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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 우리는 일본을 밟았다 !!
[ 광화문 연가… ]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밤,
광화문 네거리 샛길 부근 어느 곳.
글자 그대로 주룩주룩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에 더 어둑해지는 골목길.
주변 찻집에나 몇 사람 있을 뿐, 차츰 드물어지는 인적.
시동을 켜놓고 있는 28인승 고급 리무진버스가 생뚱맞기까지 하다.
무박 2일 - 가뜩이나 빡빡한 일정에 날씨까지 이렇다보니,
신청인원이 과연 얼마나 올 수 있을지,
하루 전부터 은근히 걱정도 되고 있던 터였다..
출발예정 시각은 11시.
한 10여분쯤 전부터 일까,
빗속을 뚫고 하나 둘씩 나타나는 시커먼 그림자.
배낭에다 등산모를 쓰고 우산을 들거나 판초를 걸친 어둠 속 群像은,
흡사 야간전투에 나서는 장렬한 병사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놀랍게도 예약 20명중 불참은 단 한 명뿐.
내심, 되살아나는 통일산악회에 대한 믿음과 희망.
불참사유도 출발날짜를 착각한 때문이라고,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모시기로 한다.
[ 달리는 카페… ]
11시 20분. 우리의 최신형 戰車가 드디어 발진한다.
남산터널을 거쳐, 한남대교를 넘어, 경부고속도로로 해서--- 뛰뛰♬ 빵빵♬
깨끗한 베개 깃만큼이나 실내도 정갈하다. 에어콘도 물론 빵빵♬
이두수 총간사의 일정 안내와 박 주 부회장의 추모사 낭독 리허설 등,
거기에 현지 상황이 어떨지 모른다고 하니, 일순 만만치 않은 긴장까지 흐른다.
뒷좌석에는 출발과 동시에 개설된, 例의 그 ‘통일산악회 카페’.
숙면을 이끈다는 핑계로 一杯, 二杯, 數三杯가 신나게 춤춘다.
정성 담긴 안줏거리가 아까워서라도, 대부분 기꺼이 한 酬酌씩 한다.
자다 깨다 두어 번쯤 들른, 잘 단장된 고속도로 휴게소.
그 밤에도 주차장에 밀려오는 심야고속버스와 단체관광 버스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좋아지긴 좋아졌나보다.
우리도 비슷한 처지이지만, 이 야밤에 놀러간다고 기를 쓰며 몰려가고들 있으니.
밤이 깊다보니 고속도로가 지체될 리 없다.
빠르게 달린 편이 아니었는데도, 아침식사 전에 시간여유가 좀 생길 듯하다.
회원들의 상쾌한 여정을 위해, 예정에 없던 ‘해운대 해맞이투어’ 코스를 만들었다.
구시렁대는 技士를 총간사가 살살 달랜다. 한두마디 대꾸하는 폼이, '기사는 기사'다.
간선도로를 벗어나 클로버 길을 따라 돌자마자 다가서는 초고층 아파트群.
'해운대'다.
[ 꽃피는 동백섬… ]
아직 어스름한 바다와 꺼칠한 백사장.
“많던 모래 다 깎여나가고, 다시 사들여와서 덮고…”. 저마다 한마디씩.
다들, 그래도 TV뉴스는 잘 보고 계시나 보다.
APEC 회담으로 더 정돈된 동백섬 일주산책길. 그것도 벌써 7년 전 일이라고라.
부산이 고향인 이광수 회원은 해운대가 첫걸음이라며 감격해하기까지 한다.
널찍한 등대전망대에서의 일출 맞이.
겨울이면 바다에서 솟는 장관을 볼 수 있으나, 여름엔 달맞이길 위 산에서 뜬단다.
붉은 빛 여명의 장엄함을 잠깐 맛보고는 일정에 쫓겨 돌아선다.
