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임부우선석'을 보며 / 조 광 연
출퇴근 시간 지하철은 그야말로 콩나물시루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다. 칸마다 두 자리씩 지정돼 있는 '임부우선석', 그런데 앉는 임부가 없다. 임부우선석마다 비어 있다. 앉는 임부가 없고 앉을 임부도 없다. 자리는 계속 비어있고 차는 콩나물시루가 돼서 달리고 있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차에 오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문득 나훈아가 작사 작곡하고 직접 불러 직장인들의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킨 "남자의 인생"이 떠오른다.
누군가 앉았다가 임부가 타면 얼른 비껴 주면 될 것 아닌가. 우리 시민들 그만한 소양과 교양은 있을 것이다. 임부우선석을 지정하고 자리를 비워두는 문화는 좋은 것이고 잘한 일이다. 그러나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하면서 봐도 도대체 지하철에, 또는 버스에 오르는 임부를 보지 못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인구절벽이란 말이 나온 지 오래다. 결혼하지 않으려 하거나 못 하거나이고 결혼한다 해도 애를 낳으려 하지 않는단다. 사정이 이러한데 임부우선석을 계속 존치해 둘 필요가 있을까.
길을 가거나 공원 등을 산책하는 사람 중에 개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같이 걷는 사람, 안고 다니는 사람이 열이라면, 아기를 안고 다니는 사람은 한 사람이 될 둥 말 둥 보기가 어렵다. 어쩌다 아기를 안거나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그 아기가 어찌나 예쁘고 반가운지 모른다. 심지어 여학생이 투명 사각 가방에 강아지를 넣고 아기 안듯이 앞에 메고 다니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다 보면 지하철 '임부우선석'이 '개 안고 타는 사람 우선석'으로 바뀌지 않을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실소한다.
애완견이라고 하던 것을 언제부터인가 '반려견'이라고 한다. 반려란 평생을 함께한다는 의미로 배우자를 일컬을 때 쓰던 말이다. 부부간에 반려라는 개념과 의식은 사라진 것인가?
남자가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면 제일 두려운 것이 아내로부터 괄시와 이혼 요구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괜한 소리만이 아닌 것 같다.
잠시 통계를 들여다본다. 202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2명이었고 2024년에는 0.68 명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구절벽의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2020년 5,184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계속 감소 추세다. 2022년을 기준으로 50년 후인 2072년에는 3,622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인구가 그냥 줄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연령인구는 줄고 고령인구는 느는 것이 더 문제다.
2022년, 3,674만 명이었던 생산연령 인구가 2072년에는 1,658만 명으로 줄고, 고령인구는 898만 명에서 1,727만 명으로 늘어나 생산인구를 추월할 것이라 한다. 인구가 이런 추세로 줄면 지방자치단체가 소멸하고 국가도 소멸될 수 있다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지하철 임부우선석에 이어 시내버스 사정은 어떠한가 보자. 시내버스에도 노약자 보호석, 장애인석이 있다. 의자 색도 다르고 표시도 되어 있다. 지하철 임부우선석이 분홍색으로 되어있다면 시내버스의 노약자석이나 장애인석은 노란색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러함에도 시내버스 교통약자 배려석에는 배려라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다. 심지어 노인이 바로 앞에 서 있음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앉아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굳이 소중한 정도를 따지자면 노인보다는 어린 애 출산이 더 소중하다 할 것이다. 이 점은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지하철은 콩나물시루 같은 상황에서도 임부우선석에 앉는 사람이 없는가 하면 시내버스에는 노약자석, 장애인석, 임산부석이 지정되어 있음에도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혹시 경로(敬老)가 경로(輕老)가 된 건 아니냐고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부모가 나이 들어 건강이 나빠지고 거동이 불편하면 바로 요양원에 모신다는 세상이다. 반면 개가 병이 나면 안고 병원으로 달린다고 한다. 온갖 치료와 영양제 투여, 심지어 수술까지 한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아직은 잔 고장 외에는 잘 지내고 있다. 건강할 때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은 일 해가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곱게 익어가고 싶다. 활기차고 건강하게 살다가 때가 되면 고생하지 말고, 자식들 부담주지 말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나면 좋을 것 같다. 그것도 복이 아닐까.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2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