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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금북정맥 5차
<삼산리갈림길~이티재~구녀산~좌구산~질마재~칠보산~모래재>
○ 홀로
○
<좌구산 정상에서 바라본 구녀산과 이티재 방향>
지도는
○ 총 산행 시간 및 거리 : 13시간 50분 / 약 24.9km
첫째날 : 질마재~좌구산~구녀산~이티재~삼산리갈림길
약 15.8km (8시간 50분)
둘쨋날 : 질마재~칠보산~모래재 (9.1km,5시간)
삼산리 갈림길ß<약 6km/추정치>ß이티재ß<1km>ß구녀산ß<1.8km>ß분티재(분젓치)ß<1.8km>ß방고개ß<2.5km>ß
좌구산ß<2.7km>ß질마재à<2.8km>à칠보치à<1.7km>à칠보산à<3.3km>à송치재à<1.3km>à모래재
○ 주요 지점별 시간/거리
: 10분 휴식
산행기 >>>>>>>>>>>>>>>>>>>>>>>>>>>>>>>>>>>>>>>>>>>>>>>>>>>>>>>>>>>>>>>>>
설이 몇 일 코 앞이다.
요즘 뭔지 모르게 마음이 심난,허전,우울한 것 같기도 한데 쉬이 나아지질 않는다.
나이 탓인가.
먹고 사는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 된 것 같고,,,
연이틀 한남금북에 들어가기로 한다.
새벽 깨어난 잠이 오질 않아 뒤척뒤척 거리다 잠이 들었는데 너무 늦게 일어나 버렸다.
주섬주섬 대충 준비하고 배낭을 매고 집을 나서니
어차피 오늘과 내일 산행은 빡세게 갈 생각은 없으니 급한 맘없이 천천히 차를 가지고 중부고속도로로 간다.
교통 체증 없이 진천,음성을 지나 증평ic에서 빠져 네비가 일러주는 대로 증평 시내를 거쳐 592 지방도로 따라 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마루금 있는 곳에 이르니 경사가 급해지면서 길이 꾸불꾸불해진다.
마루금이 있는 고개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전해온다.
질마재 도착 전에 요즘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구제역 소독을 하고 있다.아~차~~차
이럴 땐 산 돌아다니는 것도 삼가야 하는 건데,,
하지만 이미 들어와 버렸고,,,,
다행히 구제역 소독은 제법 제대로 진행하고 있는 듯하다.
질마재 도착 전까지 3번 구제역 소독한 것 같다.
집에 와서도 구제역 소독 냄새가 가시지 않아 차 타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냄새가 심하다.사람 잡을 정도로,,,
질마재라고 생각한 곳에 도착했지만 막상 표지기가 양쪽으로 이곳저곳 살펴봤지만 보이질 않는다.
좀더 가다 주유소에 물어 보고 다시 되돌아와 준비하고 올라가 본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곳 질마재는 비탈 사면 공사를 새로 하면서 표지기가 달린 나무들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배수로가 있는 비탈 사면을 좀 올라가 보니 그제서야 도로에서 보이지 않던 표지기가 펄럭이고 있다.
△ 질마재
글로리아 노원 간판이 있다.
<<질마재~좌구산~산삼리 <
제법 날이 쌀쌀하고 바람이 불어 손,발,귀가 추워 난리다.
이럴땐 빨리 올라쳐 몸에 열을 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가파른 길을 올라칠려니 제법 힘들고,,,
손은 바지주머니에 꾹 집어놓고 언 손을 달랜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비로서 몸에 열이 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오늘은 얼마나 추운 지 바라클라바까지 착용했지만 땀 조차 나질 않는다.
질마재에서 약 40분 정도 가파른 길을 씩씩대며 올라가니 이곳이 새작골산이며 질마재 1.3km,좌구산 1.9km,안봉천 1.6km이라고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개념도상의 새작골산 삼거리.
좌구산은 속리산군을 제외하면 한남금북 정맥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질마재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서 좌구산에서 부터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티재로 진행된다.
새작골산에서 20여분 진행하니 그제서야 시야가 터진다.
이런 저런 전망을 즐기면서 가끔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좌구산에 도착한다.
좌구산 근처에서 사람들을 몇 사람 만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추워서 그런 지 좌구산 정상에 가서야 한 사람을 만난다.
근처에 사시는 분이라고 하며 요 앞에 보이는 산에 구녀산이라고 한다.
구녀산과 앞으로 가야 할 이티재까지의 산길이 보여진다.
정상에서 다시 가야 할 길은 내리막 길.
좌구산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니 돌탑 쌓은 곳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급우틀하면서 비탈길을 내려간다.
아직 몸이 춥다.내려가는 길에 좌구산 오르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고,,,
가는 길에 쉼터 의자에서 짧은 점심 식사를 한다.
좀 쉬어 가고 싶은데 추위와 바람에 쫒겨나다시피 다시 길을 나선다.
다음 포스트는 방고개.
방고개는 어느 산행기를 읽어보니 밤이 많아서 밤고개,,방고개로 되었다,,,근거,,,모르겠다.
