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탈춤[鳳山 ―] : 황해도 봉산과 사리원에 전승되던 탈놀이의 하나.
1915년 군청이 사리원으로 이전되자 사리원에서 놀게 되었으며, 6 · 25전쟁 이후 연희자들이 월남함에 따라 현재 서울에서 놀게 되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4월 초파일, 5월 단오에 가장 큰 규모로 놀았다. 봉산에서는 경수대 밑 강변의 평평한 장소에 관중을 모아놓고, 연희자들은 무릎에 닿을 정도 높이의 축대무대를 쌓고, 사방에 횃불을 밝히고 그 위에서 놀았다. 사리원에서는 경암루 앞 광장에 모여 놀았는데, 관람석을 다락으로 만들어 관극의 즐거움을 더하고,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다락은 28개의 기둥을 원형으로 세우고 그 위에 관람석을 만들어서 활용했고, 다락 중앙 지상에 놀이판을 펼쳐서 잘 보이도록 했다.
연희자는 관아의 이속(吏屬)이 주축이 되었으므로 놀이의 발전이나 전승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중국의 사신을 영접하거나 서울에서 내려오는 수령 감사의 부임을 축하하는 놀이는 공의(公儀)로서 진행되었고, 단오절을 비롯한 명절에는 세시풍습으로 대규모의 민속놀이가 되었기에, 봉산탈춤은 그 예능적인 수준면에서나 관중들의 호응면에서나 관민의 상보적인 기반이 성립되어 있었다. 전승되는 탈놀이 가운데서 극중 대사에 유식한 내용이 가장 많은 까닭도 이러한 조건과 깊은 관계가 있다.
봉산탈춤은 19세기 중엽의 이익보 · 김여집, 19세기 후반의 안면조 · 이춘강, 20세기 초엽의 임재현 · 정순조 · 김봉학, 1930년대의 이동벽 · 김경석 · 이윤화 · 김진관 등에 의하여 전승되었으며, 6 · 25전쟁 때 월남한 김진옥 · 민천식 · 이근성 · 이용익 · 양소운 등에 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77년 하버드대학교 등 미국 20여 대학 순회공연, 일본 아사히신문사 초청공연, 1978년 유럽의 벨기에 등 6개국 순회공연, 1983년 일본 문화재단 초청공연, 로스앤젤레스 문화 올림픽에서 공연했고, 1986년 캐나다 박람회 등에 참가 · 공연하여 한국 전통 탈놀이를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놀이는 크게 앞놀이 · 본놀이 · 뒷놀이로 구성되고, 작게는 본놀이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밤에 본놀이를 벌이기 이전에 앞놀이로서 길놀이를 했다. 악사의 반주를 선두로 탈을 쓴 연희자들이 읍내를 돌았는데, 이때 행렬을 따라가면서 하는 원숭이춤이 인기를 끌었다. 본놀이는 제1마당[科場] 상좌(上佐)춤, 제2마당 팔먹중춤, 제3마당 사당(社堂)춤, 제4마당 노승춤, 제5마당 사자춤, 제6마당 양반춤, 제7마당 미얄춤으로 전개된다. 뒷놀이는 관중과 연희자들이 어울려 한바탕 놀았는데, 이때 관중 가운데도 탈을 쓰고 노는 사람이 많았다. 탈은 기본 재료인 종이를 폭넓게 활용하여 색채와 조형감각이 뛰어나게 구성되어 있으며 연극적인 상징성도 풍부하다. 사실성(상좌탈)과 귀면성(鬼面性:취발이탈), 입체성과 회화성(먹중탈), 익살스러움(신장수탈), 천박스러움(말뚝이탈)이 여러 측면에서 조화된 탈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색채에 있어서도 흑·백·적·청·황의 5방색(五方色)에 대한 의식이 대담하게 표현되었다. 춤은 삼현육각(三絃六角)이 연주하는 염불 · 타령 · 굿거리 · 만신 가락 등에 맞추어 추는데, 팔먹중들이 추는 것을 기본춤으로 삼고 있다. 춤사위는 불림(1장단), 고개잡이 1(2장단), 고개잡이 2(1장단), 무릎올리기(2장단), 황소걸음(1장단), 외사위 1(3장단), 외사위 2(1장단), 겹사위(2장단), 양사위(2장단), 앉아뛰어외사위(2장단), 앉아뛰어겹사위(2장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삼소매를 휘어잡고 뿌리거나 한삼을 경쾌하게 뿌리면서 두 팔을 굽혔다 폈다 하고, 발을 높이 뛰면서 활달하게 추는 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