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광해군 11년에 방호 조준도(方壺 趙遵道)가 생모 권씨의 묘가 바라보이는 이곳의 지형이 方字形으로 정자를 어머니를 생각하는 뜻에서 사친당(思親堂) 또는 풍수당(風樹堂)이라 하였으며 순조 27년(1827) 方臺講堂 4칸을 새로 고쳐 지었다.
길안 천변에 지어진 方壺亭은 어머니의 묘소가 바라보이는 곳에 어머니를 생각하는 뜻에서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方壺亭 松霞門은 창석(蒼石) 이준(李埈),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 풍애(風崖) 권익(權翊), 방호(方壺) 조준도(趙遵道), 하음(河陰) 신집(申輯) 등이 학문을 강론하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조선 중기 건축으로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섬세한 구조기법이 변형 없이 잘 보존되고 있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으며 많은 제현들의 제영현판(題詠懸板)이 걸려 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1호. 조선 후기의 학자 조준도(趙遵道)가 생모를 생각하는 뜻에서 모친인 안동권씨(安東權氏) 묘소 밑에 건립하고, 자신의 호를 따 이름 붙인 정자로, 푸른 바위와 맑은 물이 휘감아 도는 벼랑 위의 절경지(絶景地)에 터를 잡았다.
평면은 전면에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대청(大廳)을 설치하고, 대청 뒤에는 2통칸(通間)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온돌방의 좌측으로는 부엌과 방 1칸을 돌출시켜, 전체적으로는 ㄱ자형의 평면을 이루게 하였다.
자연석 기단(基壇)과 주초(柱礎) 위에 방주(方柱)를 세웠으며,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대청과 서쪽과 북쪽벽의 각 칸(間)에는 하부에 2단으로 궁창널을 끼운 세살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특히 남쪽에는 각 칸에 4짝 들어열개문(위쪽으로 들어 열도록 된 문)을 달아 개울물과 앞쪽의 전망을 시야 가득히 들어오게 하였다. 대청 상부의 가구는 5량가(五樑架)이다.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합각 밑 외기(外機) 부분에는 우물반자를 설치하였다.
대량(大樑)위에는 대접소로를 놓고 보아지와 첨차로 十자형 대공(臺工)을 짜서 종량(宗樑)과 중도리(中道里) 장여[長舌]를 얹었으며, 종량 위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파련대공(波蓮臺工)을 놓고, 대공의 몸에 직교(直交)하는 첨차를 끼워서 마루도리 받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