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 세계의 종언- 시오노 나나미
서기 475년 10월 31일, 서로마 제국, 사실상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는 15세의 소년 이름은 우연하게도 로마를 건국한 왕 로물루스와 같은
이름입니다. 그리고 1년 뒤 476년 로마 제국은 멸망하지요.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오늘날 세계 각국의 교과서는 서기 476년을 서로마 제국이 멸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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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 명기하고 있는데 어느 교과서도, 어느 로마 사 권위자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해’는 말하지만, ‘달’과 ‘날’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이유는 간단해요. 모르기 때문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해보아도 9월 언제쯤이
아닐까 하고 짐작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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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동로마 제국이 건재하기 때문에 이 때의 서로마 멸망을
로마의 멸망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빌자면 동로마는
로마 제국이 아니라 비잔틴 제국이라며 그 이유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시 아테네가 없는 도시국가 아테네가 있을 수 없듯이, 로마가 없는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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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도 있을 수 없어요.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수도인 나라는 이미 로마 제국이
아닙니다. 하물며 언어도 라틴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를 쓰는 나라임에야······,
따라서 저자는 동로마를 비잔틴 제국이라 칭합니다. 헷갈리는 동방 사를
이렇게 정리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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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세기 700년 동안 번영을 누리던 지중해의 해상강국이며 한니발의
나라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의 장군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입니다.
멸망의 장면을 그리스인이자 스키피오의 친구이기도 한 역사가 폴리비오의
서술을 빌리자면, 오랜 세월 동안 번영을 누린 카르타고는 당시까지 인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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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낸 어떤 강대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방대한 양의 무기와 군선과
부를 소유할 수 있었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스키피오가 모두 불태우라고
명령하곤 잿더미가 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눈물을
흘리면서 폴리비오의 손을 잡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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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비오, 지금 우리는 과거에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운명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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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카르타고 보다 거의 두 배나 긴 세월 동안, 카르타고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넓게,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지만 멸망의 순간은 카르타고와는 다르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쓰러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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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서로마 제국, 즉 로마는 어떤 이유로 멸망에 이르렀나?
저자는 로마 제국의 멸망 시기에 공통점은 야만족이었다고 서술하며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망국은 말없이 조용히 살다가 찾아오는 현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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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강풍에 일어난 파도가 좌충우돌하여 거품을 일으키듯, 사회가 통제
되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인 끝에 망국이라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로마 제국 최후의 주인공들은 바로 야만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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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로마 제국이 말기로 갈수록 황제의 지도력에 대해 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황제처럼 제국을 다스리는 것에는 정열적이고 정력적인 것
만으론 부족하고 냉철함까지 갖출 필요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정열적
이고 정력적인 것은 양립하기 어렵듯이 로마 말기의 경우 이 모두를 갖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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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부족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에요.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모든
것을 다 갖추든가, 아우구스투스처럼 다 갖추지 못했을 경우 옆에서 돕는 사람
이나 공동리더십으로 보완을 할 수 있는데 말기엔 그러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한 가장 큰 원인이 ‘신 본위 정치’로 황제는 신을 대행한다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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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것 때문에 무능하거나 무기력해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지도력의 부재로 나타난 것이 로마 군사력의 약화
로 이어져요. 저자가 꼽는 군사력을 쇠퇴시킨 두 가인 요인 중 첫 번째는
3세기 초에 카라칼라 황제가 ‘시민권을 기득권으로 바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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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모든 속주 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이나 의무 복무 같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4세기 초에 강행한 문관과 무관을 완전 분리한 것이지요.
원수정 시대에는 원로원과 군, 그러니까 행정과 군 경력 등 서로 다른 분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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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케 하여 양쪽의 협력과 문제를 보완하는 것이나 자극을 받도록 하였는데
분리함으로써 각자 다른 입장에 대한 이해력 부족이나 고급 인력의 부족이나
분리가 되었어요. 그리스나 로마에서 태어난 도시국가 시민의 의무는 외적의
위협에 맞서서 자기가 속한 국가를 방위하는 것이고, 그것을 이룩하여 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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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는 자기 나라 정치에 참여하는 것으로 도시국가 시민들은 칼을 들고 적과
맛서야 하는데 로마의 시민권을 기득권으로 바꾼 것이나 문무의 분리는 이
같은 의무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로마 제국에서는 농업이
주요산업이었고 농민이 생산자를 대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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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제나 팍스로마나 시대에는 농민들이 농산물을 재배하고 생산하여 국가에
보급하여 안정적인 국가 경제에 기여한 것은 물론 많은 농민들이 만기 제대한
군인들이기에 외적의 침입 등의 전시에 지역방위는 물론 국가의 부름에 전쟁
에 적극 참여하였어요. 하지만 제국 말기로 갈수록 국가 방위가 약해지고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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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의 침입이 잦아지자 농민은 경작지를 팔거나 버리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흘러들게 됩니다. 이로 인해 지방 인구는 급격히 줄고 도시 인구가
늘어 실업자가 늘고 제국 시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지는 악순환이 이어
졌어요. 4세기에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직업을 세습화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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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를 만듭니다. 즉 농민의 자식은 평생 농민으로 살아야 하는 제도를 말
합니다. 이로 인해 지방의 인구의 감소 현상은 주춤하지만 제국이 농민의 안정
을 보장하지 못해요. 야만족의 반복적인 습격을 국가가 지켜주지 못하는데도
세금을 내야 하는데 기축통화가 금으로 되어 있어 농작물을 싼 값으로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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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는 등의 이중고를 겪어요. 이의 타개책으로 농민은 자작농이 아니라
대규모 농장에 농노로 일을 하게 됩니다. 자기 땅이나 보관해야 할 농작물이
없기 때문에 야만족의 습격에도 빼앗길 것이 없고, 대농장주는 국가 원로원
등의 고위층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압력도 막아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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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단지 잃는 것은 자유와 독립이지만 이보다 안전과 식량을 보장
받았기에 흐름을 막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경제 불안과 사회의 불안정으로
제국 시민의 삶이 어려워짐에 따라 삶에 구원을 주는 기독교가 급속히 확산
하게 되는 데, 이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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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후반에서 5세기에 걸쳐 로마 제국이 직면한 진짜 문제는 생산자 수의
감소와 생산성 저하에 반비례 하듯 비 생산자 수가 늘어난데 있습니다.