[ 돼지국밥도 있다…]
권기섭 산행부대장이 지인의 추천을 받아 예약해 놓은 곳은 초량동의 돼지국밥 집.
아침부터 웬 돼지고기 국밥?... 했더니만, 결론은 장난이 아니었다.
맑은 국물에 푸짐한 돼지고기. 거기에 ‘다진 양념’과 부추를 넣어먹는 그 맛.
간밤에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에게도, 시원, 얼근달콤. 뒷맛도 아주 개운하다.
나중 들으니, 부산의 대표음식 중 하나가 돼지국밥이란다.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맛 소개를 그친다.)
[ 처음 타보는 國際船… ]
부산항 국제선 부두.
저마다 잽싸게 화장실에서 세수와 양치를 마친다.
그리고 만난 가이드 - 몇몇 젊은 회원들의 얼굴에서 失笑가 번진다.
미모의 사진으로 기대를 부풀렸던 그녀. 실제로는 下體풍만女이었던 것.
결과적이지만, 가이드로서의 평점도 합격점은 아니었던 듯.
그래도 출국장이라고, 아담한 면세점까지 있다. 세일도 꽤 해준단다.
여기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과연 맞을까 싶기도 하다.
KOBEE라는 이름의 배는 쾌속선. 우리 자리는 모두 1층. 거의 다 찬 승객들.
물위로 일정 높이를 떠서 날라(?)간다고 그런지, 멀미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 대마도가 보인다… ]
언제 1시간여가 지났는가, 토막잠에 드나드는 사이. 눈에 들어온 대마도.
그냥 '길~었다.'
동북단 와니우라, 히다카쓰를 지나 남단 이즈하라까지 이르는 긴 해안 길.
백사장이 보이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산으로 된 해안이었다.
언뜻 형상으로만 보면, 과연 쓸모가 있는 섬일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해방 당시 간단히 포기해 버렸던 것은 아닌지, 착잡해지기도 한다.
[ 이즈하라 港… ]
입국 심사장. 짧지 않은 시간을 잡아먹은 개인별 ‘얼굴과 지문 등록’.
그리고 세관. 입국자 소지품에 대해서는 과잉 검색이다.
어떤 사람은 짐을 송두리째 꺼내 놓고 뒤져보기도 한다.
식품류 등의 수입금지 품목을 단속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뒤에 우리가 돌아 올 무렵, 시내에서 가이드가 전해준 진실.
“가끔 태극기나 시위용품을 가지고와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인지, 우리가 지닌 태극기와 플래카드는 열어보지도 않았더랬다.
부산 출국장 보다 훨씬 더 에어컨을 빵빵 틀어대는 입국장을 나서니,
땡볕이다. 35도는 족히 넘을 듯. 무덥다 못해 뜨겁다.
항구 옆 바다에 노니는 물고기도, 정박된 어선들도 더워 보인다.
그래도 그늘로 들어서면 좀 나은 것이, 영락없는 중동날씨다.
시내를 걸어가다 보니, 당연히 日製車들이 많다.
대부분 소형차들이고, 그런대로 익숙한 모델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물론, 현대나 기아차는 없다.
가이드가 예약해 놓은 도시락을 각자 수령하고 등산길로 향한다.
[ 아리아케 山 등산… ]
有明山 (아리아케야마). 해발 568m. 일명 ‘대마도의 봉우리’
일본 最古시가집 ‘만연집’에서도 읊었다는 역사와 낭만이 넘치는 명산.
얼마간 포장된 길과 계단을 지나면 나무그늘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나오고,
급경사와 완만한 능선의 한 두 차례 반복. 썩 쉽지만은 않은 코스.
더위와 습기와 수면부족과의 싸움이다.
그렇게 해서 올라선 정상.
언제나 산행이 그렇듯, 오르다보면 꼭대기가 있기 마련.
그러나 놀라운 점은,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회원전원이 등정한 일이다.
날씨 등등을 고려할 때 절반 정도는 중도에서 돌아서리라 여겼던 것인데.
