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설날은 여러 면에서 확실히 한국보다 진하다. 일단 거리의 풍경이 확연히 다르다. 설날이 가까워 오면 베트남의 거리는 황금빛 열매가 달린 꺼이꾸엇(cay quot-낑깡과 비슷)으로 길거리의 색깔이 확 바뀐다. 뿌연 먼지와 망가진 포장도로와 입 벌린 시궁창의 배경 속에서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엉키고 빵빵거리는 경적소리까지 가세를 해서 정신이 없는 거리에 어느 날 갑자기 탁구공만한 황금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일 미터 남짓한 꺼이꾸엇 나무가 도로를 메우기 시작하면 거리의 분위기는 확 달라지며 설날의 감흥 속으로 들어간다. 배경과 피사체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피사체에서 뿜어 나오는 황금빛이 뿌연 먼지와 망가진 포장도로와 입 벌린 시궁창의 배경을 압도하며 목가의 도시로 돌변한다. 그래서 갑자기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베트남 사람이라면 누구나 설날에 꼭 사는 물건이 바로 이 황금열매를 맺는 꺼이꾸엇이다. 그 이유를 굳이 캐묻지 않아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주렁주렁 달린 열매처럼 올해도 운수대통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이다. 또한 화 다오(복숭아꽃)가지도 설날에 등장하는 福의 꽃이다. 복을 갈구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민족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다만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적 요인에 따라 복을 갈구하는 형식이 외부적으로 많이 표출된 나라가 있고, 적게 표출된 나라가 있는 그 차이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베트남은 현 시점의 우리보다는 복을 갈구하는 문화가 밖으로 많이 표출되어 있다. 새해의 덕담만 보더라도 보통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로 쭉 남 머이(Chuc mung nam moi)는 기본이고, 그 다음에, 안 캉 팅 브엉(An khang thinh vuong 安康盛旺), 안 낸 람 자(An nen lam ra-돈을 벌게 되기를), 반 스 느 이(Van su nhu y 萬事如意),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기가 막히게 베트남 상황에 맞는 축복의 덕담이 있다. 그것은 베트남을 특징짓는 요소를 가지고 만들어낸 덕담이다. 베트남에는 까페 핀 이라는 베트남 사람들이 애호하는 drip 커피가 있고, 중국 운남성에서 발원하여 홍江과 만나는 길이 900km의 Da江이 있다. “새해에는 돈이 Da江 처럼 들어왔다가 drip 커피 물방울처럼 나가게 되기를(Chuc nam moi tihn vao nhu nuoc song da, tien ra nha giot nha ca phe phin), 이 얼마나 시각적, 사실적, 구체적으로 확실한 축복의 덕담인가. 이렇게 베트남의 설날에는 복을 기원하는 말들이 실제 대화에서 오고간다. 풍성한 덕담의 잔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새해가 되기 전에 묵은 해의 부채를 청산해야 새해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하여 서둘러 빚을 갚지만, 한편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일부 과도한 구복자(求福者)들은 도둑질을 해서라도 빚을 갚으려 한다. 그래서 특히 설날 전에는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리므로 지갑을 조심해야 한다. 얼마나 복을 받고 싶으면 남의 돈을 훔쳐서 까지 빚을 갚으려고 하겠는가. 복을 받고 싶은 마음이 도덕적 양심 위에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통법규도 못 당해낸다. 베트남의 주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는 원래 2명이 정원이다. 그러나 설날에는 정원을 초월하여 3명이상 4명도 타고 다닌다. 그래도 교통경찰이 모르는 척 한다. 왜냐하면 새해에 시비가 붙으면 일 년 내내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교통경찰도 복을 받기 위해 범법자를 모르는 체 하는, 구복(求福)의 심령이 임무수행보다 위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믐날 자정 12시를 지나 새해의 첫 시간은 그 해의 복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덕망 있고 띠(十二支)가 집 주인의 띠와 잘 부합하는 사람을 초청해서 자정 12시를 넘기자마자 그 집 땅을 밟고 들어오게 하는데 이것을 송덧(xong dat)이라고 한다. 송(xong)은 발을 내딛다 라는 뜻이고 덧(dat)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날 아침에 또 한 번 송냐(xong nha)의 예식을 가진다. 송(xong)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딛다라는 뜻이고 냐(nha))는 집이라는 뜻이다. 설날 아침에 가장 먼저 자기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또한 그 해의 幸과 不幸의 명암이 엇갈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행운의 신이 2명이다. 땅을 밟는 사람(神)과 집을 방문하는 사람(神). 둘 다 행운을 몰고 오면 대박이고, 혹 한 사람이 불운을 몰고 오게 되더라도 다음 사람이 행운을 몰고 오면 상쇄될 수 있도록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조치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복을 받기 위해 가정에서는 가정대로 이런 예식을 가진 다음에, 그것도 모자라 복을 구하기 위해 절과 사당을 찾아 떠난다. 그래서 설날에 베트남의 절과 사당은 수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한국인들이 보통 한 군데 절을 가는 것과 달리 베트남 사람들은 아예 절 tour를 한다. 회사별로 동네별로 차를 렌트해서 이 절, 저 절을 다니면서 복을 갈구하고 소원이 적힌 종이를 태워서 연기와 함께 그 소원이 하늘에 닿기를 소망한다.
한국도 옛날 물건을 보면 복福자가 없는 물건이 없었다, 특히 혼수품에는 복福자가 사방팔방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불과 베개에는 물론, 저고리 고름에도 福자가 빼곡히 수 놓여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마고자 단추에도 福자가 새겨져 있었고 숟가락은 물론이요, 가느다란 젓가락에도 福자를 새겨 넣었다. 심지어 오강에도 福자를 새겼다. 얼마나 복을 받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福! 福! 福! 福! 福! 福! 베트남의 설날은 복을 받기 위한 시간의 첫 관문關門 같다. 전 국민이 복을 받기 위해 들떠서 복을 찾아 이동을 한다. 남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절에는 주로 여자들이 오지만 베트남의 절은 남자들이 40%정도를 차지한다. 젊은 남자들도 많다. 인간은 얼마만큼 복을 받으면 만족을 할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인간이 구하는 복에 어찌 상한선이 있으랴.
김영신/한베문화교류센터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