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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6월 2일 주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이다. 이날 교회는 예수님께서 성목요일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과, 사제가 거행하는 성체성사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기념하고 묵상한다.
보편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에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의무 축일로 지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목적 배려로 주일로 옮겨 지낸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와 구원의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 주신 새 계약의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체와 성혈을 기리며 미사에 참여합시다.
말씀의 초대
모세는 번제물로 올린 소의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리며, 주님께서 그들과 맺으신 계약의 피라고 한다(제1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께서는 대사제로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에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음식을 드시면서,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주시며 당신의 몸과 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는 주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4,3-8
그 무렵 3 모세가 백성에게 와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 주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기념 기둥 열둘을 세웠다.
5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몇몇 젊은이들을 그리로 보내어,
번제물을 올리고 소를 잡아 주님께 친교 제물을 바치게 하였다.
6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을 가져다 여러 대접에 담아 놓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렸다.
7 그러고 나서 계약의 책을 들고 그것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8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11-15
형제 여러분, 11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 그리고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리는 암송아지의 재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 몸을 깨끗하게 한다면,
14 하물며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6.22-26
12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5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16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2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23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2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26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제1독서는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을 들려줍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계약을 맺을 때, 동물을 반으로 가르고 그 피를 제단과 사람들에게 뿌렸습니다. 이스라엘도 같은 방식으로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계명과 법규를 충실히 지킨다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고(탈출 19,5-6 참조) 복을 내리신다는 계약입니다(탈출 20,6; 신명 30,16 참조).
이 계약을 체결하고자 모세는 소를 잡아 번제물로 바치고 그 피를 제단과 백성들에게 뿌립니다(탈출 24,4-6 참조). 제2독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하느님과 새 계약을 맺는 제사였음을 알려 줍니다.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옛 계약(구약)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새 계약(신약)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의 중개가 아닌 그리스도라는 ‘완전한 대사제’를 통해서, 불완전한 제물인 동물의 피가 아닌 흠 없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완전한 제물’이 되시어, 당신의 피를 십자가라는 제단과 우리 위에 흘리시며 맺으시는 ‘완전한 계약’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신앙의 성조들이 맺은 계약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완성됩니다. 이 단 한 번의 십자가 희생 제사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 제사는 날마다 성찬례 안에서 되풀이되어 기억되고 재현됩니다. 우리는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시려고 ‘몸’과 ‘피’를 내주신 주님의 깊고 진한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우리도 다른 이에게 몸과 피를 내주도록 재촉합니다(2코린 5,14 참조).(최정훈 바오로 신부)
성체는 우리를 낫게 해줍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체성혈 대축일에 성체성사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복자 카를 라이스너 신부님(1915~1945)의 생애를 묵상합니다. 생몰 연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분은 아우슈비츠 못지않게 악랄했던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분의 사제로서의 삶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24살 부제품을 받은 라이스너 부제는 부제품 받자 마자 나치 강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건강했던 그는 거기서 꽤 긴 기간인 4년간 버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종전을 목전에 두고 몸이 점점 약해지고, 결핵에 걸려 쓰러집니다.
부제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이 죽는 것은 아무 미련도 없지만, 사제품을 받지 못하고, 첫미사를 봉헌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고 안타까움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이스너 부제는 한 가지 지향을 두고 간절히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얼토당토 않은 청이라 여기시겠지만, 혹시라도 제게 사제품과 첫미사의 영광을 주실수는 없겠는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부제의 간절한 청이 하늘에 도달했습니다.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는 수많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갇혀 있었는데, 그 중에 주교님도 한 분 계셨던 것입니다. 부제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주교님이 부제가 누워있는 방을 찾아와서 사제품 주신 것입니다. 1944년 12월 17일이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던 라이스너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소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미사를 봉헌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강제 수용소에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병세가 깊어진 부제를 보고 군인들은 그를 가스실로 보내려고 했는데, 병세가 너무나 심각해진 것을 본 군인들는 강제 수용소 밖으로 내보내 굶겨죽이기로 했습니다.
들것에 실려 밖으로 나가던 부제는 자신을 싣고 나가던 군인 두명에게 자신이 겪었던 그간의 일들을 말해주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제가 되었지만, 아직도 미사를 단 한번도 드려본 적이 없다. 죽기 전에 미사 한번만 드릴수 있도록 도와줄 수 없겠냐고?
그런데 놀랍게도 그 독일군들도 신자였습니다. 그들은 카를 신부를 수용소 밖으로 데려가지 않고 병원의 침실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미사 도구들을 챙겨다 주고 첫미사를 봉헌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죽기 일보 직전 병원 침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유일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카롤 신부는 단 한번의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습관처럼 봉헌하는 미사가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 가장 간절한 소원이라는 것, 기억하면, 우리의 미사가 더 간절해져야겠습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 카롤 신부의 그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한다면 그 미사가 얼마나 은혜롭겠습니까?
“성체성사의 그리스도여! 저는 당신없이는 그 무엇도 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저는 그 무엇도 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의 그리스도여! 당신은 저의 안식처요 집입니다! 성체성사의 그리스도요! 저는 오직 당신께만 속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미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미사에 대한 최우선적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까?