방고개 도작 전 건물이 보인다.알바하는 줄 알았다.
지도에는 없는,,,좌구산 천문대.이젠 완공단계 인 듯하다.
천문대 주변에 쉼터 시설이 되어 있고 정자도 있는 방고개 자체가 천문대 진입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천문대는 하늘을 봐야 하는 곳이기에 항상 높다란 곳에 만들어지는 줄 알았는데 좌구산 천문대는 안부에 위치해 있다.
방고개에 ‘재미있는 새이야기’라는 안내판에 시속 참새 30km,매는 350km이고 새가 나는 높이는 150m정도라고 알려준다.
매가 시속 350km을 날아다닌다,,,
햐!!빠르다.
△ 나중에 지도를 보니 대산(647),조봉산(684) 등의 산군인 것같은데 어디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 두타산 쪽인 듯
△ 좌구산 삼각점
△ 앞에 바로 보이는 산에 구녀산이고 저멀리 이티재 방향
△ 좌구산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돌탑,여기서 급우틀한다.
△ 좌구산 천문대
△ 방고개
방고개를 출발해서 다시 구녀산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좌구산의 산세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별 특징없는 옅은 눈이 쌓인 길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니 앞쪽으로 저수지가보인다.
외통수 같은 길을 따라 가는데 갑자기 급경사 길이 나타난다.
표지기도 보이지 않고,,,다른 길은 없어 보였는데,,,???
다시 빽해서 가 보지만 그래도 갈 길이 묘연하다.
나침판을 보니 급경사길이 가야 할 서쪽으로 나타나고,,,
결국 그 급경사길로 가야 하나,,,하며 다시 그 길로 가는데 좌측으로 길 흔적이 살짝 보인다.
나침반을 다시 보니 나침반이 날씨에 재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이런,,,ㅠㅠ
동네길 같은,,,위험한 급경사길로 가는 것보다는 알바를 하더라도 안전하게 가자며 간 그 길이 바로 정맥길이었다.
다행히 편한 그 길을 따라가니 도로가 보이고 도로 오른쪽으로 약간 떨어진곳에 정자가 보인다.
정자 쪽으로 걸어가니 율리 웰빙타운 종합안내도라는 커다란 간판이 있다.
정자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다시 산 쪽으로 올라간다.
뒤를 돌아보니 회평저수지가 훤히 잘 보인다.
좀 올라가니 동네 근처 산답게 운동기구도 있고 의자도 있는 곳들이 자주 눈에 띄지만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그런 산길을 걷다 돌탑이 있는 곳,그 곳에 구녀산의
사진만 찍고 빨리 진행한다.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이티재 가는 길은 그야말로 편안한 산길이나 지쳐 속도가 나질 않는다.
가는 길 등로 옆으로 남자 어른 한명,그리고 대엿섯명의 남녀 중,고학생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분위기가 묘한 느낌,,,
방해될까 봐 발꿈치를 들어 빨리 통과한다.
편한 산길을 벗어나 도로가 있는 이티재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주유소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이티재 휴게소가 있다.
도로 건너편 상당산성 쪽으로 가는 들머리 입구에 원형 반사경과 표지기가 보이는 펄럭이는 것을 확인한다.
시간은
앞으로 얼마 정도 더 가야할 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무조건 지난번 탈출한 곳,,,삼산리 갈림길까지는 가야 한다.
두시간 예상한다면
빨리 서둘러 올 껄,,,
일단 추위에 긴장한 몸을 풀기 위해 이티재 휴게소에 들어간다.
커피한 잔 부탁하고 또 한잔 더,돈은 받지 않겠다 하시지만 천원 한장 디밀고 나온다.고마운 정을 뒤로 한 체 길 건너 들머리로 향한다.
△ 뒤를 돌아보면 좌구산이 계속 보인다.
△ 왼쪽 좌구산 오른쪽 586봉
△ 동물 발자국이 나의 길을 인도한다.ㅎ
△ 오른쪽에 회평저수지가 있고,,,길은 좌측으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 분젓치 가기 바로 전
△ 분젓치
△ 회평저수지 그리고 그 뒤로 두타산이 보인다.
△ 이티재
들머리에 드러서자 마자 넓적다리가 땡긴다.
빨리 가고 싶지만 근육통으로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이럴 땐 무리하기 보다는 체력안배가 중요하니 천천히 가자고 맘먹고 진행한다.
들머리에서 얼마지 않아 우측으로 올라가는 넓다란 길이 나온다.
그냥 직진해서 가니 시야가 뻥 뚫리는데 좌우 어디로 가야 할 지 망성이다 우측으로 가 보지만 표지기가 보이질 않는다.
잠시 우왕좌왕하다 나침반이 가르키는 서쪽,우측으로 무조건 치고 올라가니또렷한 길이 나온다.
아마도 이티재 들머리에서 나온 갈림길에서 우측 넓다란 길로 연결되는 길인 듯하다.
30여분 진행하니 우측으로 상당히 넓은 증평 평야 지대가 보이고 곧이어 군 참호가 나온다.
강한 서향 태양빛으로 누런 풍경들이 자주,점점 더 색이 찐해져간다.
