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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교수 동양학 사관학교
 
 
 
카페 게시글
침구사 관련 뉴스 스크랩 의료개혁시리즈<정신을 외면한 법의 폭력>
지관도사 추천 0 조회 59 09.04.18 19: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현 의료악법은 글의 장난, 말의 속임수에 불과하다

          - 정신을 외면한 법의 폭력과 글자의 위력 -

 

 

수우지인 무오선사 記

 

 

제 1조(목적)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위의 문항은 7천만 겨레의 살림살이와 건강을 위한다는 한국의 의료법 제 1조이다.

 

참으로 가소롭고 어이없기 짝이 없는 글이다.

이 글을 쓰고 만든 자는 정녕 삼대를 빌어 쳐먹고 삼대는 손과 입이 묶인 채로 살 일이다.

 

보라!

첫째, 수준 높은 의료와 수준 높은 그 혜택이 정녕 무엇인가?

아주 쉬운 말로 짧게 말해서 수준이 높다는 말의 그 기준이나 표준이 무엇인가 하는 말이다. 이 대답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으며, 또 누가 이 기괴한 질문을 할만한 사람인가?

 

가령, 돈이 많이 들고 비싼 비용을 들여서 여러 시설과 장치들이 있고, 많은 의사라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기관이나 그런 병원들을 이용하고 활용하는 것이 수준 높은 의료이고, 수준 높은 혜택인가?

아니 돈이 안들고 잘 치료되고 굳이 시간이나 수고가 덜 든다면 그것이 수준 높은 의료요 수준 높은 혜택이 아닌가?

 

그럼, 도대체 무엇이 수준 있는 의료이고, 어떤 것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인가?

 

가령, 우리 동네 할아버지 몇 분들도 쉽게 치료하는 비장염, 편도염증, 결석이나 자궁질환 같은 것이 있을 때에 침이나 뜸 혹은 간단한 민간요법으로도 매우 쉽게 치료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할아버지들은 무식하고 과학이나 검증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큰 건물과 그럴싸한 기계와 시설들이 있는 곳에 가서 가운을 입은 사람들에게 치료를 받아 결국 비장을 파내고 편도선은 잘라버리고 자궁은 파내어 버리는 것, 뭐 이런 의료가 수준이 높은 것이요 그들의 손을 거치는 것이 수준 높은 의료혜택이란 말인가?

아니면, 환자가 아프든 죽든 일단 저들이 정한 규칙과 질서대로 짐승처럼 따라하기만 되면 그것이 수준 높은 의료행위와 의료혜택이 부여된다는 말인가?

 

나는 거의 많은 사람들이 고질병이요 난치병이니 하는 질병들을 아주 손쉽게 그리고 매우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다. 모든 병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만큼의 치료의 이치와 바른 건강의 회복을 알고 행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많은 질환자들의 그 애절한 고통과 불행한 형편들을 고쳐주고 치료해 주었었다.

일일히 열거한다면 몇년을 기록하고 또 설명해야 할 것이지만, 잠깐 얘를 들면, 16년의 불면증여인, 신장결석의 환자, 위암이나 대장암, 장이 삭고 찢어져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중풍병자, 농약으로 중독되어 거동이 마비된 사람, 43년 변비, 27년의 허리마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참으로 행운인 것은 이들 모두는 대개 병원이라는 곳의 불신을 갖고 많은 고통 중에 찾아 왔거나, 최악의 수술 내지 부작용이나 그 후유증 등 그 두려움과 불안으로 많은 시달림을 받아왔고 또한 마땅하게 적합한 치료자를 만나지 못한 경우가 그들의 대부분일 정도였다.

철학원을 운영하시는 어느 지인은 신장의 혹이 약 6센치 정도이니 그대로 두다가 10센치 정도에 이르면 수술해야 된다고 한다. 이 어이없는 장난이, 이 한심한 진단과 처방이 수준 높은 의료행위요 정작 고귀한 몸과 그 인격에게 베풀어 주는 혜택인가?

이런 신장이나 자궁의 혹(종양)등은 침치료나 혹은 뜸 몇방으로도 아주 쉽게 처치할 수 있다.

단지 그렇게 하는 인생들이 적을 뿐이요 못하는 인간들이 목소리를 키울 뿐이거늘........, 치료를 잘 할수 있는 사람들은 제쳐두고 더 못한 사람들에게 보여서 몸이 망가지고 더욱 나쁜 결과를 얻도록 유도하는 것이 수준 높다는 것인가?

