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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은 우주에 우리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별이 말을 걸어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현실. 그러나, 정말로 별이 말을 걸어오듯이 상상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주는 작품이 있다…
글 : 엄다인 (saickho@nownuri.net)
별은 빛나는데…
무엇을 말해야 좋을까? 무엇을 전해야 좋을까? 글을 쓰면서 이렇게 간단한 걸 못 정하는 경우는 별로 흔하지 않았는데…. 막상 실물을 보고나니 할 말이 너무 많거나, 아니면 말이 필요 없던가 둘 중의 하나일 듯싶다. 적어도 이런 저런 외국 작품을 힘들게 찾아보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꿈꾸었던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을 보고서 뭔가 가슴 속에 뭉클 하는 것이 없을 거란 생각은 안 든다. 뭐, 몇 년이나 걸려서 국산 애니메이션 하나를 기다리는 것과, 몇 광년 너머에서 날아올 메시지 한통을 기다리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별의 목소리는 작품 자체의 퀄리티보다도, 그 제작 과정 및 상황이나 크리에이터 개인에 의한 여러 가지 주변 요소들 때문에, 먼저 바람이 들어버린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혼자서 7개월 동안 고생하며 만든 작품인데 분위기 죽인다더라, 같은 입소문이 먼저 돌았기 때문에 이 작품의 DVD 출시에 대해 기대한 사람도 적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재빨리 코드2 DVD를 사놓고서 안심한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을 약 올리기라도 하는 듯이(코드2 사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꾸벅) 재빨리 코드3 DVD 발매의 소식이 돌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런 작품이 국내 DVD 유저들에게 선을 보일 수 있게 된 “현실의 호전”에 손을 들어줘야 할 듯싶다.
작품 자체가 매니악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니고, 25분짜리 짧은 단편이니 만큼 대단해 봤자 얼마나 오래 볼 수 있는가, 몇 번이나 돌려볼 수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한… 소위 사놓고서 뽕을 뽑을 수 있느냐는 ‘가격 대 성능비’ 운운은 사실 이 작품의 경우엔 사치에 가깝다. 좀 강하게 말하면 볼 수 있다는 것, 살 수 있다는 자체가 행운이다.
지금의 DVD 시장 보급 속도가 꽤 빠른 편이지만, 아직까지 다양한 작품이 수입되어 팔리기엔 좀 이른 시점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아직 가신게 아니고, 실제로 DVD 업체들이 판권을 잡아도 길이 문제나 여러 가지 제반 사정으로 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이 출시된다는 것은 넓게 보면 우리나라 관객들의 수용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이고, 좁게 보면 ‘그렇게 낼만한 상업 작이 없었나?’라는 기분이다.
일단 애니메이션보단 역사가 조금 더 오래된 영화 쪽은, 현재 소위 독립 영화라던가 단편 영화 같은 것들이 어느 정도 주류 상업영화들과 같이 공존하면서, 그런 것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 층들도 어느덧 생겨났다. KBS에서 단편영화들을 모아서 보여주지 않는가. 다른 매체인 영화와의 1대1 비교는 곤란하지만, 따져보면 이 애니메이션은 사실 상 혼자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거의 독립 영화에 대응되는 독립 제작 애니메이션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정확히 말하자면 개인 제작 애니메이션이 맞겠지만). 결국은 이 작품 최고의 의의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다른 애니메이션이 갖는 ‘상업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작가 개인의 생각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해냈다는 것이 라고 본다.
일단 개인이 만든 작품이지만 단순히 짧은 시간 안에 감각과 소재를 동원해서 자신의 ‘영감’을 표현하는 일종의 과시용 작품이 아니라, 선선히 작가 자신이 보고 생각하는 것을 전하기 위한…, 정말로 제목 그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픈’ 그런 작품이라고 할까.
닿아요, 이 마음
어찌 보면 이 작품 안에서 슬쩍 비쳐지는 그런 ‘순진함’이, 이 작품을 본 여러 사람들에게 인상 깊이 남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공감하고 많은 것을 느낀 게 아닐까. 그나마 필자는 이 작품을 둘러싼 여러 가지 소문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던 편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막상 실물을 접하고 난 다음에 개인적으로는 거의 ‘직격탄을 먹었다’, 고 말할 정도로 와 닿았다는 것이 솔직한 기분이다.
일단, 작품 자체는 소문만큼 큰 부분이 없는, ‘잔잔한’ 작품이기 때문에 입소문을 더욱 부추길 생각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작품을 보고서 “나도 뭔가 만들어 남기고 싶다”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필자에게도 나름대로 심각하게 와 닿았다는 것은 이 리뷰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전해지리라 믿는다.
사실 이전에도 볼 기회는 있었지만 정말로 어디서 본 ‘게임 데모 같다’는 인상이 강해서, 나중으로 봐야지 하고 미뤄진 작품이었는데 지금 보니 “실수했다”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알고 보니 (DVD 서플로 수록된 인터뷰에서도 밝히듯이) 제작자 신카이 마코토는 정말로 모 게임 제작사 출신에…, 게다가 국내에도 발매되었던 Y모 게임의 영상에도 참여했고….
이렇게 말하면, 굳이 필자가 아니더라도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보통, 흔한 게임 데모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인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실제로 본편을 볼 때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구차하게 게임 데모 같은 것에 비교하긴 뭣하지만, 어쨌든 뭔가 낯익은 인상을 받기가 쉬울 것이다.
