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가봐야 볼 거 하~~나도 없더라!"
유교문화권이라고 불리는 안동 영주 봉화 예천 의성 영양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 온 분은 열에 아홉이 이렇게 말합니다.
맞습니다. 스캔 뜨듯이 주욱 훑고 나오면 그냥 옛집만 보일 뿐입니다. 깃발 따라서 의무방어전 치르듯이 돌아나오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한옥엘 갔다면 일단 마루에 앉아야 합니다. 뒤로 벌렁 누워도 좋습니다.
여유있는 스케줄로 천천히 거닐다 쉬다 온 영주 봉화. 다들 속살을 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루에 앉았습니다.
저 위에 '한묵청연'이라고 쓴 편액은 고종의 아들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이라네요. 참내! 엄친왕입니다.
이번 7차 영주 봉화 여행은 첫 번째로 다녀온 순수 문화유적답사입니다. 닭실마을, 만산고택, 권진사댁, 부석사, 소수서원, 선비촌, 금성단 '옛집'만을 아주 천천히 거닐다 왔습니다. 코스 중에 춘양목군락지가 있었지만 사정상 못 갔습니다. 사연은 좀 이따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닭실마을을 다녀왔습니다. 금닭이 알을 품은 금계포란형 명당으로서 조선 초기 안동 권씨가 터를 잡은 이후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곳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말기 1944년 이 마을에 큰일이 벌어집니다. 마을 앞으로 영동선 기찻길이 열린 겁니다. '좋지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풍수입니다. 철로가 금닭의 목 부위를 관통하게 된 거지요. 철로는 지네로 보는데 지네와 닭은 상극이라 지역의 반대가 심했지만 철로는 결국 깔렸고 기차는 지금까지 다닙니다.

닭실에서 유명한 곳은 청암정입니다. 정자의 고장 봉화를 대표하는 정자인데, 영화 스캔들을 비롯해서 음란서생, 바람의 화원, 동이 등을 이곳에서 찍었다고 합니다.

닭실마을의 주소지는 봉화읍 유곡리입니다. 닭실을 한자로 옮기자면 십이지의 열 번째 '닭 유(酉)'를 써서 유곡리(酉谷里)가 되는데, '닭실'과 비교해 보십시오. 얼마나 멋없는 이름입니까? 더 처참한(?) 사례도 있습니다. 또다른 4대 길지, 안동 내앞마을의 주소지는 천전리(川前里)입니다. 닭실과 유곡, 내앞과 천전! 4대 길지가 고생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난 500년 동안 불려온 이름은 달실이니 앞으로 달실로 불러달라는 벽보가 붙어 있더군요. 이름은 임자가 불러달라는 대로 불러주는 것이 예의이지만, '달실'? 왠지 쉽게 입에 붙지 않습니다. 계속 불러봐야지요.

이 '부녀'들이 만드는 한과가 예술입니다. 은은한 단맛을 자랑하는 유과가 특히 제 입맛에는 딱입니다. 마을 입구에서 오른편 닭실부녀회에서 만들고 팝니다. 부녀회입니다! 노인회 아닙니다!


왼편은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서 있었던 마을 안내판입니다. '워낙' 글 내용이 좋아 그동안 닭실마을을 바르게 알리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하던데, 철거하고 오른편처럼 바꿔놨습니다.
누가 썼냐고요? ㅎㅎ


춘양의 만산고택입니다. 1878년에 지었으니 135년 된 비교적 짧은 연륜의 고택입니다. 이 고장 춘양목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후손 강백기 선생이 거주하면서 숙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영주 선비촌, 공주 한옥마을 등 숙박용으로 조성한 '양식' 시설하고 만산고택 같은 '자연산' 한옥은 비교불가입니다. 제가 한옥숙박은 촉이 좀 있는데, 이 집 추천할 만합니다. 가격도 합리적이고요.

만산고택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성암고택이라고도 하는 권진사댁입니다. 여기도 셋째딸이 예쁜가 보려고 왔는데 마침 집이 비었더군요.
만산고택과 권진사댁은 집 뒤 샛길이 외씨버선길(9구간 춘양목솔향기길)로 조성되면서 블로거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너무 때 타기 전에 지금 다녀오세요.


부석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곳을 사진으로라도 못 보신 분 계신가요? 무량수전 사진도 올리지 않으렵니다.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와 뜬 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안양루의 조망, 부석사 가는 길 사과밭, 제가 여기서 또 '썰'을 풀면 아마도 잔소리로 느껴질 겁니다.


