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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 警 文 (자 경 문)
야운 비구 술(野雲 比丘 述)
○ 저자 야운화상 (野雲和尙)
이 자경문(自警文)의 저자 야운(野雲)은 고려 말엽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제자이며 휘(諱)는 각우, 야운(野雲)은 그 호(號)이다.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야운(野雲)이란 이름을 가진 고승이 두 분이 있으니, 신라(新羅)의 야운과 고려(高麗)의 야운이 그분들로서 이 두 분 중 어느 분이 이 자경문의 저자일 것이냐에 대해서는 고래로 두 가지 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시대의 야운은 원효대사(元曉大師)에게 귀의(歸依)한 분이다. 객관적인 서지학 상(書誌學上)으로 볼 때 이 자경문은 고려의 야운 설이 더 유력하다.
門庭 峻意氣高閑 現念努具折邪之相
開慈悲有引導之容 各賢大德野雲牛禪師
뜰 악이 험준한 그 의기는 고상하고 한가하도다.
힘써 생각을 나투어 삿됨을 항복 받음을 갖춘 상이요
자비를 열어 인도할 수 있는 얼굴로 어짊과 큰 덕을 갖춘 야운 각우 선사시여
이상의 글귀로 볼 때 선사는 지덕을 갖추신 고매한 성품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 채찍질하는 가르침>
자경 문이란 스스로 마음에 새겨 둘 좌우명(座右銘), 즉 스스로 경계(自誡)하는 글이란 뜻이니, 중생의 마음은 항상 번뇌로 뭉치고 맹목적인 본능과 무지(無知)한 소치로 갖가지 죄업을 저지르는 관계로, 옛 부터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 하여, 옛 성인들이 하루 세 번씩 지내온 일을 돌이켜 반성하는 계기를 삼도록 하라고 가르쳐 왔다.
특히 불교에서는 수행하는 이에게는 엄격한 계율과 함께 항상 자성(自省)하고 경계하고 뜻을 굳게 가지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므로 옛부터 많은 자경(自警)의 훈계로서 후학을 가르치고 마음을 길들여 왔다.
총 1987자로 되어 있는 이 자경문은 총 열두 대문으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처음의 총설과 끝의 결론에 해당하는 당부의 대문을 제외하면 실제로 경계하는 내용은 열 가지로 되어 있다. 그 이름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一, (軟依美食 切莫受用) 좋은 옷과 음식을 삼가라.
二, (自財不吝 他物莫求) 재물을 욕심내지 말라.
三, (口無多言 身不輕動) 말을 조심하라.
四, (但親善友 莫結邪友) 좋은 벗을 사귀라.
五, (除三更外 不許睡眠) 잠을 적게 자라.
六, (切莫妄自尊大 輕慢他人) 아만을 버리라.
七, (見財色 必須正念對之) 재와 색을 멀리하라.
八, (莫交世俗 令他 嫉) 세속에 물들지 말라.
九, (勿說他人過失) 남의 허물을 들추지 말라.
十, (居衆中 心常平等) 대중을 항상 평등하게 대하라.
[본문번역(本文飜譯)]
주인공(자아: 자기라고 생각하는 업을 짓는 마음) 나의 말을 들어라
많은 선지식이 공한 문 안(빈속)의 도를 얻었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고통과 번뇌 가운데 오랫동안 윤회하고 있는가?
그대는 시작 없는 옛적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깨달음을 등지고 번뇌에만 집착하여 어리석음에 빠져서 가지가지의 악업을 지음으로 三악도의 고통과 번뇌 속에 들어가서 모든 선을 닦지 못하므로 四생(태, 난, 습, 화생)의 업 바다 속에 깊이 잠겨 있도다.
[뜻풀이]
주인공(자아)아 나의 말을 잘 들어라.
부처님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을 따라 생사를 뛰어넘은 깨달음의 해탈도(解脫道)를 증득 했거늘 너는 어찌하여 끝없는 옛적부터 무한한 번뇌와 한없는 생사고해의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六도(道)에 윤회하는 중생의 굴레를 벗어날 줄 모르는가?
그대가 아득한 옛적부터 현세에 이르기까지 깨달음도 모르고 모든 속세 일에만 집착하여 탐(貪), 진(瞋), 치(癡)의 三악에 빠져서 죄업(罪業)만 짓고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의 三악도를 끝없이 윤회하면서 갖은 고통(苦痛)을 겪으면서도 여러 가지 좋은 업(業)을 닦지 못하여, 태에 나는 태생(胎生), 알에서 몸이 생겨 깨어나는 난생(卵生), 벌레와 같이 습(濕)한데서 형체가 생겨나는 습생(濕生), 아무 의탁하는 바가 없이 업력(業力)에 따라 생기는 화생(化生)의 四생으로 백겁(百劫)이 지나도록 길고 긴 생사의 업 바다(業海)에 깊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였다.
[해설(解說)]
중생을 고민에 빠뜨리고 번거롭게 하므로 심신을 괴롭히고 산란하게 하는 것이 번뇌(煩惱)이다. 그 성질은 진리의 성도(聖道)를 가리우고(覆) 방해하므로 마음을 청정하지 못하게 하고 악하게 하므로 마침내 중생을 암흑에 빠뜨리고 생사윤회의 세계로 몰아간다.
중생은 이 번뇌 때문에 악업을 짓고 이 악업 때문에 고(苦)의 업보를 받게 되며 지적(知的)으로는 미혹(迷惑)에 얽매이게 되고 무지와 암흑의 구렁에 떨어진다. 이것을 혹(惑), 업(業), 고(苦)의 三도라고 한다. 여기에 번뇌를 끊고 해탈의 경계인 열반의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을 구경의 목표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에 있어 번뇌를 끊고 해탈을 성취하는 방법론은 어떠한가?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번뇌의 바탕인 탐욕과 성내는 마음인 진심과 어리석은 무지를 멀리 떨쳐버려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번뇌의 뿌리를 잘 다스려야 하므로 그 성질을 바로 알아서 잘 다스려서 항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부처님께서 여덟 가지 진리의 길인 팔정도(八正道)를 말씀하시고 네 가지 진리(四諦: 고, 집, 멸, 도)를 말씀하시며 六바라밀을 말씀하셨다.
일체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미(迷)의 세상에 재생(再生)할 수 있는 업인(業因)을 멸하는 첫째의 첩경이 바로 무심인 것이다.
무심이 아니고서는 욕망과 맹목적 충동인 온갖 본능을 조복(調伏)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몸뚱이는 여섯 가지 번뇌(적: 6경)가 따르므로 악한 세계에 떨어지면 그 고생은 말할 수 없고 마음은 일승을 등지므로 혹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부처님 나시기 뒤나 앞이 된다.
지금 다행히 사람의 몸 받았으나 부처님 가신 후 바로 말세이니 슬프고 애석하다.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가?
그렇다 해도 그대가 속세의 정을 끊어 없애버리고 능히 반성하여 수행(출가)인이 되어 바루를 가지고 법복을 입고 티끌세상을 등질(빠져나갈) 수 있는 빠른 길을 찾아 나와 번뇌가 없는 수승하고 신묘한 법을 배운다면 용이 물을 얻은 것 같고 범이 산에서 마음대로 뛸 수 있는 것(의지함)이니 그 뛰어나고 묘한 이치는 이루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다.
[뜻풀이]
중생에게 있어 몸뚱이는 번뇌(煩惱)를 생기게 하는 근원이 되는데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여섯 가지 감관이 육진경계를 탐착하여 욕정(欲情)을 일으켜 그 과보로 지옥(瞋 : 忿怒), 아귀(貪慾), 축생(癡·愚), 수라(修羅: 다툼) 등의 악취(惡趣)에 떨어지게 되면 괴로움과 고생을 이루다 표현할 수 없다.
인간(樂羊苦羊), 천상(十善을 닦은 공덕으로 천상에 나서 복락, 희열을 받음)에 태어나더라도 명이 다하고 복이 다하면 다시 三악도의 윤회의 길에 떨어진다. 거기다 마음은 대승불교의 유일무이한 구극의 진리인 일승교를 배반하여서 혹은 인간 세상에 태어나도 부처님이 나타나시기 전이거나 또는 부처님이 떠나신 뒤거나 지금 다행히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부처님이 가신 뒤 말세이니 참으로 슬프고 원통하다 이것이 누구의 잘못일까?
그렇지만 다행히 그대가 반성하여 이제 속세의 정을 끊어버리고 머리 깎고 출가하여 수도승이 지니고 다니는 식기인 바루(應器)를 가지고 가사(袈裟)를 수하고 이 번뇌 많은 세상을 나올 수 있는 신묘한 이치를 배우게 되면(곧 마음 출가로 일체를 놓고 일대사를 닦음) 용이 물을 얻어 즐기고 범이 산에서 자제하게 뛰는 것과 같으니 훌륭하고 뛰어난 것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한 것이다.
[해설(解說)]
눈으로 보는 물체의 형상과 색깔, 귀로 듣는 소리, 코로 맡는 냄새, 입으로 분별하는 맛과 몸으로 닿는 것(촉각)과, 의식의 대경(對境)인 모든 것들(법)의 경계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행동을 방황하게 하여 마침내 중생을 미혹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한 마음을 깨달을 수 없게 한다.
처음 발심하여 수행하는 사람으로 첫째 경계할 일로서 五관의 본능적·맹목적 충동을 크나큰 도적으로 보고 그로부터의 굴레를 벗어날 것을 강조하는 교훈이다.
감관으로부터의 속박을 떠나서 무아, 무심의 경지에 들어가야 비로소 참 나를 볼 수 있다는 교훈을 하고자 하는데 뜻이 있다 하겠다.
육조대사(六祖大師)가 『보리의 자성이 본래 청정하니 이 마음을 그대로 쓰면 바로 그것이 부처를 이룬 것이다. (菩提性本來淸淨但用此心直了成佛)』한 말씀은 六근(根)의 六적(賊)을 멀리 여의고 청정한 마음을 이루는 요체를 밝힌 것이다.
그래서 탐, 진, 치를 버리고 일체의 번뇌를 초월한 무루(無漏)의 경지에서 절대 청정에 도달하여 고요한 물의 거울(明鏡止水)과 같은 마음이 되며 깊고 그윽하여 헤아리기 어렵고(幽玄), 신묘하고 미묘(奧妙)하고 자유자재한 경지, 생사해탈의 범부를 뛰어넘는 장부(出格丈夫)가 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과 뼈를 깎는 무서운 정진을 하라는 교훈의 말씀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사람은 옛 사람 지금 사람이 있지마는 불법의 진리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다. 사람에게는 어리석고 (총명하여) 슬기로움이 있어도 도에는 융성하고 쇠퇴하는 법이 없다. 설사 부처님이 계신 때라 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불법: 진리)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무엇이 도움이 되겠는가? 또 아무리 말세라도 불법의 가르침을 받들고 행한다면 무엇을 근심할 것이요.
[뜻풀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세상의 사상조류는 변할 수 있지만 사람의 근본마음인 본래 청정(淸淨)한 부처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다. 본래 진리인 도에는 멀고 가까운 것도 없고 길고 짧은 것도 없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그 자체는 변화하지도 않고 다른 무엇에 의하여 파괴되지도 않는다』함은 이것을 이르는 것이다.
[해설(解說)]
사람은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다. 그것은 현상계는 변천하여 마침내 쇠멸해 버리고 사람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여 육신은 날로 죽음을 향해 걸음걸음 시시각각 달려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육신과 우주의 삼라만상은 모두가 상대세계인 인연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희비애락 같은 감정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감각하고 지각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정신생활도 그것은 상대세계의 생사 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초월한 차원인 생각 이전 우주 이전 시간, 공간이 벌어지기 이전의 본체적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절대 평등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여일관(眞如一貫), 진여불변(眞如不變)이라 하는 것이다.
또 사람에게는 지능이 낮은 어리석은 사람이 있고 지능이 뛰어나고 총명하며 슬기로운 사람이 있지만 대 진리는 융성하고 쇠퇴하는 생멸의 차원을 초월한 것이다. 따라서 비록 부처님이 계신 때라 하더라도 그 교법(敎法)을 순종(順從)하고 마음을 닦고 계행을 잘 행하지 않으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반대로 설사 말세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불법을 잘 믿고 실천하여 나가면 어찌 해로움이 있을 것이며 깨달음을 얻어 범부를 뛰어나고 해탈을 증득하지 못하랴? 하신 것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훌륭한 의사와 같이 병든 사람의 병을 진찰하여 알아서 그에 맞는 약을 주지만 복용하고 복용하지 않는 것은 의사의 책임(허물)이 아닌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또 친절한 길잡이와 같이 좋은 길로 인도하지만 그 말을 듣고 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인도하는 사람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자기도 좋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이 법(경)에 다 잘 갖추어 있으니 내가 오래 (이 세상에) 머물러 있다 해도 다시 (별다른) 이익 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이후로 나의 여러 제자들이 이 법을 널리 전하고 행하면 곧 여래의 법신은 항상 머물러 있어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은 진리를 안다면 다만 스스로 도를 닦지 못한 것을 한탄할지언정 어찌 말세임을 근심 하리오?
[뜻풀이]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병에 따라 약을 주어 고액(苦厄)을 면하게 하나니 부처님은 마치 양의(良醫)와 같고 경에 말씀하신 법(經法)은 약과 같으니라. 병 때문에 의약이 있듯이 병이 없으면 곧 약도 없나니라』한 것 같이 고액을 면하게 하는 약을 조제하여 주지만 당사자가 그 약을 먹고 시키는 대로하지 않는 것은 의사의 허물(책임)이 아니다.
또한 해탈의 피안(彼岸)으로 잘 가도록 인도하여도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과오는 아니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수행을 쌓아 그것으로 좋은 이득을 받는 것과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자기의 이득뿐만 아니라 많은 유정을 구원하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리이타(自利利他)이다.
이것은 법(부처님이 설하신 진리인 경)에 잘 갖추어져 있으니 내가 머물러(육신불) 있을 필요가 없으니 지금부터 제자들이 불법을 잘 전파시키고 또 잘 행하면 여래의 법신이 항상 머물러 있어 떠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만일 이와 같은 것을 알았다면 스스로 도를 닦지 못하는 것을 한탄할지언정 어찌 말세라고 근심하겠는가? 오직 금강석 같은 믿음과 수행이 있으면 된다하는 것이다.
[해설(解說)]
『가르침을 듣는 사람은 설법하는 선지식을 대할 때 의왕(醫王)을 대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자기를 고통에서 건져줄 것으로 생각해야 하며 그 가르침의 진리에 대하여 감로인듯 제호인듯 생각해야 한다』고 대집경에 말씀했다. 그것은 진리의 가르침을 들은 공덕이 생사에서 벗어나는데 있어서 으뜸가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착한 말, 부드러운 말을 남에게 하여 주는 것은 베나 비단으로 남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보다도 낫다고 한다. 좋은 말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정진해야 한다. 행구도자부지(行衢道者不至)란 말은 이것을 가리킨 말이다. 그래서 애써 전심하여 진여삼매를 닦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마땅히 열 가지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기신론에 있다. 이 뜻, 이 힘이 남에게 미칠 것이니 어찌 말세라고 근심 하겠는가 오직 믿고 바르게 닦음에 있는 것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바라노니(伏望) 그대는 결단 심을 가지고 뛰어나고 탁월한 뜻을 발휘하여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고 도리에 어긋난 소견을 없애버리고 진실로 생사의 큰일을 위해 조사(祖師)의 화두(공안)를 들어 의심(참구: 궁구)하여 큰 깨달음을 철칙으로 삼을 것이요, 스스로 가볍게 생각하고 절대로 물러서서는 안 되는 것이다.
[뜻풀이]
바라노니 일단 결심한 것을 과단성(果斷性)있게 처리하는 결연(決然)한 굳은 뜻을 일으켜 가지고 특별히 뛰어난(特達) 생각을 펴서 모든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이 되는 인연(因緣)을 끊어버리고 뒤바뀐 전도(顚倒)된 소견을 없애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해 조사의 화두를 잘 의심하여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야 하나니 부디 경솔하게 수행 정진하여 깨달음을 이룰 마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해설(解說)]
굳은 신앙심과 뛰어난 포부를 가지고 인연을 끊고 잘못된 소견은 없애 버려라 하는 것은 사람이 옳은 믿음에 안주(安住)하면 견고한 마음을 얻고 도의 뿌리를 키워서 파괴되지 않는 공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삼독의 열을 없애며 악업의 때를 씻어 낼 수 있어서 뒤바뀐 생각을 바로잡아 생사를 뛰어 넘어 진여에 합일하여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를 얻을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에,
『믿음이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信爲道元功德之母)』라 했다.
이와 같이 도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불법은 첫째 믿고 이해하고 실천 수행하는 것을 통해서 도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을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안(公案) 즉 화두(話頭)를 의심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공안(公案)이란 본래는 공부안독(公部案牘)의 약칭으로 쓰인 말이다. 곧 정부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국민이 꼭 준수할 사안(事案)과 같이 선가(禪家)의 공안도 이와 같아서 고래조사(古來祖師)들이 정한 말씀, 언구(言句), 문답 등 불조(佛祖)가 기연(機緣)에 서로 계합(契合)하여 종강(宗綱)을 개시(開示)한 인연을 수록(收錄)한 것을 말한다.
고측(古則) 화두(話頭)라고도 하여 선종의 큰 스님 네가 심지(心地)를 밝게 깨달은 기연(機緣) 또는 학인을 인도하던 사실을 기록하여 후세에 공부하는 규범이 된 것, 선문에서 수양하는 데는 조사스님 네의 언어나 행동을 모범으로 하여 학인의 깨치고 못 깨친 것을 판정하며 또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범치 못할 엄격한 권위를 가진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므로 조사의 관문이라고도 한다. 화두를 들어 의단이 커져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칠 수 있는 것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오직 이 말법시대에 부처님이 가신지 오래여서 (사람을 미혹케 하는) 삿된 것은 (믿어) 성하고 불법은 약해져서 사악하고 오만불손한 무리들이 많아져 남을 옳게 인도하여 주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남을 그르치는 이는 많고 슬기로운(智慧) 사람은 드물고 어리석어 미혹에 빠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기도 도를 닦지 않으면서 또한 다른 사람까지도 괴롭히고 있다.
[뜻풀이]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천년을 정법, 다음 천년을 상법(象法), 다음의 만년을 말법(末法)이라고 한다. 이때는 교(敎)만이 남고 행(行)과 증(證)이 없는 시기이다.
이 말법시대에 와서 부처님 또는 지덕이 높은 보살과 같은 성인이 가신지 오랜 세월이 흘러서 중생을 미혹시키는 삿된 외도인 마력(魔力)은 성해지고 불법은 쇠해지면서 간사하고 오만불손한 요사한 무리만 날로 많아져서 사람들이 참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자는 적고 삿된 사람이 많아져서 나쁜 사람이 되게 하는 경우는 많게 된다. 또 학덕을 겸비하여 슬기로운 사람은 거의 없고 탐, 진, 치에서 허덕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런 형세라 자기만 도를 닦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해설(解說)]
『뒤로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믿음을 얻어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고 경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본심을 항상 지니고 성품을 다스리는 사람은 여래의 집에서 살게 된다.』고 화엄경에 말씀한 것처럼 신심이 굳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 속에서 계를 지키면서 생활하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살아가는 사람은 산 속에서 수도하는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고 보생 경에도 말씀하셨다. 이것은 깊이 유념할 바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인 순성이면 천지가동(天地可動 : 사람이 한번 정성을 모으면 천지도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이 한군데 집중하여 온 정신을 쏟으면 불가능이 없다)이란 말도 있다.
[본문번역(本文飜譯)]
무릇 도에 장애 되는 인연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대가 길을 잘못 들까 염려되므로 내 좁은 지견으로 열 가지 문(진리를 깨쳐 드는 문)을 가려내 그대에게 경계하여 채찍질하게 하니 그대는 믿고 지녀서 추호(한 가지)도 어김이 없기를 진심으로 빌고 또 비는 바이다.