성체는 우리를 낫게 해줍니다.
성체는 우리를 예수님과 일치시켜줍니다.
성체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사는 방식을 알게 해줍니다.
성체는 우리에게 형제들에게 자신을 쪼개어 내어주는 능력을 선물합니다.
성체는 우리에게 선으로 악에 대응하는 역량을 키워줍니다.
성체는 우리에게 자신을 벗어나 밖으로 나갈 용기를 부여합니다.
성체는 우리에게 이웃의 약함에 고개 숙이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며,
모든 이에게 희망과 기쁨의 빵이 되어주는 교회입니다.
매일 예수님께로 돌아갑시다. 성체성사로 돌아갑시다.(프란치스코 교황님)
하느님은 왜 계약을 피로 맺으시는가?
전삼용 요셉 신부님
성체 성혈 대축일은 항상 삼위일체 대축일을 잇습니다. 성체·성혈의 신비가 삼위일체 신비를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삼위일체이십니다. 오 헨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남자는 아내를 위해 시계를 팔아 빗을 사고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선물합니다. 빗과 시곗줄은 자신이 가진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주고받음이 사랑을 완성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혼자서는 사랑일 수 없습니다. 아드님과 둘이 계셔도 사랑일 수 없습니다. 주고받는 선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 선물이 성령이십니다. 성령도 아버지와 아드님과 같은 분이신데, 그 내어주는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운반할 자격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폭발물 운반을 맡기는 어른은 없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사랑의 선물 교환으로 하나가 되면 자녀가 탄생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주는 사랑의 선물로 부모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아이는 태어나도 자신이 개인지 고양이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결국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신다는 뜻은 우리도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체를 영하고 계속 ‘인간’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면 인간의 본성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계속 돈 좋아하고 사람을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세상 집착에서 자유롭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얻기 위해 미사에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전부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라고 하십니다. 계약이라면 양쪽의 의무과 권리가 들어있습니다. 만약 내가 집을 사려고 한다면 계약서에 사인합니다. 그러면 돈을 줄 의무와 집을 받을 권리가 생깁니다. 그럼으로써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가 생깁니다.
그런데 관계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여행하다 음료수 하나를 사기 위해 들른 가게주인과는 깊은 관계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매일 출근하면 월급을 주는 사장과는 더 깊은 관계가 맺어집니다. 만약 일을 하는 척하며 돈만 받아 간다면 나중에는 관계가 깨어집니다. 깨어지는 것을 넘어서 고발당하게 됩니다. 나는 피를 흘리는데 상대는 그이 비견될 수 없는 작은 것만을 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1년이 365일이라 배우자가 364일만 나에게 충실하고 하루는 바람피워도 허락하는 배우자가 있다면 그 사람과 혼인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혼인은 ‘피’, 곧 ‘생명’을 내어놓기로 한 계약이기에 단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가장 완전한 계약입니다.
그렇다면 뭣 하러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계약을 맺는 걸까요? 한 청년에 의해서 암소 아홉 마리를 받은 아내는 처음엔 자신이 그 가치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에 합당한 존재가 되어 남편에게 그만큼 내어놓지 못하면 부담 때문에 계속 같이 살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남편이 주는 계약의 피에 합당한 것을 내어놓기 위해 노력하다가 정말 남편이 원하는 아내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피로 우리와 계약을 맺으시려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대전 ‘성심당’은 몇 개 안 되는 직영점으로 수백억의 순수익을 올리는 대전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창업주 임길순 암브로시오는 흥남 철수 때 살려만 주시면 일생을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당일 팔리지 않은 모든 빵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며 그 계약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과 더 친밀해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당일 너무 많은 빵이 소진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빵을 더 만든다고 합니다.
더 목숨을 건 계약이라야 더 완전한 일치가 일어납니다. 미사는 파견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내가 성체성사로 하느님이 되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계약 조항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도 이웃에게 그 믿음을 주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지 못하면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성체를 영해도 소원하기만 합니다.