 

그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지만,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자.

철도감리단에 계시는(난 그분 정성에 금이빨을 하고 있다) 어느 선생님은 군대훈련병 6개월째부터 시작된 대장의 탈과 변비가 자그마치 43년간이나 고통을 받고 있었다. 나를 만나려고 무려 3달을 찾고 기다리면서 학수고대했다. 나도 처음 들은 이야기이지만, 세상의 좋은 변비약 43종류를 다 먹어봤고 조금 유명하다는 의원이나 병원을 안 가본 것이 없다시며, 제발 한번만 치료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제대로 똥(배변)을 싸지 못하니 밥 또한 겨우 2숟가락 이상을 먹을 수 없는 이 안타깝고 애절한 고통!

변비라는 것은 43년이 아니라 430년이어도 치료는 매우 쉽고 간단하다.

즉 몸이 살고 몸이 죽은 이치와 원리에 통달하면 이런 것은 재주도 아니요 기침 한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느 것이 수준 높다는 것인가?

눈빛과 목소리만 듣고도 어떤 병인지,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치료할 지를 바로 알아내는 것이 수준높은 것인가 아니면 별별 검사 다하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적당히 둘러대면서 지켜보자고 하거나 혹은 또다른 곳에 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해보라고 하는 것이 수준높은 것인가?

아, 우리는 어찌하여 한생각의 저주에 얽매이고 이런 하찮은 글귀에 포로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정작 첨단과학이니 최신의료기술이니 하면서 몸을 잘라내고 파내고 끊어내고 저들의 수단에 아무 저항없이 내맡긴 채 몸과 생명이 왜곡되고 파괴되어도 괜찮다는 것인가? 근본치료의 핵심과 본질을 꿰뚫어 보고 치료하면 또 무슨 약과 수술이 필요하며 무슨 불필요하고 복잡한 수술이나 해괴한 부작용 따위에 고통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다른 인공장기를 부착하고 다른 사람의 조직을 떼서 붙이는 것이 과연 수준 높은 의료인가?

아니 나처럼 아니 조금 탁월한 공능을 가진 민간의술인이나 재야의학자처럼 자연스럽게 매우 편리하게 고쳐버리는 것이 정녕 수준 높은 의료요 차원 있는 혜택이거늘,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면서도 강요 내지 선택의 여지가 없이 길들이는 것이 진실로 바른 의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보라!

둘째, 모든 사람이...라는 말은 참으로 글로만 존재하는 껍데기소리, 개소리, 헛소리, 미친소리,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요, 염소 설사하는 소리 같은 단어이다.

 

신침이라며...사람을 병신을 만드는 무속인들의 사건을 뉴스를 통해서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본질을 봐야 하고, 그 사건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금의 의료악법 때문에 동족간, 이웃간의 소모와 불신이 커지고, 신동물농장이 되어가는 이 세태의 풍속을 가만히 두어서는 아니된다.

아픈 사람이 돈 안들고 잘 치료되는 길을 알고 있어서 바로 옆집 할머니와 아주머니에게 침뜸이나 혹은 간단한 개인비방 내지 민간의약으로 쉽게 나을 수 있을진대, 그 사람은 이용할 수 없다.

왜냐면, 그에게 치료를 받으면 수준 높은 의료행위가 아니고, 수준 높은 의료혜택이 될 수 없다고 법과 제도가 정한 탓이요 이미 그래야 된다고 믿으며 세뇌가 된 탓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그랬다가는 이웃의 수모와 굴욕을 안겨준 책임을 떠 안아야 한다.

그를 치료해 준 사람은 의료인이 아니요 수준높은 의료혜택을 줄 수 없는 사람인 까닭에 혹은 경찰서나 검찰에 불려 다니고 과학이나 실험에서 검증되지 않은 행위를 했다고 구속.처벌을 당할 수 있는 까닭이다. 비싼 비용을 물고 지정된 곳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만일 그곳이 자신의 병을 잘 알고 바른 치료, 옳은 고침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혹은 그보다 더 잘한 사람이 바로 옆에 있을지라도 지정된 사람, 고정된 의료기관이란 곳을 찾아야 한다.