[뜻풀이]
도에 장애 되는 것은 탐욕, 성내는 것, 도리를 모르는 것, 사제의 도리에 대해 의심하는 것, 남의 바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생물을 해치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마음, 남을 속이는 것, 거짓말하는 것, 인색함, 질투, 더럽혀진 마음 등 다 말할 수 없다.
그대가 이런 장애로 길을 잘못 들까 염려되어서 내 지견으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열 가지를 제시하니 그대에게 경책이 될 것이니 잘 믿고 지켜서 추호도 어긋남이 없기를 간절히 비는 바이다.
[해설(解說)]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痴), 자만(慢), 의심(疑)이 어지럽게 뒤덮여서 괴로워함(惱), 해침(害), 속임, 거짓(妄), 아낌, 질투(嫉)로 오염된 마음(染心)을 일으키면 이것들이 진여를 덮어서 번뇌가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지혜(佛智)와 해탈의 청정한 믿음을 깊이 일으켜 퇴전치 않으며 믿음으로 지혜의 뿌리가 생겨나도록 하면 이는 바르게 배우는 사람의 수행하는 길이 되므로 이 등불이 되는 법문[진리를(法) 깨쳐 들어가게(門) 하는 말]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하는 것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게송(偈頌)으로 말하노라.
미련하여 배우지 못하면 교만만 늘고 어리석어 도를 닦지 못하면 아상 인상만 커지네, 든 것 없이 거만한 건 주린 범과 같고 무지하고 방탕함은 넘어진 원숭이로다 삿된 소리와 마구니의 말은 곧잘 들어도 성현의 가르침에는 뜻이 없구나. 바른 일의 인을 심지 못한 그대 누가 건지랴 길이 악도에 빠져 고(苦)에 얽혀 있게 되네.
[뜻풀이]
경·론 가운데 부처님의 사상을 함축하여 시구(詩句)로 표현한 것으로써 게송(偈頌)으로 말한 것이다.
미련하여 마음을 닦지 못하면 겸손하지 못하고 뽐내어 방자한 교만만 늘어가고 과거로부터 무한히 계속되고 있는 무지인 어리석음(痴)으로 닦음이 없어 나다 사람이다 하는 상(我人相)만 늘어가고, 속은 텅 비(깨달음이 없이)어 마음은 욕심만 들어있어 굶주려 허덕이는 범과 같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게으름만 부리고 방일(放逸)한 모습은 마치 실성한 원숭이 같다.
그릇된 말인 사언(邪言)과 마구니의 말(魔語)만 받아들이고 성인(聖人)의 가르침인 성교(聖敎)와 어진 이의 글에는 뜻이 전혀 없으니 바른 일에 선근의 인이 없는 그대는 누가 건지나? 길이 악한 과보를 받아 태어나는 곳 지옥, 아귀, 축생등인 악취(惡趣) 곧 악도에 떨어져 고에 얽혀 있게 되는 것이니 스스로 닦지 않으면 구제될 길이 없음을 이른 것이다.
[해설(解說)]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행을 귀히 여기고 수행하지 않음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직 애써 수행하면 비록 아는 것이 적다 하더라도 깨달음에 먼저 들어간다』하였으므로 중생의 진여법이 본래 체성은 공적(空寂), 청정하나 끝없는 번뇌의 더러움에 뒤덮여 있는 터이므로 설사 사람이 진여(眞如)를 생각한다 해도 만족할 수 없고 적절한 방법에 의해 갖가지로 닦지 않는다면 역시 청정해지지 않는 것이라 더러움이 무량무변(無量無邊)하여 온갖 것에 두루 미치고 있는 까닭에 온갖 선행을 닦아 그것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바른 선법을 수행한다면 자연히 진여 법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에 불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무착이 있느니라.
열 가지란 온갖 세계에 집착이 없으며, 온갖 중생에 집착이 없으며,
온갖 사물에 집착이 없으며, 온갖 행동에 집착이 없으며,
온갖 선근에 집착이 없으며, 온갖 생(生)을 받는 곳에 집착이 없으며,
온갖 원(願)에 집착이 없으며, 온갖 수행에 집착이 없으며,
온갖 보살에 집착이 없으며, 온갖 부처님에 집착이 없음이다.
만약 보살들이 이 도리에 편안히 머물면 온갖 중생상을 속히 뛰어넘어 최고의 청정한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본문번역(糞門飜譯)]
첫째는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멀리 하는 것이니, 스스로 밭 갈고 씨 뿌려서 먹고 입을 때까지 사람이나 소등의 공로가 많고 클 뿐 아니라 또 벌레, 날짐승, 물고기 등의 생물이 따라서 피해보는 것도 한량없다. 남을 수고롭게 하여 나를 이롭게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어찌 다른 생명을 죽여서 내 몸만 살려 할 수가 있겠는가.
농부들도 늘 의식이 넉넉지 못하여(흉년) 추위로 고생을 겪고 베 짜는 아낙도 몸을 가릴 옷이 없는 형편인데 하물며 나는 일을 아니하고 놀고 지내고 있으면서 춥고 배고픔을 탓하겠는가.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은 마땅히 은혜만 무거워 도를 이룸에 손해되고, 떨어진 옷을 입고 채식(거친 음식)을 먹는 것은 반드시 시주은혜가 가벼워서 도를 이룸에 유익하나니, 공덕을 쌓고 금생에 이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도 소화할 수 없는 것이다.
[뜻풀이]
밭갈이고 씨 뿌려서 먹고 입게 될 때까지 사람과 소의 공로가 많고 클 뿐 아니라, 또한 몸이 옆으로 되어 있는 생물(生物), 곧 벌레, 날짐승, 물고기 따위인 여러 생명들이 죽고 피해를 입는 일이 한량없다.
남을 수고롭게 하여 나를 이롭게 하는 것도 감히 할 수 없는데 어찌 다른 생명을 죽여서 내 몸을 살릴 수 있겠는가?
농부들이 늘 일을 해도 굶주리고, 추운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의식이 풍족치 못한 기한(飢寒)을 면할 수 없고, 베 짜는 아낙도 몸을 가릴 옷이 넉넉지 못한데 어찌 나는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아니하고 놀고 지내고 있으면서 어찌 의식의 풍족치 못함을 말할 수 있겠는가?
좋은 의복과 음식은 내린 은혜는 크지만 도(道)를 닦는 데는 은혜가 무거워 손해가 많고 떨어진 옷을 걸치고 채식(좋지 못한 음식)을 먹어도 시주의 은혜가 가벼워 도를 이룸에 유익한 것이므로 수행공덕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금생(今生)에 이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도 빚지지 않고 삼킬 수 없는 것이다.
[해설(解說)]
적은 것으로 만족하고 많은 것을 탐착하지 않고 끝없는 탐욕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면 모든 재앙에서 멀어질 수 있다.
음식과 의복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있을 뿐이니 수행자는 모름지기 최소한의 것을 취하여 항상 버려진 누더기를 주워 만든 분소의(糞掃依: 납의)를 걸치고 단 한 벌 낡은 바루를 지니고 기름지지 않은 거친 음식을 먹으며 정진한다면 시주 은혜가 가벼워 도를 이룸에 유익하고 자기의 처지에서 만족할 줄 모르고 오직 더 많은 것을 구하기에 급급하면 죄업만 키우는 결과가 될 것이니, 현재의 생활에 늘 만족하기를 염(念)하고 가난에 안주(安住)하여 도를 지키는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것을 수행인의 삶의 기본자세로 삼아야 한다.
소욕(少欲)은 쾌락(快樂)이요, 지족(知足)은 최상의 부귀(富貴)니 이를 지켜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배부르고 등이 더우면 五욕 본능에 빠져서 무상을 생각할 줄 모르고 구도의 발심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며, 특히 수행자는 몸과 마음의 번뇌와 싸워서 이기는 고행수도가 수도자의 자세인 것임을 강조한 훈계라 하겠다.
[본문번역(本文飜譯)]
게송(偈頌)으로 말하노라.
풀뿌리와 나무열매로 시장기를 달래고 떨어진 나무와 풀 옷으로 몸을 가리고 들 가운데 노는 새와 푸른 구름을 벗 삼아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에서 남은여생을 보내노라.
[뜻풀이]
풀뿌리(菜根)와 나무 열매(木果)등 시주 은혜가 가벼운 음식으로 요기하고 나무 잎사귀로 엮어서 옷을 만들어 몸을 가리고 들에 사는 학과 푸른 구름(靑雲)을 벗(伴侶)삼아 높은 산(高岑) 그윽하고 깊은 골짜기(幽谷)에서 남은여생(殘年)을 보내노라.
[해설(解說)]
풀뿌리 나무열매(菜根木果)를 먹고 수도를 하면서 탐(貪),진(瞋), 치(痴)를 버리고 청정한 것을 구하는 마음이 믿음의 길이니 신심(信心)은 씨요, 고행은 단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마음을 제어(制御)하여 물욕을 떠나 모든 번뇌를 버린다면 해가 어둠을 없애는 것 같고 마음이 한곳에 머물러(定) 모든 의혹을 떠나면 청정함이 진금(眞金)과 같아질 것이다. 이것이 안락이니 곧 진여(眞如)의 마음과 합일하게 되는 것이니, 탐심은 이것을 장애하므로 탐착함이 없는 청정심으로 수행하라 한 것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둘째는 자기재물은 아끼지 말고 남의 재물은 탐내지 말라.
삼도(三途)의 괴로움에서는 탐욕이 첫째가 된다. 여섯 가지 수행가운데서 보시(布施)가 으뜸이요 인색하고 (남의 것)을 탐내면 바른길로 가는 것에 막히게 된다. 자비로 베푸는 보시는 반드시 악한 길로 가는 것을 멈추게 한다. 가난한 사람이 와서 (재물을) 달라고 빌면 비록 어려운 처지라 하더라도 아끼지 말고 분수껏 도와주어야 한다.
올 때 하나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갈 때 역시 빈손으로 가는 것이니 자기가 얻은 재물이라도 애착심이 없어야 되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재물을 탐내겠는가? 만 가지 재물가운데서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오직 자기가 지은 업(業)만 따를 뿐이니 三일 동안 닦은 착한 마음은 천 가지의 보배를 쌓음이요 백 년 동안 탐 한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인 (불과한)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노라.
삼악도의 고통은 그 근원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모두가 탐욕과 애욕에서 생기는 것이니 불법은 가사와 바루로 족하거늘 어찌하여 쌓고 모아서 무명만 기르리오.
[뜻풀이]
둘째는 자기재물에 대해서는 인색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재물은 탐내지 말라.
축생·아귀·지옥의 삼악취인 삼도의 윤회로 고(苦)에서 허덕이는 것은 탐욕한 업보가 첫째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 가지 피안에 가는 거룩한 수행 곧 육도(六度)중에서는 베푸는 것(檀那 = 布施)이 으뜸이다.
자기재물은 인색하고 남의 것은 탐내는 간탐( 貪)은 바르고 착한 도(善道)를 막게 되고 자비로운 보시인 자시(慈施)는 나쁜 곳으로 가는 길을 막게 해준다.
가난한 사람이 와서 재물을 구걸하면 비록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인색하지 말고 분수대로 극진히 도와주어야 한다.
원래 사람은 태어날 때 하나도 가진 것 없이 왔고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내무일물래요 거역공수거(來無一物來 去亦空手去)이니 三도의 고는 본래 어디서 오는가? 이것은 탐욕, 애욕, 정식인 탐애정(貪愛情)에서 모두 나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사와 바루(依盂)로 사는데 만족하거늘 생, 노, 병, 사의 원인 되는 무명(無明)인 탐욕만 어찌 쌓고 있겠는가?
[해설(解說)]
중생이 중생놀음을 하게 되는 근본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중생들은 탐, 진, 치의 세 가지 그릇된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 무명이 본래 청정하고 광명, 절대인 불성을 가리어 무한한 업을 짓고 생사의 긴 바다에 윤회를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이 지옥, 아귀, 축생의 三악도에 떨어져 무한한 고통을 받고 六도 세계에 윤회하면서 생사의 바다를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무명이라고 하는 커다란 장벽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무명심이 탐, 진, 치의 三독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무명이 발동을 할 때는 특히 탐욕이 중심이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갖고 싶어 하고 구하려 하는 이 탐욕심이 있어서, 그것이 제대로 안될 때, 탐욕 심을 방해하는 대상에 대해 분노하고 진노(嗔怒)하는 마음이 진심이며,
이 탐욕심이 밝은 마음을 가리어 어둡게 만들고 어리석게 만드는 이것이 치(癡)심을 여하히 제거하느냐 하는 문제는 곧 우리의 신령하고 밝고 완전한 본심을 여하히 밝히느냐 하는 문제와 일치하게 되므로 중생의 어리석고 사납고 탐욕스런 마음을 여하히 다스리고 닦느냐 하는 것이 곧 불교의 수행 법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본문에 『三악도에 떨어지는 근원적인 원인은 탐 업(貪業)으로부터 비롯되고 중생의 무명을 벗기어 깨달음을 이루는 수행에 있어서도 탐 업을 다스리는 단나(檀那) 곧 보시가 으뜸이다』라고 한 것이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인간이 금생에 지은 선악의 업을 따라 그것이 인(因)이 되어 내생의 과보를 받게 된다. 곧 악업을 지으면 三악도에 떨어지고 선업을 지으면 하늘나라와 인간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 인과의 법이고 윤회의 법칙이다. 그런데 인색하고 탐 업을 자꾸 일으키면 결국 선업과 선도(善道)를 막게 되고 자비로 보시하면 악도(惡道)의 길은 저절로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을 보면 형편에 따라 보시하고 도와주어야 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일 등이 역시 선업을 기르는 중요한 요체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이 세상에 올 때 본래 재물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맨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지식이 아닌 깨달음으로 바로 알면 재물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뿐만 아니라 탐욕을 부리면 악업을 안고 죄악의 보(報)를 짊어지고 가게 되는 것이다.
올 때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고 갈 때도 또한 반드시 빈손으로 가게 되는 것이니,
그래서 본문에 『비록 자기가 얻은 재물이라도 애착심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남의 재물을 탐내겠는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만 가지 중에서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고 이생에서 지은 업만 따를 뿐이다』라고 한 것이다.
사람이 백년을 산다고 하지만 잠자고 놀고먹고 병 앓고 하는 날을 빼고 나면 실은 자기의 삶을 사는 시간은 얼마 되지 못한다.
더구나 자나 깨나 탐욕을 도모하고 생존경쟁의 피나는 싸움이나 하는 삶으로 일관한다면, 그런 삶은 길면 길수록 오히려 자진 三악도의 구렁으로 몰아넣는 일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래서 본문에『삼(三)일 동안 마음을 닦으면 천년을 두고 변치 않는 보배가 되고 백 년 동안 탐내서 모은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로다.』고 한 것이다.
업은 보(報)를 어기지 않고 보가 업을 어기지 않는 것 같이 선악의 보는 그림자가 형태를 따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사람이 죄업을 짓는 큰 원인이 탐욕이다.
이와 같이 악의 과보는 쇠사슬과 같아 끊을 수가 없다. 이런 줄을 깊이 알고 반성하여 탐, 진, 치 등의 三業을 지어 큰 괴로움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사람이 봄에 곡식의 씨를 심게 되면 설사 가을에 가서 익지 않으려 해도 익지 않을 수 없음과 같은 이치이다. 나무에 과일이 열리게 되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으니, 생(生), 노(老), 병(病), 사(死)의 원인을 심은 바에는 이 괴로움을 면할 수 없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이다. 또 보시가 으뜸이라 하는 것은 보시를 바르게 행하는 이라면 탐욕심이 있어서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열반경에『가난한 중생을 만나지 못하면 자비심이 생겨날 기회가 없을 것이요, 자비심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보시할 마음도 생겨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을 볼 때마다 보시하는 인연을 지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편안한 즐거움을 얻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니 소위 음식, 거승(車乘),의복, 침대, 집 등을 보시할 때에는 마음에 얽매임이 없어져 탐욕을 내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아뇩 다라 삼먁삼보리에 회향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이 전생에 업을 짓고 태어나면 선악의 업 때문에 윤회해서 고락의 보를 부르게 되는 것이니 선업이 있으면 선업 그 자체에 갖추어진 공덕으로 말미암아 좋은 업보를 받게 됨을 명심하라는 교훈인 것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그 셋째는 말을 많이 하지 말(삼가)고 몸가짐을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정중히 할) 것이니 몸가짐을 가벼이 하지 않으(정중히 하)면 산란한 마음이 가라앉아 선정을 이루게 되고 말을 많이 하지 않으(조심해서 하)면 어리석은 듯하나, 도리어 지혜롭게 되는 것이다.
참 모습은 말을 떠남에 있고 진리는 움직임이 없다.
입은 화의 출입구이니 반드시 엄격하게 지켜야하고 육체는 재앙의 근본이니 마땅히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라. 자주 나는 새는 그물에 갑자기 걸리는 재앙이 있고 멋대로 다니는 짐승은 화살에 다치는 재앙이 없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설산에 계시며 육년 동안 앉아서 움직이지 않으셨고 달마선사께서는 소림굴에 계시며 九년을 말없이 앉으셨으니 후세 참선하는 자가 어찌 옛 성인(聖人)의 자취를 따르지 않으리요.
게송으로 말하노라.
몸과 마음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고 싸리 떼 암자에 묵묵히 앉아 왕래를 끊으니 적적하고 고요하여 아무 일 없이 다만 자기 마음의 부처에 귀의하노라.
[뜻풀이]
그 세 번째는 입으로 필요 없는 말을 아니 하고 몸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몸을 신중하게 가지면 마음에 잡념이 사라지고 청정하게 되어(息亂)선정에 이르게 되고, 말이 적고 유익한 말 이외에 말을 하지 않으면 남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도리어 그 사람이 지혜로운 것이다. 불변의 이치이고 만물의 이성인 실상(實相)은 말을 떠난 것이요 진리는 확고부동한 것이다.
입은 화의 출입구(門)가 되므로 엄격히 조심해야 한다.
몸은 재앙의 근본이 되므로 행동거지를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아무 때나 그저 자주 날아다니는 새는 그물에 얽히는 화를 당한다. 함부로 돌아다니는 짐승은 화살을 반드시 맞게 된다. 이런 연유로 세존께서는 설산에 계시면서 육년 동안 좌선하였으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달마대사가 중국 하남성 동봉현 서북쪽에 있던 숭산에 있는 소림사에서 석벽을 향하여 묵언하고 앉기를 九년간이었다. 이런데 어찌 후세 참선하는 사람들이 이 옛 자취를 따르지 않겠는가? 하는 뜻이다.
[해설(解說)]
신심명(信心銘)에도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도리어 상응하지 못한다(多言多轉不相應)라"고 했으니 몸가짐은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몸이 단정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을 경망하게 움직이면 마음을 붙잡아 두거나 제어하기가 어려우며 마구 날뛰는 사나운 코끼리 같으며 시시각각 움직여서 번갯불과도 같으며 까불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원숭이와도 같으니 바로 온갖 악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쇠를 녹여서 불순물은 제거하고 난 다음에 그릇을 만들면 그 그릇이 좋아지듯이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도 마음의 더러움을 제거하면 그 마음과 몸가짐이 자연히 청정하게 된다. 몸과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 곧 번뇌이다. 그러나 그 번뇌를 끊어버리겠다고 하여 단번에 억지로 끊어 버리고자 하면 오히려 마음은 더욱 산란해진다.
또 선정(禪定)에는 다하여 아무 것도 없는 공(空)한 가운데 깊이 잠겨 생각도 없고 번뇌도 없는 소소영령한 적멸(寂滅)이 이런 것이며 여기에 있었구나 하고 참으로 좋다고 생각하거나 국집하게 되면 이것은 참된 적멸이 아니며 선(禪)의 참모습(眞面目)을 깨달아 보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열반경에 이르시기를 "생(生), 사(死), 고(苦) 그 어느 곳에도 머무르지 말아야 참 열반을 얻는다."고 했다. 몸가짐에 있어서 경솔하게 움직이고 함부로 입을 여는 것은 진리에 접근하는 태도가 못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설산에서 육 년 동안이나 삼매(三昧)에 드셔서 움직이지 않으셨으며 달마대사께서도 숭산의 소림굴에서 九년 동안이나 면벽하여 바깥세상을 등지고 묵언 하셨으니 이런 점을 본받아 오직 말을 삼가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붙들어서 선정을 닦음으로써 마음의 참 부처를 스스로 증오하라한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함축하여 읊으셨다.