순흥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과 선비촌은 통합 입장권을 발행합니다. 어른 3,000원이면 좀 아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3시간 가까이 머물렀으면 본전 뽑은 거 아닌가요? ^^ 일행들이 주욱 훑어 보고 1시간도 안 돼서 나올 경우에 대비해 선비문화수련원 등 주변에 옵션 코스를 준비해뒀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여길 여러 번 왔지만 저도 이렇게 천천히 즐긴 건 처음입니다. 순흥의 재발견이랄까요? 오늘 경험은 앞으로 일정 잡는 데에 많이 참고해야겠습니다.




소달구지는 정말 아이디어 잘 낸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는 없었습니다.


선비촌 맞은 편 금성단입니다.
영화 '관상' 보셨나요? '이정재가 송강호의 관상을 피해' 세조가 된 후 동생 금성대군이 이 곳 순흥에서 반정을 모의합니다. 반정은 들켰으니 역모가 됐고, 알려진 바로는 지금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순흥도호부 주민의 70%가 목이 잘렸다고 합니다. 그 핏물이 20리를 흘러 멈춘 곳이 지금까지 피끝마을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금성단은 그 금성대군께 제를 올리는 제단입니다. 반역의 땅 순흥도호부는 순흥현으로 격하됐는데 이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영주시는 아마도 순흥시로 불렸을 겁니다.
이번 여행이 순수 문화유적답사가 된 이유?
춘양목군락지를 가다 '쑈'를 했습니다. 군락지 1km쯤 못 가서 산 중턱 너른 터에서 '봉화군민한마당'을 하고 있었더군요. 빤짝이 입은 가수와 봉화군민이 트로트로 하나 되는 마당! 그것까진 좋았습니다. 88번 지방도로 양 옆으로 무단 주차한 차량들. 그 사이로 승용차는 간신히 빠져나가지만 버스는 지날 수가 없었습니다. 경찰도 주최측도 손 놓고 '한마당'을 즐기고 있는지 기사님이 절반 욕을 섞어 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차 뺀다고 전화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우왕좌왕. 세화고속관광(구. 신일관광) 이정근 소장님과 다섯 차례 여행을 함께 했지만 점잖은 이 분이 이렇게 흥분한 건 처음 봤습니다.
"국도를 막아놨는데 뭐하고 있는 거야? ×발!"
그 덕에 춘양목군락지는 발치로만 보고, 20km 거리를 60km로 돌아 부석사에 도착했습니다.
자,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먹거리 소개해야 하는데 공부할 시간이 됐네요!
먹거리 특집은 주말에 따로 올리겠습니다. '저 토요일에 시험봐야 돼요!' 
첫댓글 이번 멤버들 느낌 좀 아시는군요.. 소수서원에서 무려 3시간?ㅋㅋ
부석사 실루엣은 최고네요. 이맘때 부석사 올라가는길에 지천이던 주렁주렁 사과나무가 떠오릅니다..
하여간 담 여행을 기약하시죠^^
오실 분이 이제야 오셨네 ^^
ㅎㅎ
모범답안 적어주셨네.
역시 감칠맛나는 회화나무님의 필력.. 짱입니다요^^
언제나 가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네요..
마음여행 잘 하고 갑니다.^^
ㅎㅎ 손목 잡아 끌고온 꼴이 됐네요. ^^
글과 사진만 봐도 이렇게 멋지고 운치있는데ᆢ
현란할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나무님의 입담이 추가되면
재미까지 더해지겠지요.
난 언제 동참해 볼런지 ᆢ
허리 치료 열심히 하시고 2주 후에 동참하시면 됩니다. ^^
어릴적 아버지가 태워준 소 달구지...그 기억으로
잠시 옛 추억에 잠겨 봅니다
은은한 고택의 정취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네요
가을속으로 한 번 더 계획된 여행은 동참 해 볼 참입니다
후기를 통한 마음의 여행 또한 참 좋네요~~
26일 0시(25일 자정) 청송 무박 코스입니다. 주왕산 단풍이 절정일 겁니다.
고택감상.., 잘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바쁘신가운데 열심히 또 올리셨네..수고많으셨네용..^^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당...ㅎㅎㅎ
머리가 어지러우신 가운데에도 분위기 메이커 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