길은 순하지만 근육통으로 속도를 내지도 못하고 천천히 걸어간다.
오늘 날씨가 참 사나운 것 같다.
참호 있는 곳에서 30여분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게 오르내리락 하다 도로가보이고 밑둥이 부분이 상당히 훼손된 큰 나무가 서 있는 곳에 도착한다.
지도상의 납골묘,느티나무라고 적힌 곳이다.
지도도 꺼내기도 싫고 사진만 몇장 남기고 다시 오름길을 올라친다.
지쳐서 점점 속도는 줄어들고,,,사방은 점점 어둠이 짙어져 내리고.
어느 순간 부터인가 사방은 이미 깜깜해 졌다.
몇 번의 야간 산행을 해서인가 별 무서움이나 두려움은 없다.
또 앞쪽으로 불빛 몇 개 보이기 시작한다.
숲속의 둥지라는 간판이 있는 곳을 지나 왼쪽으로 불빛이 보이고 그 불빛을 뒤로 할 때쯤 또 앞쪽으로 다른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삼산리 마을 민가 불빛이리라,,,
하지만 아직도 그 불빛이 있는 곳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이다.
몇 번을 오르락 내리락,,,,
가는 도중 따뜻한 닭곰탕에 소주 한잔 생각이 간절하다.
그 생각이 점점 강해지더니 에라 모르겠다 털퍼덕 앉아 배낭에서 시린 손을 달래며 코펠과 버너을 꺼내 가지고 온 보온통의 물을 부어 끊이기 시작한다.
내일 먹거리로 가지고 온 라면과 만두를 넣은 만두라면,,,
아,,,아쉽다.소주한잔이 그립다.ㅎ
허겁지겁 남기면 처리하기 어려운 라면 국물까지 털어넣고 주변 청소하고 다시 일어나 다시 길을 나선다.
얼마 후 오른쪽으로 운보
사실 이쪽으로 내려가서
갈림길에서 또 부지런히 발길을 제촉해서 가다 보니 갑자기 왼쪽으로 뭔가허전해서 눈길이 보내기 아,,,여기가 드디어 삼산리 갈림길이 아닌가.
드디어 다 왔다.
시간은 벌써
산행 시작한 지 9시간,,,
7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 이티재,,,상당산성 가는 들머리 입구
△ 증평 쪽 평야 지대
△ 지도상에 납골묘와 느티나무라고 표기된 곳,,,도로가 있지만 통행량은???
△ 해는 점점 기울어가고 갈길은 멀고
△ 숲속의 둥지 산장 있는 곳
△ 만원짜리 지폐 세종대왕 그림의 주인공 운보 김기창 화백
예술적 재주는 뛰어났지만 너무도 적나라한 친일 행적으로 그 빛이 퇴색해 버린,,,
운본 박물관,운보의 집,드라마 제빵 김탁구로 인해 유명해졌다고 한다.
문제는 이제 부터이다.
차를 가지러 질마재로 갈 것인가?
아니면 적당한 어느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낼 아침에 질마재로 갈 것인가?
짙은 밤하늘을 올려다 보니 별이 총.총.총이다.
왼쪽편 낮은 산 밤하늘 오리온 별자리가 마치 커다란 방패연같다.
도로는 꽝꽝 얼어붙어 차량바퀴가 지나간 자리가 얼음판이라 몇번이나 넘어질뻔하다 도로 한가운데 눈이 쌓여있는 길다란 선을 따라 걸어간다.
차량 소리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인기척 소리도 없어 고요하기만 하다.
나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 지 동네 개들만 짓어 댄다.
택시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미원 택시가 온다고 하는데 청주까지 2만5천원달라고 한다.어자피 고생하기로 하고 나온 마당에,,,
춥지만 바람은 좀 수그러 드니 좀 견딜만 하다.
앞 쪽에 차량 한대가 들어온다.처음에 택시인 줄알았는데 막차 마을 버스다.
무조건 세워 버스를 타니 마을회관에서 버스를 돌려 나간다.
미원가는 버스.
지금 이 순간 이 버스가 어디를 가든 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버스를 탔고 이 마을을 걸어서 저 멀리 있는 큰 도로까지 갈수 있다는것만이 중요하다.
안도감.그리고 따뜻한 버스 안에서 몸을 녹힐 수 있다는 여우가 생겼다는 것만이 중요하다.
버스 기사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청주 가는 버스가 있을 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잠시 후 마주 오던 버스를 세우더니 저 버스를 타면 청주로 간다고 한다.
다시 청주가는 버스를 타고 버스기사분이 소개해준 찜질방에 가서 씻고 쉴려고 하는데 관리인이 여기서는 잘 수가 없다고 한다.
오~잉,찜질방에서 못잔다고???
찜질방이라는 개념이 서울과는 좀 다른가 보다,,,
어쩐지 처음 느낌이 일반목욕탕 같더니만,,,,
그래도 젊은 애들도 이곳이 찜질방이라고 알려 준 것인데,,,,
다시 나와 버스를 타고 아예 청주 버스 터미널로 가서 터미널에 있는 찜질방에 가서 하루를 마감한다.
