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데코레이션도 이제는 예술이다. 접시부터 음식 색깔까지 과일 모양까지 계산하여 멋지게 담아낸다. 그동안 만찬에서 산해진미를 두고 카메라를 들이대기 민망해서 망설였다. 이제 며칠 지나니 모두 친밀하게 되어 만찬 식탁에서 슬슬 본심이 발동한다.일단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따뜻한 물도 주문이 쉽다. 회관 수준이 있어서인지 직원이 영어를 잘 알아듣는다. 맥주가 한 잔씩 돌아간다. 저걸 한 컵을 마셔버리면, 다른 음식을 못 먹을 것 같아서 고량주 반 잔을 마시기로 했다. 57도라 목에 불이 확 붙는 것 같은 마조히즘적 고통 속에서도 산뜻하다. 애피타이저로 어란과 오징어 숙회와 해파리냉채와 생선살(이름 모름)이 나온다. 집에서 어란을 자주 먹기가 쉽지 않으니 관심이 간다. 좀 짜서 곁들인 무 절임과 먹으니 환상의 궁합이다. 오징어와 해파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이라 모두 잘 드신다.
닭백숙 같은 탕 종류와 가자미 튀김과 이름 모를 요리가 나온다. 평소에 가자미튀김을 좋아하는데, 반만 잘라서 맛보았다.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너무 심하게 튀긴 맛이다. 노릇노릇했으면 더 부드러울뻔 했다. 탕은 국물 맛이 깊어서 반컵을 훌훌 마셨다. 백숙 같으면서도 향이 달라서 익숙하지는 않지만, 속이 편하다.
찹쌀로 만든 전병 같은 것인데, 쫀득하고 소도 아주 맛있다. 그러나 너무 커서 한 개를 다 먹으면, 다른 걸 못 먹을 것 같아서 반만 먹었다. 집에 가면 생각날 것 같다. 음식이 너무 남아서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이다.
다음은 조갯살과 그린빈과 브로콜리 볶음이다. 조갯살이 연하고 맛있다. 역시 브로콜리와 그린빈을 먹으니 한결 시원하고 입맛이 돈다. 특히 그린빈을 평소에 자주 못 먹으니 욕심껏 배를 채운다.
다음은 감자튀김과 대하 튀김이다. 그냥 껍질채 먹어도 바삭바삭하다. 위에 끼얹은 가루는 무엇인지 모른다. 다른 때 같으면, 직원을 불러서 물어보는데, 이 팀은 이번에 처음 만난 팀이라 조금 망설여졌다. 일회용 장감을 끼고 열심히 까먹는다. 감자튀김은 사양한다. 색깔이 너무 진한 탓이다. 요리해 본 입장에서 기름을 여러 번 쓴 흔적이다. 약간 노리끼리해야 정석인데 조금 탄듯한 갈색이다.
양상추 고기 버섯볶음인데, 대만 능이버섯이라고들 하는데 잘 모르겠다. 보기보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보통 능이버섯은 검은색을 띠는데, 이건 진한 갈색이라 능이는 아닌 것 같다.
커다란 광어찜이 나왔는데, 벌써부터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서 얼른 일어나서 해체해서 흰 살만 나누었다. 윗부분 살을 다 먹고 뼈를 통째로 드러내니 레스토랑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나 자신이 그렇게 생선뼈를 잘 가를 줄 몰랐다. 결국 포만감에 젊은 교수에게로 모두 밀어주고 만다.
연근 소고기탕이 나오는데, 배려심 많은 일행께서 국자로 건더기를 올려서 사진에 나오게 해 주신다. 아주 담백하고 시원하다. 우리 음식으로 비교하자면, 제사상에 올리는 탕국 같은 거다. 우리는 무로 시원한 맛을 내는데, 이것은 연근이다. 그리고 탕국에는 소고기와 문어포와 홍합 말린 것을 넣는데, 이건 두툼하게 썬 소고기와 뭔지 모를 야채가 조금 들어갔다. 탕국보다 시원한 맛은 없다. 포만감에 연근 한 점만 먹어본다. 요리에 연근이 자주 등장하는 걸로 봐서 연근재배가 많은 것 같다. 비가 자주 오니 습지가 많아서 연근 재배에 아주 적격인 조건이다. 날씨가 5도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어서, 벼도 이모작 한다고 하니 축복받은 땅이다. 그러나 이모작 쌀이 맛은 별로라고 하니, 땅도 적당히 쉬어야 하는 조건도 있겠다. 우리나라 쌀은 역시 '경기미 추청 아키바레쌀'이 맛있다.
오징어 먹물로 만든 딤섬이 들어온다. 먹어보고 싶으나 한 개 다 먹을 자신이 없어 옆 분과 나누어 맛만 본다. 이 맛있는 걸 배 불러서 못 먹다니 안타깝다. 속은 새카만 먹물로 만든 해산물이다. 딤섬 피 부분이 아주 결이 곱고 쫀득하다. 귀국 후 계속 눈에 밟힐 것 같다.
이번에도 딤섬이 나오는데, 아예 맛도 못 볼 지경이라 패스!
디저트로 수박과 자몽과 파파야(?)가 나왔다. 1회용 나무 포크 사용이 눈에 띈다. 비가 자주 오니 나무가 잘 자라서 풍족한 모양이다. 테이블 세팅할 때 포크 하나만 더 놓으면 될 것인데 굳이 일회용을 쓰는 이유는 기름이 묻어서인 것 같다. 어딜 가나 디저트로 수박이 나오는 걸 보니 수박 농사가 잘 되는 것 같다. 비가 자주 오니 햇볕이 부족할 것 같은데, 당도도 아쉽지 않다. 대만도 농사 기술이 많이 발전했을 테니 입이 호강한다.
매일 중식 석식이 이 정도로 나오니 음식이 너무 많이 남아도는 느낌이다. 이 나라는 아직도 음식이 많이 남아야 잘 대접했다고 생각한다니 구시대적 발상이다. 우리나라도 먹고 살기 힘들때는 밥을 고봉으로 담아서 밥을 남겨야 예의일 때가 있었다. 지금은 먹을 만큼만 담아서 안 남기는 게 예의다. 지나친 낭비다.
대만의 호텔 조식 커피는 종류가 많고 개별 제조가 용이해서 아주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예스프레소 한 잔을 뽑아서 밀크 두 잔을 섞으면 기가 막힌 라떼가 된다. 아침에 이 에스프레소 한 잔이 기분이 좋아져서 하루가 상쾌해진다. 집에서는 아침에 삶은 계란
두 알을 먹는데, 여기서는 소금이 없어서 한 개만 먹는다. 다른분들은 소금찍어서 먹지 않는가 보다. 다음부터는 죽염을 한 자밤씩 싸갖고 다녀야겠다. 모두 내 입맛에 맞출수 없으므로. 그리고 요거트가 항상 준비되어 있으니 다행이다. 이번 여행에서 먹거리는 대만족이다. 하여간 2킬로 정도는 더 늘어서 귀국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