 

나는 지금 이곳의 문교차관과 대주교 그리고 러시아 마피아 두목의 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그들의 언어를 번역하면, 병원이란 곳이 늘 약과 주사 그리고 잠시의 통증들을 약화시키기는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증세는 심해가고 약은 늘어만 간다는 하소연이다. 차관은 당뇨의 악화로 손발이 썩어가고 있고, 대주교는 전립선암으로 볼 수 없을 지경이며, 마피아 두목은 임질과 매독의 깊은 침투로 오랜 동안 심한 고통을 받아온 상태이다.

만일 이들이 한국에 있었다면, 그리고 계속해서 병원이나 혹은 지정된 소위 의료수준이 있다고 저들이 정한 법데로만 치료를 고집한다면 이 불쌍하고 가련한 질병들을 어떡하란 말인가?

저 높은 지체, 저 큰 권력과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상식이 떨어지고 정신이상자이기 때문에.......아니면 병원을 몰라서 그곳의 의사들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이 동양의 낯선 이방인이요 도사라고 불리는 거렁뱅이 수행자에게 몸을 의탁하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삐뚤어지고 잘못 기술된 조항들로써 억울하고 슬픈 희생을 당하는 데도 이 명목 좋고 허울뿐인 문자와 단어는 여전히 뻔뻔히 민중들을 우롱하고 유린하고 있다니.......,

 

제 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1.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지금도 내 침상에는 근 15년을 축농증으로 고생받아온 한 청년이 침술치료를 위해 누워 있다. 저 말못할 고통과 고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리. 청년의 아버지와는 친한 사이이기에 더욱이 외국에서 유학중인 사람이 잠시 방학을 다녀오느라 찾아왔기에 고쳐주고 있는 터이다.

 

일화를 소개한다. (내가 잊혀지지 않은 기억이라 몇번 인용을 하지만)

몇년 전, 속리산 산행길에 우리 일행 중 한사람이 실족하여 잠시 혼절을 했다. 발목 또한 상당히 삔 상태로 얼마간의 의식을 잃었던 것이다. 그냥 있을까 하다가 그래도 양심이 있는데 하며 마침 주머니에 있는 침으로 의식을 회복시켜 주면서 발목과 그 주위의 상태들을 얼마간 호전시켜 주었었다. 그랬더니 그 일행 중 한명(그는 은행지점장 출신)이 대뜸 하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사님, 이것이 불법인 것은 아시지요?"

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이요 서로 형제요 동포인 동족들을 병들고 멍들게 하는 범죄인가?

세상에, 어느덧 세뇌당하고 주입당하여 어려움과 고통을 당한 이웃들에게 베푼 인정마저도 불법과 의료행위라는 덫에 해당하고 그 올무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이 해괴하고 망국적인 작태를 도대체 왜 어느 때까지 지켜보고 견디며 참아야 한단 말입니까?

 

누가 의료인인가?

누가 무엇을 허가해 주고 누가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저들만의 술수와 공작을 획책하는가?

나는 이 동네에서 신기한 동양인이요 뛰어난 이방인(엑셀렌시아 아큐펀뜨라)으로 통한다. 이곳 "라스 아메리카병원"에서 근무하기 전부터 일이다. 어느 날, 미처 잠에서 깨기도 전, 13살된 소년이 그 어머니와 함께 울부짖고 까무라치며 내 방 옆에서 도와주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저들은 내가 혹 동양의 깊은 영적공능이나 무슨 의술을 알고 있음을 기대하여서일까....., 할 수 없이 나왔지만 한눈에 봐도 아아 소년은 긴장과 뭔가에 집중된 채 간화와 담열이 순간적으로 치솟아 일어나는 대표적 소양실열증의 광증이었다.

이 미친 발작과 울부짖음이 내게는 단지 20분의 하품인 것을....(노 세 프레오쿠페) 걱정마세요. (솔라멘테 베인테 미누또) 단지 20분입니다.

그날 그리고 그 이후 얼마간 난 그의 집안에서 칙사요 귀한 독토르(의사)로써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이제 내 조국 한반도에서는 사형도 종말을 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인 자격과 면허 운운 하는 이 하급적 사형(살인), 이 노예적 근시안적 철밥통적인 폭력(악법조항들)은 여전히 기세를 떨치고 있고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삶이란 얼마나 인간에게 불충분하고 때론 불완전한 것인가?

특히 정답이 불확실하고 해결방안이 뚜렷하지 않은 것들이 또한 얼마나 무한한가?

