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을 자주 보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증상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회의를 하거나 많은 사람과 함께 여행을 갈 때면, 난처한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이럴 때 바로 소변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심리적 압박감으로 증상이 심해지기도 한다.
게다가 밤에 소변을 자주 보게 되면, 충분한 숙면을 취하지 못해 피로가 더욱더 가중되는 문제가 생긴다.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 때문에, 2차적으로 또 다른 질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잠결에 일어나지 못하고, 그만 실수를 하는 야뇨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왕조실록’을 보면, 연산군이 자신의 소변 자주 보는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축천원(縮泉元)’이라는 처방을 올리라고 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아마도 워낙 증상이 심하니, 스스로 처방을 내린 것 같다. 그런데 이 증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이 재미있다.
신하와 임금 둘 다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왕이 차가운 곳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에 병이 생긴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서양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실제로는 이런 원인으로 발병한 환자가 상당히 많다. 물론 소변이 자주 마려운 증상은 방광이나 기타 요로계의 괄약근 등이 약해져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아래가 차갑거나 하초(下焦)의 기능이 약해져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원래 아랫배가 차가우면서 소변줄기가 시원찮고 수시로 조금씩 자주 보게 되는 경우는 소위 양기(陽氣)가 부족해졌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연산군의 경우도 아랫배를 따뜻하게 덥혀주고 뜸을 떠서 온기를 불어넣어주니 증상이 호전됐다는 기록을 볼 때, 양기가 매우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왕들 중에서 사치와 방탕과 패륜 등으로 왕위를 빼앗긴 유일한 왕이었던 것을 보면, 비뇨생식계통의 양기를 무척 많이 소모했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축천원’을 달여서 올리라는 연산군의 요구에, 뜻밖에도 신하들이 반대했다는 것이다.
연산군이 스스로 내린 그 처방이 맞지 않으니, 다른 치료법을 써야 한다고 권고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연산군의 행태라면 당장 그 신하들을 크게 벌줬겠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왕조실록’은 연산군이 신하들이 요구한 대로 쑥뜸을 이용해 아래를 따뜻하게 해줘서,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의외로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면모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글의 앞뒤를 다 잘라버리고, 단순히 소변을 자주 보는 병을 앓을 때 그냥 아랫배에 뜸을 뜨면 좋아진다고 오해했다가는 큰일 난다. 원래 ‘축천원’은 아래가 허해서 오는 소변 빈삭에 사용되는데, 특히 밤에 그 증상이 심한 사람에게 적용된다.
다시 말해 처방의 원인과 적응증이 연산군의 그것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지 않고 뜸치료를 한 것이다. 만약 어의가 한약처방을 한다면, 하초의 양기를 돋우어주는 다른 처방을 내렸을 것이다. 즉 뜸을 뜨면 무조건 좋아진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라는 것이다. 요 근래 질병의 원인·증상이나 환자의 체질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마구 뜸을 뜨는 무면허업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에 현혹돼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