<<질마재~칠보산~모래재 <
다음날.
증평 터미널 근처 우체국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눈이 맨 먼저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 아침 식사를 허겁지겁 먹고는 어제 비운 도시락 통에 밥만 담아 달라고 하고는 증평 우체국으로 향한다.
증평 버스 터미널에서 우체국까지는 불과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
이럴줄 알았으면 천천히 여유있는 아침 식사를 할걸,,,쩝,,,
우체국 근처있는 마트에 들러 필요한 몇가지 챙기고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번호도 없고 차 앞에 가는 방향만 표시되어 있어 버스가 올때마다 눈을 치켜들고 봐야 한다.
놓치기라도 하면 낭패다.드디어 청천행 이라고 쓰여진 버스가 와서 무조건 잡아탄다.
질마재 간다하니 요금 1700(?)이라 하고 버스비를 내고 차안을 보니 나이든 아주머니 한분과 나 달랑 둘이다.
버스기사분은 호기심 어린 말을 붙혀온다.
어느 산 가야고,,,
생각나는대로 칠보산이라 했더니 괴산 칠보산이 유명한데 질마재 쪽에도 칠보산이 있냐 하며 의아해 한다.
버스 기사분은 나이는 중년의 나이지만 나보단 적어 보인다.
군예편한 뒤 몇가지의 직업,처음에는 군복무하면서 딴 부동산 자격증으로 중계업을 하다 그만두고 세콤 직원 등 몇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운전대를 쥐게 되었는데 봉급은 작아도 이게 몸도 마음도 수월하단다.
이 지역 역사 유래 같은 것도 설명해 주는데 어찌 잘 아냐 하니 처음 이곳에 와 이것 저것 궁금해서 알아보다 보니 이 곳에 오랜 산 사람보다도 더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사람좋게 좋으신다.
하기야 서울 사람 남산에 잘 안 가듯 그런가 보다.ㅎ
서로 잘 가시라 인사하고 질마재에 출발한 지 약 20여분 만에 도착한다.
질마재에 도착하니 생전 처음 와본 이 곳 외딴 지에,바람 잦은 곳에 하루를 보낸 나의 애마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맘 속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고,,,,
△ 증평 우체국,,,터미널에서 가깝다.질마재 가는 버스(9:10) 기다리며,,,
질마재까지 20여분,,,택시비 12,000원
복장 준비하고 어제의 반대쪽 들머리 비탈길을 올라간다.
좀 올라가니 길이 순하고 바람도 없고 날씨도 어제보다는 훨씬 곱다.
어제 추위에 벌벌떨며 올라갔던 반대편 쪽을 본다.
한참 순한 길이 이어지니 어제와 오늘의 산행 코스를 반대로 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길은 순한데 어제의 근육통이 아직 남아 있어 그리 빨리 걷을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은 천천히 발길 닿는 대로 가 볼 생각이다.
아쉬운 것은 먹거리가 시원찮다는 것.
날이 이리 순할 줄 알았으면 막걸리라도 한병 챙겨올 것을,,,
질마재에서 약 20여분 진행하며 천천히 가고 있는데 앞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양지 바른 곳의 묘 2기가 정성스럽게 놓여져 있다.
다른 곳은 눈으로 덮혀 있는데 묘 근처에는 햇빛이 잘 들어서 그런 지 눈이 없다.복 많으신 분들인가 보다,,,,
잘 계시라 인사드리고 묘 위쪽으로 나 있는 길로 올라간다.
왼쪽으로는 증평의 넓다란 평야 그리고 그 너머 산들이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질마재에서 한시간 진행하니 어느 임도가 있는 곳에 도착하고 지도도 보지않고 반대편으로 다시 올라간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그 곳이 바로 칠보산 가기 전에 있는 칠보치라는 언덕이다.
칠보치를 좀 올라가다 보니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겨울산의 모습이 조화를 이룬 듯 편해 보인다.
이마저도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인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좀 더 진행하니 오른쪽으로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이 이룬 곳 그리고 건물이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씨감자 종자 저장 창고라고 한다.
좀 더 진행하자 제법 넓은 평지에 비닐 하우스가 보기 좋게 가지런하게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난다.
20여분 낑낑대며 올라가니 쪽지봉,597m이라 쓰여진 안내문이 있다.
쪽지봉??
지도를 봐도,,,,안내문에는 오른쪽 30미터 가면 칠보산 정상이라고 알려준다.
칠보산 정상을 볼려면 일부러 발품을 팔아야 하나보다.
그렇다고 30미터 쯤이야,,,
해발 585미터라고 알려주는
오늘은 어제 보다 산을 걷기는 참 좋은데 많이 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자꾸 든다.
지도를 보니 모래재 이후 더 산행을 한다면 중간에 탈출하기도 어렵고 보천고개,행치재 까지는 가야 하는데 오늘의 체력으로 볼 때 고전을 할 것 같아 오늘은 모래재까지만 가기로 했다.
연이틀 연달아 멀리 내빼는 분들 보면 참 대단한 체력인 것 같다.
