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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소리선교 원문보기 글쓴이: 참복음
“사람 심은 데 사람 나고, 원숭이 심은 데 원숭이 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행 17:26)
인간은 한 혈통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고 지금도 믿고 계시는지요?
그러면 여기 하나님 말씀대로 그 주장이 사실임을 입증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피가 모자라서 죽어갈 때 원숭이 피를 수혈하면 해결될 터인데
왜 그렇게 하면 안됩니까?
만약 진화론을 믿고 주장하시는 분이 계시면
자신 있게 이 문제에 대하여 대답해 주십시오.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면 그 혈통이 통해야 할 것이고
그 혈통이 하나면 피도 똑같아야 하는 법입니다.
원숭이 피를 사람에게 수혈시키면 왜 그 사람이 죽습니까?
인간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종이든
아무리 다른 피부 색깔에 생김새가 다르다 할찌라도 서로의 피가 통합니다.
사람끼리는 피가 통한다는 말입니다.
옛날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사람 심은 데 사람 나고, 원숭이 심은 데 원숭이 나는 법”이 진리 아닙니까?
사실 진화론은 터무니 없는 이론을 내세워 무지한 인간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대항하는 무지의 산물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수명과 거주의 경계를 정하심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 17:26)
하나님께서 인간의 연대와 거주의 경계까지도 정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도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인명은 재천이다”라고 말입니다.
사람의 수명은 하늘에 달렸다고 말하는 이유는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자기가 죽는 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연대와 수명을 정하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연대를 단축시키는 행위인 자살을 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연대를 거스린 살인죄를 범하는 죄가 될 것입니다.
혹시 자살하려는 충동이 일어나 자기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어도
살인죄가 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기 생명도 엄밀한 의미에서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환경이나 주거마저도
모두 하나님의 통제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그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인생들이 창조자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간증하며 부르던 찬송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의 다스리심과 권위 아래 살게 되면
그의 거처나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영광스러운 만남의 장소 – 새 예루살렘
요한 계시록 21장 1절을 보시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이 준공되기까지
현재는 공정 과정 중에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인 사랑의 짝으로 지어진 사람들과
하나님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부부관계를 약속 받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만남의 장소가 바로 신천 신지 새 예루살렘입니다.
모든 인류의 영원한 꿈이 이루어지는 그 곳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우주 창조의 궁극적인 최종 목적지이기도 합니다.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는데 쓰여질 가장 중요한 자재들은
정금과 보석과 진주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찬송가에서 자주 부르듯
“황금 보석 꾸민 집에 우리 들어 가겠네…”하고 꿈꾸는
그런 화려한 건물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영원히 거처를 함께 하실
영광스러운 단체적 연합을 의미합니다.
질그릇 같은 육체에 정금과 진주와 보석을 갖는 비밀
흙으로 만들어진 이 죄 많은 인생들이
어느 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원한 속죄를 얻은 후
십자가의 능력을 힘입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게 될 때에
놀랍게도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케 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타고 난 아담의 부패한 본성이 끝나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성한 생명이 공급되기 시작합니다.
이 놀라운 순간부터 하나님의 본성을 상징하는 정금 성분과
그리스도의 인격과의 만남을 통해서 변화됨을 상징하는 진주 성분과
성령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심의 상징인 보석 성분이
우리들에게 공급 됨으로써 이루어지는
놀라운 변화의 결정체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체험한 사람들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는
간증을 선포하며
그리스도를 입증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막는 자들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8)
우리는 하나님을 본 적이 없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얼마나 상세하게 당신을 나타내고 계시는지요.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불의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하고 대항하면서
모든 경건치 않은 불의의 길로 갈 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솜씨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라고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지저귀는 저 새소리를 통해서도
창조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밤 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멀리 하늘 저편에서 울려 퍼지는 뇌성 벽력을 통해서도
창조자 하나님의 음성과 그분의 위대하신 솜씨와 능력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은 늘 땅만 쳐다 보고,
돈만 좇아가면서 늘 꿈꾼다는 것이
서로가 만나면 인사마저도 “부자 되세요~”라고 말할 뿐입니다.
