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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실패예방센터 후원회 및 발전기금위원회.
ㅡ역 사 는!!!!!
작성자: 샤넬
작성시간:08:25 조회수:6390976328
댓글7097968309
조폭을 미화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 무슨 조양은을 거물이나 돈 많은 깡패
동네 시ㆍ구의원급 양아치 정도로 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러한데 노른자위 강 남 땅 오시리 식당 운영하는 내내 적자 감수하고서라도 하루빠짐없이 노인무료고급음식의 급식을 봉 사 제 공해온점을 볼 때 몇 자 글 적어본다.
(
실수이든 고의적이는 간에 식당 카운터에서 돈 만원 7천원만 덜 내도 주인들이 눈 휘둥그레지면서 따지려 달려드는 행태를 볼때 가히 쉽지않은 일이다.)
전국 3대 조폭 하면 범서방파/양은이파/오비 이동재 파 로 유튜브나 이런데서 검색만 하면
나오는데, 동네 딴따라 라는둥 매스컴이 만들어준 어쩌고 하는데
맞는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강력하니까 매스컴에서도 띄워주지 동네 딴따라면 매스컴에서 뭐하러 띄워 주겟나. 영화 친구로 부산에 칠성파와 20세기파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데 이 역시도 매스컴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오성과 장동건 하고는 반대로 실제로는 20세기파 장동건 역활을 한 인물이 강했고
유오성이 한 인물이 이인자 인걸로 밝혀졌다. 그리고 잇뽕이네 연장이네 글을 쓰지만 실제로 옛날 야인시대때도 드라마가 미화시켜서 그
렇지 상당수가 연장을 사용 했었다. 구마적은 손도끼를 허리춤에 차고 있었으며, 신마적도 운동한 인물이지만 칼을 지니고 있었다, 무
사시(쌍칼), 시라소니역시 단도를 가지고 다녔고, 동대문은 말할 필요가 없다. 칼/도끼/쇠파이프/금속둔기/총 까지 사용했었으니 말
이다. 오히려 김태촌이나 조양은때는 무기/연장이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그래도 이들이 썼던 무기들 중에 사시미칼/전투용 낫이 있다. (여기서 낫?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데 손잡이 나무로 된거 말고
손잡이부터 날이 있는 곳까지 전체가 철로 되서 날을 접었다 폈다 할수 있는 묵직하고 길이가 긴 낫이 있는데 그걸 사용했다고 한다.
이 낫을 개조시켜 90도까지 올라가는데 일자로 펴질수있게 해서 마치 일본도 마냥 사용도 할수 있었다고 한다. 사시미 칼은 잘못 쓰면 손이 미끌어져 날에 본인 손이 베이거나 손목이 나가는 경우가 생기는데 낫은 이러한 단점이 없고 휘두르는 식으로 상대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한다.)
1. 사보이 호텔 습격사건
이미 서울에 와서도 수차례 패싸움을 하고다닌 조양은 패거리 (당시 여포 비롯해서 쟁쟁한 동생과 친구들이 한팀으로 있던 시절) 고향 선배가 신상사파에게 수모를 당하고 돌아와 그냥 쉬쉬넘어가려는 당시 호남 선배들과 신상사 세력에 도전해 봐야 대안이 없다는 선배들의 답답한 대답에 혈기 왕성하던 20대 조양은과 패거리들이 부족한 인원을 광주에 20명정도 지원받아 신년회를 열고 있던 원로신상사 파 주먹들이 신년회를 열때 여기를 기습해서 박살내버린 사건이 있다. 여기서는
회칼은 쓰지 않고 야구방망이 각목을 썼다고 한다.
이 사건의 부수적인 이익 효과는 반대세력파의 호남세력들까지 싸그리 밀 어버리게 되었다는 점이 바로 그러하다.
(뉴스에 나오는 회칼은 실제로는 쓰질 않았다) 신상사파가 무너졌다는둥, 아니 끄떡도 안하고 오히려 발려버려서 조양은이 도망갔다는둥, 오히려 쳐들어갔다가 위세를 보고 쫄아서 빌었다는 둥 별 예기가 있는데 다 허구이다.