가는 길에 양지바른 곳 보온병의 따뜻한 물 몇잔 들이키고 등로에 배낭을 배개 삼아 눕는다.
날은 약간 쌀쌀하고 약한 바람이 분다.
약 10분 정도 잠깐 졸았나 보다.
어제 찜질방에서의 잠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추워 중간에 깬 뒤로 이쪽 저쪽 옮겨 다니며 잠을 설쳤으니,,,
일어나 잠시 진행하자 우측으로 벌목해서 나무가 없고 눈으로 덮혀진 곳에 까만 점들이 보인다.
뭔가 봤더니 염소 들이다.
좀 지나 관리 건물도 나오고,,,
나처럼 잠깐 지나가는 이에게는 목가적으로 보이겠지만 실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어려움도 많겠지,,,라는 생각도 해보고,,,
얼마 전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순한 동물하면 소,양 등이 생각나지 않을까,,,
그런데 양은 결코 순한 동물이 아니라고 한다.
양들이 서로 비비면서 정답게 오손도손 붙어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서로 좋아서 그런게 아니라고 한다.
양은 시원한 상태을 좋아하는데 옆에 있는 양이 시원하게 있는 꼴을 못보고 해코지할려고 그리 비벼댄단다.
한마디로 남 잘 되는 꼴을 못 본단다.ㅎ
좀 더 진행하니 활엽수 지역을 벗어나 바위와 소나무가 있는 지역이 나온다.
산행을 할 때 느끼는 것이지만 활엽수가 많은 곳은 낙엽이 많이 떨어져 산행하기도 어렵지만 소나무 같은 침엽수가 있은 곳이 대체로 경치도 좋고 쉴 곳도 좀 있고 산행하는 맛이 좋은 것 같다.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도 활엽수 보다는 침엽수 있는 곳의 발생량도 많고.
목장 울타리가 끝나는 어느 지점에 왼쪽으로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는 안부에 도착한다.
이곳이 개념도 상의 송치재이다.
송치재에서 다시 그리 심하지 않은 오르막을 올라가니 저 앞쪽으로 왼쪽으로 도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전면 쪽으로 깍아낸 흉물스런 산의 모습도 보인다.
모래재는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에 될 수 있으면 천천히 산책하듯이 걸어 본다.
그렇게 천천히 걸었는데도 불과 20여분 만에 제법 규모가 있는 건물이 나오고 운동장도 있고,,,
지도를 보니 보광산 관광농원이라고 한다.
길은 자연스레 관광농원 안쪽으로 이어지고 백구 한마리가 빠르게 나를 향해 다가온다.
너 한마리 쯤은 내가,,,,ㅎ
그래 댐벼봐라.이 놈아.
이젠 느그들 퇴치법은 알고 있느니라,,,
이 짝대기는 폼으로 들고 다니는 줄 아느냐하며 앞으로 나가니 이놈이 곧 달려들 듯이 맹렬히 오던 놈이 2미터 정도에서 앞길을 내주며 뒤에서 짓어대며 또 쫒아온다.
돌맹이 던지는 쉬늉을 했더니 움찔한다.
밖으로 나갈려는데 오른쪽에 그보다 더 덩치크고 사나워 보이는 개 두마리가 으르릉댄다.묶여있기에 다행이지,,,
개에게 위협적이던 곳은 아마도 한북정맥 호명산 가기 전 작고개 개떼들,,,커다랗고 위협적이던 몇 놈이서 달려들어 정신없이 내 빼던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ㅎ
아무튼 오늘은 아쉽지만 여기서 산행을 접기로 한다.
어디로 가야 하나,,,버스가 오기에 무조건 잡아 탄다.
손을 무조건 흔들어 세워 버스를 타니 괴산 버스라고 하며 증평가는 버스는반대편에 있다고 한다.
오~잉 증평가는 버스가 바로 있다.ㅎㅎㅎ
나중에 버스 기사분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모래재는 증평과 괴산을 오가는 버스가 다니는데 종점은 괴산이라고 한다.
일찍 모래재로 올 경우 괴산에서 타는 게 좋다고,,,
증평에 와서 질마재 가는 버스를 기다렸지만 지쳐 택시 만이천에 가기로 하고 질마재로 향한다.
△ 건너편 질마재 모습,,,어제 저기 오르는데 무척 추워 혼났다.
△ 괴산군 방면의 모습
△ 칠보치
△ 괴산군 씨감자 종자 저장 창고라고 한다.
△ 좌측 증평군쪽 모습
△ 칠보산에서
△ 송치재
△ 모래재에 있는 보광산 관광 농원
△ 모래재,,,오른쪽으로 가면 괴산군이고 왼쪽으로 가면 증평군이다.
△ 증평군 방향의 모습
△ 증평에서 순대국에 소주하기전에,,,
주인 아주머니에게서 왼쪽 겉절이 배추 한포기에 7천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놀란다.
왜 이리 서민 물가는 점점 오르는 지,,,
서민은 점점 국민이 아니라 궁민이 되어간다.
△ 증평 우체국 버스 시간표.
