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집무실 있던 '루스벨트' 빠지고 '앤드루 잭슨' 돌아와 2025.01.2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5171261?sid=104
새 주인을 맞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엔 제32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초상화가 사라지고 대신 트럼프 대통령이 흠모하는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초상화가 다시 걸렸다.
군인 출신인 잭슨 전 대통령은 지금껏 미국에서 전쟁 영웅으로 불렸고, 미국인들에겐 20달러짜리 지폐에 그려진 인물로 더 친숙하다. 다만, 잭슨 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중 역사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후대에 가장 비판받는 부분은 그가 시행한 아메리카 원주민 강제 이주 정책이다. 잭슨 전 대통령은 1830년 제정된 '인디언 추방법'에 따라 미시시피강 동쪽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을 아칸소와 오클라호마의 보호 구역으로 강제 이주시켰고, 강제 과정에서 4천여명의 원주민이 추위와 전염병 등으로 숨졌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정책 기조가 잭슨 전 대통령이 시행한 원주민 강제 이주 정책과 닮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1767년 3월 15일 ~ 1845년 6월 8일)은 미국의 7대 대통령(1829년~1837년)으로, 미국 역사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으며, 미국 민주주의와 대통령직의 역할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음은 그의 주요 생애와 업적 및 논란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1. 생애와 배경
출생과 초기 생애:
잭슨은 미국 남부의 카롤라이나에서 아일랜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되었으며, 독립 전쟁 당시 영국군에 포로로 잡히기도 했습니다.
법조인과 군인으로서의 경력:
1787년 변호사가 되었으며, 테네시에서 법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군인으로서 1812년 전쟁 중 뉴올리언스 전투(1815년)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국가적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2. 대통령 재임(1829년~1837년)
'평민의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정치 엘리트에 맞서며 "평민의 대통령"을 자처했습니다.
미국 민주당(Democratic Party)의 창립자로, 미국 정치에서 대중의 참여를 강조했습니다.
정책과 업적:
'스포일즈 시스템':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들에게 정부 직책을 나누어주는 시스템을 도입, 행정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제2합중국은행 해체:
연방 정부의 금융을 통제하던 제2합중국은행(BUS)을 해체하고 국가 금융 체제를 분산시켰습니다. 이는 지역 은행과 경제적 혼란을 초래했으나, 경제적 독립성을 높였다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미국 영토 확장:
미국 서부 개척과 영토 확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3. 논란과 비판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 1830):
잭슨의 가장 논란이 된 정책으로, 원주민 부족들을 강제로 서부로 이주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눈물의 길(Trail of Tears)**에서는 수천 명의 원주민이 사망했습니다.
독재적 리더십:
의회의 견제를 무시하거나 거부권을 남용하여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노예제와 인종 문제:
잭슨은 남부의 노예제 경제를 옹호했으며, 노예 소유주로서 노예제를 정당화했습니다.
4. 퇴임 후와 유산
퇴임 후 삶:
잭슨은 테네시주에 위치한 자신의 농장, 허미티지(The Hermitage)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유산과 평가:
잭슨은 미국 민주주의 확대에 기여했으며, 대중 정치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원주민과 소수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고, 독재적 리더십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입니다.
그의 얼굴은 미국 20달러 지폐에 사용되고 있지만, 인디언 이주법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지폐에서 그의 얼굴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습니다.
앤드루 잭슨은 "평민의 지도자"로 칭송받기도 하고, "독재적 정책 추진자"로 비판받기도 하는 복잡한 인물입니다. 그의 업적과 논란은 미국 민주주의와 역사의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