이때 조양은은 자기 패거리를 데리고 가서 신년회 하고 있던 신상사파를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박살낸 것 까지는 맞다. 여기서 근데 실수한게 신상사파에도 호남 대선배들이 있었는데 실수로 호남선배들까지 두들겨 패버린게 소문이 나버린 것이다.
이로인해 호남 사람들이 조양은을 전부 적으로 간주한 것이다. 여기서 조양은은 신상사파가 추적하는 것도 있지만,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서 수배가 내려졌기 때문에 도망을 다닌 건데, 자기 패거리를 전부 데리고 가버리니 조창조와 오종철은 자기 세력만 가지고는 신상사에게 답이 없으니 둘이 먼저 가서 무릎꿇고 사과를 한것이다. 이 세력 나와바리 역시 박살이 났고... 조양은을 당시 숨겨주던 대구에 동성로파와 부산에 칠성파가 자금을 지원해 줬고, 순천에서 시민파두목과 세력들을 흡수해서 더 강해진 조양은은 지명수배가 끝자나 서울로 올라가 신상사파가 차지하고 있던 명동을 먹어버린다.
2. 향촌동파 두목제거
대구 경북에 대표 거대조직이라면 동성로파와 향촌동파가 있는데 두 조직이 당시 사이가 굉장히 안좋았었는데, 종로 모시는 지인이 이때 도피 중 금전적인 지 원과 안전하게 숨겨주는 등 절친한 관계였으며 아무튼
전쟁이 터질려고 했는데 조양은 밑에 후배들이 내려가서 향촌동파 두목을 죽여버린다. 양은파 2인자가 실행 주도하면서 대구 수성로 살인사건으로 지명수배가 내려진다.
3. 김태촌과 3년 전쟁
신상사파는 김두한(종로) 이화룡(명동) 이정재(동대문)때 존재하던 명품 조직이다보니(
이화룡에게 명동을 물려받은 신상사)인지도는 뛰어났지만 그 당시에 조양은 세력을 막아낼 수는 없었고(신상사파 거물급들이 나이가 많았다 반면 조양은
패거리들은 20대 혈기 왕성할 때이고 한명
한명이 논현ㆍ학동 ㆍ그리고 역시 반포지역 처럼 특출나며 뛰어난 실력자 들이었다.) 이때 신상사 밑에있던 원로 주먹들 중에 호남출신들이 아이디어를 하나 낸게 '저놈도 똑같이 젊은 놈한테 당해봐야 한다' 며 광주에 연락해
젊은 애 중에 잘치고 호전적인 두목하고 세력이 있으면 올려보내라 는 식으로 픽업시키게 되는데 그게 김태촌과 그 무리들인데 신상사파의 지원을 받은 김태촌은 세력을 빠르게 정비하면서 조양은을 노리게 되었는데, 우연히 다방에서 마주쳤는데 조양은의 여유와 그 주위에 세력들을 보고 타켓을 오종철로
바꿔서 조양은이 명동으로 넘어갔을때 오종철을 추적해, 낫으로 난자해 은퇴시켜 버린다. 범호남파에 오종철을 무너트리면 순식간에 존재감을 알리게 되고 양은이가 무너질줄 알았는데 조양은이 보스자리에 올라 김태촌과 3년 전쟁을 한다.
(김태촌이 조양은을 3년동안 잡으러 다닌게 아니라 전쟁을 한거다. 오종철 사건으로 인해
경찰도 김태촌을 잡으러 다녔다) 이때 이 두 호전적인 조직들은 옆에 파출소가 있어도 칼을 놔버리고 하던 사람들이라 주위 시민들에게는 불안감을 주던 시기였다. 전쟁중에 주양은은 오비 강갑은 연락으로 광주에 내려가서 술먹고 이야기 하다가 경찰에 잡혀버렸는데 같은날 김태촌은 명동 카페 놀러갔다가 단순시비로 경찰이 왔는데 화장실간다 하고 밖에다 신분증을 버렸는데 밑에 있던 다른 파출소 대원에게 신분증이 걸려서 잡혀버리고 만다.