버스 정류장 앞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정류장에서 10여미터 떨어진 약국 유리창에 붙어있었다.
<교통편/소요경비 >>>>>>>>>>>>>>>>>>>>>>>>>>>>>>>>>>>>>>>>>>>>>>>>>>>>>>>>>>>>
갈때/올때: 중부고속도로à증평icà증평시내à592번 지방도à질마재
네비게이션에 질마재라고 검색해서 나오질 않아 ‘문방리’검색함
<소요경비> 약 8만원 <기타 잡비 포함>
주유비(왕복 360km,52,000원)
시내버스비 4회 약 5,000,시외버스(청주à증평) 3000(?)
택시비(증평 우체국à질마재) 12,000,기타 잡비
<산행 참고 사항 >>>>>>>>>>>>>>>>>>>>>>>>>>>>>>>>>>>>>>>>>>>>>>>>>>>>>>>>>>>>>>
<질마재à좌구산à산à이티재à삼산리>
○ 질마재는 증평터미널 근처에 있는 우체국 정류장 앞에서 청천행 버스가
있음(시간표 사진 참고) 약 20분 소요,1,700원
버스 기사,지역 사람들 위치 잘 알고 있으며
글로리아 농원이라는 간판있는 곳이 질마재임
○ 질마재에서 좌구산 가는 길 : 거의 일방통행 길
(중간에 세작골산 삼거리에서 증평 방향으로 빠지는 길이 있음)
○ 좌구산에서 10분 이티재 쪽으로 가는 길에 돌탑있는 곳에서 급우틀
○ 방고개,분젓치 모구 포장 도로이나 차량 통행은 별로 없음
방고개는 좌구산 천문대,정자,휴식공간이 있고 분젓치에도 정자가 있음
○ 분젓치 도착 전 저수지 근처에서 직진 내리막(상당히 가파르고 위험)이 아니고 좌측 우회길(눈이 덮혀 길이 희미했음)
○ 이티재는 주유소와 휴게소(식사 됨)가 있고 바로 맞은 편에 상당산성(삼산리)가는 들머리 있음
○ 이티재에서 상당산성 방향 들머리에 들어서자 마자 우측(서쪽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이 정맥길(좀 더 앞으로 가면 묘가 있는 곳에서 우측 진행해도 만남): 표지기가 잘 안보이고 갈길길이 많아 주의
<질마재à칠보산à모래재>
○ 질마재에서 모래재까지 가는 길은 별 어려움이 없음
다만 칠보산 정상은 정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칠보산
○ 모래재는 괴산(12km)과 증평(9km)을 이어주는 중요한 도로
- 괴산과 증평을 오가는 버스 수시로 다님(버스 종점은 괴산)
- 보광산 관광 농원이 자리 잡고 있음
<알고 가기 >>>>>>>>>>>>>>>>>>>>>>>>>>>>>>>>>>>>>>>>>>>>>>>>>>>>>>>>>>>>>>
좌구산(657m)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대덕리(大德里)와 괴산군 청천면(靑川面) 사이에 있는 산.
높이 657m의 산으로 청원군 미원면 대덕리(大德里)와 괴산군 청천면(靑川面)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산의 모양이 거북이가 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라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서개(李書豈)가 제자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피해 화를 면했다고 한다. (네이버)
좌구산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
충북 괴산군과 청원군에 걸쳐 있는 좌구산은 증평읍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나 널리 알려지지 않아 등산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다. 전체적으로 수림이 우거진 육산으로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 알맞은 산행지이며 장마끝무렵에는 온 산에 버섯이 지천으로 피어 등산객들의 손을 심심치 않게 한다.
"앉을 ´좌(坐)´자 거북 ´구(龜)´자. 거북이가 앉아 있는 형국이다 해서 좌구산(좌구산)이라 쓰는데 여기서는 최고 높은 봉우린데, 왜 옛날에는 난리가 나면 봉화를 올리던 자리가 있다.
그런데 원래는 그게 좌구산(坐狗山)이 아니고 앉을 ´좌(坐)´자 개 ´구(拘)´자. 좌구산(坐狗山)였데. 왜 그러냐 하면, 예전에는 민가가 없었어. 그냥 산밖에 없었는데 그 산에 올라가면 개짖는 소리가 났데여. 그래서 좌구산(坐狗山)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풍수적으로 말해서 좌구산(坐狗山)으로 고쳤다는거여."
증평에서 청안을 거쳐 청천쪽으로 가다보면 칠보산과 좌구산의 중간지점 쯤 되는 곳에서 봉천사 입구인 고개가 질마재 고개다. 이 고개를 넘어 조금 가면 봉씨가 난을 피해 살았다하여 봉천리라고 이름 지은 마을이 있다.
1106년(고려 예종 1년) 어느날, 경기도 강화군 하첩면 장정리 하음산 기슭 연못가에 상서로운 광채가 비치더니 이어서 비가 내리쳤다. 물을 길러 왔던 한 노파가 이상히 여겨 살펴보니 못 수면에 돌로 만든 상자가 떠 있었고, 그 상자 속에는 귀여운 사내 아이가 들어 있었다.
