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대전·강원·울산으로 권장단가↑ 바람, 공정위 ‘담합 규제’ 걸림돌
굴삭기 등 건설기계 대여사업자의 권장 임대단가 인상 조짐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수도권에 이어 대전·강원이 이미 인상단가를 고지하고 홍보활동을 마친 상태. 이달에도 대구와 울산이 합류했다.
건기 권장임대료는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다. 해당 지역 건기업계가 공론을 모아 권장단가를 고시하곤 한다. 그렇다고 이 단가대로 계약이 이뤄지진 않는다. 시장경제이니 사업자들이 각자 알아서 적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강제성이 없기에 공정거래법 시비도 없다.
건설기계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수입이 줄어드는 데 유류대 등 각종 경상비가 오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임대료 인상이 이뤄지는 것. 대여사업자들은 수지타산이 안 맞다며 권장 단가를 올리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림의 떡’이다. 십 수 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걸 봐도 그렇다.
서울에서 10굴삭기 한 대로 대여사업을 하는 A씨.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적자가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큰 아들이 커 대학에 다니다보니 돈 쓸 데는 느는데 벌이는 갈수록 줄어드니 어찌 해야 할 지 난감하다.
A씨의 한 달 임대수입은 평균 750만원. 10굴삭기 값이 대략 1억3천만원쯤 하는데, 은행에서 대출이 안 돼 대부분 캐피탈을 활용해 구입한다. 이율이 보통 8~9%대. 3~4년 나눠 갚으려면 매달 원금 3백만원과 이자 1백만원을 치러야 한다. 조종사 임금으로 3백50만원. 소모품 50만원과 고정수리비 50만원. 보험과 세금까지 합치면 보통 1~2백만원을 밑진다.
혹 굴삭기가 고장이라도 나면 수백에서 수천만 원 목돈을 고스란히 날린다. 더 큰 문제는 일감이 없다는 것이다. 봄이면 바빠 눈코 뜰 새 없어야 하는데 그런 시절은 이제 ‘아, 옛날이여’가 되고 말았다. 두 달 뒤면 대학생 아들 2학기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속만 타들어간다.
이런 상황은 수도권만 그런 게 아니다. 지역별로 상황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일반적 상황은 전국이 유사하다. 유류대 등 경상비는 늘고 일감이 줄고 있는 것. 결국 십수년 째 그대로인 임대료밖에 돌파구가 없다. 이런 현실을 비관해 자살하는 건기사업자도 생기고 있을 정도. 그러니 지역마다 임대료 인상 요구가 뜨겁다.
강릉에서 공육자주식 굴삭기로 대여사업을 하는 B씨. 차주 겸 조종사다. 한 때 굴삭기 3대로 고정 조종사를 두고 나름 잘나가는 사업자였다. 하지만 한 대만 남기고 구조조정을 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 굴삭기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적자가 커지기 때문.
B씨는 그때부터 이른바 ‘자작’을 시작했다. 지난해 총 240시간을 일해 번 돈이 7천만원. 하지만 기름값이 문제. 공육(자주식) 굴삭기사업자들은 기름 값을 직접 부담해야하기 때문. 공육굴삭기가 보통 하루 작업에 필요한 기름은 100리터. 장기공사가 아닌 며칠 일은 기름이 더 많이 든다. 현장을 오가야 하기 때문.
리터당 1856원을 하니, 한 달 보름정도 일해 5백만원을 벌어도 기름값으로 2백만원(40%)을 지출해야 한다. 경유 값이 최고치를 갱신하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으니 나오는 게 한숨뿐이다. 같은 규격 사업자들에게 수소문해보니 그는 그래도 나은 편이란다.
