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이야기했듯 오행은 기이다. 氣의 세분화가 오행인것이다. 그 오행에 대해 알아보자!
五行(오행)이라는 말은 처음 상서(尙書; chancellor)의 홍범구주편(洪範九疇篇)에 나온다.
오행설을 정식으로 주창한 것은 전국시대(戰國時代)(the age of civil wars)로 보인다.
영화에 주인공으로 많이 나오는 유명한 진시황(秦始皇)이 전국을 통일 하기 전 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 한다
이 전국시대에는 중국철학이 만개(滿開)하는 시대이다. 공자와 노자가 대표적이다. 물론 그들은 그 시대에 주인공은 아니었다.
이때는 중국의 混亂期 였다. 혼란(chaos)은 철학과 문화의 발전을 가져 온다. 대체로 위대한 철학과 학자들은 혼란기에 자주 나온다. 위대한 혼란기라 해야할까? 요즘처럼 혼란하기만 하고 퇴보하는 시대와는 다를것이다.
전국시대 추연(騶衍)이 오행의 덕을 제왕조(帝王朝)에 배당시켜 우(虞)는 토덕(土德), 하(夏)는 목덕(木德), 은(殷)은 금덕(金德), 주(周)는 화덕(火德)으로 왕이 되었다는 설을 내세웠다.추연이 있던 학파를 음양가(a fortuneteller group)라하는데 말그대로 점쟁이그룹이란 뜻이다.그러나 오늘날의 점쟁이 그룹이 아닌 당대의 지식인 그룹이었다는 것이 다르다.
이 추연이란 사람은 사마천의 사기에 인물 평에 보면 좀 허풍기가 많은 도사로 그려진다. 오늘날의 도사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좀 편할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음양가란 말은 점쟁이 집단이란 것이다. 미아리와 사주카페까지 모든 점술업의 시조는 이 음양가이다.즉 점쟁이의 유식한 한어 표현을 음양가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고서의 기록에는 혼동되어 쓰인다 음양가는 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 (all philosophers and scholars)중의 한 파로
앞전에 말한 제(齊)나라 출신 추연(鄒衍)이 그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한서(漢書)》( a book in Chinese )〈예문지(藝文志)〉에 의하면 그들의 說(설)은 고대에 역상(曆象)을 관장하는 관직에있던 희씨(羲氏)·화씨(和氏)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였다. 고대에서 달력 (a calendar)을 발표 한다란 것은 지금하고는 비교 할수없는 매우 신성한 행위였다
천자만이 이 우주의 운행을 주관한다하여 달력을 발표하는 것은 큰 제사행사중에 하나였다.이것을 관장하는 사람들 역시 사회의 큰 실력자 였음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천체(天體)의 운행이나 사계(四季)의 변화 등을 음력의 규칙 에따라 비교적 논리적으로 설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이것을 인간과 관련시켜 이 계절의 변화기운이 사람에게 영향력을 준다는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 했던 이들도 바로 이 그룹이다.
그 후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통일대제국을 설립한후 오행설(the Five Elements on going)은 발전한다.저 유명한 분서갱유(焚書坑儒) (burning books on the Chinese classics and burying Confucian scholars alive )때에도 역서와 의서는 실용서라 해서 살아남았다.유방이 항우와의 전쟁을 통해 세워진 한대(漢代)에 이르러 음양오행설이 성행하였다.제국통일 안정기 이후에는 보통 철학은 체제논리화 하는 경향이 강한데 오행설도 이런 과정을 거친다.오행을 우주조화의 면에서 해석하고, 또 일상 인사(人事)에 응용하면서 일체 만물은 오행의 힘으로 생성된 것이라 하여 여러 가지 사물에 이를 적용시켰다.즉 기란 추상적인 에너지 형태가 오행이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표현도구가 된것이 한대이다.
여기서 한가지 일반인들의 통념과는 다르게 주역과 오행은 실질적으로 관계가 없다란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다.음양오행과 역은 개별적으로 성장하여 한제국시대에 통합되었다. 이 결합에서 나온 학문이 象數學(상수학)(emblemo numerology)이다.이 계통의 학자가 B.C 1세기에 살았던 孟喜(맹희)와 京房(경방)이다 그런 이유로 통칭하여 경방역이라고도 부른다.이들은 역에 나오는 형상과 그에 동반하는 수치적인 설명을 기초로 曆法(역법)(calendar system)과 관련시켜 체계를 세웠다.陰曆(음력)(the lunar calendar) 은 이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 된다
오행이 이 때부터 우주(여기서 말하는 우주는 무중력상태의 우주를 말함이 아님)를 이루는 원리로 자연의 질서와 삶의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巫官(무관)은 고대사회 이래로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며,그 유명한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아버지도 점을 치는 점쟁이관직 무관이었다(사마천은 한무제때 사람이다)그러나 사마천은 아버지의 일생을 그다지 즐겁지 않게 묘사한다.내 추측으로는 이때부터 이미 영성으로 정치를 주도하는 점쟁이 정치시대가 쇠퇴하지 않았나란 추측을 해본다.이것은 동서양역사의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오늘날 까지 영향을 발휘하며 또한 천대란 천대를 다 받은 방외(方外)학문인 음양오행설의 시작은 漢代이다.