[본문번역(本文飜譯)]
넷째는 착한 벗을 친하고 사악한 벗은 사귀지 말라, 새가 쉬려고 하면 반드시 숲을 가려서 앉고 사람이 학문을 구하고자 함에는 이에 좋은 스승과 벗을 가려야 하는 것이다.
새가 숲이 좋은 곳에 있는 나무 위에 앉아 있으면 편안하고 고명한 스승과 슬기로운 벗을 가리면 그 학문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어질고 착한 벗을 섬기기를 부모를 봉양하는 듯이 하고 악한 벗을 멀리 여의기를 원수처럼 해야 한다.
학은 까마귀 같은 새와는 사귀지 않으니 대붕이 어찌 뱁새를 벗하여 사귈 마음이 나겠는가?
소나무 가지 속에서 자라는 칡은 천길 이나 곧게 솟아 올라가고 띠 풀이 우거진 속에서 자라난 나무는 석자를 넘지 못한다.
어질지 못한 소인배는 속히 떼어버리고 마음에 맞는 고상한 무리는 자주 가까이하여 친해야 한다.
게송으로 말하노라.
머무르거나 돌아다니거나 착한 이와 사귀고, 마음과 몸을 얽매고 있는 번뇌를 쓸어내어
망념을 모두 쓸어 앞길이 환이 열리면 한 발짝 옮기지 않아도 관문이 열리니라.
[뜻풀이]
그 넷째는 옳고 바르고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는 벗을 가까이 하고 나를 나쁜 방향으로 인도하는 벗(邪友)인 비위를 맞춰 알랑거리는 친구, 구변이 좋고 마음씀이 바르지 않는 친구, 유순한 듯 하면서 사악하고 성실하지 아니한 친구는 절대로 사귀지 말라.
새는 쉬려고 할 때 반드시 그 숲을 가려서 앉고 사람이 배움을 구할 때는 훌륭한 스승인 지혜가 널리 사물에 통하고 행업이 견실하여 마치 밀실에 등불의 빛이 창 틈을 꿰뚫어 비치는 것 같은 분을 모셔야하고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이 바르고 곧은 사람, 진실한 사람, 견문이 넓은 사람을 가까이 벗으로 사귀어서 학과 덕을 논해야 하는 것이다.
새가 우거진 숲 속에 있는 나무에 앉으면 편안하고, 훌륭한 스승과 벗을 사귀면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게 된다.
그런 까닭에 훌륭한 스승과 벗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 같이 극진하게 대우해야 한다.
학도 까마귀 같은 것은 가까이 하지 않는데 한번에 구만리를 난다는 봉황새(鵬)가 어찌 뱁새와 벗하겠는가?
소나무가지 사이에 뻗은 칡덩굴은 소나무 키 만치 곧게 솟아오르고, 잡초가 우거진 가운데 자라는 나무는 석자밖에 안되니, 소인배는 속히 떼어버리고 만족할 수 있는 고상한 사람은 가까이 사귀어 그 포부를 들어야 한다.
게송을 말하면,
행, 주, 좌, 와(行止) 언제라도 좋은 벗과 친하고 몸과 마음을 닦아서 번뇌망상을 없애라 망념을 다 쓸어내어 앞길이 환히 열리면 한 발짝 옮기지 않아도 조사의 관문(祖師關)을 뚫으리라.
[해설(解說)]
조사관(祖師關)은 조사의 경지에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뜻이니 큰 화두·공안에 의한 참선(參禪)을 통하여 조사선(祖師禪)의 도리(道理)를 터득하는 것으로 즉 확철대오 하여 선지식의 인가를 받는 것을 뜻한다. 조사는 문자(文子)나 의리(義理)에 따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교외별전의 법을 터득한 이를 의미한다.
오가종지찬요(五家宗旨纂要)에 『위앙의 종풍을 부자가 서로 이어가고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는 마음이 일치되어 말없이 잠잠하고 겉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명암이 교차되어 체용(體用)을 다 같이 나타낸다』라고 했다.
한퇴지(韓退之)가 쓴 사설(師說)에 『나보다 먼저 나서 그 도(道)를 먼저 들었다면 내 이를 스승으로 좇을 것이며 나보다 뒤에 태어났더라도 그 도(道)를 듣기를 먼저 들었다면 나는 이를 스승으로 좇을 것이다』 했음과 같이 어찌 그 나이가 나보다 많고 적음을 가릴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귀인이든 천인이든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그런 것은 따질 것이 못되며 성현의 도를 지닌 그 사람을 스승으로 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도를 구할 줄(求道)을 모르는 자식에게 지식인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승을 두면서 도(道)를 배우고 의혹을 푸는 일에는 스승을 따르고 좇지 않는다면 이는 작은 것을 취하고 큰 것은 놓쳐 버리는 결과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스승은 높은 공덕(정혜)의 소유자라야만이 그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스승은 다른 사람의 모범으로써 본받을 바가 있어야 하는데 대개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동진(東晋)의 도안대사(道安大師)는 어려서 출가를 하였는데 얼굴이 검고 못생겨서 그의 은사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았고 은사는 그를 힘든 농사일을 시켰다.
그는 삼 년 동안의 노역(奴役)을 하고 나서 은사에게 다시 가르침을 구하자 은사는 변의경(辨意 )을 주면서 밭에서 쉬는 시간에나 공부를 하라고 하였다.
비록 이렇게 공부한 그였지만 저녁이면 은사에게 책을 돌려 드리고 그 자리에서 다 암송하니 은사스님이 탄복을 하고 바로 머리를 깎아주었다.
십계(十戒)를 받고 난 그는 불도증(佛道證)선사에게 귀의했다.
그때 선사가 기특하게 여겨『기이하구나,
어린아이가 참으로 세상의 좋은 준마(駿馬)로다.
청안(淸眼)을 만나지 못해 고생만 하면서 소금 실은 수레만 몰았구나.
만약 백락(伯樂)이 아니면 천리의 준마를 드러냈겠는가?
그러므로 수행인은 삼가고 자세히 가려 살펴보고서 바야흐로 제자의 예를 갖추어야 마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식을 만나야 가져 오고 바른 가르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선생자경(善生子 )에도 스승의 길(師道) 다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학문을 배우게 하며, 지극한 기예 즉 기술을 가르치고, 배움에 민첩하게 하며, 착한 도리를 가지고 인도할 것이며, 현명한 친구와 사귀도록 할 것이다』
또 장아함경(長阿含 )에는
『첫째 불법에 의지해 조어(調御)함이요. 둘째 배우지 못한 것을 가르침이요.
셋째 그 질문을 함에 따라서 망념(妄念) 즉 잘못된 생각을 잘 풀어 줌이요.
넷째는 그 선지식(善知識)임을 행동으로 보여줌이요.
다섯째는 자기의 아는 것을 모두 가르쳐 알게 함이라』라고 참 스승의 길을 제시하였다.
벗 사이에는 세 가지 긴요한 일이 있으니
첫째 잘못이 있으면 서로 충고하여 깨우치도록 하고
둘째는 공덕 되는 좋은 일을 보면 깊이 따라서 같이 기뻐할 것이며
셋째는 불행이 있을 때 서로 버리지 않고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
이런 친구라야 참 지기(知己) 즉 벗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화엄경(華嚴經)에도
『선지식을 만나서는 싫증을 내는 법이 없으며 선지식에게 물을 때는 노고를 생각하여 꺼려하지 않으며 선지식과 가깝게 한 뒤로는 물러서지 말며 선지식을 섬기는데는 중단하거나 끊어짐이 없게 할 것이며,
선지식의 깨우침을 따라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선지식이 지닌 공덕을 의심하지 않으며, 선지식의 선법을 들을 때는 속세의 잡념을 버리는 문(出離門)을 열어 틀림없음을 작정(確定)하여,
선지식이 번뇌(세속 일)를 따르는 것(행)을 보더라도 이상하게 여기거나 불신하지 말 것이며, 선지식이 있는 곳에서 신심을 깊이 일으켜 변함이 없어야 한다』라고 했다.
[본문번역(本文飜譯)]
다섯째 삼경(6시간) 외에는 잠자지 말라.
아득한 옛 부터 도에 방해되는 일은 졸음의 마(睡魔)보다 큰 것이 없으니 하루 열두 시간(24시간) 어느 때나 또렷하게 의심을 일으켜서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끊임없이 조밀하게 돌이켜 스스로 마음을 살펴라, 한 평생을 헛되이 보내면 만겁동안 한이 따를 것이다.
덧없는 세월은 찰나이니 나날이 놀랍고 두려운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잠깐이니 한때라도 사실상 보존할 수 없다. 만일 조사관(祖師關)을 터득하지 못 하였다면 어찌 편안하게 잘 수 있겠는가?
게송으로 말하노라.
졸음의 뱀이 구름처럼 덮어 마음 달 흐리고 길가는 나그네 머뭇거리며 멈춰있네 이 가운데 보배 칼날 높이 쳐들면 구름조차 사라지고 달빛이 교교하리라.
[뜻풀이]
六시간(저녁 九시부터 새벽 三시까지의 六시간(三更이라 함)외엔 잠자지 말라.
아득한 옛적(曠劫)부터 도에 방해되는 일은 졸음의 마 보다 큰 것이 없으니 하루 열두 시간(二四時間) 가운데 또렷이 깨어서(惺惺) 의심을 일으켜 정신을 흐리게 하지 말라(不昧) 사위의(四威儀 - 行, 住, 坐, 臥)속에서 자세하고 조밀하게(密密) 광명을 돌이켜 스스로 이를 보고 사유하라.(회광반조)
한평생을 헛되게 보내면 만겁에 한(恨)이 따를 것이다.
덧없는 세월은 한순간이다. 그래서 날마다 놀랍고 두려우며 사람의 목숨은 하나의 거품 같아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생명은 항상 보전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데 어찌 조사의 관문을 뚫지 못하고서 어떻게 편안히 잠잘 수 있단 말인가?
게송을 말하면,
졸음의 독사 구름처럼 가려서(雲籠) 마음달 어둡구나, 수행인 들이 여기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니, 이 가운데 날카로운 지혜의 칼을 빼어들면, 번뇌의 구름은 흔적 없고 자성의 달빛이 교교하리라.
[해설(解說)]
잠을 자고 난 결과 피로가 회복되는 것을 살펴보면 반드시 많이 자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깊은 잠 즉 숙면(熟眠)을 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숙면을 한다면 두 세 시간만 자더라도 대부분의 피로는 회복시킬 수 있으며 일반적인 통계로 보아 네 시간만 자더라도 80%이상의 피로가 풀리어 그 이상의 잠은 일종의 꾀잠, 즉 필요하지 않은 잠으로 얕은 잠에 불과한 것이다.
옛 어른들이 여섯 시간만 자도록 마련한 제도가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특히 새벽에 일어나도록 함으로써 맑은 공기로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한데는 깊은 뜻이 숨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벽이야말로 신선한 정기가 움직이는 하루 중에 가장 귀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세속의 일을 도모하는 경우에도 아침 이른 시간에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장 건전하고 능률적이며 이상적이라는 옛 성현들의 말씀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체험으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다.
정진을 많이 하여 정신이 통일된 삼매의 경계에 들면 마치 개구리가 몇 달 동안이라도 동면(冬眠)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몸과 정신의 활동 작용이 쉬는 상태로 만들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는 일반인들이 깊은 잠을 자는 것과 다름없이 피로가 회복될 수 있으며 또한 잠을 자는 것과는 다르게 정신이 또렷하게 깨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면 정신은 또렷하게 깨어 있으면서도 몸은 깊은 숙면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나(我)라는 생각도 없이 먹고 자는 것도 잊은 채 긴 시간을 잠깐(刹那)처럼 느끼며 보내게 된다. 따라서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해서 생명이 위태롭거나 잠이 부족하여 병이 생길 염려가 없는 것이다.
또한 삼매는 얻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깊은 선정을 닦기 위해서 잠을 안자고 용맹 정진하는 것은 신체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 아니며 설사 일시적으로 해롭고 지장이 있다 하더라도 강력한 정신력을 얻고 나면 몸은 자연히 단련되며 결코 심신(心身)에 해로움이 없는 것이다.
특히 선정을 닦는 것은 삼매를 성취하는 것이고 다른 말로 하면 오매일여(寤寐一如) 즉 잠을 자는 것과 깨어 있음이 다른 것이 아닌 항상 구별이 없는 경지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초학자(初學者)들은 여섯 시간 이상 잠을 자서는 안 되며 용맹 정진하는 사람이면 잠을 몰아내고 스물 네 시간 화두에 전념하여 잠을 자지 말고 정진하라고 하셨던 것이니 속된 관념이나 일반적인 상식으로 함부로 부정적인 비판을 삼가야 함을 명심해야 된다.
옛 성인들은 선정, 곧 오매일여의 경지에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잠을 없애야 하므로 그것이 가장 큰 마장이라고 하였고, 그 수마(睡魔)를 쫓기 위해 몇 십리 길이나 되는 절벽 위에 앉아서 잠깐이라도 졸았다 하면 떨어져 죽게 되는 아슬아슬한 곳에서 잠을 쫓아가며 정진하였던 것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그 여섯 번째는 자기만 높이고 함부로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
어짊(仁)을 닦아 얻으려면 겸손하고 사양함이 근본이 된다.
벗과 친하고 벗과 화목하게 지내는데는 공경과 믿음이 으뜸이 된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인 네 가지 고집하는 상이 겹겹이 쌓여 높아지면 삼악도(三惡道)의 고해(苦海)가 더욱 깊어간다.
밖으로 나타나는 거동은 존귀한 것 같지만 안으로는 진실된 도를 얻은 것이 없으면 썩은 배와 같도다. 벼슬이 높아지면 마음을 더욱 근신하고 도가 높은 이는 뜻을 낮추어 겸손하다.
나다 사람이다 하는 산이 무너지는 곳에 함이 없는(無爲) 도가 이루어지나니 마음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은 많은 복이 돌아와서 스스로 따른다.
게송으로 말하노라.
교만은 티끌 속에 반야가 묻히고 내다 사람이다 하는 산 위에는 무명만 자라도다 남을 업신여기고 닦지 않고 늙으면 기력이 없어져 병석에서 신음할 때 한없이 한탄만 하리라.
[뜻풀이]
스스로 잘난 체하고 뽐내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어진 덕을 닦아 어진 사람이 됨은 겸손하고 사양하는 것이 근본이 된다.
친한 벗과 뜻을 가까이하고 지내는 것은 서로 공경하고 믿음을 존중함에 있다.
나다(我相), 사람이다(人相), 중생이다(衆生相), 오래 살겠다는(壽者相) 네 가지 고집(四相山)이 점점 높아지면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의 고해(三途海)가 더욱 깊어져서 밖으로 나타내는 거동은 높고 귀한 척 해도 안으로 덕이 갖춰지지 않으면 썩은 배와 같은 것이다.
벼슬이 높은 이는 마음속으로 더욱 겸허하고 도를 많이 닦은 이는 생각을 더욱 겸손하게 갖는다.
나다 사람이다 하는 산이 무너지는 곳에 연기가 되지 않은 것 또는 영원불변의 진여의 공한 무위의 도가 스스로 이루어진다.
무릇 생각을 겸허하게 갖는 자는 만가지복(萬福)이 스스로 돌아와 의지하고 머무른다.
게송을 말하면,
겸손하지 않고, 뽐내고 방자함( 慢)이 티끌 가운데 반야를 감추게 되며, 나다, 사람이다 하는 고집 때문에 우리들의 존재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십이인연(十二因緣)의 첫 항목인 생(生), 노(老), 병(病), 사(死)를 가져 오는 원인과 혹은 과거로부터 무한히 계속되고 있는 무지인 무명(無明)만 기르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불학을 업신여기면서 자기는 수행하지 않고 늙으면 의지와 힘이 없이 병들어 누워 괴롭고 불안할 때 닦지 않았음을 후회하여 한탄함을 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해설(解說)]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은 잘난 체 하지 말라고 하였다. 겸손하고 사양하는 것이 수도자의 길이다.
그러나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오직 남의 잘못은 보아도 자신의 잘못은 알지 못하며 자신의 착한 것은 알아도 남의 좋은 점은 볼 줄 모른다.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는 자는 모두가 지혜 있는 사람이 아니며 자신이 밝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오류가 많다.
또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자는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지혜를 얻을 것이나 자신이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가운데에도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발심하여 불도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아상(我想),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첫째, 몸뚱이 즉 육신을 나(我)라고 하는 것, 자기의 얼굴이 어떻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등 인연으로 구성된 심(心) 신(身)임을 모르고 마치 실체(實體)로 육신이 나라고 잘못 생각하여 집착하는 것이다.
둘째, 사람이라는 상(人相)으로, 사람이므로 만물의 으뜸이라고 교만한 생각이다.
셋째, 중생상(衆生相)은 부처가 아니고 중생이라는 것 따라서 다른 사람보다 잘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 또는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생각, 좋은 일은 나에게 돌아오게 하고 나쁜 일은 남에게 돌리려는 생각을 말한다.
넷째, 수자상(壽者相)은 수명이 있어 조금이라도 오래 살려는 생각, 다시 말하면 영원한 자기의 본모습을 몰라서 "일정한 기간 동안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강경에 『보살이 내라, 사람이라, 중생이라는 생각, 그리고 오래 살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이는 곧 보살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이 생각이 크면 클수록 상대적인 차별상에 끄달려 나(我)와 사람이라는 생각이 앞을 가리어 절대 평등 원융한 마음의 참 모습을 계합하지 못한다.
이 네 가지 생각이 없어지면 나와 남이 둘 아님을 깨우쳐 자신은 낮추고 오직 남을 위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므로 자신만 편한 것이 아니라 남까지 편하게 하는 참된 봉사를 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도 나와 남이 없는 진리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큰 복 밭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비록 물 속에 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맑은 물로 인하여 원래 달의 모습을 볼 수 있으나, 온갖 사물이 일시적인 연(緣)으로 생겼다 멸하는 것이어서 헛것에 불과한 것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잘못 분별하여 모두가 실체(實 )인 듯 착각하는 것이다. 유마경(唯摩 )에도 『현상(現相)은 유(有)도 아니며 무(無)도 아니요, 일체가 인연에 의하여 생 했다 멸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본문번역(本文飜譯)]
일곱째, 재물과 여색을 볼 때 반드시 올바른 마음으로 대하라. 몸을 해치는 동기는 여색보다 더한 것이 없고 도(道)를 상하는 근본은 재물에 미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계율을 만드시어 재물과 색을 엄하게 금하시기를 『여색을 보거든 호랑이나 뱀을 본 것처럼 하고 금이나 옥이 몸에 닿으면 나무나 돌처럼 생각하라』하셨다. 비록 어두운 방에 혼자 있더라도 귀한 손님을 대한 것처럼 하고, 보거나 안보거나 한가지로 하여 안팎으로 다르게 하지 말라. 마음이 깨끗하면 선신(善神)이 반드시 보호하고 여색을 그리면 모든 하늘이 용납하지 않으리니, 선신이 보호하면 반드시 어려운 곳에서도 어려움이 없으며 하늘이 용납하지 않으면 편안할 곳도 편치 않으리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이를 탐내고 욕심부리면 염라대왕이 잡아다가 가두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아미타불이 연화대에서 반가이 맞아주며 쇠사슬차고 지옥가면 천 가지 고통에 얽매이고 연화 배를 타고 나(生)면 만 가지 낙이 오도다.