수익금의 40% 기름값으로
한국석유공사 자료에 따르면, 리터당 경유값이 2001년 644.58원에서 2004년 907.93원으로 오르더니 2005년 1079.73원을 기록, 1천원대를 돌파했다. 2006년 1228.76원, 2007년 1272.73원, 2008년 1614.44원으로 오름세를 보이다 2009년 1397.47원으로 글로벌금융위기에 따른 잠시 주춤세. 2010년 1502.80원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지난해 1700원을 넘었다. 지금 1900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10년전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하지만 굴삭기 임대료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즉 10년 전에는 5백만원을 벌어 (100ℓ×644.58×15) 90만원의 기름값이 들어갔는데 지금은, 똑 같이 5백을 벌어도 2백여만원을 기름값으로 지출해야 하니, 건기사업자들이 더 이상 버텨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다. 제조사들은 매년 신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 B씨 소유와 같은 공육굴삭기(자주식)의 경우 4년전 8천만원 선이었는데 지금은 1억여원을 줘야 살 수 있다. 매년 5백여만원씩 오른 셈이다. 소모품비도 매년 10% 가까이 인상되고 있고 수리비도 마찬가지다. 감가상각까지 계산하면 사업이라 할 수가 없을 정도다. ‘자작’을 하니 줄어드는 인건비만 달랑 손에 남는다. 1억여원을 들여 시작한 자영업인데, 조종사 임금보다 벌이가 적다.
굴삭기만이 그런 게 아니다. 여타 기종 건기사업자들도 사정이 엇비슷하다. 펌프카업계의 경우 무려 20여년간 임대료가 그대로다. 결국 수도권 1200여명의 사업자가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며 27일부터 닷새간 휴업을 벌인 것도 그 때문이다. 천공기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저가입찰로 임대료를 결정하기 때문. 따라서 여타 건기처럼 임대차계약제로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믹서트럭 사업자의 경우 최근 전국단위 연합회를 만들어 임대료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타워크레인·덤프트럭도 대동소이.
펌프카, 20여년 ‘대여료 동결’
이런 현실을 오래전에 간파하고 건기대여업계는 유류보조금 아니면 수급조절을 요구했다. 하지만 유류보조금 대신 수급조절을 약속했던 정부가 이젠 FTA에 위반이어서 수급조절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하니 업계로선 분통이 터질 노릇.
건기업계를 힘들게 하는 건 그 것뿐만이 아니다. 건설경기가 추락하다보니 건설사들이 하나둘 부도로 쓰러지며 일을 다 해주고도 건기사업자들이 임대료를 받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빈발하고 있다는 것. 임대료 체불에 대해서도 당국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결국 건기업계는 자구책을 마련하고 나선 것이다. 나 혼자만 일을 더 한다고 살 수가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 광역·기초별 실사업자 중심으로 연합회가 조직되고 전국 연대조직이 힘을 키우고 있다. 어차피 당국이 나서지 않는다는 걸 안 사업자들은 ‘8시간제·표준계약서 정착’, 그리고 ‘임대료 인상’을 자기들 힘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된 것.
하지만 여기에도 걸림돌이 있다. 공정거래법 상 사업자 담합 금지조항 때문. 날로 악화되는 사업성에 강자인 건설사를 상대로 생존권을 지키려다보니 연합회를 만들어 업계 현안을 해결해보려는 것인데 공정거래당국은 ‘담합’이란 잣대로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기업계의 몇몇 연합회가 그간 임대료 인상 때문에 제소를 당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공정위는 ‘경고’해왔다. 연합회는 당연히 ‘시장 약자를 보호하려는 취지로 담합을 규제하는 것인데 약자들인 건기인들을 규제하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건기단체 일부가 공정위 규제를 피하려고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중소기업 협동조합 관련법에 따라 설립된 단체의 경우 공동의 이익을 위한 활동을 인정(공정거래법 예외)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주와 춘천 두 곳에 협동조합이 설립돼 있다.
담합규제, 협동조합으로 우회
건기사업자 연합회를 협동조합으로 등록하면, 조합원(출자 참여)의 공동이익을 위한 영리활동을 합법적으로 벌일 수 있다. △부품 구매나 판매 △지입사 개설 △단체 보험 가입 △건설사와 단체협상 등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희소식. 오는 12월부터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는 데, 소규모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적용 예외를 인정키로 해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는 최근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는데, 소액·소규모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일정 요건을 충족한 협동조합에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하지 않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