감옥에서 만나 두사람은 화해를 하고 김태촌이 당시 조양은이 선배이고 나이도 많은줄알고 형님으로 모셨으나 나중에 조양은이 자기보다 나이가 2살이나 어린것을 알게되고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4. 칠성파 이강환, 이동재의 오비파, 그리고 양은이파
칠성파 같은경우 부산을 대표하는 조직이었다. 당시엔 70명정도의 조직원을 보유하고 있었고 박박 끌어모으면 100명도 되는
인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야쿠자와의 거래로 인해 외제 물품을 밀수하거나, 바다사업, 마약을 유통시켜서 상당한 돈을 벌어 들이고 있었고. 부산 경찰/검찰에
꾸준히 뇌물을 먹여 어지간 하면 크게 터치받지 않았다. (칠성파는 칼과 작두를 사용하였으며, 후배들 기강차원으로 폭력과 상해 등으로 잘알려진 조직이기도 하다.) 칠성파 이강환의 자서전에는 이런내용이 있다. '김태촌이니 조양은이니 이런애들이
매스컴으로 한참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우리는 부산이 서울 못지 않게 큰 도시라 지금 사업만으로도 막대한 자금이 생기기 때문에 서울에 진출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괜시리 저런애들 싸움에 관여하고 싶지도 않고, 우리 일에만 신경쓰면 된다.
' 아무튼. 김태촌과 조양은이 교도소에 들어갔을 무렵, 이동재는 김태촌과 조양은이 서울을 둘이서 갈라먹기 하다시피 먹을 무렵,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을 장악하게 되었는데, 서울에서 확장을 시작해 과거 김태촌과 조양은의 영역까지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었고, 조양은과 김태촌이 출소했을때,
세상이 동재 천하가 되어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이동재의 오비파는 막강했다. 이동재는 당시 부산에서 막대한 자금줄이 나올것을 알고,
부산에 칠성파를 밀어버리고 부산을 장악 하려고 칠성파에게 5명인원을 보내 본인 생각을 이강환에게 전달한다. 칠성은 문을 내리고 그 구역을 우리에게 넘기라는
내용이었고 5명의 오비파 조직원들을 칠성파 조직원들이 집단 구타하여 병원에 던져놓고 가버린게 시발점이 되어, 이동재는 칠성파에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150명의 오비파 식구들이 모이게 되고, 70명밖에 없는 칠성파 이강환은 전쟁이 시작되자 상당히 긴장했는데, 불안한 나머지 양은이파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조양은은 오비파 동재에게 멈추라고 중재 전화를 걸지만 오히려 동재는 역정을 내고 전화를 끊어버리게 되는데 이에 화가난
조양은은 오비파에게 전쟁을 걸게 되는데, 칠성파와 오비파의 전쟁이 아니라 양은이파와 오비파에 전쟁으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양은이파는
이동재를 습격하여 하반신을 난자하여 병원에 입원시키게 되고, 보스가 공격당하게 되는 오비파는 폭주하여 100명은 이동재를 보호하고 400명이 서울로 올라가 양은이파와 조양은을 노리고 전쟁을 멈추질 않았는데, 여기서 양측에 부상자/입원자/사상자 까지 나오게 되고 근처 주민들의 민원이 경찰서나 관공서에 빗발치게 된다.
(당시 민간인들끼리 명동/강남/기타 서울 지역에서 술먹고 시비 싸움으로 사상자 입원자 나오는 뉴스가 계속 나왔는데 이 두조직끼리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동재가 그만하라고 하는데도 멈추질 않았고 2인자 마저도 멈추라고 했지만 3인자 오치익이 오비파와 함께 들고 일어나 2인자 홍성태를 은퇴시켜버리고 이동재에게
오비파를 떠나 달라고 하여 이동재가 은퇴하게 된다. 이동재가 없어진 오비파에, 홍성태도 잡혀 들어가면서 오비파는 개판 오분전이 되어 신오비파/구오비파/무등산파로 쪼개져 버린다.
5. 영등포 조직 대호파 박살
영등포에 사창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상훈이 보스로 있던 대호파 인데 (성매매 사창가를 관리하는 조직들은 다른조직에 비해 뭐랄까 독종이라 해야 하나? 억세다고 해야 하나 말투나 행동이 거칠고 공격적인 성격이 있다)
오종철의 후배이기도 한 이상훈 보스는 김태촌과 조양은의 건달 선배는 맞으나 이 둘을 자기보다 윗 서열 조직으로 인정하지 않고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이태원 캐피탈 호텔에서 술마시는 도중 반대쪽 양은이파 조직원들과 시비가 붙게 되고, 이상훈은 양은이파 조직원들을 무차별 폭행하게 된다.
