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학생들이 쓰는 말이나 용어 중에 기성세대들이 거의 알아듣지 못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샘’, ‘짱나’, ‘늘그니’, ‘아햏햏’, ‘므흣’, ‘뷁’, ‘졸라’, ‘졸라맨’ 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것들을 사용하는 그들조차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이 많다. 그래서 어느 포털사이트를 막론하고 이 정체불명의 엽기적인 문자(?)의 뜻을 묻는 질문들이 넘쳐난다.
얼마 전 귀엽기만 한 초등학생들이 “졸라 덥네” “졸라 맛있다” “졸라 재미있다” 등의 표현을 일상적인 대화에서 아무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졸라’라는 말은 ‘굉장히’ ‘매우’ ‘아주’ ‘대단히’와 같은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 말이 아이들 사이에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졸라맨’이라는 캐릭터의 유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졸라맨’은 보름달 같은 얼굴 이외에는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을 비롯한 온 몸이 실낱 같이 가늘게 표현되는 아주 비정상적인 형태를 가진 캐릭터(?)이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태로 인체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청소년들이 이 캐릭터에 열광하고 있으며, 심지어 ‘졸라맨’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고유한 캐릭터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졸라’라는 말은 남자의 성기를 빗댄 아주 저속한 표현인 ‘×나게’라는 말이 변형된 것이다. 이런 말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어쩌면 교양도 없고 거칠고 저속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 말은 군대와 같은 제한된 특수세계에서만 통하던 속어였다. 그러던 것이 2000년 3월 18일 한 젊은이가 ‘졸라맨’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자신의 온라인 공간인 ‘디지털 스페이스’에 올린 뒤로 주로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온 나라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나게’가 ‘졸라’로 변형되면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게 되는데, ‘졸라’는 무엇을 해달라고 보챈다는 의미의 ‘조르다’와 어떤 대상을 압박한다는 의미의 ‘조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졸라’라는 말을 쓰는 사람의 마음의 바탕에는 남을 배려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이기주의적이거나 가학적 성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청소년들이 이처럼 황폐한 속어에 그토록 동조하고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그 책임을 그들의 가정과 부모, 학교교육의 실패에 돌리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는 ‘졸라맨’ 캐릭터를 보면서 우리 교육의 실상을 참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한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실낱 같이 가늘고 허약한 몸통과 팔다리로 엄청나게 큰 머리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졸라맨’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우리 교육은 가분수 교육이다. 말로는 이론으로는 전인교육을 주문처럼 외지만, 학교 현장은 별 쓸모없는 단편적인 지식의 경연을 위해 밤잠을 줄이고 불야성이다. 학생들의 여가나 낭만은 그만두더라도 심지어 특기와 적성까지도 전혀 돌아볼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는다. 특기적성 시간까지도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한 보충학습으로 때우고서도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라의 화랑이나 고구려의 경당(扃堂)에서도 송경습사(誦經習射)와 문무겸전을 인재 양성의 이상(理想)으로 삼았었다. 페스탈로찌는 전인교육의 세 측면으로 머리(Head)와 가슴(Heart)과 손(Hand)을 말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와 다른 것을 교육의 이상으로 삼은 경우는 없다. 어떤 경우이든 인간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지와 덕과 체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견이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청소년들에게 익숙해진 가상세계의 ‘졸라맨’은 실은 학교교육을 통해 양산하고 있는 경쟁의식으로 똘똘 뭉친 공부벌레나 시험기계에 불과한 현실세계 ‘졸라맨’의 투영일 뿐이다. 청소년들이 ‘졸라맨’에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과 너무도 닮았으니까.
말라 비틀어진 가슴으로 어떻게 더 큰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말라 비틀어진 손발로 팔다리로 저 넓은 세상을 어떻게 껴안을 수 있단 말인가? 병적으로 비대해진 약삭빠른 계산에만 능한 자신의 머리통이나마 제대로 지탱할 수 있을까?
교육의 궁극적 본질인 균형 잡힌 인간의 양성을 위한 교육관의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 약동하는 심장과 팽팽하게 긴장하는 근육을 되찾아야 한다. ‘졸라맨’을 양산하는 가분수 교육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밝고 명랑한 미래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언제 얘기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기억에 남겨두고자 한다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와닿습니다'는 적당한 표현이 아닌 듯 합니다. 무엇이 와 닿는다는 것인지 주어나 목적어가 불분명합니다.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자신의 마음이 감동을 느꼈다고 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주어와 목적어가 분명하도록 말입니다.^^
첫댓글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셨던 졸라맨 이야기가 생각나서 찾아와 보게되었는데요..교육현실이란.. 교수님의 교육철학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언제 얘기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기억에 남겨두고자 한다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와닿습니다'는 적당한 표현이 아닌 듯 합니다. 무엇이 와 닿는다는 것인지 주어나 목적어가 불분명합니다.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자신의 마음이 감동을 느꼈다고 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주어와 목적어가 분명하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