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와 향나무
민정희
사) 한국문협 벤쿠버지부 회원
나무를 잘랐다. 앞마당에서 전나무와 함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던 향나무였다.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해가 지나 서로의 몸체가 불어나면서 향나무 가지가 전나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향나무와 맞닿은 전나무 부분은 푸른색을 잃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향나무를 진즉 다듬어 주어 서로의 간격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나무에 대해 잘 몰랐던 무지함과 게으름의 결과였다. 뒤늦게 다듬어 보지만, 문제를 해결하기엔 나무들은 이미 커져 있었다.
잘린 향나무의 뿌리를 캐냈다. 한 생의 뿌리는 깊고도 넓었다. 이십여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고, 당연히 있었어야 할 나무가 빠져나간 자리. 마치 폭탄을 맞은 듯 움푹 파여 황폐했다. 전나무의 상흔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한 친구로 인해 남아 있는 내 마음의 빈터를 보는 것 같아, 가슴 속엔 싸한 공허가 맴돌았다.
한 친구가 있었다. 이곳 캐나다 땅에 새로이 발을 붙이고 사람이 그립던 시절에 만난 유학생 엄마였다. 그녀의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맏딸의 의연함이 배어 있는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막내로 자란 나와는 궁합이 잘 맞았다. 우리는 십여 년간 한 단체에서 활동하며 늘 쌍둥이처럼 붙어 다녔다. 어느 날부터 우리 사이에 틈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친하다는 이유로 내가 가장 우선이 되어야만 한다는 이기심과 집착이 발로였던 듯했다. 어쩌면 이민 생활의 좁은 세계와 외로움에서 비롯된 편협한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한걸음 물러서, 거리와 시간을 두고 성찰했어야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마음과 그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야 말았다. 언젠가는 꼬인 매듭을 풀고 관계를 돌릴 생각이었다. 다만, 적당한 시점을 잡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갑자기 고국에 볼일이 있어 몇 달 다녀왔다. 그사이에 한국으로 급히 돌아갔다는 그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고국에 홀로 남아있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병 때문이었다고 했다. 엇갈리는 운명에 연락이 끊겼고 결국은 서로의 감정을 풀지 못한 채 어영부영 헤어지게 되었다.
나는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당연한 것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쑥스럽고 거리감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매개체인가. 그중 가장 짧고 기본적인 말 두 마디를 주저하는 나의 못난 모습을 들여다본다. 가족이기에, 친구이기에, 대화 없이도 소통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가까워질수록 배려는 부족해지고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작은 어긋남에도 크게 섭섭해하거나 쉽게 분노하기도 한다. 가까우니 무조건 내 편이어야 한다는 억지스러움 때문은 아니었는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미리 인정하고 대화했다면 그렇게 속절없이 헤어지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가까운 사이였기에 더 말하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향나무를 품었던 빈 자리. 그 옆에는 상처 입은 전나무가 긴 그림자를 떨어뜨린 채 덩그러니 서있었다. 결코 재생되지 않는 갈색으로 변해버린 전나무의 상흔을 가려주기 위해, 다시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야 했다. 며칠 동안 다니며 살펴봤지만, 모양도 크기도 적당한 나무를 찾기가 힘들었다. 결국, 또 향나무를 그 자리에 심기로 했다. 전나무는 다듬을 수 없지만, 향나무는 원하는 대로 다듬어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내가 변해야 관계를 이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대변하는 듯했다. 어느 정도 큰 묘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그루로는 그 자리가 채워지지 않았다. 나무를 너무 가까이 심으면 안 된다는 진리를 체험으로 터득했지만, 결국 세 그루의 묘목을 심음으로써 스산한 빈자리를 메꿀 수 있었다.
나무의 조화에서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전나무와 향나무가 같은 사철나무지만 자라는 형태와 성질이 다르듯이, 서로 다른 성격의 인간이 관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 중 가까운 사이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도 귀한 인연인가. 늦기 전에 소중한 관계들을 되돌아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지가 삐쭉 자라 누군가를 찌르고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