[뜻풀이]
재물과 여색을 보거든 반드시 바르고 어지럽지 아니한 생각을 가지고 대하여야 하는 것이니, 몸을 해치는 동기가 되는 것은 여색을 좋아하는 것이 으뜸이요, 도를 상하는 것은 재물욕에 미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출가인(수행인)이 지켜야 할 율법을 정하시기를 재물을 탐내고 색을 가까이 하는 것을 엄중하게 금하여 아름다운 여자를 보거든 범과 뱀을 본 것 같이 멀리 하고 금이나 옥이 몸에 닿으면 나무나 돌처럼 생각하고 뜻을 두지 말라 했다.
어두운 방에 앉아 있더라도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신중히 하여 남이 보거나 안보거나 변함없이 하여서 안팎을 한 결 같이 해야 된다.
이와 같이 마음이 깨끗하면 선신이 반드시 보호하여 주고 색을 그리면 모든 신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선신이 가호하면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어렵지 않고 선신들이 용납하지 않으면 편안한 곳에서도 편안하지 못하게 된다.
게송을 말하면,
이익을 탐내어 욕심을 부리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쇠사슬로 묶어서 지옥으로 끌어들여 만 번 죽고 만번 사는 고통을 받게 하고 청정하게 마음을 닦으면 아미타불이 극락세계에서 반가이 맞이하여 고통이 아예 없는 즐거움을 받게 되니, 쇠사슬에 묶여서 지옥에 가면 천 가지 고통이 겹치고, 연꽃 배에 올라 나는 곳은 만 가지 낙을 누리게 되네.
[해설(解說)]
수도하는 사람에게 재물과 여색은 절대 삼가지 않으면 안될 요건인 것으로 보살만행(菩薩萬行)을 할 때는 남을 위해서 목숨까지 기꺼이 바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탐욕을 내어 재물에 마음을 둘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은 것으로 만족해하고 많은 것을 탐하지 아니하며 또 재물을 축적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탐심이 없어지므로 온갖 재앙에서 멀어지고 근심 걱정에서 멀어지며, 여러 가지 괴로움을 여의게 되며 애욕이 없어지면 능히 온갖 번뇌를 모두 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여덟째, 세속 사람을 사귀어 남을 미워하지 말라. 마음속에 있는 애욕을 여읜 것을 사문(沙門)이라 하고 세속 인연을 집착하지 않는 것을 출가(出家)라고 한다.
이미 애증을 끊고 속세일 을 떨쳐 버렸으니 또 어찌 다시 속된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놀겠는가?
속된 것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탐욕이 많아 흉한 것이니 탐욕이 많아 흉한 까닭으로 본래 도의 마음이 아닌 것이다.
인정이 짙고 두터우면 도심이 옅어지는 것이니 인정을 냉정히 물리치고 길이 생각하지 말라. 만일 수행(출가)한 뜻을 등지지 않으려면 고요한 곳으로 가서 묘한 뜻을 궁구(의심)하라.
한 벌의 옷과 한 벌 발우(그릇)로 인연과 인정을 끊고(집착하지 말고) 굶주리고 배부름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無心) 도가 스스로 높아지는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노라
남을 위하는 일 작은 좋은 일이라도, 생사에 윤회하는 인연이 되나니,
솔바람 불어오는 밤 덩굴 밑에 걸려 있는 달빛을 바라보며, 청정한 마음으로 길이 조사선(祖師禪)을 닦으라.
[뜻풀이]
세속 사람을 사귀어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지 말라. 마음 가운데 있는 사랑의 욕망을 여윈 것을 승려라 하고 세속 인연을 집착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 한다.
이미 애욕을 끊어 버리고 집착을 뿌리쳐 버렸는데 또다시 어찌 속된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놀 수 있겠는가. 세속을 그리워 사모하여 탐욕이 많고 흉한(욕심에 물든) 사람은 도를 구하는 마음(道心)이 없는 사람이다. 인정이 짙고 두터워도 도를 구하는 마음이 옅어지니 인정에 끄달려 번뇌를 일으키게 되니 냉정히 물리치고 길이 생각하지 말라.
만일 발심한 뜻을 저버리지 않으려면 고요한 곳에 가서 깊은 뜻을 찾으라. 인정에 집착하지 말고 욕심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도(道)는 자연히 높아질 것이다.
게송을 말하면,
남을 위하는 것도 작은 선행일지라도 모두 생사에 윤회하는 인이 되어 그 연으로 과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솔바람 불어오는 밤 솔 덩굴 밑에 비치는 달빛(맑고 청정한 마음 달)을 바라보며 청정한 마음으로 화두(祖師禪)를 길이 참구하라.
[해설(解說)]
수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는 사랑이나 미움, 남자, 여자 혹은 아내니 자식이니 하는 등의 애증과 분별 심을 끊어 없애야 한다.
이런 생각이 남아 있으면 번뇌가 끊어지기 어렵고 마음의 고향 즉 본성(本性)을 찾아 생사 해탈을 성취할 날은 멀 것이며 따라서 발심의 본의가 퇴전하게 되기 쉽다.
설사 세속에 있으면서 남을 위하여 재산과 생명을 다 바쳐서 온갖 봉사활동 자선사업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복을 짓는 것에 불과하고 그래서 닦은 복은 어느 때인가 모두 받게 되어 업(業)을 따라 고해의 세계로 윤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사윤회의 씨앗이 되며 생사 번뇌의 고해를 뛰어 넘기 위해서는 오직 조사관의 한 길을 뚫는데 전심 전념하는 것이 절대 지상의 사명인 것이다.
발심수도란 속된 욕심과 미련을 끊고 오직 마음 공부에 전념함으로써 부모 형제와 스승, 친구, 처자 권속과 국가 사회 등 일체 중생의 무거운 은혜를 참으로 갚을 수 있는 길을 찾자는 것이다.
열반경에
諸行無常이니 是生滅法이라 生滅滅己하면 寂滅爲樂이니라
『모든 것은 덧없는 것, 생 하면 멸하는 것이라 나고 없어짐이 다하면, 적멸의 고요함이 참낙이니라』
했고 또 법구비유경 에는
『재물이라 자손이라 급급하여도, 나 또한 나 아닌데 그 어찌 걱정이랴. 여름 겨울 머물 곳 각기 지어서 생각은 많으나 앞길은 몰라라.
어리석고 지혜로운 것, 스스로 알면 우(愚)를 지(智)로 바꾸나 어리석어도 이를 모르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미련한 일인 것이니라』라고 했음이 다 그런 뜻의 교훈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아홉째는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좋고 나쁜 말을 듣더라도 마음이 동요함이 없어야되니 덕이 없는데 남의 칭찬을 받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잘못이 있어 비방을 받아도 진실로 기뻐하면 잘못을 알아서 반드시 고칠 것이요, 부끄러움을 알면 수도하는데 게으름이 없을 것이다.
남의 잘못을 말하지 말라.
결국에는 반드시 내 몸에 해로움이 온다.
남을 해롭게 하는 말을 듣거든 내 부모를 헐뜯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생각하라.
오늘 아침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하지만 딴 날에는 반드시 내 허물을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해서 모든 것이 허망한데 헐뜯고 칭찬하는 것을 어찌 근심하고 기뻐하리요?
게송으로 말하노라.
낮에는 남의 잘못과 좋은 점을 끄집어 말하고, 밤이면 혼미하여 잠에 빠지니 이런 수행(출가)은 한갓 빚만 지는 것일 뿐이니 반드시 삼계를 벗어나기 어려우리라.
[뜻풀이]
아홉째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하거나 생각지도 말라.
비록 남의 좋고 나쁜 것을 보거나 들었더라도 마음 가운데 흔들림이 있거나 흥미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덕이 없고 별로 잘한 것도 없으면서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것을 참으로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잘못이 있어 다른 사람으로부터 욕하고 헐뜯음을 들을 적에 진심으로 뉘우치되 원망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해서 반드시 잘못을 고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부끄러움을 안다면 수도하는데 게으름이 없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탓하거나 비방하는 것이 도리어 나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다. 남을 헐뜯는 말을 듣거든 나의 부모님을 헐뜯는 소리같이 생각하여 멀리할 것이니, 오늘 아침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하지만 반드시 다른 날 그가 다시 나의 잘못을 말하게 되리라. 내가 남의 잘못을 욕하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말하지 않으리요. 그러나 세상사 모든 것이 거짓이요 허망한 것일 뿐이니 남이 헐뜯고 욕한다고 어찌 부질없는 일에 근심할 것이며 또 칭찬하고 높인다고 어찌 기뻐하랴.
게송을 말하면,
날이 마치도록 남의 잘못을 입에 담아 헐뜯고 밤이면 혼미한 잠에 빠져 혼미에 떨어지나니 이런 발심수도는 (사은의) 빚만 질 뿐이요
삼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리라.
[해설(解說)]
진여(眞如)의 마음 즉 사람의 본심은 선악과 시비를 뛰어 났으며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을 여읜 것이므로 칭찬할 것도 나무랄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구름에 햇볕이 가려진 듯 자기의 본심이 무명에 가리어 알지 못하고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여 선악의 업을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고 뉘우쳐서 본성을 찾도록 힘 쓸 것이며 결코 남의 잘못을 헐뜯고 시비를 말하는 것은 마음을 닦는데 장해가 될 뿐이다.
좋은 일이거나 남이 하기 어려운 힘든 일을 하였을 지라도 결코 잘했다거나 장하다고 우쭐한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되며 어떤 대가나 보람을 생각하지 않고 행하여야 하고 남의 잘못을 보더라도 마음이 거기에 끄달려 동요하거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또 잘한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칭찬을 받는 것은 크게 좋아 할 일이 결코 아니다.
"나를 칭찬하는 사람은 나의 적이요 나의 잘못을 헐뜯는 자는 나의 스승이다" 라는 말과 같이 오직 진실한 수행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학문(學問), 다문(多聞)을 빌리지 않고도 오직 진실한 마음을 닦는 것 하나만으로도 끝없는 복덕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열째,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마음을 항상 평등하게 가지라.
애욕을 끊어 버리고 집착심을 놓아버리고자 하는 것은 일체제법이 평등하기 때문이니 친하거나 먼 것이 있으면 마음이 평등하지 않은 것이다.
비록 발심(출가)하였더라도 어찌 덕이 있다 하리요. 만약 마음속에 미워하고 사랑하는 취사선택이 없으면 어찌 신상에 괴로움과 즐거움의 성쇠가 있으리요.
평등한 성품가운데는 나와 남이 없으며, 크고 맑은 마음에는 가깝고 먼 것이 끊어진 것이다.
삼악도에 드나드는 것은 미워하고 사랑하는데 얽힌 때문이고, 六도에 오르내리는 것은 친하고 먼(생각의) 업에 묶인 때문이다. 마음이 평등한데 계합하면 본래 취하고 버릴 것이 없으니, 만약 취하고 버릴 것이 없는데 어찌 나고 죽음이 있겠는가?
게송으로 말하노라.
위없는 보리 도를 얻고자 하면 언제나 평등한 마음을 간직하라
친소와 증애를 생각하면 도는 점점 멀어가고 업은 더욱 깊어가니라.
[뜻풀이]
평등한 마음을 가지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마음에 차별을 두지 말고 평등하게 생각하라. 애욕을 끊고 집착심을 놓아버리고자 하는 것은 실상의 세계가 평등하기 때문인 것이다.
친하다고 가깝게 하고 친하지 않다고 멀리하는 마음은 평등하지 못한 것이니 비록 발심했다 하더라도 어찌 덕이 있다 하리요.
마음에 사랑하고 미워하고 버리고 취하는 것이 없다면 몸에 어찌 즐겁고 괴로움의 성하고 쇠함(盛衰)이 있겠는가? 평등한 본성인 마음은 너와 내가 없으니 큰 거울 위에 비치는 상(相)은 멀고 가까움이 없는 것이다.
지옥, 아귀, 축생의 삼도에 드나드는 것도 미워하고 사랑하는(憎愛) 것에 얽힘이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모든 것이 생사가 반복되는 여섯 가지 세계에 오르내림은 친하다고 가깝게 하고 싫다고 멀리하는 중생의 업(業)에 묶여 있는 탓이다. 마음이 평등한 경지에 계합(契合)하면 본래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가릴 것이 없어 취사선택을 할 것이 없는데 어찌 생사가 있겠는가?
게송을 말하면,
지상(至上)의 깨달음인 도(道)를 구하기를 원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도리를 깨닫고 차별함이 없이 자비를 일으키는 평등심을 갖기를 원하라. 만일 마음에 미워하고 사랑하고 가깝고 멀리하는 생각을 갖는다면, 도는 더욱 멀어지고 업은 더욱 깊어만 갈 것이다.
[해설(解說)]
불법(佛法)은 구경의 절대 평등한 경지를 말한 것으로, 공(空)함을 깨달으면 본래 생멸이 없음을 사무쳐 깨닫게 되어 마음이 스스로 편안해 지고 몸과 마음과 나와 너등 일체를 둘로 분별해 보지 않게 되어 적멸, 구경, 평등, 진실의 경지에 머물러 거기서 물러나 다시 윤회의 고통을 받음이 없게 되는 것이다.
만약 망령된 마음이 움직일 때는 곧 이런 도리를 믿고 살피고 관하여 망령된 마음에 따르지 말아야 하나니 망령된 마음만 그치면 마음 바탕이 고요하여 만덕이 갖추어지고 묘용이 무궁할 것이다.
아미타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사바세계 여러 천신이나 사람 중 아미타불의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에 세 가지 부류가 있다.
그 첫째 상근의 무리는 집을 버리고 모든 욕망을 버리고 사문이 되어 마음의 탐욕을 없애고 계를 지켜며 육바라밀을 실천하여 보살행을 닦고 오직 아미타불을 생각하여 여러 공덕을 닦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은 불·보살 성문을 뵈옵게 되고 그 목숨이 다 할 때에는 부처님께서 여러 성자와 함께 오셔서 맞이하시며 곧 칠보로 만들어진 연꽃 속에 화생으로 곧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리하여 불퇴전 지장보살이 되고 지혜, 마력, 신통이 자제하여 거처하는 보궁도 부처님의 거처와 가장 가깝게 마련되나니 이것이 첫째 부류의 왕생이니라.
그 다음 둘째로 중간 근기의 무리이니 비록 수행인(沙門)이 되어 크게 닦지는 못하였지만 항상 부처님의 말씀을 믿어서 더 없는 보리심을 발하여 마음을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함에 따라 기뻐하고 모든 계를 지키고 탑이나 불상을 세우며 스님들을 공양하고 불전을 장엄하고 등불을 단다던가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는 등의 공덕을 회향(廻向)하여 이 아미타불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목숨이 다할 때에 부처님만이 낼 수 있는 좋은 광채를 나타내서 여러 성자와 함께 그 앞에 나타나시느니라.
이리하여 부처님의 인도를 따라 극락에 왕생하게 되는데 그들 역시 불퇴전지에 들어가 공덕과 지혜가 첫째 부류로 왕생한 사람과 같게 되니라.
다음 끝으로 하근기의 무리는 많은 공덕을 짓지 못하고 위없는 보리심을 일으키지 못하였더라도 마음을 오로지 하여 지성으로 매일같이 십념(十念)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여 그 아미타불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이니라.
이런 사람은 그 목숨이 다할 때 부처님을 뵈올 수가 있고 그렇게 해서 드디어 왕생하게 되느니라.
그러나 칠보(七寶)의 집이 땅에 있을 뿐이어서 부처님의 처소와 멀고 공덕과 지혜도 가운데(둘째) 부류의 왕생자에 비해서 떨어지느니라』라고 한 깨달음의 경지를 세 가지로 구별하여 말씀해 놓았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평등심으로 온갖 악(惡)을 끊고 선을 닦음으로써만이 십지(十地)를 뛰어 넘어 절대평등한 구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번역(本文飜譯)]
주인공아 네가 인간 세상에 태어난 것은 눈먼 거북이가 망망 대해에서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나는 것 같은(아주 어려운) 일인데, 물거품같이 짧은 세상에(일생이 얼마인데) 수행을 하지 않고 게으름만 부리고 있을 수 있겠느냐?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는 더욱 힘든 일인데 이생에서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만겁이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 것이니 반드시 열 가지 항목의 계(십악)를 지켜서 날마다 부지런히 닦으며 물러서지 않고 바른 깨달음을 빨리 얻어 모든 중생을 제도하라.
나의 본래의 대원은 너 혼자만이 생사의 바다를 뛰어넘어 피안에 가는 것이 아니고 또한 널리 중생을 피안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 까닭은 너는 끝이 없는 아득한 먼 옛날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항상 四생으로 나고 죽고 하여 수없이 오락가락 하며(윤회) 모두 부모를 의지하여 태어나고 죽으니 그러므로 아득한 오랜 세월동안 부모 되었던 자가 한량없고 끝없이 많았으니 이런 연고로 보면(觀) 육도 중생이 바로 너의 여러 생도(태어나는 길)에 부모 아니 된 자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중생들이 모두 악취에 빠져서 밤낮으로 괴로움을 받고 있으니 만일 제도하지 못하면 언제 벗어나게 할 것인가?
슬프고 애닯도다, 그 통절함이 심부(심장과 5장 6부)에 까지 얽히도다.
[뜻풀이]
주인공(너를 움직이는 놈)아,
네가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은 망망한 대해에 떠 있는 눈먼 거북이가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나기보다도 더 어려운 것 같이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어렵고 또 불법을 만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을 비유한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말과 같이 이 인생이란 뜬구름처럼 짧은 순간인데 수행도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고 있는가?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불법을 만나기는 더욱 어려우니 이생에서 한번 놓치면 영원히 또 다시 만나기 어렵도다.
반드시 몸으로는 살생과 도적질과 사음을 하지말고, 입으로는 거짓말과, 이간시키는 말, 거친 말, 욕설이나 아첨하는 말을 하지 말 것이며, 마음으로는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어 그릇되고 잘못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열 가지 계법을 지키고 부지런히 닦고 물러나지 말고 빨리 진리를 깨달아 모든 중생을 제도하라.
나의 원하는 것은 너 혼자만이 생사의 바다를 뛰어 넘어 윤회의 고통을 면하는 것이 아니고 널리 모든 중생이 다같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를 위한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 것인가를 말하면 너는 시작 없는 옛부터 지금(今生)까지 항상 생물이 태어나는 그때의 종류에 따라 구분하는 것으로써 어미 뱃속에서 태어나는 태생(胎生), 알에서 깨어나는 난생(卵生), 습기에서 태어나는 습생(濕生), 과거의 업력 위에서 태어나는 화생(化生) 이렇게 법에 따라 사생(四生)으로 나고 죽고 오락가락 한 것은 모두 부모를 의지하여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먼 옛적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동안 부모 되었던 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니 이렇게 보면 중생이 업(業)에 의해서 생사를 반복하는 세계(육취)인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육도 중생이 너의 부모가 아닌 자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중생들이 악한 과보를 받아 태어나는 지옥, 아귀, 축생인 악취에 빠져 밤낮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들을 제도하지 못하면 언제 벗어 날 수가 있겠는가.
아아 슬프도다. 이 뼈에 사무치도록 절실함이 오장육부가 찢어지도록 아픈 일임을 통탄한 것이다.
[해설(解說)]
모든 번뇌의 얽매임을 끊고 벗어나는 것이 해탈 즉 깨달음이다.
나에 대한 집착 즉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식, 내 애인, 내 재산, 내 보물, 내 집 등 이런 것은 물론이고 내 육신까지도 본래 空한 것임을 깨달아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집착하지 않고 그 모든 것에도 욕심을 내어 갖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아서 마음이 그 무엇에도 끄달리지 않게 되면 자연히 저절로 그 마음이 청정해져서 해탈을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온갖 고뇌를 없애고 최상의 열반을 얻는다는 것은 곧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다』하는 것이니 깨달음의 길을 얻고자 하거든 진리를 바르게 보도록 항상 부지런히 닦고 익혀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탐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 보리심의 수행은 능히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므로 보리의 거룩한 도는 공한 것이며 끝내 고해가 아닌 상락아정의 세계에서 노닐게 마련이니 중생의 마음바탕이 맑으면 그림자가 그 속에 뚜렷할 것이다.