사실 작화 부분을 거의 혼자서 만든 작품이니 만큼, 잔손 작업을 아끼기 위해서 최대한 머리를 짜낸 것이야 기본이고, 색채와 명암 등을 다룬 CG 기법이나 기술적인 면은 뛰어나지만, 역시 그 그림들을 연결하는 연출이나 구도 같은 것들은 왠지 모르게 낯이 익다. 어떻게 본다면 한 매니아가 만들어낸, 건버스터를 비롯하여 무수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의 뻔한 변주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뻔하다는 것은 아니다. 작품 안에서 작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절실하게 들어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감정을 의도하고 만든 것, 꾸며진 것이라면 이 작가는 나름대로 대단한 잠재성을 감추고 있는 것이리라.
달리 말하면, 분명히 새롭긴 새로운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작품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작품을 만든 작가 개인이 쭉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보아왔으면서 나는 이런 것을 만들고 싶었다, 라는 것을 최대한 살려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리라. 또,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제작자의 자전적 작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요술 공주 밍키는 언제까지나 무수한 팬들의 가슴 속에 소녀로 남아 있을 것이지만, 밍키를 기억하는 소년은 어른이 되어 간다. 마찬가지로, 머나먼 별 너머에서 소녀는 아직 어린 모습을 지키고 있지만, 지구에 남아 있는 소년은 어른이 되어 자신의 길을 정하고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서플로 수록된 인터뷰에서도 언급하듯이 어려서 만화를 보고 게임을 하던 소년이 성장하여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열악한 국내 상황에 비교한다면 축복이라고 해야 할 일이지만, 그 쪽도 강한 상업적 경쟁 때문에 업계는 점점 힘들어지고 좁아진다고들 말한다. 그런 와중에서 이 작품은 창작자와 관객들에게,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들의 원점을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묻게 된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가?”하고.
여기에 있어요…
보는 것도 좋고, 만드는 것도 좋다. 중요한 건 일본이 불경기고,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미야자키 이외엔 거의 성공하는 게 없다더라, 요즘 애니메이션은 다 뻔한 상업성뿐이다, 이런 게 아니다. 만들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만들고 싶었던 걸 만들고 내놓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는 것이리라. 창작자 개인의 순수한 동경을 작품화 시킬 수 있다는 자체가 부럽고,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도 통할만한 뭔가를 보여준 것이리라.
별의 목소리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실험 작이지만, 또 이 작품이 나름대로 괜찮은 퀄리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상당히 관심을 모았다.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마니아들이 이 작품을 접해 보고, 많은 공감(?)이랄까 마음에 와 닿는 무엇인가를 느꼈기 때문이랄까, 어쨌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입소문이 짜하게 퍼진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막상 DVD로 나온 것을 보니, DVD 자체도 꽤 괜찮게 만들어져 있다는 기분이 든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위주로 작업을 한 작품이기 때문에 화질 열화 같은 것은 거의 보이지 않고, 적절한 색상 표현 등에 의해서 정말로 분위기 사는 깔끔한 화면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극장 요금만큼의 재미는 확실히 보장한다는 느낌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볼 만한 디즈니나 미야자키 스타일의 대형 블록버스터 급의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 자체에는 분명히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작품이 과연 어떤 내용인지 스토리 등은 가급적 언급하지 않았으니, 일단 한 번 보고 판단하고 느껴보기 바란다.
어려서부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사람이라면, 혹시나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리고 그 중에서 혹시 이 DVD를 산 사람이 있다면, 한번 같이 보도록 하자. 만약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온 사람으로서, 자기 마음속에 뭔가 뭉클함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면 아낌없이 지갑을 열어주길 바란다. 가끔 씩이라도 좋으니 ‘나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었다’, 라고 말하고 싶을 때에 봐주면, 아주 슬퍼지던가 아주 기뻐지던가 둘 중의 하나일 테니까.
총평
작품 자체는 1인 제작 애니메이션이라고 하지만,
DVD에는 꽤 공이 들어 가 있다. 코드2의 일본판 DVD가 그럭저럭 잘 나온 편이긴
한데, 코드3 판은 한국 더빙판도 들어가 있어서 보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들 보라고 만든 작품이라기보다는, 무엇인가 일상에 쫓기고 있는 나이 먹은
‘어른’을 위한 작품에 가깝다는 것이 약점이라면 약점. 화질은 작품 특성상 ‘그림’의
섬세함이 잘 살아나기 때문에 꽤 좋아 보이는 편이고, 음 분리도를 느낄 기회는 적지만
효과음 등은 간단하면서도 잘 살아나는 편. 음악은 멜로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잘 어울린다.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단편 작품으로, 이런 작품도
상업적으로 팔릴 수 있는 일본 시장의 넓음과, 그 지나친 상업성 추구 때문에 점점 대상이
좁아지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현실(?)을 느낄 수 있는 기묘한 작품. 그리고
자막에 대해 아쉬운 점은 본 편 번역에 있어 오타가 눈에 띄며, 서플의 경우 번역의 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점이다. (참고로 이스터애그로 숨어 있는 우리말 성우 인터뷰
영상의 경우,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영상에 노이즈가
일어난다.)
발췌 : http://dvdprime.intizen.com
첫댓글 정말 잘쓰셨네요
정말 잘쓰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