늘 뒤에 쳐지던 某회원 曰 “ 이 산에 오르려 대마도 왔는데, 중도포기라니…”
역시 남자건 여자건, 인간의 굳은 의지는 체력을 뛰어넘게 되는가 보다.
다들 그랬다. 땀에 뒤범벅이 되었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상에 올랐다.
남자들은 더운 김에 웃통들을 벗어, 각양각색의 체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단 점심. 보통 때의 산행처럼 큰 원으로 둘러앉은 식사마당.
마침 해를 가린 구름과 시원한 바람 덕에, 자리 잡은 곳은 명당이 되었고,
비싼 일제도시락 때문인지, 과일과 막걸리가 곁들여진 메뉴도 푸짐했다.
[ 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도 양보 못한다!… ]
식사 후, 계획된 행사가 펼쳐졌다.
준비해 온 대형 태극기와 통일산악회 플래카드를 꺼내든다.
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목을 중심으로 회원들이 늘어서고,
태극기와 플래카드를 팽팽히 펼쳐서 위아래로 치켜들었다.
간단한 告由 절차를 거치고, 회장의 선창아래 구호를 힘차게 외친다.
“자, 여러분! 일본인들이 얼토당토않게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일본 땅 대마도에서 산 정상, 아니 일본을 밟고 올라서서
그들이 망상에서 깨어나도록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구호를 외치겠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우리 땅! 우리 땅!’
모두들 강건하면서도 분연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어서 高大 막걸리찬가의 끝 소절을 엄숙하게 그러나 힘차게 합창했다.
‘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도 양보 못한다!’
그리고 구호를 한 번 더 외쳤다.
‘독도는 우리 땅! 우리 땅! 우리 땅!
.
’
[ 면암 최익현 선생을 기리다… ]
하산 길의 엇갈림으로, 잠시 아스팔트 위에서의 기다림.
다른 관광 따위는 다 접어버리고, 수선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지나치는 카페골목의 간판들이 아담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드디어 수선사. 생각보다는 크거나 넓지 않은 규모.
‘면암 최익현 선생 순국비’는 바로 절 입구 가까이에 있었다.
그 주위에는 우정 심었을 무궁화가 잘 자라, 오히려 碑를 가릴 지경이었고.
면암 최익현 선생.
조선말 최고의 학자이면서도, 고령에 의병을 일으켰다 붙잡혀 이곳에 유배되신 후,
‘왜놈의 것은 취하지 않으리라’ 스스로 식음을 끊고 순국하신 진정한 애국자.
때마침 임란 420년, 경술국치 102주년에다 최근 일본의 독도 망언까지 겹쳐
새삼 선생에 대한 추모와 함께, 일본의 행보를 엄중히 성토하겠다는 마음으로
저마다 기꺼이 이곳까지 달려온 우리 통일산악회의 열혈 회원들.
선생과 우리는 그런 취지와 연대로 100여년의 시공을 넘어 비로소 만났다.
그래서 이 날의 순국비 참배는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추모행사는 거침없이, 당당하게 이어 졌다.
선생의 약력소개. 추모사. 추모의 노래-‘선구자’ 합창. 만세 삼창….
약력소개로, 선생의 고귀한 뜻과 장엄한 행적을 되새겼고,
추모사를 통해 선생을 기리며, 일본의 과거와 근세의 만행을 힐책했다.
특히, 그들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소란과 망언과 궤변으로 단정했으며
망상에서 벗어나 이성을 되찾고, 선린우방으로 회귀하기를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역사적, 지리적으로 한국과 밀접했던 대마도를
韓日 화합의 교두보, 신세대 문화교류의 場으로 만들자고 까지 제안했다.
가슴에서 나오는 목소리로 부른 ‘선구자’는 그것이 곧 선생의 일생이었고,
온몸으로 외친 만세삼창은 진정한 우리의 희망이자 강한 의지였다.
