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아름다운 미모를 가져서 다른 신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가지려고 했다. 당연히 바람둥이이며 그리스 최고의 신인 제우스 신도 당연히 그녀를 원했다.
하지만 예지의 여신은 그녀의 아들이 아버지보다 강하고 위대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숭상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자신의 옥좌를 지키기 위해 아내를 먹어버렸던 제우스는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테티스를 취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그리스의 왕자인 펠레아스와 혼인을 하였다.
펠레아스와 테티스의 결혼은 신들에 의해 치러졌는데 이 때 불화를 일으키는 여신 에리스가 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이에 화가 난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가 쓰인 황금사과를 잔치판에 두었다. 이 사과를 본 제우스의 아내이자 신들의 여왕인 헤라. 미의 여신이자 사랑을 주관하는 아프로디테. 그리고 지식과 정의로운 싸움을 주관하는 아테네가 각각 자신이 사과의 주인이라 주장하였다.
처음에는 이 사과의 주인을 제우스에게 정해달라고 했지만 아내와 사랑하는 딸, 그리고 자신의 하위 신이기는 하지만 태생이 남달랐던 여신(아프로디테는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이라는 설과 크로노스의 정액거품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즉 자신에게 관련 되었으며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여신들을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신들이 서로 의견을 내놓았지만 각자 의견이 분분하여, 결국 신들은 인간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이때 선택된 인간이 목동인 파리스였다.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이지만 20살이 되면 트로이가 멸망하게 된다는 신탁이 있음으로 왕자를 유폐시켜 목동으로 지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파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선택하기에 앞서 여신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그에게 보답을 하기로 약속했다. 헤라는 신들의 여왕답게 부자나 강력한 왕권을 주겠다고 하고,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싸움과 지혜로 명예를 얻게 해 주겠다고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고 하였다.
결국 파리스는 명예와 부자 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선택하였다. 그래서 아프로디테가 이기자 화가 난 두 여신이 그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했다고도 하며, 또 다른 전설로는 파리스가 여신들에게 당신들의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옷을 입지 않은 나신으로 자신 앞에 서라고 요구했다고도 하는데, 이는 루벤스의 그림인 파리스의 심판에서 나신인 여신과 목동의 그림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이미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서, 그녀는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렌이었다.
헬렌은 제우스와 레다 사이에서 난 아이로 빼어난 미모로 인해 많은 구혼자가 몰렸고, 그의 양부는 구혼자들에게 경기에서 승리하는 자를 헬렌의 남편으로 맞겠다고 했는데 메넬라오스가 승리하여 그녀를 얻었다. 그런데 경기하기 전에 모든 구혼자들에게 경기의 우승자와 헬렌이 결혼식을 하면 이후에 그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반드시 도와주기로 약속을 하게 하였다.
그 후 메넬라오스와 결혼한 헬렌은 딸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는데, 여신 아프로디테와 파리스는 스파르타에 있는 메넬라오스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자 메넬라오스는 여신과 동행한 파리스를 환영했는데, 곧 메넬라오스는 급한 일로 집을 떠나 크레타로 가게 되었다.
아프로디테 여신은 이때를 노려서 헬렌과 파리스의 맺어주자, 둘을 파리스의 고향인 트로이로 도망가게 되엇다.
한편 트로이에서는 파리스의 어머니가 아들의 탄생에 맞춰 올리브를 심었는데, 올리브는 2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올리브는 아테나의 신목으로 아테나는 1년 일찍 올리브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여, 결국 트로이는 파리스의 나이를 착각하여 20년이 되기 전에 파리스와 헬렌을 자신의 성에 맞아들여서 불행을 예고한 예언이 이루어지게 했다.
이처럼 트로이의 전쟁은 그리스 신화이지만 신에서 인간에게로 주권이 넘어가는 과도기이다.
