, 지휘자 장한나와 프로젝트 유스오케스트라에 대해 트윗을 통해 말씀드렸었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나 조금 아쉽네요
에 대한 우려를 트윗으로 말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