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수난과 부활
이장우(李章佑), 영남대중국어문학부명예교수
2년 전에 남경대학에 가서 한 달 반쯤 지내다가 온 일이 있다. 중국학을 전공하였다고는 하지만 50년 전 오직 국교가 있었던 대만밖에 유학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단시간의 명승지 관광이 아니고, 대륙의 한 유서 깊은 곳에 찾아가 앉아서 좀 조용하게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싶었다. 그 때 인상 깊었던 일 한 두어 가지만 쓴다.
학교 정문을 들어가면 “사회주의의 우수한 점을 살려서 화해(和諧)사회를 만들자”는 구호를 누른 광목천에 시뻘겋게 적어 걸어둔 것을 늘 곳곳에서 보게 된다. 하루는 그러한 현수막 아래로 지나가는데, 어떤 지나가던 늙은이 한 사람이 나를 보더니 “선생님, 사회주의의 우수한 점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아마 그 늙은이가 나를 그 학교의 교수쯤 되는 줄 알고 그렇게 질문한 것 같았다. “잘 모르겠는데요” 하였더니, 혼자서 “허허! 사회주의의 우수한 점이라?” 하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지나갔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현재 중국 대륙 사람들의 화두인 위의 구호의 뜻을 잘 알 수가 없다. 물론 사회주의도 우수한 점이 많겠지만, 지금 대륙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 과연 사회주의에 꼭 들어맞는 것인지 아닌지부터가 큰 문제가 되는 줄 알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화해사회란 또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인도가 어떤 나라인지 잘 알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중국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흔히 중국을 다녀오는 관광객들에게 들으면 중국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 한다고 한다. 아마 큰 도시에 들어서는 높은 빌딩 같은 것만 보고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후진 구석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해서 언제 어느 세월에 빛이 나겠나 싶은 것도 수두룩하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놀란 것도 있다. 남경의 체육관 지하에 있는 대형 서점이다. 한국의 광화문 교보문고 매장보다도 더 넓어 보이는데, 자연계 책은 없고, 인문과학, 사회과학 책만 판다.
거기서 내가 더욱 놀라고 당황하게 된 것은, 대만에 유학하고 있을 때 자주 보던 교수들의 저서, 혹은 평전들이 즐비하게 대륙에서 나와서, 아주 잘 보이게 구석구석 특별히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대만밖에는 유학할 수 없는 것도 답답하였고, 또 대륙에서 온 학자들도 꼭 역사의 낙오자와 같이 가여워 보였다. 그렇게 보이던 그들이 50년이 지난 오늘 그들의 고향 땅에서 이렇듯 훌륭한 대접을 받고 복권을 하다니? 이러한 것을 바로 “화해”라고 하는 것인가?
대만으로 홍콩으로 피난 나와서 어렵게 살던 나의 스승들, 대륙에 있다가 문화대혁명 때 박해를 받았던 이름만 들었던 선배학자들 이러한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인문 전통은 명맥을 유지하였고, 또 오늘날 중국을 “화해”롭게 변모시키려 하지 않는가? 내가 그들의 제자가 된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2009,4,17)
첫댓글 선생님의 귀한글 읽고 많은 생각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인문학도 멋지게 부활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주위에 불문학 독문학을 위해 젊음을 바치고 지금은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친구들을 보면 현실적으로 참 맘이 아프답니다. 우리의 서점에는 언제쯤이나 인문학이 대우받는 시절이 올까요. 언제나 그들의 ' 화해'에 해당되는 그 무엇이 생기게 될까요?
5-6년 전에 청도에 들렸을 때 그곳에서 공장을 하는 친구가 서점에 관광(?)을 가자고 하였다. 조금 의아하였지만 서점을 보고는 말의 뜻을 알았다. 어머어마한 크기의 서점과, 그 앞의 주차장의 넓이는 가이 바다만한 넓이이었다. 그곳에 중국회화전집(전30권)중 2-3권만 전시되어 있었다. 우선 보이는 것만 사고 나머지는 친구가 사서 보내주기로 하였다. 그 책을 모두 사는데 2년은 걸렸다. 도무지 책을 가져다 놓지를 않는다고 하였다. 점장에게 부탁해도 마찬가자이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친구 왈, 서점이 국영이라서 월급이 나오니까 그친절하지 않다 했다. 덕택에 30권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 한국에서 극히 적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인문학에 대하여 생각한 바를 간단히 적어 봅니다. 우리나라 인문학 서적의 문제점은 전문서적은 전문성이 부족하고, 교양서적은 재미가 없는 점이 아닐까요? 저가 읽어본 동양고전에 관한 중국어, 일본어 서적에서 한국인 학자의 견해가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한글로 된 서적 중에서 재미가 있다고 느낀 것은 대부분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쓴 책을 번역한 것이었습니다(이인호 교수나 유병례 교수가 쓴 책은 재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문학은 이 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