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깡'은 긍정적인 사회의 길라잡이
2004년 7, 8, 9월 최영수 소장
국어 사전에 ‘깡’은 광부나 어부들이 ‘뇌관’을 속되게 이르는 말 또는 ‘깡다구’의 준말로 ‘악착스럽게 버티는 억지, 오기로 버티어 밀고 나가는 힘’이라고 쓰여 있다.
예전에는 동방예의지국답게 ‘폼생폼사’였는데 지금은 '깡생깡사'하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도로가 재떨이인양 운전하면서 담뱃재를 차창 밖으로 털고 꽁초를 버리는 깡돌이 아저씨들, 줄서기를 제대로 안 지키는 깡순이 아줌마들, 술 먹고 비틀거리며 위아래도 모르는 막가파 깡젊은이들 등.
한편, 「착한 이」들이 평소에 제일 못하는 일 중의 하나가 '깡' 부리는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착하게 길들여진 대로 상대의 눈치를 보며 그 상대의 마음에 따르고자 내 욕구를 지니는 것조차 죄스러워 하는 ‘착한 이’들, 그리고 나로 인해 누군가에게 누를 끼치게 될까 염려하면서 늘 착한 사람의 도리를 다 해야 된다며 겉으로는 스스로 몸을 움츠리고 안으로는 그렇게 스스로를 지키느라 조심조심 경계를 하는 ‘착한 이’들, 자신의 욕구와는 관계없이 감당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도 무관하게 늘 착한 자리에 우선 앉고 보는 ‘착한 이’들, 그러나 이런 ‘착한 이’들도 때로 더 이상 양보하고 물러설 곳이 없거나,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때는 자신의 목숨조차 내걸고 너무도 무식하게 외곬으로 버티는 그런 ‘착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만쯤해서는 “「착한 콤플렉스」여! 이제는 물러가거라” 라며 한바탕 깡을 터뜨리고 싶다. 더 이상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제자들에게, 우리의 후배들에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길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무한경쟁의 시대이기에 바보 같은 착함으로 승부하기보다는 꾸준한 성실함으로 승부를 겨루어야 하니까. 그렇다. 지금은 ‘나만 이’들, ‘나 우선 이’들, 무조건 ‘착한 이’들의 ‘무작정 깡’이 활보하게 해선 안 된다.
작금의 세상은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 이기적 기준들의 횡행으로, 사회의 기본원칙들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각 자의 편의적인 발상과 편리대로 꼬리 붙이며 휘두르는 「순발력 있는 합리적 궤변」의 극치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성실한 깡’으로 이를 극복해내야 한다. 왜냐하면 다수가 무리지어 외쳐대며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며 튀는 상황에서는, 작은 규칙 하나라도 살려두려면 끝까지 지켜내려는 철저한 준수의지를 끝없이 다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히 생각나서 쓰거나 남아도는 에너지로는 안 되고, 마지막까지 버티는 깡이 필요하다. 그리고 깡으로 세상을 혼란에서 지켜내야 하기에 「성실한 깡」이 요구되는 것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남의 시선을 의식 않고 자기대로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의 행동거지의 자연스러움은 분위기를 한층 띄우면서 세상을 활기차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즉, 그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자유로운 에너지는 자신은 물론 많은 이들의 창의적인 욕구를 자극한다. 이러한 자유로운 에너지가 때로는 소신으로 자신을 지켜내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영역이나 능력을 확장함으로써 리더십을 마음껏 과시하며 일이나 사람에게 유연한 대처를 하고, 때로는 일이나 사람을 끝까지 맹목적인 사랑으로 추진하는 치열함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 함께 각 자의 「성실한 깡」으로 작은 규칙을 재정립함으로써 긍정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라잡이가 되면 더욱 좋겠다.
‘성실한 깡’으로 우리 모두 함께 하기 좋은 세상을 구현하자! <행가래로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