노파는 이 아기를 궁중에 바쳤고 왕은 기이하게 여겨 왕실에서 키우도록 했다. 노파가 봉헌했다 하여 성을 봉(奉)이라 하고 장래 국가를 도울 인재라 하여 이름을 우(佑)라 붙인 '봉우'를 시조로 하는 하음 봉씨들의후손들은 그 후 많은 인재들이 등용됐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 내고 왕위에 오른 다음해인 1457년 성삼문, 박팽년 등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동료인 김질의 배신으로 발각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소식을 들은 박팽년의 매부 봉여해는 세조를 살해하기 위해 칼을 차고 어전으로 가던 도중 의금부에 붙잡혀 화를 당했다. 당시 그의 벼슬은 궁중요리를 검사하는 사옹원별좌였기에 어전 출입이 쉬웠다 한다.
봉여해는 어려서 재주가 뛰어나 박팽년, 성삼문 등과 함께 박중림(박팽년의 아버지) 문하에서 수업, 학문을 떨쳤고 박중림의 사위가 됐다.
봉여해가 박팽년과 함께 단종 복위 모의에 참여했다가 화를 당한후 세조 이후에는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 거의 없고, 화를 면하기 위해 전국으로 흩어지던 중 일부가 이곳에서 살게 됐다 한다.
외봉천에서 서쪽으로 약 1km쯤 떨어진 망월산(해발 459m : 망탑봉)이 있어 이곳에서 보면 미호평야와 증평평야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이곳에 사는 봉씨들은 강화도를 쳐다보며 고향의 향수를 달래기도 하고, 난을 피하는 사람으로 감시의 역할을 한 산이기도 하다.
망탑봉에서 보면 군사적 요충지인 두타산성, 이성산성, 구녀산성과 북이면 부연, 토성, 광암의 경계가 되는 낭비성, 삼보산맥들이 한눈에 보여 군사적 요충지로 적진의 활동을 탐색하고 감시하는데 적지임을 알 수가 있다.
남봉 김치(金緻 : 1577~1625)는 1597년(선조30)에 알성문과 병과로 급제, 설서(設書 : 세자시강원의 정7품)를 거쳐 1608년에 조정 관리들의 휴가연수를 담당하는사가독서를 담당했다.
광해군 때 사북시정, 이조참의, 동부승지, 대사간을 거쳐 홍문관교리, 부제학등을 역임하고 정3품 병조참지에 올랐으나 독직사건으로 파면됐다.
이이첨의 심복으로 이조에 있으면서 흉한 일을 벌였으며 대사간이돼서는 영창대군 살해음모를 반대하는 정온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는 충남 병천면 백전리에서 괴산 능촌으로 이사해 살았다고 전하는데 광해군의 학정이 날로 심해짐을 깨닫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차에 인조반정이 일어난 1623년에 자기의 관상을 보니 그해에 죽게 됐는지라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나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변성을 만나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인조반정이 있을 무렵
광해군은 즉위한 후 정세변화에 따라서 왕위를 위협할 지도 모를 동복형 임해군과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키는 등 학정을일삼으므로 인헌황후(좌찬성 구사맹의 딸)의 아들인 종(倧, 인조 : 1595-1637)은 조정에 대북파와 견원지간인 서인 일파와 경기 · 충청지방의 관리들을 포섭해 반정을 일으킬 것을 모의한다.
인조가 반정을 일으키기 전 어느 여름날
그가 밀담을 마치고 오랜 노독으로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난데없이 한 밤중에 동편 산에서 개가 짓는 소리가 3번 들리므로 그는 잠에서 벌떡 일어나 "이 앞산이 무슨 산이냐?" 하고 물으니 그의 심복 하나가 대답하기를 "이 산은 거북이가 앉아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좌구산이라고 합니다"하니 점술을 연구해 천문에 밝고, 풍수에 조예가 있는 백곡 김치는 말하기를 "아니다 저곳에서 개가 3번 짖었으니 저 산은 좌구산이 틀림없다"하면서 "누가 염탐을 하러 오는 것이 틀림없으니, 이곳을 빨리 떠나자"하고 서둘러 모두 이곳을 떠나므로 난을 무사히 피했다고 한다.
