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리움이 가득하군.
옆에서 좀 더 찬찬하게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크네.
대충 정리해 보았는데 어떨런 지.
운강이 녀석처럼 곱고 반듯한 책이 되었음 좋겠네.
또 내가 할 일 있으면 연락주게.
이 책은 값이 없습니다.
이 책에는
한 아이가 살다 간 8년 3개월의 고운 삶이,
그 아이를 잃은 부모와 가족들의 하늘 슬픔과 희망이,
그 슬픔과 희망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 이 책은 그 값을 셈할 수 없는 책입니다.
이 책을 받아 보시고 혹 마음이 있으시거든,
우리 아이와 가족이 함께 하며, ‘운강이 장학기금’이 나누어지고 있는 공단 맑은 내 마을,
‘한무리 나눔의 집’의 결식아동들을 위한 나눔에 동참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무리 나눔의 집’ :
주 소 : 경기 군포시 당정동 908-1. 연락처 : 031) 453-9603.
후원계좌 : 국민은행 214901-04-037615 한무리사랑나눔회
다시 피는 꽃
#1.
이른 아침, 언제나처럼 오늘도 모락산을 향합니다.
부지런히 공단마을을 가로질러 동사무소 옆, 오르막길과 호성 초등학교를 지나 아파트 앞에서 산에 듭니다. 오는 봄에 맞추어 아침 이른 시간에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오르는 모락산에도 이젠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노랗게 핀 꽃 색깔처럼 몸이 날랜 개나리는 이미 꼭지점을 돌아 내리막에 있고, 붉은 빛 진달래도 수줍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나무들에는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고 이름 모를 풀들도 파릇파릇 속살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산 전체가 봄을 노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듯 봄이 가득한 산을 오르는 것은 겨울 산과는 다른 느낌을 줍니다.
겨울 산이 잎을 떨군 나무들과 함께 자신의 가슴에 숨겨진 길을 다 드러내며 비움과 외로움, 그리고 고난과 죽음의 느낌을 가지게 한다면, 봄 산은 죽은 것 같았던 나무와 숲들에 파란 싹들과 꽃들이 피어나면서, 새로운 시작과 희망, 생명과 부활을 느끼게 합니다.
오늘도 온 몸으로 모락의 봄을 느끼며 산을 오릅니다.
봄 산은 온 몸과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과 희망, 생명과 부활'의 의미와 실상을 느끼고 깨닫게 합니다. 죽었던 나무에 새순이 돋고, 잠든 대지를 뚫고 새로운 생명이 고개를 내밀 듯, 죽은 것 같으나 살아있고, 죽으나 다시 살아나는 자연을 통해 하늘 생명과 부활의 신비를 미루어 깨닫고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 저는 산을 좋아합니다.
생명과 부활, 새로운 시작, 희망을 노래하는 봄 산, 삶의 열정을 노래하는 여름 산, 삶의 돌아봄과 깊이를 노래하는 가을 산, 삶의 끝을 노래하는 겨울 산, 또 다시 죽음의 시간을 넘어 다시 오는 봄 산의 부활의 노래를 저는 좋아합니다.
오늘도 봄 산을 오르며 다시 깨닫습니다.
겨울은 끝이 아니요, 그를 넘어오는 봄이 있다는 사실을, 죽음은 우리 생명의 끝이 아니라, 그를 넘어오는 부활의 하늘 소망이 있음을. 믿음으로 사는 자는 그 생명과 희망을 느끼며 살아가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겨울을 넘어서는 봄,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게 됨을.
#2.
4월 7일, 물의 날 오후,
운강이 아빠, 엄마와 함께 모락산을 오릅니다.
운강이의 몸이 이 세상을 떠난 지 사십 구일 째 되는 날인 오늘, '운강이와 자주 왔던 모락산에 오르고 싶다'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이쪽 길로 여러 번 왔었지. 바로 이 골짜기에 낙엽이 쌓였을 때 여기서 함께 사진도 찍었었고. 전에 우리 함께 왔을 때 여기에 나무가 쓰러져 있었어. 운강이가 그 나무를 타고 놀았고. 산에 오를 때 항상 앞장서곤 했는데..."