탐, 진, 치가 선악의 근원이니 선악의 뿌리를 끊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억제해야 한다.
우선 마음이 안정되고 또 모든 번뇌 망상에서 벗어난 다음이라야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집착을 끊고 부지런히 정진해서 마음에 가려진 무명의 때를 거두는 것이다. 마치 날씨가 흐려지면 청정하고 미묘한 빛깔을 볼 수 없듯이, 마음을 청정하게 하지 않고서는 자성 부처를 바르게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란 그 본성이 공적한 것이어서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집착할 것이 없는 것이니 내란 것이 본래 허깨비와 같아서 실체가 없는 것인데 중생이 이리 저리 생각하고 헤아려 보는 까닭에 내라는 상(相)을 일으켜 집착하므로 고락을 받게 되는 것이다.
또 마음의 작용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시시각각으로 변하여 생멸을 거듭하므로 잠시도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큰바람과 같아서 한순간에 장소를 바꿀 수도 있고, 또 등불과도 같아서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질 때에만 마음이 일어나며 번개 같아서 한 순간도 한곳에만 머물지 못하는 덧없는 것이다.
또 원숭이와도 같아서 오욕의 나무에서 꾀와 재주를 부리면서 노닐며, 화가와도 같아서 갖가지 형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하인과 같아서 여러 가지 번뇌에 혹사도 당하며, 도적과 같아서 여러 가지 공덕을 훔쳐버릴 수도 있다.
돼지 같아서 더러움 즉 오욕을 탐하여 즐기며, 꿀벌 같아서 단맛이 있는 곳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마음이 일으키는 그림자인 허망한 모습일 뿐이지 본성은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으며 달라지거나 늘고 주는 일도 없으며 크지도 작지도 않고 슬프고 좋은 것도 없으며 상주불변하며 부동한 위대하고 뛰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여 더러움에 물드는 법이 없다. 마치 저 하늘이 연기나 먼지, 구름이나 안개 따위가 뒤덮여 밝고 깨끗하지 못하더라도 그것들이 사라지면 다시 깨끗해지듯이 허공 같은 본성은 더럽혀지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본성은 청정하건만 밝은 본성을 가리는 무명에 의하여 마음이 더러움으로 덮여지는 까닭에 이 무명을 떨쳐 없애야 본성을 찾아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만약 보리심을 구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깨달은 이는 오직 중생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으뜸가는 희구한 사람임이 틀림이 없는 것이다.
더불어 세세생생 나고 죽는 가운데 태어나고 보살핌을 받은 부모가 무수하니 모든 중생이 곧 전생의 부모 아님이 없으니 따라서 모든 중생을 내가 깨달아 제도해야 할 것임을 알아 지금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겠는가?
[본문번역(本文飜譯)]
거듭거듭 너에게 바라노니, 빨리 밝고 큰 지혜를 깨달아서 신통 변화하는 힘을 갖추고 자재한 방편으로 이끌어서 빨리 파도치는 거친 세상에 지혜의 돛대 되어 탐욕의 언덕에서 나오지 못하는 어리석은(迷) 무리들을 모두 제도해야 하니라.
그대는 못 보았는가? 저 모든 부처와 조사가 모두 옛날(깨닫기 전)에는 우리와 같은 범부였었느니라. 그분들이 장부면 너도 또한 그러하니 다만 하지(닦지) 않는 것일 뿐이니 그러나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고인의 말씀에 『도가 사람을 멀리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멀리한다』하였고 또 말하기를 『내 어질고자 하면 어진 것이 될 수 있다』했으니 참으로 진실 하도다,
이 말을 만약 믿는 마음이 물러서지 않는다면 누군들 견성성불 하지 못하겠는가.
내가 이제 삼보를 밝혀서 하나 하나 그대에게 경계하였으니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범한다면 산채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니 조심조심 해야 하느니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옥토끼 오르내려 늙음을 재촉하고 금 까마귀 들락날락 세월은 빨리 오네 명리를 구하는 것 아침 이슬과 같고 이생의 고락은 마치 저녁의 연기로다. 간절히 권하노니 바른 도를 부지런히 닦아,
불과를 얻어 미혹으로 허덕이는 중생을 제도하라.금생에 이 말을 실행하지 못하면, 후세에 한탄함이 크리라.
[뜻풀이]
수없이 여러 번 거듭 그대에게 바라노니,
빨리 큰 지혜를 깨달아서 신통한 능력을 가지고 방편의 권도(도에 이르게 이끌어줌)를 마음대로 사용하여 속히 거센 세상의 물결 속에 지혜의 돛대가 되어 탐욕의 언덕에서 헤매고 있는 모든 중생을 구하도록 하여라.
보고 듣지도 못하였는가?
위로는 모든 부처님들과 조사들도 깨치시기 전에는 우리와 같은 범부이었거니 그분들이 거룩하게 뛰어난 장부라면 그대 또한 같은 장부이니 단지 수행하지 않을 뿐이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고인의 옛 말씀에『도(道)가 사람을 멀리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 자신이 도를 멀리 하는 것이다』했고 또『내가 어질(仁)고자 하면 어질게 된다』고 했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 아닌가?
"초발심시변정각"이니 곧 도를 이루고자 하는 발심이 因이 되어 구경각(果)을 이루는 것이니 因이 곧 果인 것이다. 이 말은 믿는 마음 즉 확신하는 신앙심을 잃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기의 본성을 깨달아 부처님이 될 수 있(見性成佛)는 것이다.
내가 지금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의 설법내용, 그것을 계승하는 수행자들 즉, 불·법·승 다시 말하면 불교의 교주, 교리, 교단인 삼보를 확실히 밝히고 하나 하나 예를 들어서 경계한 것이니 잘못인줄 알고서도 그 잘못(계행과 수행을 하지 않음)을 범한다면 악행을 하는 사람이니 죽어서 과보를 받을 것이다.
지옥은 근본지옥, 근변지옥, 고독지옥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근본지옥에 팔대지옥이 있어서 무간지옥, 대초열지옥, 초열지옥, 대규환지옥, 규환지옥, 중합지옥, 흑승지옥, 등활지옥으로 이중에서도 가장 고통이 크고 무서운 무간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니 어찌 깊이깊이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해설(解說)]
남을 위하여 경전의 가르침을 설하여 가르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부처님을 가까이하여 존중하고 공경을 받는 이가 될 것이다.
경전을 설법할 때에는 표현이 끊어짐이 없어야하며 도리(道理)의 앞뒤를 살펴보고 지혜로서 시비를 분별하고 공경하고 청정한 마음과 행동으로 법인을 어기지 말고 신(身), 구(口), 의(意)의 계행을 차례대로 세워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의혹을 끊고 미혹을 버릴 수 있도록 중생의 마음을 살펴서 가르침을 설해야 한다.
포교할 때는 밝은 지혜로 네 가지를 구별하여 설해야 한다.
첫째 사물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둘째 바른 깨달음으로,
셋째는 차례를 따르고
넷째는 말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사물을 분별하라 함은 모든 사물이 본래 스스로 갖추고 있는 참 모습(실상)을 바로 이해하여 설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요. 도리를 깨닫는다 함은 능히 모든 사물의 돌아가는 진리를 이해하고 밝히는 것이며 차례를 따르는 것은 말에 두서 없고 혼동됨이나 파란이 없어서 온갖 사물의 깊은 뜻을 바르게 구사하는 것이요. 말뜻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느 것에 매이거나 막힘이 없이 바른 이해를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불도를 펴는데 주의할 점이 열 가지가 있으니
첫째 무엇을 행(行)해야 바른 길인지를 깨닫게 해야 할 것이며
둘째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우는 결심을 하게 할 것이며
셋째 죄악과 복덕의 인과응보를 분별할 줄 알게 해야 하며
넷째 항상 바른 깨달음에 머물러서 청정한 마음을 잃지 말도록 할 것이며
다섯째 내가 잘 낫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말도록 할 것이며
여섯째 법계(法界)즉 부처님의 가르침의 일체 진리에 통달하게 해야 할 것이며
일곱째 마음의 안정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며
여덟째 마음의 근본 성품을 똑바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아홉째 본성의 청정함을 깨달음으로써 불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만이 불도를 바르게 펼 수 있고 또 펴야만 하는 것이다.
잡아함경(雜阿含)에 불교를 펴는데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세존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신 바가 있다.
부루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미 세존의 가르침을 받았사오니 이제는 서쪽의 수노라 지방을 유행코자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서쪽 수노라 사람들은 흉악하고 경망하여 사납고 욕을 잘한다고 들었다,
그들이 그 욕을 너에게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려느냐?』
부루나가 사뢰었다.
『그 사람들이 저를 면전에서 흉악하게 꾸짖고 욕을 하더라도 이들은 현명하고 지혜가 많은 탓으로서 비록 저에게 흉악하고 사납게 모욕만 줄뿐 손이나 돌 같은 것으로 때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이 흉악하고 경망하고 사나워서 다행이 욕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족하려니와 만약 손이나 돌로써 때리기까지 한다면 어떻게 하려느냐?』
부루나가 사뢰었다.
『만일 무기로 저를 해친다면 역시 그들은 어질고 지혜가 있는 탓으로 비록 무기로 저를 해치기는 하여도 죽이지는 않는다고 생각 하겠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만약 그들이 너를 죽인다면 어떻게 하려느냐?』
부루나가 대답해 사뢰었다.
『만약 그들이 저를 죽인다면 그들은 어질고 지혜가 있는 탓으로 저의 썩은 몸으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일이다.
능히 인욕을 배웠으니 너는 수로나 사람들 사이에도 머물러 살 수 있도다.
너는 거기에 가서 제도 받지 못한 자들을 제도하며 안심을 얻지 못한 자들에게 안심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지 못한 자들을 열반에 들게 하라』하셨다.
게송을 말하면,
세월은 빨라 죽음이 목전이니 헛된 명리에만 탐착하랴, 금생에 구하지 못하면 어느 생에 마칠 것인가 부지런히 닦아 불과를 얻어 중생을 제도하라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후세에 크게 한탄하게 되리라.
◈ 초발심자경문이란?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은 고려 보조국사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신라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그리고 고려 말 야운 선사의 자경 문(自警文)을 합본한 책이다. 이 책은 첫 발심수행자의 지침서이며 처음 출가한 사미승의 기본서이다.
계초심학인문은 수행청류를, 발심수행장은 부처의 마음을 일으켜 거룩한 행을 닦는 글이다. 자경문은 수행인이 스스로를 일깨우고 경계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초발심 자경문<1>
- 항상 부드럽고 온화하고 착하고 공손하기 힘쓰며 -
- 교만한 생각으로 잘난척 자기를 높이는 짓을말라 -
저 울울창창한 장경의 숲을 가로지르는 곧은길은 없을까? 가르침을 알고자 경서를 처음 펴드는 이들은 불자건 아니건 우선 그 방대함에 질리게 된다. 마치 미로에 들어선 느낌이다. 무언가 좀더 체계적이고 단출한 입문서 같은 것이 있었으면···. 이런 바램을 안고 산문 안으로 들어가 본다. 갓 삭발한 스님들은 어떻게 하는지, 그 교과과정의 경서를 차례로 쉽게 풀어 옮겨 본다.
夫初人之心은 須遠離惡友하고 親近賢善 부초인지심 수원리악우 친근현선
하며 受五戒十戒等하여 善知持犯開遮하라 수오계십계등 선지지범개차
但依金口聖言이언정 莫順庸流妄說이어다 단의금구성언 막순용류망설
旣己出家하여 參陪淸衆하니 常念柔和善順 하되 不得我慢貢高니라
기기출가 참배청중 상념유화선순 부득아만공고
무릇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고자 처음으로 마음먹은 이(초발심자)는 모름지기 나쁜 벗(계율을 지키지 않고 세속적 욕망을 즐기는 이)을 멀리하여야 한다. 반면 계행이 청정하고 지혜가 밝은 이를 가까이 하여야 한다. 오계·십계(또는 일체의 비구·비구니계를)등을 받고 어떻게 하여야 계율을 생명처럼 지켜 잘 따르고, 어떤 경우에 계율을 어기고 범하게 되는 지도 잘 알아야 한다.
오로지 부처님의 거룩한 말씀에만 의지할 것이며 용렬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의 부질없는 말을 따라서는 안 된다.
이미 이 몸 출가하여 세속의 욕망 버리고 청정한 수행의 무리에 참여하였으니 항상 부드럽고, 온화하고, 착하고, 공손하기에 힘쓸지언정 교만한 생각으로 잘난 척, 자기를 높이는 짓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大者爲兄하고 小者爲弟니 撞有諍者거든 (대자위형 소자위제 당유쟁자)
兩說和合하여 但以慈心相向이지 不得惡語 傷人하라 양설화합 단이자심상향 부득악어 상인
若也欺凌同伴하여 論說是非이면 如此出家는 全無利益이다
약야기릉동반 논설시비 여차출가 전무이익
나이 많은 이 형이 되고 적은 이 아우가 되며 혹시라도 다투는 이가 있거든 양쪽 주장을 잘 화합시키되 오로지 자비심으로 서로를 대하도록 할 것이지 모진 말로써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
만약에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을 속이거나 업신여겨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시비를 따지려 한다면 그같은 출가는 하나마나, 마음공부에 아무런 이득이 없게 된다.
財色之禍는 甚於毒蛇하니 省己知非하여 常須遠籬하라
재색지화 심어독사 성기지비하여 상수원리
無緣事則不得入他房院하며 當屛處하여 不 得强知他事하라
무연사즉부득입타방원 당병처 부 득강지타사
재물과 여색의 화는 독사의 독보다 더 심하다. 항상 자신의 마음자리를 관하고 그릇됨을 밝혀 모름지기 이를 멀리 여의도록 할 일이다.
꼭 참여해야 할 일이 없으면 이 방, 저 방, 이 집 저 집으로 드나들지 말아야 하며, 숨기려 하는 일을 굳이 알아서 도움 될게 없으니 억지로 캐어내려 해서는 아니 된다.
非六日이면 不得洗浣內衣하며 臨貫漱에 不得高聲涕唾하고
비육일 부득세완내의 임관수 부득고성체타
行益次에 不得塘乭越序하고 經行次에 不得開襟掉臂하며
행익차 부득당돌월서 경행차 부득개금도비
엿새가 아니면 속옷을 빨아서는 안 되며(6일·16일·26일에는 빨래하느라 이·벼룩 따위를 죽이게 되어도 살생이 되지 않는다는 율법에 근거함) 세수하고 양치질 할 때는 왝왝 소리를 내거나 큰 소리로 코풀고 침뱉지 말 것이며, 모든 대중행사(법요식·공양등)에서는 당돌하게 차례를 어겨서는 안 되고 거닐 때는 옷깃을 풀어 헤치거나 활개 쳐서는 아니 된다.
言談次에 不得高聲戱笑며 非要事거든 不得出於門外하고
언담차 부득고성희소 비요사 부득출어문외
有病人이면 須慈心守護하며 見賓客이거든 須欣然迎接하여
유병인 수자심수호 견빈객 수흔연영접
逢尊長이어든 須肅恭廻避하며(벙전장 수숙공회피)
말 할 때는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서는 안된다. 요긴한 일이 아니거든 산문 밖으로 나다니지 말고 병든 이가 있거든 모름지기 자비심으로 돌보아 주고 손님을 보거든 모름지기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여 윗 어른을 만나거든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비켜서야 한다.
- 갓 출가한 사미승 기본서-
초발심 자경문<2>
- 생활도구 아껴 쓰며 만족할 줄 알아야 -
- 음식 먹는 것은 도업의 성취를 위한 것 -
辦道具하되 須儉約知足하고 齋食時엔 飮綴不得作聲하고 (판도구 수검약지족 재식시 음철부득작성)
執放엔 要須安詳하고 不得擧顔顧視하며 不得欣厭精醜하고 (집방 요수안상 부득거안고시 부득흔염정추)須默無言說하고 須防護雜念 하며(수묵무언설 수방호잡념)
생활도구를 가려 쓰되 모름지기 검약하며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공양할 때에는 후루룩 쩝쩝 마시는 소리, 씹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하고 수저나 그릇을 다룸에 있어서는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레 다루며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지 말고 맛있는 음식은 반기고 거친 음식은 싫어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공양 중에는 말을 하지 말며 잡념이 일지 않도록 심신을 단정히 하고
須知受食은 但療形枯하여 爲成道業이라 (수지수식 단료형고 위성도업)
須念般若心經하고 觀三輪淸淨하여 不違道用이라 (수념반야심경 관삼륜청정 불위도용)
赴焚修 須早暮勤行 自責懈怠 (부분수하되 수조모근행하여 자책해태하며)
知衆行次 不得雜亂 讚唄祝願 (지중행차에 부득잡란하며 찬패축원하되)
須誦文觀義 不得但隨音聲 不得韻曲 不調 (수송문관의언정 부득단수음성하며 부득운곡부조하며)
음식을 받는 것은 다만 이 몸뚱이 말라 시드는 것을 다스려 도업을 성취하기 위한 것인 줄 잘 알아야 하며, 모름지기 반야심경을 호념하되(모름지기 물질과 마음이 둘 아닌 줄을 길이 관하되) 무주상 보시의 청정함을 생각하여 도에 어긋남이 없도록 할 것이다.
향 사르고 예불 올릴 때는 모름지기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하여 게으르지 않게 스스로 늘 채찍질하고 대중의식을 행할 때는 어수선하지 않게 하며 범패하고 축원 함에 있어서는 모름지기 글을 외어 참 뜻을 관할지언정 단지 소리를 따라 외지 말고
소리와 곡조가 고르지 못하게 해서도 아니 된다.
瞻敬尊顔 不得攀緣異境 須知自身罪障 猶如山海
(첨경존안하되 부득반연이경하며 수지자신죄장이 유여산해하여)
須知理懺事懺 可以消除 深觀能禮所禮 皆從眞性緣起
(수지이참사참으로 가이소제하며 심관능례소례가 개종진성연기하고)
深信感應不虛 影響相從 (심신감응불허하야 영향상종이라)
(일념으로)부처님의 거룩한 얼굴을 우러러 보되 다른 경계에 끄달려(형상으로 보아)얽매여선 안 된다.
모름지기 자신의 죄·업장이 마치 저 산 같고 바다 같은 줄 알되 모름지기 이참·사참으로 이를 녹일 수 있음을 알라(모름지기 죄업엔 본래 자성이 없어 오직 삼독심·번뇌 망상의 생각 따라 일어 난 것임을 깊이 관하여 그것이 나온 자리에 몰락 놓고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으리라 사무치게 느끼면 이로써 가히 죄업이 소멸될 수 있음을 알라).
예배 하는 자신과 예배 받는 부처가 본래 둘이 아니어서 다 같이 진여성품으로부터 인연 따라 나툰 줄을 깊이 (믿고) 관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중생과 부처가 둘 아니게 감응함이 (결코) 헛된 게 아니라 물체에 그림자 따르고 소리에 메아리가 서로 쫓아오는 것 같음을 깊이 믿을 지어다.
居衆寮 須相讓不爭 須互相扶護 愼諍論勝負 愼聚頭閒話
(거중료하되 수상양부쟁하며 수호상부호 하며 신쟁론승부하며 신취두한화하며)
愼誤着他鞋 愼坐臥越次 (신오착타혜하며 신좌와월차하라)
대중 밤에 거처할 적에는 모름지기 서로 양보하여 다투지 말고,
서로 간에 북돋우고 도와서 옳으니 그르니 논쟁하여 승부 가리기를 삼가하라.