[ 돌아와요, 부산항에… ]
다시 이즈하라 港.
함영준 회원과 강유성 부회장이 일본 동전을 털어 뽑아온 캔맥주로
한 모금씩 돌아가며 갈증을 달랜다.
구내매점에서 엔화밖에는 받지를 않아서였다.
가는 배도 역시 KOBEE, 이번에는 2층의 널널한 자리.
모두들 편하게 또 한 차례 토막잠을 청한다.
잠깐 눈이나 붙였을까, 창밖에 보이는 부산. 부산항.
五六島의 끝 섬에 바다 쪽으로 흰색의 멋진 등대가 있음을 처음 알았고,
五六島의 섬이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는 한참을 봐도 아직 모르겠다.
한 눈에 들어오는 부산항의 규모가 괜히 믿음직해 보인다.
대대적인 항구 확장과 재개발 계획이 진행 중이어서 그런가.
[ 자갈치 아지매… ]
근 12 시간을 기다린 우리의 리무진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은 자갈치 시장.
부산의 명소답게 바글바글 인파가 끓는다. 名不虛傳.
회 센터 2층. 역시 왁자지껄. 그래도 생선회와 술 먹을 자리는 있다.
전어와 광어회. 막걸리와 소주.
제가끔 잔 들고 연이어 외치는 ‘고! 고! 고!’
大事를 치른 후의 성취감, 후련함 때문이었으리라. 술이 달다.
[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
저녁 8시 반쯤 서울행 출발. 부산서 두 사람 잔류.
다시 소등. 전원 수면 버전.
도착 2시간 전.
‘국가대표 엔터테이너’ 박 주 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마무리 개별 스테이지.
저마다 현란한 감동의 ‘개구라’ - 역시 가방끈하나는 그런대로 괜찮은가 보다.
타임워치로 잰 듯, 분당 톨 게이트에서 정확히 끝난 토크 쇼.
리무진 버스는 양재역, 한남동, 을지로를 거쳐 광화문 출발지로 무사히 귀환.
도착시각은 26일 01시. 사실상 무박3일인 셈이다.
그러나 이날, 그 시각 이후.
강남과 강북에서 내린, 나름 지각 있다는 대마도 원정대원들 몇몇은
삼삼오오 뭉쳐, 기어코 무박3일을 제대로 채우고야 말았다는 뒷얘기도 있다.
참으로 대단한, 못 말리는 인물들이다.
대마도 정벌에 용감히 나서는 그 기개!
민족과 조국을 지키는 일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뛰어드는 그 충정!
통일산악회 - 누가 그들을 막걸리만 잘 마시는 촌놈 무리라고 했던가?.
2012년 8월 28일
첫댓글 재미나고 뜻깊은 무박2일 여정이었네요..
좋은 기회를 놓쳐 약오르는데 잘 쓴 글을 보니 더 약오르는구먼. 고교 동기이면서 고대 공대 교우회장과 혼란기에 교우회장 직무대행을 역임한 정희용가에 혼사가 있어 어쩔 수없이 불참했으니 양해바랍니다.
오늘이 1910년 8월29일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국치일입니다. 검은 옷을 입고 출근함으로써 약간의 예를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5천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민족인 우리가 어려운 여건을 다 견뎠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독립을 빼앗긴 날입니다. 그것도 최근세사에서. 마음을 다잡고 한마음으로 내 조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데 일조하도록 합시다.
이런 의미깊은 시기에 시의적절한 행사를 주최한 집행부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좋은 해외 산행이고, 답사이었군요. 역시 통일산악회 답습니다.
멋진 해외 산행...다른 일정탓에 같이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보다 더 현장감 있는 탐방기가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마치 동참한 듯한 느낌으로 잘 읽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정이었을 것인데 모두모두 안전하고 즐겁게 다녀오셔서 너무 좋습니다.
수고 많이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