말기의 로마 제국을 짓누른 4대 비 생산자 계층으론 원로원 계급과 군인,
관료는 물론 기독교 성직자들이었는데 이는 국가경제의 큰 부담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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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표방한 국가는 세금을 더 거두는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제국 시민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는 현상으로
순환됩니다. 로마 제국 황제인데도 후세가 '대제'라는 존칭을 붙여 부르게
세 사람은 콘스탄티누스와 테오도시우스, 그리고 유스티니아누스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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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는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한 시대니까 그들에게 ‘대제’라는 존칭을 바친
것은 기독교회로 다시 말해서 위의 세 황제는 기독교회가 좋아하고 인정했다
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쓰러져가는 로마를 다시 일으키지
는 못했다는 게 아이러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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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설계하고 아우구스투스가 창시한 원수정의 로마는 다
문화, 다민족, 다 종교를 기본 철학으로 팍스로마나를 실현하였습니다.
저자의 글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없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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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로 다룰 수 없고 종교로 가르칠 수도 없다. 이는 영어로는 스타일인데
다른 사람이 보면 중요하지 않아도 자기한테는 그 스타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손을 대면 자기가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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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인간’을 ‘로마 제국’으로 대입해 보면 로마 제국의 고유한 스타일이
있는데 누군가 바꾸려 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이 아닌 것이 되어버려 멸망
한 것은 아닌지? 하지만 불타는 카르타고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했던 마지막
말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운명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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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지구상의 모든 국가는 건국하면 반드시 멸망한다는 진리 같은 진실
앞에 로마 제국도 당연한 순리를 따랐다면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2. 로마인 15편을 마감하면서
마지막 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은 서고트 족장 오도아케르에게 땅을 내어 주며
로마라는 국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479년 로마제국이 멸망했습니다.
BC753년 전설의 왕 로물루스가 테베레강의 일곱 언덕에 작은 촌락을 세운 때
부터 1229년 만의 종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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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국가에서 출발해 수많은 위기를 극복한 끝에 전 지중해 세계를 정복했고,
이사야, 유럽, 아프리카 일대에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로마=문명'이란 등식이
성립될 만큼 포용력이 좋은 그들의 생활양식은 주변 민족과 지역을 압도했어요.
마지막 충신 스틸리코가 살해 되면서 이미 썩을대로 썩은 로마를 몇 사람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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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으로 구할 수 없게 되었으며 '팍스로마나'의 시대가 지나고 '팍스 바르바리카'
(야만족에 의한 평화)란 치욕을 겪으면서도 버텼던 그 로마가 망할 땐 화염도
없었고 전쟁도 없었어요.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로마는 그렇게 제발로 걸어서
멸망의 길로 걸어들어갔습니다. 1000년을 넘는 기간 막강한 전투력, 정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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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모든 분야에서 완벽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로마가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맥없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1) 로망인의 정신 관용, 신의
-패자까지도 동화시키는 로마인의 관용
-적국의 장수를 처형하지 않고 명에회복의 기회를 제공
-공공 사업의 기증
(2)로마 정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길닦는 사람들, 인프라 구축은 로마의 정신
-단일민족을 주장하지 않고 문호를 개방. 실력 발탁 황제도 될 수 있는 시스템
-단군의 자손이 결코 자랑은 아님. 공평, 외국인 수용, 용병에게도 MVP주시라.
-유연성, 이타성, 관용, 민족 정체성
(3)번영 뒤에는 멸망
-로마제국은 효율적인 정치와 경영의 표본,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제국이라도
-반드시 흥망성쇠의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Cf 카르타고가 불더미가 되면서 폴리비오스가 했던 말)
(4)로마에게 우리의 길을 묻다
-인간 중심의 사고와 현실 중시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와 시스템'화
(5)저자의 에필로그
“나는 나 자신이 로마인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로마인 이야기'를 썼다.
다 쓰고 난 지금은 진심으로 ‘로마인을 알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자들도 다 읽고 나서 ‘알겠다.’고 생각해준다면, 나에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책이란 저자가 쓰고 출판사가 만들고 그것을
독자가 잃어야만 비로소 성립되는 매체지만, 이 삼자를 연결하는 붉은 선은
바로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니까“
카르사르여! 아우구스트스여! 트라야누스여! 하드리아누스여!
콘스탄틴누스여! 안녕.
2023.3.17.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