또한 머리 맞대고 모여 않아 한가히 쑥덕거리지 말며,
다른 이의 신발을 잘못 신을 정도로 들뜨거나 예의를 몰라서는 안되고 자리 잡아 않거나 누울 때도 차례를 어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초발심 자경문<3>
- 이일 저일에 끄달려 의혹을 품지 말라 -
-‘나같은 범부가 어찌…’물러서면 끝장 -
對客言談 不得揚於家醜 但讚院門佛事 不得詣庫房 (대객언담에 부득양어가추하고 단찬원문불사언정 부득예고방하여)
見聞雜事 自生疑惑 非要事 不得遊州獵縣(견문잡사하고 자생의혹이어다. 비요사면 부득유주렵현하여)
與俗交通 令他憎嫉 失自道情 (여속교통하여 영타증질하고 실자도정이어다)
손님과 대화를 나눌 때는 절 집안의 잘못된 점을 드러내지 말고 다만 사원의 불사를 찬탄할 지언정 고방(창고·사무실)을 드나들며 이 일 저 일 듣고 보아 일없이 의혹을 품지 말라. 요긴한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이 고을 저 고을로 노닐며 떠돌지 말고 속인들과 서로 사귀어 오가며 다른 이로 하여금 미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내게하여 도 닦는 뜻을 스스로 저버리지 말지어다.
堂有要事出行 告住持人 及菅衆者 (당유요사출행이어든 고주지인과 급관중자하여)
令知去處 若入俗家 切須堅持正念(영지거처하며 약입속가어든 절수견지정념하되)
愼勿見色聞聲 流蕩邪心 又況披襟戱笑 (신물견색문성하고 유탕사심인데 우황피금희소하여)
亂說雜事 非時酒食 妄作無碍之行 深乖佛戒 (난설잡사하며 비시주식으로 망작무애지행하여 심괴불계이다뇨)
又處賢善人 嫌疑之間 豈爲有智慧人也 (우처현선인의 혐의지간이면 기위유지혜인야리오)
혹시라도 요긴한 일이 있어 꼭 나다녀야 하거든 주지나 대중을 통솔·관장하는 이에게 고하여 가 머무는 곳을 알게하라.
(그때) 만약 속인의 집에 들게 되거든 부디 바른 생각을 굳게 지니되 보고 듣는 경계에 끄달려 방탕하고 삿된 마음에 휩쓸리지 말아야 할 것인 바, 하물며 옷깃을 풀어 헤치고 웃고 떠들면서 쓸데없이 잡된 일이나 지껄이고, 때도 아닌 때에 밥먹고 술 마시며 망녕되이 무애행을 하노라 하여 부처님이 정해주신 계율을 크게 어길 것인가? 또(그렇게 함으로써) 어질고 착한 이들과 싫어하고 의심하는 사이가 된다면 어찌 지혜있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住社堂 愼沙彌同行 愼人事往還 (주사당하되 신사미동행하며 신인사왕환하며)
愼見他好惡 愼貪求文字 愼睡眠過度 愼散亂攀緣
(신견타호악하며 신탐구문자하며신수면과도하며 신산란반연이어다)
공부하는 처소에 머물 때는 어린 사미와 함께 행동하기를 삼가하고 세속의 인사로 오가는 것을 주의하며 다른 이의 잘 잘못을 밝히려 하지 말고 지나치게 문자를 구하려 하지 말며 잠자는 것도 정도가 지나치지 않도록 하고 인연 경계에 끄달려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
若遇宗師陞座說法 切不得於法 (약우종사승좌설법이어든 절부득어법에)
作縣崖想 生退屈心 (작현애상하여 생퇴굴심하거나)
或作慣聞想 生容易心 當須虛懷聞之 必有機發之時
(혹작관문상하여 생용이심하고 당수허회문지하면 필유기발지시하며)
不得隨學語者 但取口辦 (부득수학어자하여 단취구판이어다)
만약 종사(선지식)가 법상에 올라 설법하는 때를 만나거든 그 법을 듣고 부디 벼랑에 매달린 것 같은 생각(나 같은 범부가 어찌 까마득이 높디높은 법을 이룰 수 있으랴 하는 생각)을 지어 물러서려는 마음을 내서는 아니 되며 또는 익히 들어본 법문이라는 생각에 그렇고 그렇노라는 식의 쉬운 마음을 지어서도 아니 된다.
(법문을 들을 때는) 모름지기 마음을 텅 비우고 들으면(이렇다 저렇다 분별하지 않는 텅 빈듯한 마음에서 그윽히 귀를 기울일 뿐이면) 반드시 깨달음의 기연을 만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문자와 말만 배우는 사람을 따라서 다만 입으로 판가름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所謂蛇飮水 成毒 牛飮水 成乳 (소위사음수면 성독하고 우음수면 성유하니)
智學 成菩提 愚學 成生死 是也 (지학은 성보리하고 우학은 성생사라함이 시야니라)
이른바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된다 하듯이 뜻을 취해 슬기롭게 배우면 깨달음을 이루고 문자나 말에 얽매어 어리석게 배우면 생사에 빠진다 함이 바로 이를 두고 이름이니라.
초발심 자경문<4>
- 설법 들을 때는 그윽한 뜻을 맛보도록 -
- 불법만남에 늘감사하면 발심도 새로워 -
又不得於主法人 生輕薄想 (우부득어주법인에 생경박상하라)
因之於道 有障 不能進修 切須愼之 (인지어도에 유장이면 불능진수리니 절수신지어다)
論 云 如人 夜行 罪人 執炬當路 (논에 운하되 여인이 야행에 죄인이 집거당로인데)
若以人惡故 不受光明 墮坑落慙去矣 (약이인악고로 불수광명이면 타갱락참거의라하니)
또한 법사에 대해 업수히 여기는 생각을 내지 말라. 그런 생각으로 말미암아 도에 장애가 생기어 닦아 나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니 지극히 삼가하고 삼가 할지어다. 논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는데 죄진 이가 횃불을 들어 앞길을 비춘다고 할 때에 만약 그 사람이 나쁘다는 이유로 불 비춰줌을 마다할 것 같으면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라 하였다.
聞法之次 如履薄氷 (문법지차에 여리박빙하여)
必須側耳目而聽玄音 肅情塵而賞幽致 (필수측이목이청현음이며 숙정진이상유치하다가)
下堂後 墨坐觀之 如有所疑 (하당후에 묵좌관지하되 여유소의어든)
博問先覺 夕척朝詢 不濫絲髮 (박문선각하며 석척조순하여 불람사발이어다)
如是 乃可能生正信 爾爲懷者歟 (여시라야 내가능생정신하여 이도위회자여인저)
그러니 설법을 들을 때는 마치 살얼음을 밟고 가듯이 간절히 이목을 기울여 깊고 깊은 진리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마음속의 번뇌티끌 밝히고 그윽한 뜻을 맛보도록 해야 한다. 그런 뒤 법사가 당에서 내려가면 묵묵히 앉아서 관하되 어떤 의심되는 게 있거든 선지식에 널리 물을 것이며 아침저녁으로 간절히 안으로 찾아 의심나는 것을 털끝만큼도 넘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아야 이에 가히 바른 믿음을 지녔다 할 수 있고 도로써 자기 마음자리를 삼는 자라 할 것이다.
無始習熟 愛欲愛痴 纏綿意地 暫伏還起 如隔日瘧
(무시습숙한 애욕애치이 전면의지하여잠복환기하여 여격일학하니)
一切時中 直須用加行方便智慧力 (일체시중에 직수용가행방편지혜력하여)
痛自遮護 豈可閒만 遊談無根 (통자차호이언정 기가한만으로 유담무근하고)
虛喪天日 欲冀心宗而求出路哉 (허상천일하고 욕기심종이구출로재리요)
처음을 알 수 없는 옛 부터 버릇처럼 익혀온 애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마음에 얽히고 설켜있어 잠시 숙어진 듯 했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게 마치 하루걸러 앓는 학질과 같나니 (먹고 잠자고 일하는) 일체 시에 모름지기 수행을 돕는 방편과 지혜의 힘으로써 스스로 뼈를 깎는 아픔으로 막고 지킬지언정 어찌 한가하고 게으른 마음으로 근본 없는 잡담을 즐기면서 (금쪽같은) 세월을 허송하며 마음 깨치기를 바라고 삼계로부터 벗어날 길을 구하고자 할 것인가.
但堅志節 責躬匪懈 知非遷善 改悔調柔 (단견지절하여 책궁비해하며 지비천선하여 개회조유어다)
勤修而觀力 轉深 鍊磨而行門 益淨 (근수이관력이 전심하고 연마이행문 이익정하리라)
長起難遭之想 道業 恒新 (장기난조지상하면 도업이 항신하고)
常懷慶幸之心 終不退轉 (상회경행지심하면 종불퇴전하리니)
다만 (출가한:발심한) 뜻과 절개를 굳게 다지고 스스로 채찍질해 게으르지 않도록 하고 그른줄 알면 바르게 고치며 회개하고 뉘우쳐 마음을 조어하고 늘 부드럽게 할 것이다.
부지런히 닦아 나아가면 관하는 힘이 더욱 깊어지고 단련하고 갈아 나아가면 수행문이 더욱 청정해지리니 (억겁 윤회 중에)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천행으로)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을 오래 오래 일으키면 도 닦는 일이 새록새록 새롭고 언제나 마음으로 발심한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경축할 일인가 생각하면 끝까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如是久久 自然定慧園明 見自心性 (여시구구하면 자연정혜원명하여 견자심성하고)
用如幻悲智 還度衆生 作人天大福田 切須勉之 (용여환비지하여 환도중생하여 작인천대복전하리니 절수면지하라)
이와 같이 오래오래 닦아 나아가면 자연히 정과 혜가 원만하게 밝아져 스스로 마음 성품을 보게 될 것이며 (비록) 법계가 공한 줄 아나 자비와 반야의 지혜를 굴려서 중생을 (고해의 길에서) 돌이켜 제도하고 인·천 가운데 큰 복밭을 일구리니 부디 간절히 바라노니 모름지기 힘쓰고 힘쓸지어다.
초발심 자경문<5>
- 중생이 윤회함은 탐욕 여의지 못한탓 -
- 입산수도 못할망정 선행은 외면 말라 -
夫諸佛諸佛 莊嚴寂滅宮 於多劫海 捨欲苦行 (부제불제불이 장엄적멸궁은 어다겁해에 사욕고행이요)
衆生衆生 輪廻火宅門 於無量世 貪慾不捨 (중생중생이 윤회화택문은 어무량세에 탐욕불사니라)
無防天堂 小往至者 三毒煩惱 爲自家財 (무방천당에 소왕지자는 삼독번뇌로 위자가재요)
無誘惡道 多往入者 四蛇五欲 爲妄心寶 (무유악도에 다왕입자는 사사오욕으로 위망심보니라)
무릇 모든 부처님이 번뇌망상의 한 티끌도 없는 해탈경지를 장엄하심은 억겁고해에 욕심 여의고 인욕고행하심이요 많고 많은 중생이 삼계화택을 헤어나지 못하고 윤회함은 한량없는 세월동안 탐욕을 여의지 못한 까닭이다. 막는 것 없는 천당에 왕생하는 이가 적은 것은 중생이 탐·진·치 삼독번뇌로 제집 재산을 삼음이요. 유혹하는 이 없는 악도에 태어나는 사람 많은 것은 사대육신과 온갖 욕망으로 망녕되어 마음 보배를 삼는 때문이다.
人誰不欲歸山修道 而爲不進 愛欲所纏 (인수불욕귀산수도리요만 이위부진은 애욕소전이니라)
然而不歸山藪修心 隨自身力 不捨善行 (연이불귀산수수심이나 수자신력하야 불사선행이어다)
自樂 能捨 信敬如聖 難行 能行 尊重如佛
(자락을 능사면 신경여성이요 난행을 능행하면 존중여불이니라)
간貪於物 是魔眷屬 慈悲布施 是法王子 (간탐어물은 시마권속이요 자비보시는 시법왕자니라)
누군들 산에 들어가 도 닦고자 하지 않으리요만 그리하지 못함은 애욕에 얽힌 때문이다.
그러나 산 속에 들어가 마음 닦지 못할지라도 자신의 힘이 닿는 데로 선행하기를 외면하지 말 것이다. 세간 쾌락을 능히 버린다면 마치 성인처럼 신뢰와 공경을 받고 육바라밀의 하기 어려운 행을 하면 부처님처럼 존중받게 된다.
재물이나 탐하는 것은 곧 마귀의 권속이요 자비보시는 곧 부처님의 제자이니라.
高嶽아巖 智人所居 碧松深谷 行者所捿 (고악아암은 지인소거요 벽송심곡은 행자소서니라)
飢손木果 慰其飢腸 渴飮流水 息其渴情 (기손목과하여 위기기장하고 갈음유수하여 식기갈정이니라)
喫甘愛養 此身 定壞 着柔守護 命必有終(끽감애양하여도 차신은 정괴요 착유수호해도 명필유종이니라)
높은 산 바위 솟은 곳은 지혜로운 이 살 곳이요 푸른 솔 깊은 계곡은 수행자들이 깃들 곳이라. 배고프면 나무열매로 주린 창자 달래고 목마르면 흐르는 물마셔 목타는 마음 쉴 것이니 맛있는 음식 먹여 애지중지 길러보아도 이 몸은 끝내 무너질 것이며 부드럽고 좋은 옷 입혀 지키고 보호해도 이 목숨 반드시 끝나고 마는 것.
助響巖穴 爲念佛堂 哀鳴鴨鳥 爲歡心友(조향암혈도 위염불당하고 애명압조로 위환심우니라)
拜膝 如氷 無戀火心 餓腸 如切 無求食念
(배슬이 여빙이라도 무련화심하고 아장이 여절이라도 무구식념이라)
忽至百年 云何不學 一生 幾何 不修放逸
(홀지백년이어늘 운하불학하며 일생이 기하인데 불수방일일고)
메아리 울리는 바위동굴로 염불법당 도량삼고 슬피우는 기러기 울음으로 마음 기쁜 벗을 삼아 예불 참선에 무릎이 얼더라도 불기운 그리지 않고 주린 배 창자가 끊어지는듯 해도 먹거리 찾을 생각 내지 말지니 눈 깜짝새에 백년세월 가는 데 어찌 배우지 않을 것이며 일생이 얼마나 되기에 닦지 않고 방일하겠는가.
離心中愛 是名沙門 不戀世俗 是名出家(이심중애를 시명사문이요 불연세속을 시명출가니라)
行者羅網 狗被像皮道人戀懷 蝟入鼠宮(행자라망은 구피상피요 도인련회는 위입서궁이니라)
雖有才智 居邑家者 諸佛 是人 生悲憂心(수유재지나 거읍가자는 제불이 시인에 생비우심하고)
說無道行 住山室者 衆聖 是人 生歡喜心(설무도행이나 주산실자는 중성이 시인에 생환희심하니라)
마음 가운데 갈애·애착 여윈 이를 사문이라 이름하고 세속 그리움 떨친 것을 출가라 한다.
수행자가 애욕·세속의 그물에 얽힌다면 그것은 개가 코끼리 가죽을 뒤집어 쓴 꼴이요 도 닦는 이가 세속의 연정 따위를 마음에 품는다면 그것은 고슴도치가 쥐구멍을 찾아든 격이다.(들어가기는 쉬워도 일단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다는 뜻)
비록 재능과 슬기 있어도 속가에 사는 이, 제불께서 그들을 슬피 여기시고 설사 도를 닦지 않더라도 산사에서 사는 이, 뭇 성현이 그들에게 환희심을 내느니라.
초발심 자경문<6>
계율은 진리의 세계 오르는 사다리 출가자의 富는 속인들의 웃음거리
雖有才學 無戒行者 如寶所導而不起行(수유재학이나 무계행자는 여보소도이불기행이요)
雖有勤行 無智慧者 欲往東方而向西行(수유근행이나 무지혜자는 욕왕동방이향서행이니라)
有智人 所行 蒸米作飯 無智人 所行 蒸沙作飯(유지인의 소행은 증미작반이요무지인의 소행은 증사작반이니라)
共知喫食而慰飢腸 不知學法而改癡心(공지끽식이위기장하되 부지학법이개치심이니라)
行智具備 如車二輪 自利利他 如鳥兩翼(행지구비는 여차이륜이요 자리이타는 여조양익이니라)
비록 재능과 배움이 있어도 계행이 없는 이는 마치 보배 가득 쌓인 곳으로 이끌어도 일어나 따르지 않음과 같고 비록 부지런히 닦기는 하지만 지혜가 없는 이는 동쪽으로 가겠다면서 서쪽으로 나아감과 같다. 지혜로운 이 닦는 것은 쌀을 쪄서 밥 짓는 것이요 슬기 없는 이의 닦음은 모래를 쪄서 밥 짓는 격이다. 누구나 밥 먹어 주린 배 달랠 줄은 알지만 불법을 배워 어리석은 마음 고칠 줄 모르니 계행과 지혜를 갖춤은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자리이타의 소행은 마치 새가 양 날개로 나는 것과 같도다.
得粥祝願 不解其意 亦不檀越(득죽축원하되 불해기의면 역부단월에)
應羞恥乎 得食唱唄 不達其趣(응수치호며 득식창패하되 부달기취면)
亦不賢聖 應慙愧乎 人惡尾蟲 不辨淨穢(역불현성에 응참괴호아 인오미충이 불변정예이듯)
聖憎沙門 不辨淨穢(성증사문이 불변정예니라)
시주 받고 축원해주더라도 마음도리 밝히지 못하면 또한 시주 공양한 그 뜻에 어찌 부끄럽지 않을 것이며 공양 받고 염불 범패하지만 둘아닌 근본 도리에 계합치 못하면 그 또한 성현에게 얼마나 죄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랴.
사람이 구더기가 깨끗하고 더러운 것 가리지 못함을 미워하듯이 성현도 사문이 더러움(세속)과 깨끗함을 가리지 못하는 것 미워하느니라.
棄世間喧 乘空天上 戒爲善梯(기세간훤하고 승공천상은 계위선제니)
是故 破戒 爲他福田 如折翼鳥 負龜翔空(시고로 파계코 위타복전은여절익조가 부구상공이라)
自罪 未脫 他罪 不贖 然 豈無戒行 受他供給(자죄를 미탈하면 타죄를 불속이라 연이나 기무계행하고 수타공급이리오)
세간의 소란을 버리고 저 진리의 세계로 오르는 데는 계율지킴이 좋은 사다리가 되니 그러므로 계행을 깨뜨리고 남의 복밭이 된다는 것은(귀의 받는 대상이 된다함은) 날개 부러진 새가 거북을 등에 업고 하늘을 나는 격이라 자기 죄업 녹이지 못하면 남의 죄업 녹여줄 수 없나니 계행없이 어찌 다른 이의 공양을 받으리요.
無行空身 養無利益 無常浮命 愛惜不保(무행공신은 양무이익이요 무상부명은 애석불보니라)
望龍象德 能忍長苦 期獅子座 永背欲樂(망용상덕하야 능인장고하고 기사자좌하야 영배욕락이니라)
行者心淨 諸天 共讚 道人 戀色 善神 捨離행자심정하면 제천이 공찬하고 도인이 연색하면 선신이 사리하나니라
四大 忽散 不保久住 今日夕矣 頗行朝哉(사대가 홀산이라 불보구주니 금일석의라 파행조재인저)
수행없는 이 헛된 몸 길러봤자 이익될 게 없고 부평초 같이 덧없는 이 목숨 사랑하고 아껴 보았자 보전치 못하리니 마음도리 투철히 깨친 선지식되길 바라거든 능히 수행의 고통을 잘 참고 부처님의 열반자리 기약하려거든 영원토록 욕락을 등지도록 할 것이니라.
수행자의 마음자리 청정하면 모든 천신이 칭찬하고 도 닦는 이로서 현상계·속계에 마음 기울면 여러 신들이 버리고 떠나느니라.
사대육신은 홀연히 흩어져 오래도록 보전치 못하나니 어느덧 금생도 저녁나절(황혼)이라 모름지기 아침(내생)이 닥쳐오는 구나.
