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중동 6일 전쟁’ 이스라엘 승리의 비결
1967년 6월 5일 오전 7시 45분 이스라엘 공군기가 이집트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제3차 중동전쟁이 시작됐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의 충돌에서 비롯됐다. 시리아는 66년 아랍의 맹주이자 현대적 군사력을 갖춘 이집트와 군사동맹을 맺고 앙숙 이스라엘에 강경하게 맞서기 시작했다.
1964년 4월 이스라엘은 1차 중동전쟁 정전협정에 따라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골란고원 일대에 농작물을 경작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다. 이때부터 골란고원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아랍 게릴라들의 공격이 점증되자 1967년 4월 시리아 내에 있는 게릴라 기지에 대대적인 군사공격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시리아는 이집트의 개입을 요청했다. 나세르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다시 공격한다면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요르단·이라크와 군사동맹을 체결, 대 이스라엘전쟁 준비를 서둘렀다.
이러한 사실을 포착한 이스라엘은 즉각 전시체제에 돌입했다. 국방상 모세 다얀 장군은 이집트를 위시한 아랍 측의 전력이 수적으로 절대 우세하기 때문에 선제 기습공격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공세전략을 수립했다.
한편 아랍 측은 방대한 군사력에 비해 이를 효과적으로 통합 지휘할 수 있는 체제가 돼 있지 않았고 그럴 능력조차 없었다.
다만 10여 년 동안 사막지대에 설치한 지뢰와 토치카, 그리고 지하 벙커 등 방어시설에 의존, 이스라엘을 봉쇄해 압박을 가하는 장기 전략을 추구하고 있었다.
1967년 6월 5일 아침 전격적으로 실시된 이스라엘 공군의 기습작전은 아침 안개가 걷히고 주요 지휘관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이뤄졌다.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23개소의 아랍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지중해를 멀리 우회, 알렉산드리아쪽 리비아 사막지대 상공을 통해 카이로 지역으로 돌입해 들어갔다.
잔잔한 지중해상의 저공비행은 조종사가 하늘과 바다를 혼동해 방향을 상실, 추락의 위험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공군은 해상 100m 정도의 저공비행으로 사막지대에 분산돼 있는 이집트의 각 공군기지에 성공적으로 접근, 기습을 완벽하게 달성했던 것이다.
이 기습작전으로 이집트 공군은 불과 개전 하루만에 MIG - 21 90대를 포함, 총 410대의 항공기가 날아보지도 못한 채 지상에서 파괴당해 사실상 궤멸됨으로써 이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항공기가 전쟁에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가장 완벽한 작전이라고 평가되는 이 기습작전은 체코 출신 공군사령관 호도 소장이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작품이었다.
특히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가 제공한 이집트 공군 조종사들의 가족사항에서부터 레이더 요원들의 근무습관, 그리고 주요 지휘관들의 출근상황까지 세밀하게 분석한 완벽한 정보가 작전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시리아·요르단 공군도 단 25분 만에 무력화되고 말았다. 이스라엘 공군이 제공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지상군의 공격도 거칠 것이 없었다.
먼저 이집트에서 시나이반도와 스에즈 운하를 전격 장악해 버렸다. 요르단에서는 혈전을 강요당했지만 결국 예루살렘과 웨스트뱅크를 점령하고 승리한다. 그리고 시리아 전선에서도 골란고원을 장악하고 대승을 거둔다.
국토 면적이래야 우리나라 경상북도 크기와 비슷하고 인구는 고작 280만 명에 불과한 이스라엘이 아랍 14개국 1억500만 명과 싸워 이긴 것이다.
현대 전쟁사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6일 전쟁의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분명 그것은 기적도 아니고 신화도 아니다. 국민의 군대가 아니라 ‘국민이 곧 군대’라는 상무적 전통과 총력전 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스라엘 국민의 안보의식, 그리고 희생을 각오한 장병들의 전승 의지가 이미 승리를 보장해 준 것이다.
정병 필승, 현대전에 있어서 대병주의는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작지만 강한 군대, 그것이 바로 6일 전쟁이 우리에게 준 값진 교훈인 것이다.
<김영이 군사평론가> [출처] 중동 6일 전쟁. <기고 이상희>대한변리사회 회장
이스라엘 국민의 교육 훈련의 비밀
북한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에 이어 11월 23일 연평도 주민에까지 무차별 포격사건에 대해서 우리정부와 군의 대응방식에 대해 왜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대응하지 못하였느냐의 비판이 재기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응징(膺懲)전략은 단순한 감정적 대응차원이 아니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①함무라비(Hammurabi)식 응징전략은 생존과 예방을 위한 절박한 소망이기에 우리국민은 당하고만 있느냐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인구 3억의 적대 국가들에 둘러싸인 ②700만의 이스라엘 생존전략으로서 철저히 대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북한의 사거리 안에 인구 절반이 살고 있고, 한순간에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될 수도 있는 현실을 우리는 너무 오래 잊고 지냈다. 이번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는 그런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했다.
오늘날 이스라엘을 첨단산업 강국으로 만든 보다 근본적인 원동력은 바로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軍시스템이다. 이스라엘에는 ‘최고(Taspiot)’라는 엘리트 군 프로그램이 있다. 매년 상위 2% 학생들이 지원해 그중 10%만이 통과할 정도로 엄격하다.
그들이 받는 훈련과 교육은 최고 엘리트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양성된 인재들은 이스라엘의 생존 문제와 더불어 경제 ? 산업 발전에도 막대한 기여를 한다.
21세기 군대는 국가 방위뿐만 아니라 교육과 첨단산업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군이야말로 미래 우수인재 양성과 선도적 첨단기술 개발이 가능한 최적의 집단이다. 오늘날 생활필수품이 된 인터넷도 미국의 첨단 군사기술 결과물인‘알파넷’에서 기원했다.국방기술과 산업기술을 함께개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최고 지도부가 엔지니어 출신인 이웃 중국도 최근 군 수뇌부를 첨단 공군 중심으로 바꾸고 국방기술, 산업기술, 인력 양성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우리 군의 우수한 인적 자원을 적극 활용하고 첨단 군사기술 개발로 국방력과 산업경쟁력을 동시에 키우는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제3차 '중동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 승리의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