왜 신동물농장을 만들려고 저들은 저런 무서운 독소조항을 만들고 자기들만의 광란과 축제를 펼친 채, 제 자신의 가족과 동족들마저도 서로 갈라서게 하고 외면당하게 하고 불신과 의혹의 난장판을 만들려는가?

 

한점 속에는 무한한 우주가 들어 있고,

한순간은 영원과 맞닿아 있으며,

한마음 한생각은 만가지 변화를 낳고,

한바늘 침끝에는 다시 사는 생명(생명되살림)의 이치와 도리가 있음을 지난 25년간 깨우쳐온 내가 아아...지들도 알지 못하고 제 몸 하나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인간들 때문에 저들에게 판단을 받고 저들에게 허가와 승낙을 받아야 된다는 말인가? 정녕 그런 것인가?

 

의사와 의술 뿐만 아니라 일반 세상적 일도 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을 알지 못한 자가 뭐라고 비판을 한다면 이 얼마나 웃기는 헛소리이며, 자신을 제대로 평가할만한 눈과 실력이 없는 자가 자기를 칭찬하고 평가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모독이며 웃기는 수치스러움인가?

 

나는 겸허히 국가와 법과 인륜의 보편적 도리와 재현성 있는 삶의 방식들도 존중한다.

한때 검.판사가 되보려고 젊은 시절을 보냈었고, 폐병말기(폐결핵과 큰종양)의 죽음 앞에서 처절하고 잔혹한 청춘을 보냈기에 더더욱 보편질서와 상식 그리고 기본적 인권에의 확장과 자유를 나의 삶이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

그러기에 이웃들의 고통과 민족적 슬픔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평소에 그리 인용하던 헌법의 기본권과 행복추구권이니 하는 구차한 말은 접기로 하자. 그러나 보편적 상식과 정의를 따져보자.

 

법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법이 정한 참된 가치와 의미를 던져 버린 채, 우리는 짐승의 욕망과 본능에 사로잡히지 말자.

진실로 법의 정신이 인간존엄과 생명존중의 정신에 있다면, 저런 과격한 표현과 편협한 단어의 선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는 식사 전, 손씻기를 생략한 예수를 향하여 왜 어찌 손을 씻지 않고 율법을 어기느냐고 따졌다.

더럽고 시커먼 바리새인, 이 치졸하고 똑똑한 그리하여 종교권력과 부귀영화를 노리는 이 집단들의 발악과 술책들은 드디어 예수마저 시비를 걸었다.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유다인의 관례를 생략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시며 그들의 위선과 겉치례를 질책하신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어느쪽에 서 있는 것일까요?

사실 바리사이처럼 겉으로 보여지고 나타나는 이유들로 인해서 자신의 야욕을 채울 뿐인가요? 진실로 율법을 잘 지켰던 외형적 삶에 치중한 채, 왜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그 목적과 정신을 던져버리고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정작 손씻는 것이 무어 그리 중요한 것인가요?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음을 씻는 일 아닌가요?`

한낱 직능의 무리들을 위해 단어와 글자 속에 갇혀 몸과 건강을 유린당하는 것이 법정신인가요?

 

오늘의 우리 각자가 처한 건강의 삶과 질병의 생활들은 어떠한지 가만히 돌아보자.

 

내가 하지 못할 일을 남이 잘해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지만 모두가 다 잘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삶이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고 만들어 내야 할 진정한 의료법이요 참된 의료인의 문화가 아닐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가장 중요한 몸과 목숨을 다루는 영역에서는 전혀 반대의 더러움과 아사리판이 벌어지고 있으니 우리는 이런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라틴어 독또르의 뜻을 인용한다.

"시중들다","도움을 주다"라는 이 말의 어원과 뜻을 생각해 보면, 정녕 의사는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질병을 잘 보게하고 그리하여 스스로 병을 이기고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시중들어 주는 사람인 것이다.

 

지금처럼 군림하고 이익을 위해 볼모를 잡듯 마치 자신이 직접 병을 다스리고 이길 수 있는 것처럼 꾸미고 연출하는 것은 생명의자된 사람의 마땅한 도리가 아닌 것이다.

쉬운 말로 자기 생각, 자기 멋데로 살다가 스스로 만든 병일진대, 자기의 삶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의탁한들 제대로 믿을 만한 풍속이겠는가?

 

마땅히 제 자신의 몸에는 스스로 의사가 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다소 부족할지라도 진정한 의사와 의료인이 될 수 있는 대한국을 창조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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