부자가 되면 무엇하겠습니까?
부자가 되어도 멋진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멋진 부자란 하나님을 믿고 허락 받은 부를 다스릴 줄 아는
그런 부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믿고 아는 일에 그렇게도 빈곤하고 무지하면서도
돈만 알고 보이는 세상만 알면 그 부자는 불행한 부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생들 앞에 제시해 놓은 핑계할 수 없는
현장이 열려있음을 말씀으로 밝혀 드리고자 합니다.
만물을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핑계 못함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1:20)
천지 창조 이후부터
창조자 하나님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분께서 친히 만들어 놓으신 만물 속에
분명히 나타나 있음을 알게 해 주신 말씀입니다.
믿지 못할 하나님을 억지로 믿으려고 노력하거나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을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빈틈없이 이미 우주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실존과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밝히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하나님을 알 길도 없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접촉할 기회도 없었다고 핑계할 수 없도록
모든 것을 밝히 증명해 놓으셨음을 알게 해 주신 말씀이지요.
바닷가의 모래 – 하나님이 정하신 바닷물의 경계선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시 104:9)
지구는 이미 말씀 드린 대로 30% 정도가 육지이고,
70% 정도가 바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약 지구의 바닷물이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넘실거리거나 움직이면
지구의 모든 육지를 순식간에 삼켜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다야, 너는 여기까지만 오고 더 이상은 올라오지 말거라” 하고
바다를 향해 명령하시며 ‘물의 경계선’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바다의 경계선이 어디까지 일까요?
바닷물의 움직임은 밀물과 썰물을 통하여 순환작용을 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바닷물이 육지의 어느 부분까지만 다가 올 수 있도록
바닷물의 경계선을 그어 놓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한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렘 5:22)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바다의 경계선을 그으실 때
바닷가의 모래가 깔린 이유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제가 하와이 호놀루루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천혜의 섬 호놀루루의 와이키키 해변에
수 많은 관광객들이 바다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광 가이더가
“이제는 와이키키 해수욕장에 모래가 없어져서 큰 걱정이라”고 설명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자 그 가이더는 해변에 높은 건물들을 자꾸 세우니까
그 건물이 바다와 육지 사이에 바람의 소통을 가로 막아서
자꾸만 모래가 파도에 쓸려 떠내려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청난 돈을 드려서 모래를 사다가
부족한 해변의 모래를 보충해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지와 바다 사이에 모래를 덮으셔서 ‘물의 한계’를 삼으셨는데
사람들이 육지와 바다를 다스리는 바람의 소통을 막으므로 인하여
모래가 바다 속으로 떠내려가는 어려움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 파괴 현상이기도 합니다.
“바다에 길(해로)이 있다” (성경은 3000년 전 선포, 사람은 150년 전 발견)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시 8:8)
여기 3천년 전에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에 대하여 밝혀 놓은 신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로는 바다의 길을 의미합니다.
“아니 바다물이 덮여 있는데
그 밑에 무슨 길이 있단 말입니까?”하고 질문 하겠지만
바다에 길이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여기 인터넷을 통해서 얻은 정보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1806년에 출생해서 1873년에 사망한
해양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매튜 머로우라는
미국 버지니아에 태어나서 어렸을 적부터 바다와 친근해졌고
일찌감치 선원이 되어 많은 항해를 거쳤으나
불의의 사고로 부상을 당했답니다.
그가 집에 누워 있을 때에 그의 조카가
침대 머리에서 읽어주는 성경말씀 시편 8편에서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는 내용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이야 해로가 있다니? “ 이 말씀에서 큰 힌트를 얻은 머로우는
몸이 회복된 다음에 계속해서 바다의 바람과 해일의 순환 사이에 있는 법칙과
항해 일지를 참고하여 <바람과 해일에 관한 자세한 연구> 끝에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로를 작성함으로써
세계 해양학회 최초로 해상의 기상도와 해로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언제 있었던 일입니까? 1855년의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겨우 154년 전 일이 랍니다.