世樂 後苦 何貪着哉 一忍 長樂 何不修哉
(세락이 후고어늘 하탐착재며 일인이 장락이어늘 하불수재리오)
道人貪 是行者羞恥 出家富 是君子所笑(도인탐은 시행자수치요 출가부는 시군자소소라)
遮言 不盡 貪着不已 第二無盡 不斷愛着(차언이 부진어늘 탐착불이하며제이무진어늘 부단애착하며)
此事無限 世事不捨 彼謀無際 絶心不起(차사무한어늘 세사불사하며 피모무제어늘 절심불기로다)
속세의 즐거움엔 나중에 고통이 따르거늘 어찌 탐착할 것이며 한번(욕망을) 참는 데 오래도록 즐거움 있거늘 어찌 닦지 않으리오 도 닦는 이의 탐심은 수행자의 큰 수치요 출가자의 부는 저 (세속)군자들의 웃음거리니라. (탐착·치부등 계행어김에) 변명할 말은 끝이 없어도 탐하고 집착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이런 저런 구실을 달아) 요다음, 요다음 하고 (수행을) 미루기는 끝이 없어도 끝내는 애착을 끊지 않네. 이 같은 일 한이 없거늘 세속 일 버리지 못하여 저 같은 꾀 가이 없거늘 끊을 마음 내지 않는도다.
초발심 자경문<7>
- 어찌하여 고통세계를 돌고 도는가 -
- 애욕을 벗어나면 묘법세계 있거늘 -
今日不盡 造惡日多 明日不盡 作善日少 (금일부진어늘 조악일다하며 명일부진어늘 작선일소하며)
今年不盡 無限煩惱 來年無盡 不進菩提 (금년부진어늘 무한번뇌하며 내년무진어늘 부진보리로다)
時時移移 速經日夜 日日移移 速經月晦 (시시이이하여 속경일야며 일일이이하여 속경월회며)
月月移移 忽來年至 年年移移 暫到死門 (월월이이하여 홀내년지며 년년이이하여 잠도사문하나니)
破車不修 老人不修 臥生懈怠 坐起亂識 (파거불수요 노인불수라 와생해태하고 좌기난식이니라)
오늘만, 오늘만 하지만 오늘은 다할 일 없으니 악업짓는 날 허다하며 내일엔, 내일엔 하고 미루지만 내일도 다함없으니 선업 짓는 날 적도다. ‘금년만’한다해도 금년은 다함 없으니 번뇌엔 끝이 없고 ‘내년부터’라 하지만 내년은 언제나 내년이니(영영)보리도에 나아가지 못하리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낮과 밤이 재빠르게 지나가고 하루하루 지나는 게 훌쩍 그믐이 지나가고 달달이 바뀌어 가는 게 홀연히 한 해 지나 내년에 이르고 한 해 두 해 지내다 보니 잠깐사이에 죽음 문턱에 이르네. (그때는) 이미 부서진 수레라 가지 못하니 늙어서는 닦지 못하고 눕고 싶고 게을러 질 뿐 애써 자리틀고 앉아 보았자 번뇌망상 어지러울 뿐이네.
幾生不修 虛過日夜 幾活空身 一生不修 (기생불수어늘 허과일야하며 기활공신이어늘 일생불수오)
身必有終 後身 何乎 莫速急乎 速莫急乎 (신필유종이니 후신은 하호아 막속급호며 속막급호랴.)
몇 생을 닦지 아니했는데 밤낮으로 허송세월 보내며 허공같은 이 몸이 얼마나 산다고 이 한 생을 닦지 않으리오. 몸은 반드시 죽어 마칠 날 있으리니 (이 생에 닦지 않은 이 몸) 다음 생엔 어찌하려는가. (생각 할수록) 바쁘고 급하지 않으랴, 급하고 바쁘지 않으랴.
<野雲比丘 自警文야운비구 자경문>
主人公 聽我言 (주인공아 청아언하라)
幾人 得道空門裏 汝何長輪苦趣中 (기인이 드도공문리어늘 여하장륜고취중가)
汝自無始已來 至于今生 背覺合塵 (여자무시이래로 지우금생히 배각합진하고)
墮落愚痴 恒造衆惡而入三途之苦輪(타락우치하여 항조중악이입삼도지고륜하며)
不修諸善而沈四生之業海(불수제선이침사생지업해로다)
◇야운비구(나옹 화성제자)가 지은 자경문
주인공아 내말 들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깨달음 얻었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그토록 오랜동안 고통의 세계에서 돌고 도는가.
그대가 그 비롯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금생에 이르도록 깨침의 길을 등지고 속진에 묻혀서 어리석은 길에 굴러 떨어져 언제나 온갖 악업을 지으니 삼악도의 괴로운 굴레에 빠져 들었으며 두루 선행을 닦지 않아서 사생의 업해에 잠긴 것이로다.
身隨六賊故 或墮惡趣則極辛極苦(신수육적고로 혹타악취즉극신극고하고)
心背一乘故 或生人道則佛前佛後(심배일승고로 혹생인도즉불전불후로다)
今亦幸得人身 正是佛後末世 嗚乎痛哉(금역행득인신이나 정시불후말세니 오호통재라)
몸으로는 육근이 상대하는 경계를 따르는 까닭에 악취에 떨어진 즉 신고(辛苦)가 극에 달하고 마음으로는 위 없는 부처님 법을 등진 까닭에 혹 사람의 몸을 받았어도 부처님 나시기 전이나 그 후로다. 금생에 또다시 다행스럽게도 사람의 몸 받았으나 바로 이 때가 부처님 아니 계신 말법시대이니 아아! 슬프고 애닯도다.
是誰過歟 雖然 汝能反省 割愛出家(시수과여아 수연이나 여능반성하여 할애출가며)
受持應器 着大法服 履出塵之經路(수지응기하고 착대법복하여 리출진지경로하고)
學無漏之妙法 如龍得水 似虎고山(학무루지묘법하면 여용득수요 사호고산이라)
其殊妙之理 不可勝言(기수묘지리는 불가승언이니라)
이 누구의 허물인가. (사연은) 비록 그러하나 그대가 능히 반성하여 애욕을 베어버리고 출가하여 바루를 들고 법복을 입어 (바른 법을 받아 지니고자) 티끌세상을 벗어나는 지름길을 밟아 번뇌에 물듦이 없는 무루의 묘법을 배우면 마치 용이 물을 얻은 듯, 호랑이가 산중에 들어간 듯 하리니 그 수승하고 오묘한 이치는 말로써 다할 수 없느니라.
초발심 자경문<8>
- 어리석은 마음에 배우지 아니하면 교만한 마음만 늘고 -
- 어리석은 생갹으로 닦지 아니하면 아상· 인상만 느네 -
人有古今 法無遐邇 人有愚智 道無成衰 (인유고금이언정 법무하이하며 인유우지나 도무성쇠나니)
雖在佛時 不順佛敎則何益 (수재불시나 불순불교즉하익이며)
縱値末世 奉行佛敎則何傷 (종치말세나 봉행불교즉하상이리오)
故 世尊 云 我如良醫 知病設藥 (고로 세존이 운하사되 아여양의라 지병설약하니)
服與不服 非醫咎也 又如善導 導人善道 (복여불복은 비의구야며 우여선도하여 도인선도하나)
聞而不行 非導過也 自利利人 法皆具足 (문이불행은 비도과야라 자리이인이 법개구족하니)
사람엔 옛사람과 지금 사람이 있을지언정 법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사람엔 어리석고 슬기로움이 있을지언정 도에는 성하고 쇠함이 없나니 비록 부처님 재세시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으며 비록 말법시대를 만났다하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한다면 어찌 해로움이 있으리오 고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좋은 의사와 같아서 병을 알아 약을 주노니 먹고 안 먹고는 의사의 허물이 아니며 (나는) 또한 좋은 길잡이와 같아서 길을 잘 인도하되 듣고도 가지 않는 것은 길잡이의 허물이 아닌 것이라, 제게도 이롭고 남에게도 이로운 것이 법에 다 갖추어져 있나니
若我久住 更無所益 自今而後 我諸佛子 (약아구주라도 갱무소익이라 자금이후로 아제불자가)
展轉行之則如來法身 常住而不滅也 (전전행지즉여래법신은 상주이불멸야라시니)
若知如是理則但恨自不修道 何患乎末世也 (약지여시리즉단한자불수도언정 하환호말세야오)
伏望 汝順興決烈之志 開特達之懷 (복망하노니 여순흥결렬지지하며 개특달지회하고)
盡捨諸緣 除去顚倒 眞實爲生死大事 (진사제연하고 제거전도하며 진실위생사대사하여)
於祖師 公案上 宜善參究 以大悟 爲則 切莫自輕而退屈
(어조사 공안상에 의선참구하여 이대오로 위칙하고 절막자경이퇴굴이어다)
만약 내가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다해도 다시 더 이로운 바가 없을 것이라 지금으로부터 나의 여러 제자들이 법을 널리 펼치고 행할 것인 즉 여래의 법신은 (시방삼세에) 상주하여 멸하지 않느니라”하신 것이다. 만약 (여래의 법신은 상주불멸인 줄로) 이같이 진리를 알은 즉 다만 제 스스로 닦지 아니함을 뉘우칠지언정 어찌 ‘말세로다’하고 근심하리오. 엎드려 바라노니 그대는 모름지기 결연하고 맹렬한 뜻을 일으키며 궁극의 이치를 깨우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세속 인연을 말끔히 여의고 (그림자같은 경계에 끄달리는) 뒤집힌 생각을 몰락 놓으며 참으로 생사의 큰 일(일생 일대사 깨우침)을 위해 조사들의 가르침(공안)을 따라 마땅히 잘 참구하여 대오 견성을 철칙으로 삼아 부디 제 자신을 업수히 여겨서 물러서는 일이 없도록 할지어다.
惟斯末運 去聖時遙 魔强法弱 (유사말운에 거성시요하여 마강법약하고)
人多邪侈 成人者少 敗人者多 (인다사치하여 성인자소요 패인자다며)
智慧者寡 愚痴者衆 自不修道 亦惱他人 (지혜자과요 우치자중하여 자불수도하고 역뇌타인하나니)
凡有障道之緣 言之不盡 恐汝錯路故 (범유장도지연은 언지부진이라 공여착로고로)
我以管見 撰成十門 令汝警策 (아이관견으로 찬성십문하여 영여경책하니)
汝須信持 無一可違 至禱至禱 (여수신지하여 무일가위하길 지도지도하노라)
생각컨대 이런 말법시대에 부처님 가신지 아득하여 마군은 강성하고 정법은 약해져 사람마다 삿되고 호사스럽나니 바르게 이끄는 이 적고 남을 그르치는 이 많으며 지혜로운이 적고 어리석은 이 무리를 이루니 제 스스로 도를 닦지 않으며 또한 다른 이들까지 괴롭히나니 무릇 도에 장애되는 인연은 말로 다 할 수 없느니라. 그대도 빗나갈까 두려운 까닭에 내 좁은 소견으로써 열가지 문을 가려 지어서 그대로 하여금 경책을 삼게 하노니 그대는 모름지기 믿고 간직하여 한가지도 어긋남이 없기를 간절히 빌고 비노라.
頌曰, 愚心不學增橋慢 痴意無修長我人 (송왈, 우심불학증교만이요 치의무수장아인이로다)
空腹高心如餓虎 無知放逸似顚猿 (공복고심여아호요 무지방일사전원이로다)
邪言魔語肯受聽 聖敎賢章故不聞 (사언마어긍수청하고 성교현장고불문이로다)
善道無因誰汝度 長淪惡趣苦纏身 (선도무인수여도리오 장륜악취고전신이니라)
게송으로 말하리라, 어리석은 마음에 배우지 아니하면 교만한 마음만 늘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닦지 아니하면 아상·인상(내로다, 너로다 하는 상)만 늘게 되네.
닦은 것도 없으면서 뽐내기만 하는 모습은 마치 주린 범과 같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방탕·안일하면 마치 거꾸로 매달린 원숭이 꼴이로다.
삿된 소리 마구니 말은 즐겨 귀담아 들어도 성현의 가르침엔 귀 기울이지 않는도다. 바른 길에 인연 없음이니 누가 그대를 제도하리오. 삼악도에 잠겨 오래도록 고통에 얽매인 몸 될뿐이네.
초발심 자경문<9>
- 사흘닦은 마음 천년의 보배되어도 백년 탐낸 재물은
- 하루 아침에 티끌이 되느니라
其一 軟衣美食 切莫受用 (기일은 연의미식을 절막수용하라)
自從耕種 至于口身 非徒人牛 功力多重 (자종경종에 지우구신히 비도인우의 공력다중이라)
亦乃傍生 損害無窮 勞彼功而利我 (역내방생의 손해무궁커늘 로피공이리아라도)
尙不然也 況殺他命而活己 奚可忍乎 (상불연야인테 황살타명이활기를 해가인호오)
첫째,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부디 받아 쓰지 말지어다.
밭 갈고 씨 뿌리는 일로부터 먹는 것, 입는 것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소의 공력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때에 뭇 생명들의 손상도 한량없거늘 상대가 수고한 공으로 내가 이로운 것도 오히려 그러려니하기 여려운 데 하물며 다른 목숨을 죽여서 이 몸을 살리는 게 어찌 차마 견딜 일이겠는가
農夫 每有飢寒之苦 織女 連無遮身之衣 (농부도 매유기한지고하고 직녀도 연무차신지의인데)
況我長遊手 飢寒 何厭心 軟衣美食 當恩重而損道 (황아장유수하니 기한을 하염심이랴 연의미식은 당은중이손도며)
破衲蔬食 必施輕而積陰 今生 未明心 滴水 也難消 파납소식은 필시경이적음이라 금생에 미명심하면 적수도 야란소니라
농부도 매양 춥고 굶주리는 고통 속에 지내고 베짜는 여인도 늘 몸을 가릴만한 옷이 없는데 하물며 나는 오래일하지 아니하니 주리고 추운 것을 어찌 싫다 할수 있으랴. 부드러운 옷, 맛있는 음식은 마땅히 그 은혜 무거워 도를 덜어내고 헤진 옷에 나물 밥은 시주 은혜 가벼우므로 반드시 음덕이 쌓이리니 금생에 이 마음 밝히지 못하면 물 한방울조차 소화하기 어렵나니라
頌曰, 菜根木果慰飢腸 松落草衣遮色身 (송왈, 채근목과위기장하고 송락초의차색신이오)
野鶴靑雲爲伴侶 高岑幽谷度殘年 (야학청운위반례하고 고잠유곡도잔년이어다)
게송으로 말하노라,
풀뿌리 나무 열매로 주린 창자 달래고 솔가지 풀 옷으로 몸을 가리네 노니는 학과 푸른 구름 벗 삼아 높은 뫼 그윽한 골짜기에서 여생을 보내노라.
其二 自財不인 他物莫求 (기이는 자재불인하고 타물막구어다)
三途苦上 貪業在初 六度門中 行檀居首 (삼도고상에 탐업재초요 육도문중에 행단거수니라)
간貪 能防善道 慈施 必禦惡徑 (간탐은 능방선도요 자시는 필어악경이라)
如有貧人 來求乞 雖在窮乏 無인惜 (여유빈인이 래구걸커든 수재궁핍이라도 무인석하라)
둘째, 자기 재물 아끼지 말고 남의 재물 탐하지 말지어다.
삼악도 괴로운 길에는 탐하는 업이 첫째요 육바라밀 제도문 중에는 보시행이 첫머리라.
간탐은 마음공부 길 능히 가로 막고 자비 보시는 반드시 나쁜 길·악도를 방어한다.
가난한 사람이 와서 빌고 구하거든 비록 궁핍하더라도 아끼고 애석해 하지 말라
來無一物來 去亦空手去 自財 無戀志 他物 有何心 래무일물래오 거역공수거라 자재도 무련지어든 타물에 유하심이리오)
萬般將不去 唯有業隨身 (만반장불거요 유유업수신이라)
三日修心 千載寶 百年貪物 一朝塵 (삼일수심은 천재보요 백년탐물은 일조진이니라)
올 때 한 물건도 없이 왔고 갈 때 또한 빈손으로 간다.
자기 재물에도 연연할 게 없거든 남의 재물에 어찌 마음 두랴
만반으로 갖춘 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업만이 이 몸을 좇을 것이라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가 되어도 백년 탐낸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되느니라.
頌曰, 三途苦本因何起 只是多生貪愛情 (송왈, 삼도고본인하기오 지시다생참애정이로다)
我佛衣盂生理足 如何蓄積長無明 (아불의우생리족커늘 여하축적장무명인고)
게송으로 말하노라.
삼악도 고통은 본래 어디로부터 왔는가. 다만 여러 생에 탐애한 정이로다. 우리 부처님 의발로 법다이 족했거늘 어찌해 재물 쌓아 무명을 기르려는고
其三 口無多言 身不輕動 (기삼은 구무다언하고 신불경동이어다)
身不輕動則息亂成定 口無多言則轉愚成慧 (신불경동즉식란성정이오 구무다언즉전우성혜니라)
實相離言 眞理非動 口是禍門 必加嚴守 (실상이언이오 진리비동이라 구시화문이니 필가엄수하고)
身乃災本 不應輕動 (신내재본이니 불응경동이어다)
셋째,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몸을 가볍게 굴지 말라
몸이 가벼이 움직이지 않은 즉 어지러운 마음 쉬어 선정이루고,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안으로 찾은 즉 어리석음 되돌려 지혜이루리라 실상은 말을 여의었고 참 이치는(여여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입은 화가 드나드는 문이니 반드시 엄정히 지키고 몸은 재앙의 근본이니 응당 가볍게 굴어서는 안 된다.
초발심 자경문<10>
- 스승과 벗을 잘 가려야 배움 높아져 -
- 잠은 큰 적이니 삼경외에 자지 말라 -
數飛之鳥 忽有羅網之殃 輕步之獸 非無傷箭之禍
(삭비지조는 홀유라망지앙이요 경보지수는 비무상전지화니라)
故 世尊 住雪山 六年坐不動(고로 세존이 주설산하사되 육년좌부동하시고)
達磨居少林 九歲默無言 後來參禪者 何不依古種
달마거소림하사 구세묵무언하시니 후래참선자인들 하불의고종이리오
자주 나는 새는 홀연히 그물에 걸리는 재앙을 만나고 가벼이 쏘다니는 짐승은 화살 맞아 상하는 화가 없지 않느니라 고로 세존께서 설산에 머무실 때 6년 동안 좌정하사 부동이셨고 달마 대사께서는 소림사에서 9년 동안을 묵언 부동하시니 뒤 따라 마음공부 하는 사람인들 어찌 옛 자취에 의지치 않으리오.
頌曰, 身心把定元無動 默坐茅庵絶往來 (송왈, 신심파정원무동하고 묵좌모암절왕래하니)
瀨瀨廖廖無一事 但看心佛自歸依 (작작료료무일사하고 단간심불자귀의어다)
게송을 말하노라.
몸과 마음 함께 정에 들어 흔들림 없고 뗏 집에 묵연히 앉아 왕래 끊으니 적적하고 고요할뿐 한 가지 일조차 없으매 다만 안으로 마음 살펴 자성불에 스스로 귀의하노라
其四 但親善友 莫結邪朋 (기사는 단친선우하고 막결사붕하라)
鳥之將息 必擇其林 人之求學 乃選師友 (조지장식에 필택기림이요 인지구학에 내선사우니)
擇林木卽其止也安 選師友卽其學也高 (택림목즉기지야안하고 선사우즉기학야고니라)
故 丞事善友 如父母 遠離惡友 似寃家 (고로 승사선우를 여부모하고 원리악우를 사원가니라)
넷째, 다만 좋은 벗과 친할 뿐 사악한 자와 벗하지 말라.
새도 쉬고자 하면 반드시 숲을 가리며 사람이 학문을 배움에는 스승과 벗을 가린다.
수풀을 잘 가리면 머물기 편안하고 스승과 벗을 잘 고른 즉 배움이 높아 지리라.
고로 좋은 벗 받들어 섬기기를 부모 같이 하고 나쁜 벗 멀리하기를 원수진 집 처럼하라
鶴無烏朋之計 朋豈초友之謀 (학무오붕지계니 붕기초우지모리오)
松裏之葛 直聳千尋 茅中之木 未免三尺 (송리지갈은 직용천심이요 모중지목은 미면삼척이니)
無良小輩 頻頻脫 得意高流 數數親 (무량소배는 빈빈탈하고 득의고류는 삭삭친이어다)
학은 까마귀가 벗하려 하지 않나니 대붕이 어찌 뱁새와 벗하기를 도모하리오. 소나무 숲의 칡은 하늘 높이 곧게 솟아 자라고 억새풀 숲 가운데 자라는 나무는 석자를 넘겨 자라기 어렵나니 좋지 못한 소인배와는 어서어서 떨어 지고 높은 뜻을 지닌 무리와는 자주자주 친교할지어다.
