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산에 올린 글입니다.)
1. 산행 참가 산우
총동문산악회 선후배 산우 30명(13회~35회)
-동기: 김종무+정혜인, 남장현+최영, 양명륭, 정인수, 최흥식 이상 7명
2. 산행 시간(최종 후미 기준)
대덕마을 04:25
큰덕골재 (297m) 04:55
군치산(412m) 06:00
숫개봉(496m) 07:55
봉미산(506m) 09:00
곰치 09:40(휴식~10:20)
국사봉(499m) 11:50
깃대봉 12:10
노적봉(430m) 12:30
삼계봉(504m) 12: 50
장고목재 13:30
병동리 월곡마을 13:55
3. 산행 落穗
모기입이 삐뚤어지고 억센 풀들이 돌아눕기 시작한다는 處暑가 바로 이틀 앞이다. 어느 사이 늦여름이니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반갑게 불어오기를 기다리는데 또 산행일에 소나기와 가을 장마 소식이 들려온다.
지긋지긋하게 퍼붓던 비에 물난리를 겪는 사이 立秋와 末伏이 지났는데도 버스를 타는 이 시간 현재 오늘 정맥 구간에 성가신 비가 내리고 있다는 소식이니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한낮 대단한 老炎의 열기를 뚫고 산행을 하는 것도 싫지만 비를 맞는 산행도 꽤 부담이 된다. 비야! 멈추어다오! 한밤을 새워 산행을 위해 달려가는 山友들의 순정이 꼭 빗물에 젖어야 되겠느냐.
지난 구간 산행 시 떨기나무 가시와 솔잎針에 찔리고 억센 풀에 팔뚝을 베일 때 독나방 가루라도 쐬었는지 온몸의 발진과 가려움에 여러 날 시달린 것이 억울하다.
방화선 도로의 벌목으로 나무가 없어진 구간에 자라난 풀과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거미가 거미줄을 잔뜩 쳐놓았던 것을 보면 이 구간에 나방과 곤충이 득시글거렸고 풀에도 독이 올라있었다는 이야기이니 이어지는 오늘 산행도 가시나무 잡목들을 조심해야 할 듯하다.
화순과 장흥의 정맥 산길이 고만고만한 산길의 연속이더라도 나름대로 산길이 山紫水明하면 산행의 기쁨과 보람이 충분한 것이고 대체로 낮은 이 산길도 처음 걷는 새로운 산길임이 분명하다. 산행이 산과의 연애라면 처음 보는 소박하고 수수한 여자에게도 당연히 마음이 끌리는 것이 아닌가.
오늘 대체로 西進을 하는 약 19km의 산길이 큰덕골재에서 처음 장흥으로 들어서면서 화순과 장흥의 郡과 面의 경계를 조금 복잡하게 가른다. 큰덕골재에서 노적봉까지는 장흥과 화순의 두서너 面들이 서로 경계를 이루고 노적봉과 삼계봉을 돌아서면 산길이 화순과 이별하고 비로소 장흥으로 완전히 들어서서 장흥의 장평면과 유치면이 경계를 나눈다.
이른 새벽 3시 넘어 별도 달도 없는 산길의 들머리 부근에 닿으니 다행스럽게도 비가 멈추어 있다. 산길의 중간 지점인 곰치 휴게소에서 아주 이른 새벽밥을 들고 산행을 시작한다니 집행부의 친절한 배려인데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생체 리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꺼릴 듯하다.
주는 밥이야 먹으면 되겠지만 적은 돈이라도 예산이 들어가고 시간이 소요 되는 문제이니 해 뜨기 전에 많이 걸으려면 이른 새벽의 식사는 생략해도 될 듯하다.
지난 번 내려온 들머리인 대덕 마을에 4시 반쯤 닿으니 풀벌레 합창 소리가 개구리 소리처럼 요란하고 랜턴 불빛에 동네 텃밭의 토란잎들이 번쩍거린다. 실하게 자라는 토란대를 보니 올해 아무런 한 일도 없는데 벌써 추석만 가까와졌다는 느낌이다.
오늘 또 가시에 긁히고 풀독에 쐬일라 걱정이 되어 긴팔 옷을 입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접근로인 임도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굵게 패여 축축하게 젖어있고 비에 젖은 풀들은 지난 달 보다 더 자라있는 듯하다.
안개가 굼실거리는 큰덕골재에서 이정표가 되는 묘지를 확인하고 군치산을 향해 나아간다. 산중이 온통 축축하게 젖어있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시원한 전망과 뚜렷한 풍경이 나타나지 않는데 짙은 안개가 계속 따라온다. 랜턴 불빛을 따라 컴컴한 산길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그저 걷는 이 것이 無念無想인가.