오행설을 자세하게 연구한 이론이 명리학이다.물론 대만에서 열심히 보는 자미두수(紫微斗數)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운명학을 명리학이라 한다.명리학에 관계된 실존 기록은 이십오사(二十五史)에오행지(五行志) 열전(列傳)편과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 수록된 복서(卜筮)와 (성명星命)등에 수록되어있다.이 책에는 전국시대 손자병법의 주인공 손자의 스승 이라는 귀곡자를 비롯 삼국시대 제갈공명등이 신비롭게 소개되고 있다.제갈공명의 기이한 행적등을 과정되고 신화적으로 서술 하고 있다.이들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후대의 소설적인 창작물이라 그 진위는 의심 스러운것이 사실이다.이 시대는 중국의 역사기록이 신비하게 기록된 시대인지라, 고증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후로 수당시대에 이르러 명리학은 중흥기를 연다.
《수서隋書》에 수록된 소길蕭吉이 쓴 《오행대의五行大義》 는 이미 수당시대에 명리학이 상당부분 발전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이다.이책은 간지와 지지의 원리와 시작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다만 기록이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있어 신뢰성에서는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이 책에 의하면 간지는(갑 을 병 정..)옛날에 황제(黃帝)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 대요씨(大撓氏)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채옹(蔡邕)이 쓴 『월령장구(月令章句) 』에서 말하기를 “대요씨가 오행의 성정을 채취해서 북두칠성의 조짐이 세워지는 것을 점친 것이다. 처음에 갑,을(甲乙)로 시작해서 해(日)에 이름 붙인 것을 간(幹)이라 하고 자,축(子丑)으로 시작해서 달(月)에 이름 붙인 것을 지(支)라고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달력이 발달 하지 못한 당나라때는 연주(年柱:태어난 해)를 위주로 사람의 운명을 분석한 사람이이허중이다 .이허중은 정사에 언급되는 것을 보아 실존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한듯하다.그의 자(字)는 상용(常容)이다. 위(魏)나라 이충(李沖)의 8세손으로 아버지 운 과 어머니 진(陳)씨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아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진사에 급제하여 당나라 헌종 때 ‘전중시어사(展中侍御史)’라는 벼슬을 지냈다. 그는 학문을 좋아해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오행서에 심취하였는데, 사람이 처음 태어난 생년, 생월, 생일을 간지로 배속시키고, 상생, 상극, 왕성하고, 쇠퇴함을 짐작하여 인간의 수명의 장단, 부귀 빈천, 운의 이롭고 불리함 등을 추론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오늘의 명리학과는 달라 진정한 명리학의 시조라 부르기에는 힘들다
오늘날 같은 명리학의 근간을 만든 사람이 그 유명한 서자평이다.적어도 명리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서자평은 명리학계의 스타이다.서자평에 대한 신상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서 그의 생몰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도사(道士)인 진단(陳ㆍ871~989)과 중국의 화산(華山)에서 같이 수도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져 흥미롭다.(화산파는 아직도 존재하는 도교의 일파로 중국무협영화에 단골로 나오는 도교종파이다)
사실 그가 실제로 명리학 책들을 저술했는지 약간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이런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실존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정사에도 발견되기 때문이다.《송사宋史》 〈예문지〉언급이 그가 실존했던 인물임을 뒷받침해준다.
“서자평은 이 책의 주註에서 “사주팔자를 해독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알 수 있으며, 생월, 생일, 생시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으면 인간의 귀천과 수명의 장단 역시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하여 사주와 인간의 귀천이 일대일 대응관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
서자평이 사주명리학의 발달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는 ‘사주명리학’이 ‘자평술子平術’로 불렸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략 서기 900년대에 활동했던 인물인 것 같다. 그는 당대唐代와 송대宋代 사이의 혼란기 사이에 출생한듯하며,학자들은 대체로 기록으로 송대宋代의 인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명리학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연해자평(淵海子平)’이란 책은 서자평의 저술이고, ‘연해자평’이란 책 제목 자체도 그의 호를 딴 이름이다. 따라서 서자평의 명리학은 10세기 후반쯤에 세상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성공의 연금술사는?운명상담과 자기계발교육프로그램이 있는 2004년에서 2012년까지 8년 역사를 가진 카페입니다.
첫댓글 제가 몰랐던 사실이네요 그리고 정말 재미 있네요 귀곡자가 손자의 스승이었군요 전 범려의 스승인줄 알았어요 ㅋㅋ 선생님 잘 보고 갑니다 선생님 글 올리시느냐고 힘 드셨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