이 사건이 조양은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대호파 보스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요구했지만 오히려 역정을 내고 끊어버리자 전쟁이 시작되었으나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대호파 보스는 조양은에게 끌려가게 된다. 이상훈은 조양은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똑같이 당해봐라고 하지만 이상훈이 내가 그래도 건달세계선배인데 용서를 해달라고 무릎을 꿇자 치료비로 2천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되게 된다.
6. 누가 진짜 최고의 조직인가...(범서방파+안토니오파 vs 양은이파)
대호파 보스 이상훈이 이런 결과를 안고 몇달 뒤 안토니오파 안상민과 만나서 예기를 한다.
(안토니오파와 안상민은 3대조직 다음으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슬로트머신 대 부 격인 정덕진이도 피해다닐 정도로의 그 위세는 상당했다. 종로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조직이었다. 이 보스 안상민은 서산이 낳은 괴물 주먹이라는 인물로 연장 패싸움일때도 주먹으로
활동하던 인물이다.) 과거 안상민이 금전적으로 힘들어 할때 많은 도움을 준 이상훈은 양은이파에게 당한 수모를 듣게 되고 안상민은 조양은과의 복수이자 전쟁을 준비 하게 된다. 이상훈은 안된다고 말렸지만
안상민 역시 조양은과 붙을려고 했고 나중에 범서방파 김태촌을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범서방파는 500명이상, 안토니오파는 400명정도 되니 천명정도면 양은이파는 밀어버릴수 있다고 판단해 우선 양은이파 돈줄 디스코 클럽을 박살내자고 하고 다음날 실행에 옮기게 된다.
전쟁이 시작되고 양은이파 역시 범서방파와 안토니오파의 건물들을 박살내기 시작하면서,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자 피해가 심한건 범서방파와 안토니오 파였다.
이유는 결국 물량 소모전인데 양은이파도 500명이 넘었지만 그를 추종하는 조직들이 많다는걸 몰랐던 것인데, 김태촌도 안양타이거 정도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원에 남/북문파가 200명 양은이파를 지원오게 되고, 안양타이거파 140명, 의정부세븐파, 파주스포츠파, 포천여우파, 형제동맹 강북 대표조직의 미아리 쌍택이 , 군산 백악관파. 대전 목포옥태파 , 신림동이글파, 고양식구파, 이리 배차장파 ,군산파 등 엄청난 인원들이 양은이파로 모여들게 되고 김태촌과 안상민은 급하게 자기들 추종세력들 합류해라고 하지만 이미 몇배의 인원차이가 나다보니 김용남(용팔이 사건 주인공)에게 도
움을 요청해 200명 지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목포파가 전쟁을 걸어 김용남은 200명을 다시 귀환시켰고 김태촌과 안상민은 이상황에 잘못하다간 우리 조직들이 먼저 없어지겠다고 생각해 조양은에게 협상을 하지만 거절당하고 전쟁은 계속 되었다.
조양은 입장에서는 '우리가 유리해서 밀어부치면 서울이 내껀데 왜 협상을 하냐' 는 식이었다. 양은이파는 이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
기 시작했고, 범서방파와 안토니오파의 업소들이 양은이파에 수중에 떨어지기 시작하고 양은이파가 밀고 들어갈 무렵 정부에서 깡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되며 이들은 전부 구속되어버렸다. 이여파로 인해 불똥은 지방에까지 퍼져서 얌전히 있던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환 까지 구속되어버린다. 김태촌/안상민/조양은 중 김태촌은 3년만에 출소를 하고 1년뒤, 송도 나이트클럽 호텔 사장 폭행사건으로 10년을 다시 선고 받는다. 이 전쟁은 모르는 사람이 많고 조양은 역시 예기하지 않았지만 형사들이 김태촌을 회유했고 감형받게 도와주겠다고 하자 이 전쟁사실을 말해 10년형에서 감형받아 6년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