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978년, ‘봄’과 ‘아침’ 이미지의 푸른 날들!
1978년은 화전교에 햇수로 거의 6년을 근무하였다. ‘이제 어디로 가서 근무를 해야 할까?’를 고민하여 보았다.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강릉으로 가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어릴 때 다니던 모교에 가서 근무하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하니 잠들 수가 없었다. 너무 너무 즐겁고 황홀한 마음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정선 교육청에 거서 초등계장님을 찾아뵈고 고향의 모교에 가야하는 이유를 말씀드렸다. 결과적으로 1979년 3월 1일 자로 정선군 문래 국교로 갈 수 있었다. 내 고향 모교였다. 얼마나 감동과 기쁨이 있었는지를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작품도 부지런히 쓰곤 하였다.
나는 1월인데도 마음은 화사한 봄의 문턱에 서 있었다. 당연히 ‘봄’에 대한 즐거움을 시로 표출하였다. 그리고 경향신문에 발표하였다. 1978년 2월 25일이었다.
봄
남 진 원
넘어질 듯 바람소리
거지마다 출렁이면
가득히 귀연 하늘
참빗 빚는 황금 소리
풀잎은 햇살에 젖고
물소리가 크는 처마
설레는 발걸음이
내딛는 강둑 너머
송사리 송사리들
물줄기를 운전하고
먼 산엔 꽃눈을 엮는
눈이 아린 아지랑이
넋나간 아름다움
진달래로 피어나고
새파란 불바다인냥
한길에 선 빛무리들
하늘은 강산을 잡고
귀를 모두 열었다
( 경향신문 1978. 2. 25 )
시청각 교육 신문에도 시조 ‘봄’을 발표하였다. 이 당시는 봄 또는 아침에 대한 이미지들이 매우 중대한 관심거리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사는 것도 늘 눈부신 빛의 세계속에 진행되는 줄을 알았다.
다음 작품은 시청각교육 신문에 발표한 ‘봄’이란 시조 작품이다.
봄
남진원
활짝 핀 잎 사이
바람도 푸러라
새들은 둥지 틀며
노랫소리 부풀고
저 봄 창 일렁이는 곳
마구 크는 넝쿨들
흥겹다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흥겹다
따스한 시냇물은
구름 싣고 하늘 싣고
둥둥둥 봄이 달린다
젖은 봄이 달린다
파란 봄 빨간 봄이
솟구치는 마을 마을
꽃 웃음 비단인냥
들판마다 깔아놓고
그 옆에 시냇물소리
귀를 열고 떠 간다.
( 1978. 2. 20. 시청각교육신문 )
‘아침’에 대한 생각의 이미지도 가슴을 설레이게 만들었다. 아침의 빛은 내 삶의 선물 같았다. ‘아침’ 역시 내가 나고 자란 농촌의 고향에 대한 아침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고향은 편안하면서도 따뜻하고 따뜻하면서도 빛으로 부신 날이었다.
시 ‘농촌의 아침’은 1978년 5월호 『어린이새농민』에 실린 작품이다.
농촌의 아침
남진원
새벽 장닭 소리가
담장 밖을 타 넘어
온 마을
이집 저집 대문을 두드릴 때면
잠 깬 나무들은
햇살을 받아
청청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서 더욱 밝은 우리들은
저마다 갓 피어나는 아침 햇살
한 다발 햇살을 휘감고
맑은 하늘 따라
가슴을 펴면
문득
고목나무 둥지 속에서 들려오는
콩죽 같은 새소리들
소모는 소리가 길게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 1978. 5. 『어린이 새농민』 )
장닭 소리가 아침을 열면 햇빛이 온 마을을 비춘다. 나무들은 푸른 빛 그림자를 드리우며 아침을 연다. 그 나무들의 가지 사이에서는 새소리들이 콩죽처럼 들리고 집을 나서는 농부. 그 농부의 손에는 소를 모는 밧줄이 들려 있다. “이랴!”하는 농부의 큰 목소리가 농촌의 아침을 밝고 힘차게 퍼져간다. 눈부신 고향 마을의 아침은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는 한 폭의 아름다운 영상이었다.
대한교원공제회에서는 회보를 발행하고 있었다. 1978년 7월 1일 그 회보에 ‘아침’이란 작품을 발표하였다.
아침의 소재는 간결한 햇빛과 바람 하늘 숲 등이었다.
