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제2년 5월 17일 이사야서 16장 찬송가 167장(새찬송가 179장)
01. 너희는 이 땅 치리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02. 모압의 여자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03. 너는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오정 때에 밤같이 그늘을 짓고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04. 나의 쫓겨난 자들로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05.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0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
07.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08.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 열국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09.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 실과, 너의 농작물에 떠드는 소리가 일어남이니라
10.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11.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같이 소리를 발하며 나의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12. 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14.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품군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소용이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
“교만한 모압이 당할 능욕”
본 장에서는 모압의 남은 자들을 향한 선지자의 권고와, 그 권고를 무시한 모압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되고 있습니다. 먼저 선지자는 재난을 피해 피난한 모압 사람들에게 그들이 현재의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건짐 받을 수 있는 길은 유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뿐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모압은 자기 나라의 풍부한 산물들로 인해 유다를 배척하는 정책을 유지하게 되는데, 그것은 곧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은총을 거부하는 교만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심판을 피할 수가 없음을 선지자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피난한 모압에 대한 권고(1-5절)
【1절】전 장에서 시작된 모압에 대한 멸망 예언이 본 장에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형제국인 모압에 대해서는 다른 열방들의 예언과는 달리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주어집니다. 그 하나는 다윗 왕가가 다스리는 유다에 조공을 바침으로써 화친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땅 치리자'란 유다의 왕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어린 양들'은 유다 왕국에 보내는 조공물입니다(왕하 3:4 참고). 조공은 복종을 표시하며, 동시에 보호와 도움을 요청하는 간구의 수단이었습니다. 모압은 양들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공물을 바친 전력이 있었던 만큼, 유다에 바치는 조공 물품으로도 어린 양들은 적격이었을 것입니다.
【2절】본 절은 조공을 바쳐야 할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모압의 여자들’은 ‘시온의 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것과 같이 모압 국민 전체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떠다니는 새’와 ‘흩어진 새’는 갈 곳 없이 방황하는 연약함을 표현합니다. 결국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유다에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4절상】이 본문은 유다에 대한 모압 사절들의 간청으로 여겨집니다. 즉 그들은 어려운 지경에 빠진 모압 사람들에게 은혜롭게 대우해 줌으로써 피난민들을 보호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하-5절】이러한 모압 백성들의 피난은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압을 점령하고 착취하며 압제하던 앗수르는 머지않아 그들 자신이 멸절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적인 폭압적인 정권 대신에 다윗의 장막에서 장차 나오게 될 왕은 ‘인자함’(헤세드)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충실함’(에메트)으로 판결할 것이며(시 89:24,33 참조), 또한 ‘공평’(미쉬파트)과 ‘의’(체데크)를 추구하고 실행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메시아 통치의 특징들로서(9:7; 11:4), 이 메시아적 소망에 모압도 열방의 하나로서 참여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압이 유다에게 조공을 드려야 하는 궁극적인 까닭이었습니다.
모압의 교만에 대한 심판의 예언(6-14절)
【6절】6-14절은 심판을 피할 길을 제시해 주었으나 교만한 모압이 이를 거절함으로써 결국 멸망의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을 예언하는 부분입니다. 아마도 모압은 앗수르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후 유다에게 조공을 드리는 것을 거부하고 배척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그처럼 선지자에 의해 제시된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한 이유는 그들이 가진 강력한 요새와 풍부한 경제력(왕하 3:4)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에의 초대를 거부하는 교만이었으며, 이에 대한 심판을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음을 본문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 ‘교만’과 ‘거만’이란 낱말이 4번이나 반복됨으로써, 선지자는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교만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러나 이런 모압의 교만은 다음 절에서 곧 통곡으로 바뀌게 됩니다.
【7-11절】“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한다는 것은 모압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며 운다는 뜻입니다. 이제 이들은 그 풍부한 생산물로 인하여 자만하며 교만했던 포도원들이 이방 군대들에게 짓밟혀 황폐하게 됨으로써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12절】모압 사람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우상을 둔 산당에서 자기들의 몸을 자해하면서까지 국가적 재난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을 기도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13절】“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란 앞서 1-5절에서 선지자가 제안했던 모압에 대한 권고의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말씀은 모압이 재앙을 피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도록 초청하는 은혜로운 복음이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풍요로운 물질과 평안한 삶으로 인해 그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최후의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14절】이제 모압에게 임할 파멸은 확정된 것으로서, 품꾼들이 일을 마치고 정해진 날에 그 품삯을 받듯이 정해진 때가 되면(삼 년 내) 모압은 파멸과 능욕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모압 사람들이 유다에 조공을 바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다윗 장막에서 마침내 세워질 왕(메시아)의 특징을 말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말씀을 듣고도 세상의 물질이나 안이함 때문에 불순종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믿음의 글◈ “인간의 궁극적인 죄악인 교만”
이사야서 16장에 나오는 모압의 심판에 대한 예언을 보면 그들이 행한 불의한 죄악이나 악행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다윗의 장막이 있는 유다와 긴밀하게 지내며 그 왕에게 조공을 바치라는 선지자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음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처럼 모압이 선지자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교만과 거만이라고 밝히며, 그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l
이러한 모압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교만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최종적 죄악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압이 유다에게 조공을 드려야 했던 까닭은 그 유다의 장막에서 나오실 한 왕, 즉 그리스도의 축복에 그들도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대를 거절함으로써 역사 속에서 심판을 받고 소멸되고 만 것입니다. 하물며 오늘날 구약시대보다 훨씬 더 분명한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마지막 초청을 듣고도 거부한 사람들이기에 가장 교만한 자들이며, 최후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이사야서는 이미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가 교만때문임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