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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의 비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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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변동중학교 김일환
緖論
요크大 생물학과 과장 앨러스테어는 3백85종의 영국 식물들에 관한 부친의 47년에 걸친 기록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데이터들을 분석한 결과를 지난달 사이언스誌에 발표했다. 이들 부자는 연구대상이었던 옥스퍼드셔 지방 식물의 16%가 과거 몇 십 년 전에 비해 1990년대에 현저하게 빨리 개화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3월에 흰 꽃을 피우던 쐐기풀과의 작은 다년생 식물의 개화가 55일이나 앞당겨진, 1월에 일어나고 있다. 앨러스테어는 이를 두고 봄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연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지구 온난화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며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지구온난화가 환경오염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머지않아 우리들의 삶에 큰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토마스 하딘은 이러한 환경오염에 대한 중요한 논리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그것은 ‘공유지의 비극’이며 그는 여기서 환경오염의 원인을 대단히 체계적으로 제시했고, 그 대책마련 또한 설득력이 있다. 그의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本論
먼저 공유지에서의 자유의 비극(the tragedy of freedom in a Commons)에서 비극의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극의 개념은 불행(unhappiness)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W. Whitehead 정의했던 사물의 무자비한 작용의 장엄함 다시 말해서 도피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공유지는 만인이 공동으로 소유한 상태를 말하며, 비극의 전개는 공유초지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공유초지는 만인에 개방 각 목동(herdman)은 자유롭게 공유초지에서 많은 가축을 양육하고 수입을 증가시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공유초지에 한계 용량(carrying capacity)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목동은 공유초지에서 자유로운 양육 상태를 지속해왔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공유초지가 한계용량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쟁, 질병, 밀렵 등 통해 가축들의 수가 크게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안정이 지속되면서 가축들의 수가 계속 늘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공유초지의 가축 수가 한계 용량이 도달하게 되었으며, 무자비한 공유지의 비극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목동들은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목동들은 가축 한 마리를 늘릴 때마다 그만큼의 초지가 완전히 황폐화되어 공유초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동들은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다시 말해 가축 한 마리를 공유지에 추가하는 것이 목동 개인에게 어떤 효용을 줄 것인가? 를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첫째는 소 한 마리를 추가하고 그 효용성을 +1만큼 목동이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한 마리 이상의 가축에 의한 공유지 황폐화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그 결과는 만인이 공유 하게 된다. 다시 말해 -1만큼의 손해는 모든 목동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소를 더 이상 추가하지 않는 것이다. +1만큼의 효용성을 차지하지는 못하지만 공유지는 유지 존속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목동이 소 한 마리를 추가하는 문제이다. 이때 소를 추가하지 않은 목동들은 소 한 마리를 추가한 목동으로 인해 -1만큼의 효용성을 공동으로 갖게 된다.
