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록의 르네상스를 꿈꾸는 ‘웰 메이드 사운드’의 오디세이-‘검정치마’의 [201]
이동연_한국종합예술대학 교수
누군가로부터 홍대 인디씬의 실력파 밴드가 첫 음반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음반을 구매하려던 차에,
이 주의 앨범 후보에 이 밴드가 걸렸다.
그리고 '검정치마'의 노래를 듣는 순간, "와우 세련된 사운드네" "브릿팝의 한국적 현존인가?"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수록된 곡들을 천천히 듣다보니, '복고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날 것 같으면서도 정리가 잘 된' 곡들은 마스터링의 기술적 수준과는 관계없이 올해 나온 앨범 중
'웰메이드 트랙'의 반열에 올라갈만한 것들로 가득했다.
이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2005년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밴드 "몽구스"의 신선함과 유니크함을 느낄 수 있었고, 곧바로 홍대 인디씬의 용광로를 밑바닥부터 서서히 달구기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 어디쯤으로 회귀한 것 같은 흐뭇한 생각에 빠진다.
풋풋하면서도 창작적 완성도가 높았던 초기 시절 홍대 인디씬의 밴드 사운드로의 회귀는 진보하는 음악창작 공간을 열기위한 일종의 '독립적인 오디세이' 같다. 인디씬의 초심을 생각하게 하는 밴드 '검정치마'의 음악적 오디세이는 진보적이고 여전히 미완성이다.
'검정치마'는 2004년 뉴욕에서 3인조 펑크 밴드로 출발했다.
그러나 맴버들 간의 의견차로 팀은 공중분해 되고 팀의 리더인 조휴일은 홀로 작곡, 작사, 프로듀싱까지 겸하면서 밴드 이름을 지켜냈다. 조휴일은 귀국 후에 홍대 인디씬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함께 공연했던
밴드 '하이라이츠'의 이규영과 의기투합해서 '검정치마'의 이름으로 음반을 내기로 결심했다.
'검정치마'의 곡들은 대부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그는 그 때 동부에서 서부로 이사 가는
친구의 차에 동승해 거리해서 공연하는 '로드-워리어' 생활을 통해 현장에서의 감각들을 익혔으며
아리조나-인디애나-뉴욕-뉴저지 곳곳의 지하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음원들을 모아 마침내 '검정치마'의 데뷔 앨범 [201]을 탄생시켰다.
'검정치마'의 데뷔 앨범 [201]에 수록된 곡들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소유한 곡들이다.
이들이 구사하는 스타일은 광의의 '모던 록' 계열이지만 음악 곳곳에 펑크, 스카, 로큰롤, 트위스트,
개러지 사운드를 선보인다. 초기 급진적 펑크록을 구사한 '노 브레인'의 [청년폭도맹진가] 이후 한국의
록음악이나 인디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고 마이클 잭슨과 서태지를 좋아한다는 밴드 리더 조휴일의 문화적 감수성은 이국적면서도 하이브리드한 이 앨범의 사운드에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이들의 곡들은 영화 '그로잉 업'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1960년대 미국 로큰롤의 흥취를 느낄 수 있는
복고적 사운드에서 뉴욕 출신의 5인조 개러지록 밴드 '스트록스'(the Strokes)의 거칠면서도 멜로디 라인이 빼어난 팝적인 매력을 연상케 한다.
첫 번째 곡이자 타이틀 곡인 '좋아해줘'는 러닝타임이 3분밖에 안 되는 곡이지만 멜로디의 진행이
변화무쌍하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날 좋아해 줘 아무런 조건 없이 엄마, 아니 아빠보다 더'라는 가사처럼 사운드의 조합과 배치 역시 자유분방하다. 1960년대 복고적 로큰롤 사운드를 구사하는 'Stand Still'은 당시의 자유분방한 청년문화적 취향을 동시대적 감수성에 맞게 재 번역된 곡이다.
주 보컬의 멜로디와 연주의 배합들이 빼어난 곡이라 할 수 있다. 앞의 두 곡이 코스모폴리탄적인 감수성을 담고 있다면 세 번째 '강아지'는 가장 국지적이고 토착화된 사운드를 선보인다. 스카펑크의 사운드를 바탕으로 한 이곡은 역시 곡 중간에 로큰롤적인 변주력을 구사한다.
개인적으로 '검정치마'에 수록된 곡 중에서 가장 멋지게 다가오는 곡은 다섯 번 째 곡인 'Antifreeze'와
아홉 번째 곡인 'Dientes'이다. 부동액이라는 뜻으로 미국에서는 헤로인이라는 속어로 사용되는
'Antifreeze'는 내용의 층위에서는 변하지 않는 사랑을 찾는다는 가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표현의 층위에서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델리스파이스' 같기도 하고 '언니네 이발관' 같기도 한 이런 분위기의 곡은 앞서 말했던 초기 홍대 인디씬의 부활을 감지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전주의 스카리듬에 어울리지 않는 보컬의 '쿨한' 안정감에 갑가지 변조되는 웨스트코스트풍의 사운드는
라틴어 가사까지 겹치면서 다국적인 감성을 발산한다. 다소는 '스웨이드'적 감수성이 녹아있는 'Tangled'나 로큰롤과 펑크 사운드가 접목된 'Avant garde Kim'과 같은 곡들도 장르적 특이성들을 잘 버무린 '웰 메이드' 트랙들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Kiss and Tell'도 이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잘 선택된 곡이고 반복된 코러스가 특히나 엔딩의 효과를 잘 발산하고 있다.
한마디로 '검정치마'의 데뷔 앨범 [201]에 수록된 곡들은 특별히 결함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자기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다만 흠이라면 밴드의 연주 스타일이 지나치게 악기별 발란스를 중시해서 리딩 세션이 분명치 않다는 것과 보컬 코러스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 그 색깔도 조금 불분명하다는 것 정도일까.
'검정치마'의 곡들은 모든 곡마다 특별한 개성이 있지만 곡 전체를 결코 한 스타일대로 유지하지 않는다는 공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뭔가를 비틀고 싶은 열정이 사운드를 새롭게 만드는 것 같다.
새롭게 인디씬에 출몰한 '검정치마'가 조금은 매너리즘에 빠진 홍대 인디씬에 성찰적인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