아빠 엄마가 모락 산길에 쌓인 운강이와의 추억들을 아프게 풀어놓습니다.(저도 운강이와 함께 이곳에 온 적이 있습니다. 넘어진 나무 위를 조심조심 걸어가던 운강이의 얼굴에 핀 맑은 웃음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아들 운강이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눈자위가 빨개지는 아빠와 내내 눈물을 감추며 뒷모습만을 보이는 엄마의 뒤를 따라 산길을 오르다 다시 내려옵니다. 아내의 어깨를 감싸며 내려가는 운강이 아빠, 몹시도 쓸쓸해 보이는 친구 부부의 뒷모습에 눈물이 핑 돕니다.
해질 녘에 내려오는 길, 골짜기 사이로 드러난 하늘이 서럽게 아름답습니다.
모락산 꼭대기에서 뻗어난 띠구름이 노을 빛을 머금고 하늘을 날아올라 길게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노을 빛을 머금은 신비한 구름 띠입니다.
"운강이 구름 같지. 운강이의 마음인 모양이야. 엄마, 아빠가 왔다고 반기는... 여보! 우리 오늘 여기 오길 잘했지? 우리 운강이가 우리 왔다고 반가운 모양이야!"
산언덕에 서서 모락산에서 시작되어 수리산을 배경으로 길게 드리운 노을 빛 띠구름을 눈물로 바라봅니다. 아빠 엄마를 반기는 구름아이, 운강이의 고운 마음입니다.
그래 운강이는 우리의 곁을 떠났어
아니야, 그 아이는 아주 떠난 게 아니야, 다만 몸을 벗었을 뿐이야
그래 그 아이는 구름처럼 훨훨, 세상과 하늘을 날며 우리 곁에 함께 있는 것이야
나는 보았지 구름아이 운강이가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것을
엄마 아빠의 가슴속에서, 누나들의 눈물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 아이가 걷고 뛰었던 곳에서,
그 아이가 썼던 글들 속에서, 그 아이가 기다렸던 봄 속에서,
그 아이가 훨훨 날아오른 하늘과 구름 속에서,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배시시 눈부시게 웃는 그 아이를 나는 보았지.
그래 그 아이는 우리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니야,
죽은 것 같았던 겨울 나무가 봄볕에 다시 새잎을 내듯,
죽은 것 같았던 산이 봄이면 다시 생명을 노래하듯,
그 아이는 이미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야
그래 그 아이는 엄마 아빠 누나, 가족들과 늘 함께 살고 있는 것이야
그래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살아나고 있는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것이야.
슬픈 나눔
1.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들을 만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우리 인생의 결을 만들어갑니다. 그래 마냥 기쁨만 있는 삶도 없고, 마냥 슬픔만 있는 삶은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쁨은 씨줄과 같고, 슬픔은 날줄과 같습니다. 기쁨이 밖으로 뿜어내는 가로의 씨줄과 같은 감정이라면 슬픔은 안으로 깊이 가라앉는 세로의 날줄과 같은 감정입니다. 그래 기쁨은 쉽게 잊혀지고 지나가기도 하지만, 슬픔은 못처럼 가슴에 박혀 내내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 슬픔 중 가장 큰 슬픔이라고 하면, 그것은 바로 '자식 잃은 슬픔'일 것입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말하는 것일 겁니다.
가장 나누어지지 않고 가장 나누기 힘든 슬픔, 아무리 나누고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슬픔, 뭐라 할 말이 없고 나누기 힘든 슬픔이 바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일 것입니다.
두 달 전, 그런 슬픔이 우리 옆에 있었습니다.
바로 조용철, 김경자 씨의 아들, 운강이의 죽음입니다.