頌曰, 住止經行須善友 身心決擇去型塵(송왈, 주지경행송선우하여 신심결택거형진이어다)
型塵掃盡痛前路 寸步不離透祖關(형진소진통전로하면 촌보불리투조관이니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머물고 그치고 행보함에 모름지기 선우와 함께 하고 몸과 마음 결택하여 가시 티끌(애욕 집착)버릴지니 가시 티끌 쓸어내어 앞 길 뚫리면(번뇌 망상 몰락 놓아 한 생각조차 쉬면) 한 발짝도 아니 떼고 조사관문 꿰뚫으리
其五 除三更外 不許睡眠 曠劫障道 睡魔莫大(기오는 제삼경외에 불허수면이어다 광겁장도는 수마막대니)
二六時中 惺惺起疑而不昧 四威儀內 密密廻光而自看(이륙시중에 성성기의이불매하며 사위의내에 밀밀회광이자간하라)
一生空過 萬劫追恨 無常刹那 乃日日而警怖(일생공과면 만겁추한이니 무상찰나라 내일일이경포요)
人命須臾 實時時而不保 若未透祖關 如何安睡眠(인명수유라 실시시이불보니라 약미투조관인대 여하안수면이리오)
다섯째, 삼경(저녁9시~새벽3시)외에는 잠자지 말라.
아득한 옛부터 도를 가로막는 것은 수마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12시 중(하루 24시간 중)에 늘 또렷하여 의정이 끊이지(흐리지) 않아야 하며 행주좌와 중에 세밀하고 세밀하게 마음자리를 돌이켜 비추어 안으로 살펴라. 한 생 헛되이 보내면 만겁을 두고 한이 따를 것이니 덧없는 세월 찰나이라 날이면 날마다(세월 흘러감을) 놀래고 두려워 할 것이요. 사람 목숨 잠깐 사이이니 실로 시시각각 보존됐다 할 것이 아니니라. 만약 조사 관문 뚫지 못할진대 어찌 편안히 잠 잘 수 있으리요.
초발심 자경문<11>
- 자기를 높이고 남을 업신 여기지 말라 -
- 여색·재화·세속인연 멀리해야 출가사문-
其六 切莫妄自尊大 輕慢他人 (기육은 절막망자존대하고 경만타인이어다)
修仁得仁 謙讓 爲本 (수인득인은 겸양이 위본이요)
親友和友 敬信 爲宗 (친우화우는 경신이 위종이라)
四相山 漸高 三途海益深 (사상산이 점고면 삼도해익심하나니)
外現威儀 如尊貴 內無所得 似朽舟 (외현위의는 여존귀나 내무소득은 사후주라)
官益大者 心益小 道益高者 意益卑 (관익대자는 심익소하고 도익고자는 의익비니라)
人我山崩處 無爲道自成 (인아산붕처에 무위도자성하나니)
凡有下心者 萬福自歸依 (범유하심자는 만복자귀의니라)
여섯째, 망념되이 저를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
어짐(참다운 길)을 닦아 이루는데는 겸손과 양보(하심)가 근본이 되고 벗(도반)과 사귀는 데는 공경과 믿음이 으뜸 된다. 네 가지 상(아·인·중생·수자상)이 높아지면 삼악도 고해는 더욱 깊어진다.
겉보기 형상·거동은 존귀해 보이나 안으로 관하여 터득하는 바 없다면(이 몸은) 마치 낡은 배와 다를 바 없느니라. 벼슬이 높으면 높을 수록 마음은 더욱 왜소해지고 도가 높으면 높을 수록 뜻은 더욱 낮아지느니라. 내다, 너다 둘로 보는 상이 무너진 곳에 함이 없는 도는 절로 이뤄지나니 무릇 하심하는 이에게는 만복이 절로 돌아와 의지하느니라.
頌曰, 교慢塵中藏般若 我人山上長無明 (송왈, 교만진중장반야요 아인산상장무명이오)
輕他不學용踵老 病臥辛吟限不窮 (경타불학용종로하면 병와신음한불궁이니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교만한 마음(교만이라는 티끌)속에 반야지혜 묻혀 버리고 아상·인상 높은 뫼엔 무명만 자라네. 남을 없수히 여겨 배우지 않고 뒤뚱뒤뚱 이 몸 늙으면 병들어 자리보고 신음·한탄 끝이 없네.
其七 見財色 心須正念對之 (기칠은 견재색이어든 심수정념대지어다)
害身之機 無過女色 喪道之本 莫及財貨 (해신지기는 무과여색이요 상도지본은 막급재화니라)
是故 佛垂戒律 嚴禁財色 (시고로 불수계율하사 엄금재색하사대)
眼覩女色 如見虎蛇 (안도여색이어든 여견호사하고)
身臨金玉 等視木石 (신임금옥이어든 등시목석하라)
일곱째, 재물과 여색을 보거든 모름지기(가르침 따라) 바른 생각으로 대하라.
몸을 해치는 기틀로 색정보다 더한 게 없고 도를 상하게 하는 근본으로 재화에 미칠 게 없다.
이러므로 부처님께서 계율을 세우사 재물과 색을 엄격히 금하시되 ‘여색을 보거든 마치 호랑이·뱀을 본듯이 하고 금·옥이 수중에 들어오거든 목석과 한가지로 보라’ 하셨다.
雖居暗室 如對大賓 隱現同時 內外莫異 (수거암실이나 여대대빈하고 은현동시하며 내외막이어다)
心淨則善神 必護 戀色則諸天 不容 (심정즉선신이 필호하고 련색즉제천이 불용하나니)
神必護則 雖難處而無難 (신필호즉 수난처이무난이요)
天不容則 乃安方而不安 (천불용즉 내안방이불안이니라)
비록 어두운 방에 홀로 있어도 큰 손님 대한 듯이 하고(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방에 있어도 귀한 손님 마주 대한 듯 예의 지키고) 보일 때나 안보일 때나 한가지로 같아서 마음과 행실이 다르지 않을지어다.
마음이 청정한 즉 신장이 반드시 지켜주고 색을 그리워 한 즉 하늘이 용납치 않으리니(※ 선신과 제천은 제불보살 또는 자성불의 의미임) 신이 반드시 지켜주는 즉 비록 어려운 처지라도 어려움이 없고(마음이 여여함을 의미함) 하늘이 용납치 않은 즉 이에 편안한 곳에서도(마음은) 편치 못하리라.
頌曰, 利欲閻王引獄鎖 淨行陀佛接蓮臺 (송왈, 이욕염왕인옥쇄요 정행타불접연대니라)
鎖拘入獄苦千種 船上生蓮樂萬般 (쇄구입옥고천종이요 선상생연락만반이니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이욕에 빠지면 염라왕이 지옥에 가두고 마음 청정하면 아미타불이 연화대로 영접하리 쇠고랑 차고 지옥에 들면 괴로움이 천가지요 배(바라밀)에 올라 연화대로 나아가면 즐거움이 만반이로다.
其八 莫交世俗 令他憎嫉 기팔은 막교세속하야 령타증질이어다.
籬心中愛曰沙門 不戀世俗曰出家 리심중애왈사문이오 불련세속왈출가니라
旣能割愛揮人世 復何白衣 結黨遊 기능할애휘인세니 부하백의로 결당유리오
愛戀世俗 爲도철 도철 由來 非道心 애련세속은 위도철이니 도철은 유래로 비도심이니라
人情濃厚 道心疎 冷却人情永不顧 인정농후면 도심소니 냉각인정영불고니라
여덟째 세속과 사귀어 다른 이로 하여금 증오·질투케 하지 말라
마음 속 집착애욕(갈애) 여의니 사문이라 하고 세속 인연 그리워 않으니 출가라 한다. 이미 갈애를 능히 베고 인간 세상 뿌리쳤으니 다시 속인과 무리지어 교유하겠는가.
세속을 심히 그리워 함은 도철이니 도철은 본래로 도 닦는 마음이 아니다. 사람 사는 정이 짙으면 도심은 성글어지니 냉정하게 인정 물리쳐 영영 돌아보지 말라.
초발심 자경문<12>
- 어떤 칭찬이나 비방에도 흔들리지 말라 -
- 마음이 평등하면 취하고 버릴 것도 없어 -
若欲不負出家志 須向名山窮妙旨 약욕불부출가지인댄 수향명산궁묘지하되
一衣一鉢 絶人情 飢飽 無心道自高 일의일발로 절인정하면 기포에 무심도자고니라
頌曰, 爲他爲己雖微善 皆是輪廻生死因 송왈, 위타위기수미선이나 개시윤회생사인이라
願入松風蘿月下 長觀無漏祖師禪 원입송풍라월하하여 장관무루조사선이어다
만약 출가한 뜻 등지지 않으려거든 모름지기 명산을 찾아가(고요한 자리를 잡아서) 묘의를 궁구하되 옷 한 벌 바리때 하나로 인정 끊고 주리고 배부름에 마음 두지 않으면(먹거리 걱정에 걸리지 않으면) 도는 저로 높아지리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남을 위하고 저 위하는 것 비록 작은 선이나 이것이 다 생사윤회의 원인이라 원컨대 솔 밭 칡넝쿨 숲 달 빛 아래 망상 여읜 조사의 마음자리 오래 관할지어다.
其九 勿說他人過失 기구는 물설타인과실하라
雖聞善惡 心無動念 수문선악이나 심무동념이니
無德而被讚 實吾慙愧 무덕이피찬은 실오참괴요
有咎而蒙毁 誠我欣然 유구이몽훼는 성아흔연이니라
欣然則知過必改 慙愧則進道無怠 흔연즉 지과필개요 참괴즉진도무태니라
勿說他人過 終歸必損身 물설타인과하라 종귀필손신이니라
아홉째,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비록 좋은 소리 나쁜 소리 듣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나니, 덕이 없는데 칭찬 받음은 참으로 부끄럽고, 허물 있어 헐뜯는 소리 듣게 됨을 진실로 기뻐 할 일이라, 흔연히 받아들인 즉 허물 알아 반드시 고치고 부끄러워하는 즉 도 닦는데 게으르지 않으리라 남의 허물 입에 올리지 말라 마침내 되돌아와 반드시 내 몸 손상케 한다.
若聞害人言 如毁父母聲 약문해인언커든 여훼부모성하라
今朝 雖說他人過 異日 回頭論我咎 금조에 수설타인과나 이일에 회두논아구니
雖然 凡所有相 皆是虛妄 수연이나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니
譏毁讚譽 何憂何喜 기훼찬예에 하우하희리요
頌曰, 終朝亂說人長短 竟夜昏沈樂睡眠 송왈, 종조란설인장단타가 경야혼침락수면 이로다
如此出家徒受施 必於三界出頭難 여차출가도수시니 필어삼계출두난 하리라
만약 남을 해치는 말 듣거든 마치 부모 헐뜯는 소리라 하라
오늘 아침 비록 남의 허물 입에 올리나 다른 날 되돌아 내 허물 거론하는 말 듣게 되리라
비록 그러하나 무릇 모든 형상이란 다 실체가 따로 없는 것이니, 나무라고 헐뜯고 칭찬함에 어찌 근심하거나 기뻐하랴
게송으로 말하노라
아침부터 하루 종일 남의 잘 잘못이나 떠벌이다가 밤새도록 흐릿하여 잠이나 즐기누나. 이 같은 출가 헛되이 보시나 축내는 것이라
참으로 삼계 윤회 벗어나기 어렵도다.
其十 居衆中 心常平等 (기십은 거중중하여 심상평등하라)
割愛辭親 法界平等 若有親疎 心不平等 (할애사친은 법계평등이니 약유친소면 심불평등이라)
雖復出家 何德之有 (수부출가나 하덕지유리오)
心中 若無憎愛之取捨 身上 那有苦樂之盛衰 (심중에 약무증애지취사면 신상에 나유고락지성쇠리오)
平等性中 無彼此 大圓鏡上 絶親疎 (평등성중에 무피차하고 대원경상에 절친소니라)
三途出沒 憎愛所纏 六道昇降 親疎業縛 (삼도출몰은 증애소전이요 육도승강은 친소업박이니라)
열째, 대중 가운데 머물어도 마음은 항상 평등 (평상심)할 지어다.
사랑 버리고 어버이 떠난 것은 법계 평등 그것이라(법계가 본래 평등함을 아는 실천인데) 만약 친밀하고 소원함(성김)이 있다면 마음으로 평등치 못한 것이라.
비록 다시 출가하나 무슨 덕이 있으리오 마음 가운데 만약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취하고 버림이 없다면 몸에 어찌 괴로움과 즐거움의 성하고 쇠함이 있으리오.
평등한 성품 가운데는 너와 나가 따로 없고, 둥글고 큰 지혜의 자리엔 가깝고 멀고가 끊어졌나니(뚜렷이 밝은 마음자리엔 너·나의 차별 없어 둘 아니게 평등하고 여여하나니)
삼악도를 드나 듦은(마음이) 미움과 사랑에 얽힌 바(까닭)요 육도를 오르 내림은 친소 차별 업에 묶인 탓이다.
契心平等 本無取捨 若無取捨 生死何有 (계심평등하면 본무취사니 약무취사면 생사하유리요)
頌曰, 欲成無上菩提道 也要常懷平等心 (송왈, 욕성무상보리도인댄 야요상회평등심이어다)
若有親疎憎愛計 道加遠兮業加深 (약유친소증애계면 도가원혜업가심하리라)
마음 평등한 자리에 계합하면 본래 취하고 버릴 것이 없나니 만약 취하고 버림이 없다면 생사가 어찌 있으리요.
게송으로 말하노라
위 없는 보리도 이루려거든 평등심 언제나 지녀 가짐 요긴하니 만약 친소 애증 따진다면 도는 더욱 멀어 짐이여, 업은 더욱 깊으리라.
초발심 자경문<13>
- “열가지 계법지녀 바른 깨달음 속히 이뤄 미혹 중생 제도하라”-
主人公 汝値人道 當如盲龜遇木 (주인공아 여치인도가 당여맹구우목이어늘)
一生幾何 不修懈怠 (일생기하인대 불수해태오)
人生難得 佛法難逢 (인생난득이요 불법난봉이라)
此生 失却 萬劫 難遇 須持十門之戒法 (차생실각이면 만겁 난우니 수지십문지계법하여)
日新勤修而不退 速成正覺 還度衆生 (일신근수이불퇴하고 속성정각하여 환도중생하라)
주인공아, 그대가 사람 몸 받은 것 응당 저 눈먼 거북 나무토막 만난 격인데 한 생이 얼마나 된다고 닦지 않고 게으르리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려운데 이번 생 놓치면 만겁이 지나도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이 열가지 계법 잘 지녀서 날마다 새록새록 부지런히 닦아 물러서지 않아서 속히 바른 깨달음 이뤄 돌이켜 중생을 제도토록 하라.
我之本願 非謂汝獨出生死大海 (아지본원은 비위여독출생사대해라)
亦乃普爲衆生也 何以故 (역내보위중생야니 하이고오)
汝自無始以來 至于今生 恒値四生 (여자무시이래 지우금생히 항치사생하야)
數數往還 皆依父母而出沒也 (삭삭왕환에 개의부모이출몰야일새)
故 曠劫父母 無量無邊 (고로 광겁부모 무량무변하니)
由是觀之 六道衆生 無非是汝 多生父母 (유시관지컨대 육도중생이 무비시여 다생부모라)
如是等類 咸沒惡趣 日夜 受大苦惱 (여시등류 함몰악취하여 일야에 수대고뇌하나니)
若不拯濟 何時出離 (약부증제면 하시출리리요)
나의 본래 서원은 「네 홀로 생사대해를 뛰어 나는 것(깨달음)」을 말함이 아니고 (깨달아) 또한 널리 중생을 위하고자 함에 있나니 어인 까닭인가 하면 그대 스스로 무시이래 금생에 이르도록 항상 사생의 세상을 만나서 (네가지 형태 굚 난생·습생·화생·태생 굚 로 몸 바꿔 오면서) 수도 없이 가고 옴에 다 부모의 몸을 빌어 드나들었거니.
그러므로 아득한 옛날부터 내 부모가 한량없고 가 없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미루어 살피건대 육도의 모든 중생들은 그대의 여러 생애에 부모 아님이 없는지라 이 같이 한 가지 무리인데 악도에 빠져서 밤낮으로 큰 고뇌 받고 있으니 만약 (이들을) 제도하지 않는다면 어느 때에 벗어날 것인가.
嗚呼哀哉 痛纏心腑오호애재라 통전심부로다
千萬望汝 早早發明大智 具足神痛之力천만망여하노니 조조발명대지하여 구족신통지력하고
自在方便之權 速爲洪濤之智楫(자재방편지권하여 속위홍도지지집하여)
廣度欲岸之迷倫(광도욕안지미륜이어다)
君不見 從上諸佛諸祖 盡是昔日 同我凡夫(군불견가 종상제불제조 진시석일에 동아범부니라)
彼旣丈夫 汝亦爾 但不爲也 非不能也(피기장부라 여역이니 단불위야언정 비불능야니라)
아아, 슬프고 애닯도다. 가슴 아프고 애간장 타는 구나.
천만번을 그대에게 바라노니 어서 빨리 큰 지혜 일으키고 밝혀서 신통력 갖추고, 자재방편 권도로서 속히 만경창파 거친 파도에 지혜의 돛대 되어 탐욕의 언덕 미혹에 잠긴 무리들을 널리 건질지어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위로는 제불조사들이 옛날에는 다 나와 똑같은 범부였도다.
제불조사 저들이 이미 장부라면 그대 또한 장부려니 다만 그리되지는 않았을(깨닫지 못했을) 지언정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古曰道不遠人 人自遠矣(고왈도불원인이라 인자원의라하여)
又云我欲仁 斯仁 至矣 誠哉 是言也(우운아욕인이면 사인 지의라시니 성재라 시언야여)
若能信心不退則 誰不見性成佛(약능신심불퇴즉 수불견성성불이리요)
我今 證明三寶 一一戒汝(아금에 증명삼보하옵고 일일계여하노니)
知非故犯則 生陷地獄 可不愼歟 可不愼歟(지비고범즉 생함지옥하리니 가불신여며 가불신여아)
옛 말씀에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멀리하는 것」이라 했다.
또 말하기를「내가 어질고자 하면(도를 닦고자하면) 그 어짐(도)이 다다른다」하였으니 진실하도다 이 말씀이여. 만약 믿음이 굳어 물러서지 아니한다면 누군들 견성 성불하지 못하리오. 내가 이제 삼보전에 증명하고 하나하나 그대에게 경계하노니 그른 줄 알면서 짐짓 범한다면 살아서 지옥에 떨어지리라. 가히 삼가 해야지 안 그런가. 가히 삼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
頌曰, 玉兎昇沈催老像 金烏出沒促年光(송왈, 옥토승침최로상이요 금오출몰촉년광이로다)
求名求利如朝露 或若或榮似夕烟(구명구리여조로요 혹약혹영사석연이로다)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권여은근수선도하노니 속성불과제미륜이리요)
今生若不從斯語 後生當然恨萬端(금생약부종사여하면 후생당연한만단하리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옥토끼 오르내려(달이 뜨고 지고 하는 모습 세월의 흐름을 말함) 늙음을 독촉하고 금 까마귀 드나들며(해 뜨고 지는 것) 세월을 재촉하네. 명리를 구함은 아침 이슬 같고 괴롭다 영화롭다 저녁 안개(연기) 흡사하다. 그대에게 은근히 수도하길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 이뤄 미혹중생 제도하라. 금생에 이 한말 따르지 않을지면 후생에 반드시 온갖 한탄 크고 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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