아무튼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당시에 그리스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인 미케네의 왕으로 있는 형인 아가멤논에게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자, 아가멤논은 그리스의 여러 다른 도시국가의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신화에서 메넬라오스와 헬렌의 결혼 생활에 위험이 오면 돕기로 한 약속대로)그리스의 왕들은 군대를 이끌고 보에오티아지방의 아우리스 항에 집결하여 모임을 갖고, 총지휘자로 아가멤논 왕을 뽑았다.
그러나 첫 원정에서 그리스 함대는 풍랑에 길을 잃고 엉뚱한 미시아에 상륙하였으나, 그곳의 왕 텔레포스는 그리스군을 쫒아내었다. 8년 뒤에 아가멤논은 다시 군대를 모아 항해를 했으나 이번엔 도중에 바람이 없어져 예언자 칼가스가 예전에 아가멤논이 사슴 사냥에서 ‘아르테메스라도 이렇게 멋지게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라는 말에 여신이 노하여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바람을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여, 아가멤논은 자기의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쳐 순풍을 얻어서 트로이에 도착했다.
그러나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도망간 지 10년이(전쟁 후 2년) 되었어도 전쟁은 승패가 없었는데, 이것은 올림푸스의 신들이 두 패로 나뉘어서 서로 돕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리스군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은 트로이 아폴로 신전의 신관 크리세스의 딸을 포로로 잡았는데, 크리세스가 아폴로에게 간절히 기도하자 그리스군에 점염병이 돌았고, 예언자 칼카스는 원인이 아가멤논의 포로 크리세스의 딸 때문이라고 하여 그 여자를 돌려주고 아킬레스의 포로 브리세이스란 여자를 취하자, 아킬레스는 이에 불만을 품어서 전쟁에 참전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스군 최고의 장수인 아킬레스가 전투에서 빠지자 사기를 잃은 그리스 군은 계속 패하여서 그의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스에게 간청하여 아킬레스의 갑옷과 군사를 빌려 입고 나오자, 이를 본 군사들은 아킬레스로 착각하여 사기가 충전하여 전쟁에서 이겼으나, 이때 트로이 최고의 장수 헥토르가 나와서 아킬레스의 친구인 파트로클로스와 싸워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아킬레스는 크게 슬퍼하며 전투에 참가하여 헥토르의 목에 창을 찔렀는데, 헥토르는 죽으면서 자기의 시체를 늙은 아버지에게 가게 해 달라 하였지만, 아킬레스는 시체를 끌고 자기 진지로 돌아갔다.
성위에서 이걸 지켜본 헥토르의 아버지인 트로이 왕은 성 아래로 몸을 던져 자결하려 하였으나, 주위의 만류로 못하고 밤에 성문을 열고 아킬레스에게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아들의 시체를 돌려 달라하여 데려간 후 전쟁은 다시 계속되었다.
헥토르가 죽으면서 그리스가 유리한 전세에 있었는데, 어느 날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쏜 독화살이 아킬레스의 발 뒷굼치를 맞추어 아킬레스가 죽으면서 다시 지루한 전쟁이 계속 되었다.
그 후 오랜 전쟁에 지친 그리스군은 오디세우스의 계략으로 목마를 만들어 목마 안에 군사를 숨기고 ‘시논’이라는 책사와 함께 해안가에 목마를 두고 철군 하는 척 하면서 연안의 테네도스섬에 닻을 내리고 숨어서 기다렸다.
트로이 사람들은 그리스 군대가 철수하자 목마를 구경하러 나왔는데, 거기서 그리스인 ‘시논’을 잡아서 알아보니 이 목마는 그리스의 아테네 여신에게 바친 것으로 이렇게 크게 만든 것은 성안으로 이 목마를 끌어가면 적군이 트로이를 침범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자, 트로이 사람들은 성벽을 허물고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날 밤 목마 안의 그리스 군사들이 밖으로 나와서 횃불로 신호를 보내자 연안에 숨어있던 그리스군이 상륙하여 무너진 성으로 들어와 트로이를 점령했다.
이 이야기는 BC 700년대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실린 내용으로 호메로스는 그 후 귀국길에 오른 오딧세이의 모험담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오딧세우스 이야기)’라는 서사시도 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