앞산에서 소쩍새 울음 소리 들려오고 걱정한대로 산길을 막아서는 잡목과 덤불의 가시가 계속 팔뚝을 찔러온다. 긴팔 옷을 입기를 잘했는데 지난 구간처럼 극성스럽지는 않더라도 떨기나무 가시는 봉미산까지 따라올 기세이다.
잔잔한 오르막인 400봉을 넘어서 군치산 오르막을 오르자니 잿빛 구름 속에서 희뿌연 먼동이 터오지만 팔방이 구름과 안개에 갇혀 있다.
군치산 너머 산모퉁이를 돌자니 왼편 장흥과 오른편 화순의 낮은 산들이 雲海에 싸여 스스로 섬이 된 풍경이 그윽하게 다가온다. 잠시 안개가 걷히는 사이 기대하지 못한 그윽한 장관에 잠을 설친 피로가 일순간에 씻기고 구름에 씻기는 산중의 풍경이 눈이 시원하게 씻어주는 느낌이다.
먼동이 튼 직후 새벽의 시원한 산들 바람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오고 밝아오는 새벽빛과 함께 산중의 산뜻한 푸르름이 서서히 밝아오며 어젯밤 비에 씻긴 맑고 부드러운 공기가 허파 속으로 가득 밀려들 때는 정말 발걸음이 가볍고 산길을 걷는 맛이 살아날 때이다. 지금 이 순간은 잠을 설치며 이 곳에 이른 보람이 충분하다.
산 아래에서는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오고 볼 수 없는 풍경이 나타났다 사리지고 그 흔적이 가슴에 남는다.
옛 선비들이 듣기 좋은 소리를 넷 정도 꼽았다고 했던가.
밝은 달에 다락머리 구름 걷히는 소리, 붉게 타오르는 만산의 단풍 속을 스쳐오는 먼바람 소리, 새벽녘 밝아오는 잠결에 술통개에 술방울 듣는 소리, 첫날밤 미인의 옷 벗는 소리가 그 것인가. 저 멀리 산봉우리와 산자락이 아침 세수하듯 흰 구름에 맑게 씻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군치산을 내려온 산길이 460봉을 올랐다 내려와 숫개봉으로 향한다. 낮은 산이더라도 20분 정도 계속되는 오르막이 제법 가팔라 된땀을 흘린다. 수직 고도를 200m쯤 올리는 산길이 오늘 곳곳에 숨어 있다.
도토리 익어가는 산길에 가시 덤불이 계속 극성을 부리는데 어제 내린 비 덕분인지 길섶 곳곳에 形形色色의 버섯들이 자라나 큼지막한 갓을 피워올리고 있다.
버섯들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하나 같이 색깔이 곱지 못한 독버섯들이다. 독버섯이라도 생태계에서 맡은 역할이 있고 분해 되어 미생물들의 먹이가 되겠지만 <먹지 못하는 버섯은 정월 초하루부터 튀어나온다>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누구의 언행이라도 본뜻과 달리 쓸데없고 쓸모 없이 튀어나오는 독버섯과 같다면 걱정스러운 일이고 본 마음은 서로 같더라도 사소한 어긋남이 계속 쌓이면 오해가 증폭되고 파국을 맞는 것이 인간사의 법칙이다.
한 잔 술과 고기 몇 점의 유혹에 빠진 것은 아니고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곰치쯤에서 산길을 접으려는 아우들에게 튀어나오는 독버섯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했으니 조금 심했는가. 내 스스로 독버섯이 되었나.
숫개봉으로 오르는 길목의 산중에 느닷없이 넓게 펼쳐지는 밭들이 나타나고 농막 비슷한 콘테이너가 있어 한참을 쉬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느릿느릿 숫개봉 오르막을 올라가자니 신임 부총무 아우(34회 길웅)가 예전 산행의 부진을 떨쳐 버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나보다 빨리 숫개봉을 넘어간다.
산길이 편안한 어느 구간에서 산행의 감독관 형님(13회 김진수)께서 요즈음 누군가로부터 정맥 산길에서 강제 은퇴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으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의 배경과 眞意를 짐작할 수 없지만 형님께서는 영원한 현역이시니 함께 걷는 산길에서 은퇴하실 수 없다고 말씀을 드린다.
숫개봉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와 다시 봉미산 오르막을 올라간다. 한참 이어지는 산길의 오르막이 산 높이에 비해 제법 되다. 한참 오르막을 올라가 넓은 평지가 봉미산의 정상인 줄 알았더니 이 곳은 봉미산의 헬기장이고 봉미산 정상은 한참 앞에 나타난다.