그리고 현대의 고기잡이는 어부들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
어로-고기가 다니는 길-를 미리 알고 그물을 던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캐나다 벤쿠버에서 떠난 새끼 연어가
태평양의 하와이군도 해역을 돌아서
다시 벤쿠버 본향으로 회귀하는 연어가
어느 지역을 통과할 때 생선의 크기와 맛이 좋은 가를 연구하는
“어로학” 연구팀이 있다고 합니다.
연어가 다니는 길과 시간을 연구한 팀이
그 정보를 조업하는 어선에 제공해 주면
어렵지 않게 연어를 잡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고기잡이 배 안에는 어군탐지기라는 장비가 있어서
고기들이 어디를 통과하고 있는지와
고기의 크기가 얼마만 한지를 미리 첵크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참치는 참치가 다니는 길이 있고,
연어도 자기들이 다니는 길이 정해져 있습니다.
바다가 넓고 깊다고 해서
아무데나 제 마음대로 다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난류지역에서 사는 고기가 있고,
한류지역에서 사는 고기가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난류와 한류기 부딪히는 지역에서 사는 고기들도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고기의 거처와
적응하여 번식하기 쉬운 생태적 환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배치해 놓으신 그 법칙만 찾아내면
어부들이 큰 고생하지 않고서도 수월하게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씀 드리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이 모든 신비에 속한 비밀들이
수 천년 전에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릴 뿐입니다.
바닷물로 비를 내리게 하고, 태풍으로 바다를 청소하시는 하나님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욥 36:27)
다시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에 시선을 돌려
여러분들을 망망한 바다로 안내해 드리고자 합니다.
지구의 바다는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지구의 대지를 적셔 주는 비는
어떻게 해서 내리게 되는지 그 공정 과정을 살펴 보겠습니다.
바다의 물이 태양열에 의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 갑니다.
구름이 무한정 하늘로 올라 가는 것이 아니라
구름들도 종류에 따라 떠 있는 위치가 각각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내리실 필요를 느끼실 때,
구름 속에 있는 음전과 양전이 서로 부딪히면서
구름 속에서 번개가 칩니다.
그 순간 지상에서는 곧 비가 내릴 것을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지구의 바다는 비를 내리게 하는 수증기도 만들지만
지구의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해풍이 불어 수분을 실은 공기를 육지로 보내 주기도 하고
또 기온을 조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도에서 발생한
강한 태풍이 북상하여 추운 북쪽 지방을 향하여 올라올 때
사실은 두려움도 싣고 오고 허술한 건물이나 나무들을 쓰러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태풍이 불면 폭우를 몰고 와서 상상을 초월할 만큼
지구의 구석 구석을 청소하여 깨끗하게 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고기떼들도 몰고 올라온다는 사실은 상식적인 정보이기도 합니다.
이 큰 태풍 역시도 하나님의 경영의 일부입니다.
질소 비료를 내려 식물을 풍성하게 키우시는 하나님의 경영
“구름의 펴임과 그의 장막의 울리는 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루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비히 주시느니라”(욥 36:31)
하늘에서 비를 내리기 전에 먼저 번개가 치고 뇌성이 울립니다.
번개에 대한 정보를 뒤지다가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번개가 한 번 번쩍하는 순간 번개의 온도는
태양의 외부 온도가 섭씨 6천도인데
그 4배가 넘는 2만 7천도 가량이나 되고
또 번개의 전기량은 1회에 전압 10억 볼트,
전류는 수 만 암페어에 이른다고 합니다.
번개가 5만 암페어 규모의 낙뢰를 치는 경우
100W짜리 전구 7천개를
8시간 동안 켤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공기 중에는 질소성분이 78%이고,
산소 성분이 21%, 그리고 나머지 성분이 1%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기 중에서 발생한 번개가 칠 때,
공기 속에 들어있는 많은 질소를 태움으로서
이 질소가 산화 질소 곧 비료로 바뀌는 것입니다.
