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 세상을 지배한다.
생물들의 행동을 조정하는 기생충
글/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이 챕터가 가장 놀라웠습니다.......은유
내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대변 검사를 했다. 마당에 신문지를 깔고 용변을 본 후 대변을 콩알만한 덩어리로 만들어 작은 성냥갑 속에 널어 학교에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한 숙제 중의 하나였다. 그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영어나 수학 숙제를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는 벌이 우리를 기다리곤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 중요한 숙제를 깜박 잊고 덜렁덜렁 등교한 나는 급한 김에 짝꿍의 것을 반으로 나누어 제출하는 잔꾀를 부려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며칠 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내 짝꿍은 그 흔한 회충 한 마리를 가진 게 고작이었는데 나는 무슨 긴 이름의 희귀한 기생충을 보유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내 몸에서 나온 게 아니라고 자백하기엔 너무 늦었기에 나는 하는 수 없이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그 흉측하게 생긴 붉은 알약 여러 개를 삼켜야만 했다. 하루 종일 오줌도 하늘도 모두 노란 색이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공중위생이 워낙 잘 되어 있어 회충약을 먹는 일이 마치 석기시대 이야기처럼 들릴 지경이다. 그래서 많은 의과대학의 기생충학과가 조금 과장하면 존폐 위기에 몰린다고 한다. 기생충도 없고 있어봐야 그리 대수롭지 않은 질병을 일킬 뿐인데 꼭 학과로 남아있어야 하느냐고 다그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후진국에서는 기생충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기생충이라는 용어 대신 기생생물이라는 용어를 쓰면 우리 인간의 질병 대부분이 다 그들과의 전쟁이다.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 병원균도 큰 동물들의 몸 안에서 기생하는 원생동물이다. 바이러스를 과연 생물체로 봐야 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요즘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에이즈도 외부로부터 우리 몸 속에 잠입한 기생생물의 소행이다. 이 밖에도 박테리아와 세균 등 기생생물들의 공격은 실로 다양하다.
기생충의 힘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왜 대부분의 생물들이 암수로 나뉘어 골치아픈 성문제를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열쇠도 어쩌면 기생생물이 쥐고 있을 것이라는 게 현재 가장 유력한 학설이다.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개체수를 늘리는 일에는 결정적으로 유리하지만 모두 똑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치명적인 병원균이 돌면 한꺼번에 절멸하고 만다. 그에 비하면 암수로 나뉘어 마음에 맞는 배우자를 찾아 싫건 좋건 서로 협조해야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것이 유성생물의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유전자들을 섞어 병원균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잇다. 이처럼 우리의 성과 생존이 기생충에게 달려 있다면 가히 그들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달팽이는 건조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한다. 몸 속의 수분이 지나치게 많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다달팽이 중 어떤 종은 일단 기생충에 감염되면 매일같이 자꾸 바위 위로 기어오른다. 쉽사리 갈매기드르이 먹잇감이 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이 무슨 어처구니 없는 자살행위란 말인가. 궁극적으로 갈매기 몸 속으로 들어가야 번식을 마칠 수 있는 기생충이 달팽이를 이용한 것이다.
비슷한 식으로 기생충에게 당하는 개미들도 있다. 평소에는 풀숲 사이로 기어다니던 개미가 기생충의 공격을 받으면 자꾸만 풀잎 끝으로 기어오른다. 그리곤 풀을 뜯는 양이 나 소의 장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역시 초식동물의 장 속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인 기생충의 농간에 놀아난 것이다. 멀쩡하게 물 속에서 잘 살던 물고기도 기생충에 감염되면 자꾸 수면 가까이 올라가 그만 왜가리 뱃속으로 끌려 들어가기도 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생물학자인 코스타리카의 에버하드 박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최근호에 맵시벌 애벌레에게 농락당하는 거미의 운명을 소개했다. 평소에는 우리가 흔히 보는 모양의 둥근 거미줄을 치던 거미의 몸에 맵시벌이 알을 낳아 애벌레가 자라기 시작하면 기괴한 일이 벌어진다. 거미는 홀연 섬세한 거미그물 만들기를 중단하고 강한 바람에도 끄떡없는 엑스자 모양의 구조를 만든다. 결국 맵시벌 애벌레는 거미를 죽이고 그 든든한 버팀 구조 한복판에 매달려 번데기를 튼다. 실험적으로 거미의 몸에서 맵시벌 애벌레를 제거하면 한 이틀 밤은 계속 애벌레가 원하는 엑스자형 구조를 만들지만 이내 정상적인 둥근 그물 구조물을 만들기 시작한다. 마치 오래된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 옛솜씨를 되찾은 장인처럼.
요즘 한창 인간 유전자의 전모를 밝히는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루게 한 생명의 신비가 한 올 한 올 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유전자들의 정체가 속속 밝혀지면 그 중 상당수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몸 속에 들어왔다 그냥 눌러앉은 바이러스들의 유전자들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기생생물들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우리로 하여금 하고 싶지 않은 크고 작은 일들을 하도록 조정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적이 섬뜩하다.
첫댓글 인간의 몸이 기생충의 우주겠죠. ^^ 우리는 지구에 기생해서 먹고 살고, 그들은 우리를 먹으며 살고요. 주고받는 거 아닐까요? 하하...
.........!!!!!!!!
저 그림은 편충인데, 저 작고 가녀린 몸뚱에에 눈, 혀 (맞나?) 창자가 고루 갖추어져 있어요. 그리고 전체 몸의 균형을 보면 놀랍죠. 거의 완벽에 가까운 동그라미로 몸을 말고 있는 형태와 꼬리 부분으로 가면서 만들어진 곡선 그리고 구부러지기 시작하는 지점의 각도와 비율이 마치 누가 일부러 사진을 찍기 위해 만져놓은 것만 같죠. 자연을 그리다 보면 악''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참, 꼬리 부분이 만드는 곡선을 전체적으로 보면, 무릎꿇고 앉아 하늘을 쳐다보며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초록님. 생각해 보면 인간의 몸 안에 무수한 기생충과 세균이 함께 살고 있고... 특히 모기와는 다정하게 피를 나누며(!) 살고 있죠. 공기에 묻혀 들어오는 수많은 먼지입자 속에는 죽은 다양한 동식물의 디엔에이가 담겨있을 테고요.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가 내 몸의 한계일까요?? ...............무한이죠.
좋은 정보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