아 침
남진원
능금알 같은 해
햇덩이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함지 같은 마을엔
터질 듯
쌓여가는
햇살, 햇살
잠시 후
햇살에 섞인 바람이
숲에서 숲으로
막 타들어가자
하늘이
끙 끙
내려 누리기 시작했다.
( 1978. 7. 1 )
지금보다, 그 당시 매우 정열적인 마음을 시로 표현한 듯 했다. 새까만 탄광 지대에 살았기에 더욱 밝고 환한 이미지들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탄광이 없어지고나자, 황지읍 하천은 맑은 물이 흘러가는 걸 보있다. 신기하고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매우 편안해졌다.
검은 탄광 지대의 생활은 어쩌면 불안한 생활이 엄습한 것 같았다. 그런 것들로부터 탈출하는 무엇이 필요했었던 것. 그것이 밝은 아침이나 봄을 이미지화하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어린이 잡지, 소년중앙 6월호에도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작품 역시 ‘아침’이었다.
아 침
남진원
꽃잎들 오롱조롱
풀어내는 향기를
한바탕 바람 달구지에 싣고
달리는 햇살
바람결에 바람결에
촉촉이 물기 어린
풀잎, 풀잎의 음성
도란도란 이야기
아침을 목에 걸고
부신 상쾌함
호르륵 호르륵
날려 보낼 때
새들이
하늘 파란 노랫소리
쯔빗 쯔빗 쯔르르르
한밤 내 빛 고운 음표를 수놓는다
( 1978년 소년중앙 6월호 )
1978년은 ‘봄’ 이나 ‘아침’ 이미지의 푸른 색 날들이었다.
그들은 냐게 있어서 연인처럼 정겹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언제나 팔 벌리면 달려드는 아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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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글짓기
학교에 처음 나가서 한 일이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일을 도와주는 공부였다. 동시와 산문을 쓴 작품을 읽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아이들은 말은 잘 안해도 글로 자신들의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하여, 나도 내 마음을 글로 나타내고 싶읐던 것이 글의 시초라고 할 수 있었다.
1978. 4. 30. 『글 벗』. 글짓기 교실 ( 글벗 문고. 슬기의 샘. 발행인:김한룡 )에 글 쓰는 방법에 대한 글을 발표하였다.
글짓기의 실제와 지도
남진원
★ 글을 왜 쓰느냐? 왜 짓느냐?
글을 지으면서 또는 남의 글을 읽으면서 어린이 여러분들은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적어도 글짓기에 취미를 가진 어린이들은 꼭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남이 축구선수가 된다고 하니 나도 덩달아 축구 선수가 된다는 생각은 우습지요.
글이란 그 사람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음이 나쁜 어린이는 글속에서도 나쁜 마음이 나타나고 마음이 착한 어린이는 글 속에서도 착한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마음을 가진 어린이도 자꾸 글을 쓰다보면 착한 어린이가 될 수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글을 쓸 때 어떻게 써야 될까요?
첫째, 거짓없이 써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를 술직하게 써야 된다는 말입니다.
둘째, 남의 작품을 흉내내거나 일부분을 베껴 쓰면 안 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도둑질이지만 무릇 남의 고움 마음을 훔치는 일도 도둑질 중의 으뜸가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 쓰던 못 쓰던 남의 작품을 제것인냥 하거나 베껴 써도 안 됩니다.
셌째, 남의 작품을 많이 읽어 봐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린이 여러분들은 글도 잘 쓰고 마음도 착한 어린이들이 꼭 될 거예요.
그러면 다음 어린이들이 쓴 몇 작품을 읽어가면서 공부해 보기로 해요.
다 람 쥐
강원 삼척 화전교 3 의 2 김재원
산골짝 외딴 곳
걷다 보며는
다람쥐가 살짝 인사하지요
떡갈나무 잎이 덮인
바위 아래는
도토리가 소복 소복 쌓여있어요
한적한 깊은 산
바위 아래 도토리
아마도 다람쥐가 주워났나 봐.
☆ 이 글을 조용히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깊은 외진 산길을 걸어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입니까? 다람쥐가 살짝 나와 인사한다는 대목이 참 재미있지요? 그리고 바위 아래 소복히 쌓인 도토리를, 다람쥐가 도토리들을 주워 모았다는 생각이 얼마나 귀엽고 고마운 마음입니까.
( 1978. 4. 30. 『글 벗』. 글짓기 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