그 후 인조는
김치는 인조반정이 성공한 후 다시 유배에서 풀려나 동래부사를 거쳐 1625년(인조3년)에 경상도 관찰사가 됐으나 그 해에 학질(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 그가 죽은 후 시신을 괴산 능촌으로 모시려했으나 상여가 이곳 율리재를 넘을 때 명정이 바람에 날려 현재의 그의 산소 자리에 앉으므로 그 곳에 안장했다고 그 후 후손들이 이 곳에 와서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그가 잠시 이곳에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닦으며 지낸 보천에서 율리에 이른 깊은 골짜기를 뜻하는 심고을 그의 호로 정했을 가능성과 유배를 당할 때는 근처에, 산소의 우연성으로 미루어 이 곳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출처:한국의 산하)
구녀산(484m)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및 북일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484m. 남한강의 발원지인 좌구산(675m)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산으로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구녀성 안에 있다. 이 성에 대한 정확한 축성기록은 없지만 신라가 백제의 낭비성(지금의 상당산성)과 대결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이 산에는 민간신앙의 집성지로 출생과 무병을 기원하는 서낭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오랜 기간 신성시 되던 곳으로 노송과 원시림이 천연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산의 명칭이 구라산·궁예산·구려산 등으로 전해져 오던 중 이곳의 축성설화와 관련해 구녀산이라 불리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홉 딸들과 한 아들의 불화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딸들에게는 성을 축성하도록 하고 아들에게는 한양을 다녀오게 하여 지는 편이 죽는 내기를 시켰는데 딸들이 성을 다 쌓아가도록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뜨거운 팥죽을 쑤어 시간을 지연시켜 마침내 아들이 먼저 돌아오게 되었고 딸들은 성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산 내부에는 우물과 수원지의 흔적이 남아 있고 청주시의 상당산성을 바라볼 수 있어 전망이 좋다. 2시간 정도의 가벼운 산행을 마치고 등산로 입구에 있는 초정약수와 약수물 목욕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초정리에서 3km쯤 떨어진 곳에 운보
분티재,이티재,질마재,등에 관한 이야기
청주 상당산성에서 질마고개까지 다녀왔다. 지도상의 거리는 약 19㎞(GPS 측정 약 24㎞). 하산하기까지 7시간 내내 가랑비가 오락가락했다. 길은 흙길로 푹신한 편이지만 중반 이후 좌구산(657m) 오르기까지 제법 힘겹다.
청주시와 청원군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청주목(淸州牧)인데 백제 때는 상당현(上黨縣)으로 불렸다. 상당산성(上黨山城)은 백제 때 토성으로 쌓았고 조선대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석축을 다시 쌓았다. 청주시에서 정성들여 관리하는 덕에 조선시대 산성의 위용이 보존되어 인근 시민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나중에 천천히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영토싸움을 벌이던 시절 3국은 한강 이남 속리산 소백산 주변에 성을 쌓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백제의 상당산성이고 속리산 또 다른 쪽에는 신라의 삼년산성, 그리고 소백산 위의 단양 고구려 온달산성이다. 상당산성은 속리산 기슭 고지에서 금강 수계를 완만하게 굽어보는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백제의 최전방 지휘본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산행의 중간쯤 되는 곳은 511번 도로가 지나가는 이티재이다. 외계인 이티가 아니고 고개 넘는 데 이틀이 걸려서 ‘이틀재’가 이티재로 변한 것이다. 지난 구간 구봉산 근처 살티재가 사흘 걸린 데서 비롯됐다는 거와 마찬가지다. 이티재 주유소 옆의 식당에서 막걸리와 점심을 먹고 올라가니 구녀산(九女山)이다. 딸 아홉과 아들 하나에게 내기를 하게 하고 결국 어미의 간계로 딸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는 전설이 서린 산이다. 전란이 잦고 농사가 주업인 시대에 남존여비 의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티재에서 북쪽 도로로 올라가면 초정약수로 유명한 초정리가 나온다.
좌구산(坐龜山)은 속리산권을 제외하고 한남금북 산길에서 제일 높다. 당연히 청원군에서도 최고봉이다. 산이 거북이가 앉은 모양이라 하기도 하고 거북 구(龜) 대신 개 구(狗)를 쓰기도 한 것 같다. 좌구산 가기 전에는 분젓치라는 고개가 나오는데 포장도로가 가로질러 간다. 분젓치(분티재)는 분티마을이란 이름에서 나왔을 것이다. 분젓치에서 북쪽으로 증평읍 율리(栗里)가 있고 밤티라는 고개이름도 있다. 밤티가 분티로, 분티가 분젓치로 바뀌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증평군은 울릉군을 빼면 전국에서 가장 작은 초미니 자치단체로 지난 2003년 증평읍과 도안면 1읍 1면으로 군소재지가 됐다. 분젓치는 옛날 5일장이 활발하던 시절 북쪽으로 증평장과 남쪽의 미원장(청원군 미원면)을 오가는 장돌뱅이들의 주요한 통로였다.
좌구산에서 날머리 질마재까지는 3㎞쯤 거리로 정상에서부터 한 20분간은 잔가지와 풀을 양손으로 헤치면서 걸어야 한다. 그 지점에서 몇 년 전 산불이 났었다는 얘기가 있다. 질마재는
(출처: CNEWS)
구룡천 [九龍川]
남한강 수계의 하천으로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좌구산(座狗山)의 동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남한강 수계의 하천으로 길이는 8.5km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좌구산(座狗山)의 동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靑川面) 쪽으로 흐르다가
모래재 의병격전유적비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에 있는 비석으로 모래재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1907년 의병장
[출처] 모래재 의병격전유적비 [-義兵激戰遺蹟碑 ] | 네이버 백과사전
사니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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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운디 수고 했읍니다.
증평에도 찜질방 있는디~~ 내가 증평에서 하룻밤 잤던 기억이~~
역사 공부도 잘했음다.
눈길 추운디 안전하게 산행하시기를~~
대중교통정보에도 시간표 올리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