운강이는 초등학교 2학년 아홉 살, 이제 막 피어나는 꽃망울 같은 8년 3개월의 나이에 해빙기 익사사고로 지난 2월 18일,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보고 싶은 운강아! 네가 그리던 봄이 왔구나... 그런데 아무리 둘러 봐도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던 운강이는 보이지 않네... 얼마 전 네가 물었었잖아. '엄마, 난 얼마짜리냐고'. 그때 엄마가 운강이는 이 세상을 다 주어도 못산다고, 그리고 운강이 없으면 엄마는 죽음이라고... 그런데 엄마가 살고 있네. 엄마가 거짓말쟁이다. 그치? 사랑하는 운강아! 보고 싶다. 너의 잠든 얼굴에 뽀뽀했던 때가 그립구나."(04.3.12)
"네가 떠나고 엄마아빠 세상은 온통 엉망이 되었는데 또 다른 세상은 하나도 변함이 없구나... 운강이 네가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스러지는 노을처럼 삶은 덧없고 어둠의 끝에서 어둠은 또 시작되는데 운강이는 무엇이 되어 다시 엄마아빠와 함께 시작할 꺼나. 삶이 이토록 외로운 것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너를 보낸 슬픔이 이토록 크지는 않았을 것을. 삶이 이토록 덧없는 줄 알았더라면 너를 위해 더 많은 노래불렀을 것을.(04.4.17)"-cafe.daum.net/ comeon0218 중에서.
자식 잃은 부모 옆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목사로서 예배를 통하여 하늘 길을 열고 하늘 위로와 소망을 나누는 것, 곁에 함께 있어 그 무너지는 슬픔을 하나하나 지켜보는 것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떠난 뒤 두 달여 동안, 그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도 운강이의 엄마 아빠는 참으로 예쁘게 살았던 아들의 삶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아들 사랑이 더 넓고 깊은 사랑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아들 잃은 슬픔'을 아름답게 갈무리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슬픔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온 힘을 다하여 마지막 가는 아들의 하늘 길을 하나하나 열고, 또한 자신의 아들과 같은 아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빙기 익사사고'를 주위에 알렸으며, 아들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매만지며 '운강이의 몫까지 건강하게 자라기를'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안전장비 하나 갖추어 놓지 않아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던 낚시터 저수지에서 추모예배를 함께 드리며 낚시터 사장을 용서하였습니다.
그러고 난 후, 추모 카페(아! 구름아이, 운강이-cafe.daum.net/comeon0218)를 만들어 아들의 글과 사진, 추억을 하나 하나 올리고, ‘아들 운강이에게 부끄럽지 않는 아빠 엄마, 운강이가 바라는 아빠 엄마가 되자’고, ‘그래야 하늘나라에 간 운강이가 기뻐할 것’이라며 가슴에 아들을 곱게 묻어왔습니다.
2.
그러던 어느 날, 운강이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최목사, 전에 말했던 운강이 기금, 오늘 입금했어. 이 기금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일에 쓰이게 되면 우리 운강이도 기뻐할 거야. 그것이 운강이의 뜻을 잇는 것이기도 하고. 최목사, 좋은 일에 써 줘."
지난 2-3년 동안 운강이가 받았던 세뱃돈, 아빠 구두 닦아 천 원씩 받은 돈, 어른들이 준 용돈들을 꼬박꼬박 저금통에 모은 126만원, 그리고 거기에 운강이 조의금 중 일부를 떼어 아빠와 엄마가 326만원을 나눔의 집 기금으로 내어놓은 것입니다.
슬픈 나눔! 326만원!
8년 3개월의 나이로 일찍 이 세상을 떠난 구름아이 운강이의 고운 마음이 담겨있고, 세상을 떠난 아들의 마음과 삶을 소중하게 잇고자하는 엄마 아빠의 반듯한 마음이 담겨있는 그 나눔을 받으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 지요, 그리고 한편으론 얼마나 큰 감동이던 지요.
3.
그 뒤 처음, ‘기금’ 중 일부를 떼어, 일 없는 아빠, 중학생 누나와 같이 단칸 월세 방에 사는 성호네, 올해 들어간 중학교에 입고 갈 교복이 없어 며칠째 학교를 빠지고 있는 성호에게 교복과 새 신발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아들을 보내듯 보내준 운강이가 쓰던 물건들(침대, 책상, 옷가지, 신발 등)은 그것들이 필요한 나눔의 집 아이들의 차지가 되었고, 운강이가 읽던 책들은 ‘나눔의 집’의 책꽂이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운강이의 고운 마음과 삶, 엄마 아빠의 슬픔과 반듯한 사랑이, '슬픈 나눔'을 통하여 기쁨과 희망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새 교복과 신발을 신고 학교로 향하는 성호의 힘찬 발걸음 속에, 운강이가 쓰던 물건들을 잘 쓰고, 입고, 읽는 아이들의 밝은 웃음 속에, 그를 받고 나눈 우리들의 마음속에, 날마다 새록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