목동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목동들은 유한한 세계(공유지의 한계)에서 끝없이 자신의 가축을 두수를 증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 목동은 자신의 최고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끝없는 가축을 공유지에 투입할 것이며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토마스 하딘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공유지를 사유 재산으로 처분하거나 공공 재산화하여 입장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는 부, 경매, 제비뽑기, 선착순 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 기준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의 여지를 두고 있다.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예로는 첫째, 매세추세츠주의 레오민스터시의 경우를 들고 있다. 이는 크리스마스 쇼핑기간동안 시내 중심가의 주차 요금을 무료로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마음대로 무분별하게 주차를 하였고, 결국 부족한 주차 공간은 공유지의 비극 초래하였다. 둘째, 바다의 자유를 예로 들고 있다. 바다의 무한한 자원과 공해 지역에서의 어업 활동 자유가 결국 고래의 멸종 위기와 어자원의 고갈 문제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셋째는 요세미티 계곡 국립공원의 경우인데 방문객의 수가 한계를 초과함에 따라 결국 국립공원이 황폐화 되었다는 것이다. 방문객은 ‘가치’ 찾기 위해 방문했으나 결론적으로 ‘가치’가 파괴되어 버린 사례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환경오염의 문제와 직결된다. 공유지의 비극은 공해와 오염을 초래하였으며, “공유지로의 투입의 자유”는 하수구, 화학방사성 폐기물, 독성연기 등을 초래하였으며 환경은 심각한 오염으로 위기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토마스 하딘은 그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왜 오염이 되는 것을, 오염을 유발하는 것을 투입하는가? 이는 합리성(rationality)과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결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쾌락의 양을 ⓐ공유지로 방기하는 자신의 폐기물 비용의 개인 부담액 ⓑ 방기하기 전 자신의 폐기물을 정화하는 비용으로 보고 ⓐ의 비용보다 ⓑ 의 비용이 크기 때문에 결국 ⓐ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계속해서 공유지인 환경을 오염시게 된다는 결론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유지의 사유재산화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비극의 회피 가능성이 커진다고 볼 수도 있으나 공기, 물 등 사유화도, 담도 칠 수 없는 공유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결국 오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fatal freedom(to exploit the commons)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인구 문제에 대한 이러한 분석을 가장 단순하게 요약한다면 바로 다음과 같을 것이다. 공유지
(共有地)가 타당성이 있다면, 그것은 인구 밀도가 낮다는 조건하에서만 타당성을 갖는다. 인구가 늘어남
에 따라, 공유지(共有地)는 차차 포기되어져야 했다. 우선, 우리는 농토에 담을 두르고 목초지와 사냥 및
어업 지역을 제한함으로써 식량 생산에 있어서 공유지(共有地)를 포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은 전세계를 놓고 보았을 때, 여전히 완전한 것이 아니다. 얼마 후, 쓰레기 처리장으로서의 공유지(共有地)의 개념 또한 포기되어야 했다. 일반 하수 처리에 대한 제한은 서구 세계에서는 널리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동차, 공장, 살충제 사용, 비료 사용 그리고 원자력 관련 시설 등에 의한 공유지의 오염을 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번 공유지에 새로이 담을 둘러칠 때마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자유가 침해된다. 먼 과거에 이뤄진 침해는 현대인들이 손해를 보았다고 불평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맹렬히 반대하는 것은 새롭게 제안된 침해에 대해서이다. '권리'와 '자유'를 부르짖는 소리가 시끄럽다. 과연 '자유'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상호 합의하여 도둑질을 막기 위한 법률을 통과시켰을 때, 자유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은 더욱 자유로워졌다. 공유지의 논리에 얽매이는 개인은 오직 전체적인 파멸을 야기시키는 자유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일단 상호 강제의 필요성을 이해하게 되면, 개인들은 다른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된다.
結論
문제는 공유지의 개념이 이제는 전 지구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목동은 모든 인간이 되었다. 인구 증가와 인간의 탐욕, 그리고 공유지의 논리는 공유지의 파괴와 공유지 비극의 발생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공유지의 비극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공유지 비극의 일반적인 4원칙처럼, 지구 자원의 유한성, 인간 활동의 대부분이 공유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인간 활동이 지구의 용량(capacity)을 초과할 가능성이 매우 많다는 점, 그리고 인간의 물질적 소비를 극대화하려는 욕망 (세계적 공유지의 남용, 착취, 이기적 사용)은 결국 지구온난화, 폐기물, 생물 다양성의 감소, 사막화, 오존층의 파괴, 물의 오염 등을 가져오고 있으며 지구는 결국 파국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실천이 필요할 때이다. 모든 국가는 환경문제에 관한한 인류 공존의 문제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법과 규제는 이제는 국경을 넘어야 한다. 그리고 인류는 힘을 모아 지구를 지키는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 지구는 현재의 우리만의 것은 분명 아니다. 미래의 인류 즉, 우리 자손들이 영원히 복된 삶을 살아야 할 역사를 초월한 공유지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