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2013년 12월 28일
2. 호해정(네이버 지식 인)
이 곳은 원래 조선 명종 때 장호(張昊)가 그의 호를 따 태허정(太虛亭)이라 이름한 정자를 지어 그의 사위 김몽호(金夢虎)에게 주었던 곳이라 한다.
그 후 대학자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이 약 1년 간 이 곳에 머물면서 학문을 강론하자, 신성하(辛聖河)는 그를 위해 초가를 지어 거처하게 하였다.
1750년(영조 26) 이 초가가 불에 타 버리자, 1754년(영조 30) 신정복(辛正復)이 강릉시 죽헌동에 있던 자기 집 별당인 안포당을 헐어 이 곳에 옮겨 짓고 '호해정'이라 불렀다.
이 곳에는 김몽호(金夢虎)의 영정과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시문이 있으며, 민우수(閔遇洙) 외 3명의 기문(記文)이 있다. 현판은 자하(紫霞) 신위(申緯)가 썼다.
별당을 헐어 옮겨 지은 정자인 이 건물은 경포호수 동북쪽 깊숙한 산기슭에 자리잡아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경관을 엿보게 한다.
정면 2간, 측면 2간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의 세 기둥만 둥근 기둥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이며 약간의 배흘림을 보이고 있다.
이익공의 모습이 유려하며, 분합문과 벽체의 구성이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
온돌방과 마루방을 두었고 방 사이에는 분합문을 두어 필요시 한 방으로 사용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