비료를 머금은 비가 대지에 내려오는데
수 십 억톤의 산화 질소를 빗물에 섞어
식물들을 풍성하게 자라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영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1955년 미국의 대기학자인 후드 블라인이
해발 3천 3백m 고지에 올라가서 수 년 동안 천둥 번개를 연구했답니다.
번개가 칠 때마다 측정을 해보니까
수십 억 톤의 질소가 대기 중에서 번개에 의해 질소 비료로 바뀌어
식물을 풍성하게 자라게 하고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번개가 치면 공기 중에 질소 비료가 만들어지고 비를 내려
어느 곳에 살고 있는 식물이라도 그 비료를 공급받아
사람들이 산과 들에 자연으로 자라고 있는 식물들에게
따로 거름을 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가꾸고 계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집에서 화초 가꾸기를 좋아 하는데
비 오는 날 화분들을 꺼내 하루 종일 비를 맞히면
그 다음 날부터 식물들이
힘차게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식물들이 웃음을 머금고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무지하고 죄 많은 인생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우리 주변에서 겨우 50년 전에 이러한 사실을 발견해서 발표했지만
하나님은 4천년 전에 성경 안에 기록해 주셨으니
사람들이 이러한 성경을 읽고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수 많은 영혼들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인 사탄에게 붙잡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죄 많고 허무한 인생들을 향하여 따뜻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을 통하여 어리석은 인생들을 향하여
손을 펴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황송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17:27-31 인용)
이러한 놀라운 신비에 속한 창조주 하나님의 경영과
그분이 하시는 일을 다 말씀드리려면
온 종일 이야기해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너무나 증거들이 많고 많습니다.
다만 오늘의 주제를 결론지어야 하는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이
방금 읽은 사도행전 17장 27절부터 31절 말씀 안에 다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되새기시면서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회개의 길’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죽은 후에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 준엄한 심판을 받는다.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 나서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다가
결국은 무덤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덤이 인생의 종착점은 아닙니다.
무덤 저 건너 편에 하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각각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외면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하나님께 큰 빚을 진 자들입니다.
일생을 사는 동안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서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우리 인간들에게 빚을 독촉하시거나
그 빚을 갚으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이 죄인에게 선물을 주신다는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또 한 가지 선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선물이 아니라
영과 혼에게 베풀고자 하시는 위대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구원의 선물이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선물입니다.
육체에 속한 생명과 모든 만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값없이 거저 차별 없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지만
영과 혼에 속한 하나님의 선물은 한 가지 조건을 달아 놓으셨습니다.
그 조건은 단 한 가지, 믿음뿐입니다.
오직 믿음을 갖고 추구하는 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지금 여러분들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공기를 마실 수 있습니다.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그냥 공기를 주셨잖아요?
그리고 햇빛도, 물도, 양식도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거저 주신 선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특별한 영의 선물만큼은 구하고 찾는 자와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만 주시도록 한정하셨습니다.
위대한 솜씨와 능력의 하나님께 마땅히 찬양을 올리자!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 하였느니라.
그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나니 먼데서도 보느니라.”(욥 36:24-25)
이제 여러분, 아직까지 혹시 구원을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면
마땅히 찬송해야 한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온 우주에 철철 넘치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게 되면 저절로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셔서
좋은 그림이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감탄도 나오고 저절로 탄성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솜씨와 능력을 보면서도
한번도 감탄하지 않았고 한 번도 찬송하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연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욥 36:26)
하나님은 너무나 크신 분이십니다.
그 크신 하나님을 우리 인간들의 지혜로 감히 측량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자연 현상들을 제시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경영과 능력의 일부를 제시해 드렸습니다.
한 낱 흘러가는 신기한 이야기로만 듣지 마시고,
크신 하나님!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찾고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끝맺으려 합니다.
“오,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시여,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시옵소서.
주님의 놀라우신 경영과 공급으로
자기 생명이 보존 되어 왔음을 그들로 하여금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과 혼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이 말씀의 이끄심을 따라 한 분 한 분에게 모두
주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이끄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