전혀 나의 의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성체를 영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피의 계약이 나를 정화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분께 더 합당하기 위해 사랑에 목숨을 걸 결심하고 파견받아야 진정 미사에 참례한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443년 지금부터 581년 전입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습니다. 한글은 배우기 쉽고, 표현하기 쉽고,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된 문자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때 이미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배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아들 수양대군에게 한글로 된 책을 만들게 했습니다. 1447년 아들 수양대군이 만든 책의 제목은 ‘석보상절(釋譜詳節)’입니다. 책의 내용은 부처님의 일대기를 중요한 것은 자세하게, 그렇지 않은 것은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유교가 국가의 통치이념인 조선시대에 불교의 부처님을 주제로 책을 쓴 것은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은 이미 1000년 동안 불교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은 수양대군의 석보상절을 읽으면서 감명을 받아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1447년에 발표하였습니다. 월인천강지곡은 부처님의 자비와 덕이 하도 커서 마치 달이 천개의 강에 비춘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월인천강지곡은 용비어천가와 더불어 한글의 훈민정음을 처음으로 사용한 작품으로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에게 감사드립니다. 세종대왕 역시 한글이 널리 보급되어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식사를 ‘최후의 만찬(Ultima Cena)'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그림을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빵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체성사’가 되었습니다. 미사 때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할 때,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것이 성체성사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은덕이 천개의 강에 비추는 것처럼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 성체를 받아 모시면 우리의 몸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 성체성사를 통해서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지난 5월 5일에 본당에서는 ‘첫 영성체’가 있었습니다. 18명의 어린이들이 생애 처음으로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 이렇게 매일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십니다.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체성사의 가장 큰 의미는 ‘내어줌’입니다. 사제는 미사 때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재현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공평하지 않게 만드신 것은 ‘흐름’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강약, 고저, 장단’이 있습니다. 물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공기도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구름도 비가 되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립니다. 사람의 피도 끊임없이 흘러야 생명이 유지됩니다. 세상은 이렇게 흘러야 하고, 그렇게 흐르는 세상은 공평해지는 것입니다. 돈도 흘러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사람이 사는 이 세상도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한 나라의 것들이 강한 나라로, 가난한 사람들의 것들이 부유한 사람들에게로 흐르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흐름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상의 흐름이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긴 곳에서 짧은 곳으로 흘러간다면 세상은 공평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은 예수님이 꿈꾸던 ‘하느님 나라’입니다. 사자와 어린아이가 함께 있는 나라,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있는 나라, 사막에도 샘이 흘러 꽃이 피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공부해서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출세해서 자기만 잘살고, 잘 먹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출세해서 세상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혼자서 오천 명의 것을 빼앗아 먹을 수도 있지만, 혼자서 오천 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오천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드리시면서 어떻게 해야 공평한 세상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잘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체 성혈 대축일의 진정한 의미는 남을 잘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도, 예수님께서 성체와 성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도 모두 우리가 잘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또한, 우리도 이웃을 잘살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전에 읽었던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꽃입니다. 꽃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 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 날려버려요. 그래도 나는 하나도 잃은 것이 없답니다. 가을이 되면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테니까요.”
오늘의 성인
성녀 블란디나 (Blandina)
활동년도 : +177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리옹(Lyon)
같은 이름:
성 포티누스(Pothinus) 주교와 함께 리옹에서 처형당한 순교자들 가운데 한 분인 성녀 블란디나는 원래 노예 소녀였는데 여주인의 영향으로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잔인한 고문을 당하였지만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들은 수치스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만 되풀이 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형리들조차 이런 여인을 일찍이 본 일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블란디나와 함께 순교한 이들 중에는 성 폰티쿠스(Ponticus)라는 15세 소년도 있었는데, 그녀는 끊임없이 그를 격려하여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하였다.
성 니콜라오 (Nicholas)
활동년도 : +1094년
신분 : 순례자
지역 :
같은 이름 : 니고나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스, 니콜라우스, 페레그리노, 페레그리누스, 펠레그리노, 펠레그리누스
성 니콜라우스 페레그리누스(Nicolaus Peregrinus, 또는 니콜라오 페레그리노)의 생애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열심하고 단순한 마음을 지닌 그리스 사람이며, 이탈리아에서 이방인처럼 방랑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얼마 동안은 이탈리아 남동부 오트란토(Otranto)에 정착했지만, 곧 아폴리아 전역을 방랑하다가 병이 들어 트라니(Trani)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키리에 엘레이손’(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을 외치며 다녔다. 그는 가끔 사과나 혹은 어린이들이 좋아할 물건들을 들고 다니면서 아이들이 모이면 함께 찬미가를 노래했다. 또 가끔은 미친 사람으로 몰려 곤욕을 치루기도 했으나 그의 죽음을 계기로 하여 그의 높은 덕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그의 무덤은 치유의 기적으로 지금도 순례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성 니콜라우스 순례자 또는 성 니콜라우스 펠레그리누스(Nicolaus Pellegrinus, 또는 니콜라오 펠레그리노)로도 불리는 그는 1098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마르첼리노(Marcellinus)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연도 : +303년경
같은이름 : 마르셀리노,
마르셀리누스, 마르첼리누스
성 베드로 (Peter)
활동년도 : +303년경
신분 : 구마자, 순교자
지역
같은 이름 : 페드로, 페드루스, 피터
성 마르첼리누스(또는 마르첼리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에 로마(Roma)의 뛰어난 사제였고, 성 베드로(Petrus)는 구마자였다.
이들은 새로운 개종자를 얻고 그들의 신앙을 돈독히 하는데 온갖 정열을 쏟았다.
그러나 개종자 가운데 어느 간수의 아내와 딸 때문에 그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실바 니그라라는 숲으로 끌려가서 자신들의 무덤을 판 후 참수되었다고 전해진다.
열심한 귀부인인 루실라와 피르미나는 그들의 유해를 몰래 운구하여, 라비카나(Lavicana) 가도의 성 티부르시오(Tiburtius) 카타콤바에 안장하였다.
교황 다마수스 1세(Damasus I)는 그들의 묘비명을 세웠고, 콘스탄틴 황제는 그들의 지하묘소 위에 성당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