봉미산 정상 헬기장에 노란 달맞이꽃이 수줍게 피어나 있고 가을 냄새가 묻어나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의지 없는 마음 한 구석도 시원해지니 힘든 발걸음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다.
봉미산이 봉황의 꼬리이니 明堂의 못자리처럼 좋은 터가 많다는 곳이다.
이곳 산길에서 墓所도 많이 보았지만 봉미산은 산자락에 참나무 향기를 머금은 표고가 자라나는 곳이다.
이른바 장흥 삼합인 한우, 표고, 키조개 관자를 기름 두른 돌판에 구워먹을 때 지지직거리며 익는 소리 즐겁고 또 침샘을 자극하는 익는 냄새 구수하고 볼이 터져라 먹는 맛은 더 좋은데 이 삼합의 중심에 봉미산 숲의 향기를 품은 표고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사이 발걸음이 처지고 본의 아니게 완주팀의 제일 후미가 되어 산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간다. 함께 후미가 되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아우(35회 박영진)가 곰치에서 산길을 접는다는 소식이다.
봉미산 넘어올 때 여름 동백이라는 노각나무 숲이 일품이라고 들었는데 후미라 마음이 바쁘기도 하고 어느 나무가 노각나무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대신 산길에 하늘 향해 꽃잎을 활짝 열어젖힌 하늘 말나리의 자태가 곱다.
선두팀들은 이미 곰치에 도착했을 것이고 봉미산의 시원한 바람을 쐬다가 곰치쯤에서 산길을 접는다는 산우들은 30분쯤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다.
나름대로 가파른 봉미산 내리막을 내려오니 오늘 해발 고도가 제일 낮은 곰치에 선두팀 대부분이 모여 아침 간식을 즐기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곰치 휴게소로 내려가 세수도 하고 간식을 들다보니 제법 시간이 흘렀는지 다시 올라온 곰치에 아무도 없다.
대신 화순의 청풍면과 장흥의 장평면을 잇는 839번 지방도가 지나 아스팔트길이 되어버린 곰치에 여름을 잊으라는 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곰치 전후로 풀에 덮여 툭 터진 벌목 지대가 많아서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인가.
시원한 바람 때문에 언덕받이 곰치는 북한산의 위문 부근처럼 공기나 물 같은 流體가 좁은 곳을 지날 때 流速이 빨라진다는 베르누이의 정리가 생각나는 곳인데 예전에 이 산길을 걸었던 옛 시인들이 이 과학적 이치를 알 수 없었어도 곰치의 시원한 바람 소리가 기다려진다고 읊지 않았는가. 어쨌든 선선한 바람에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곰치를 지나자니 어느 사이 산길의 반 이상을 걸은 셈이다.
최선두팀(24회 서재영, 24회 윤성원, 26회 곽경호)을 앞으로 산중에서 보는 것은 언감생심이더라도 빨리 중간의 본대와 합류하고 싶어 발걸음에 속도를 내보려하지만 좋지 아니한 몸상태 때문인지 그저 마음 뿐이다.
470봉을 어렵사리 넘어가는데 연초록 골짜기가 밝아온다는 국사봉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몇몇 이정표를 눈여겨 보며 운곡 마을로 탈출로가 있는 백토재를 지나 국사봉 오르막을 올라간다.
어느 사이 우거졌던 잡목들이 사라지고 길섶으로 산죽이 맞아주는 산길이 잘 정비된 느낌이라 正南鎭 비석을 여러 곳에 세운 장흥군청에 고마운 생각이 드는데 천려일실로 이정표 거리가 제각각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앞뒤 이정표 거리가 연결이 안되는 곳이 여러 곳이다.
드디어 국사봉에 닿아 남은 산길을 살피는데 나눠준 지도와 이정표가 모두 실제와 다른 듯하여 혼란스럽다. 혹시 너무 쳐져 있어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까 보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국사봉에서 0.9km 떨어진 깃대봉을 넘고 다시 0.9km 떨어진 노적봉에 닿으니 삼계봉 0.9km라는 이정표가 나와 산길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다. 남은 구간을 빠르게 걸으면 오늘 산행의 기준 시간인 9시간 정도에 월곡 마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요란한 매미 울음 소리가 지친 발길에 힘을 실어준다.
일명 바람재 삼거리라는 노적봉에 땅끝기맥 갈림길을 나타내는 돌비석이 서 있고 그 방향쪽 나무에 리본이 빼곡하게 달려있다.
이 땅끝기맥이 남해까지 117km를 달려가는데 끝 부분인 해남과 영암쪽에 귀에 익숙한 두륜산, 대둔산, 달마산, 월출산이 솟아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돌비석을 넘어서서 서쪽으로 달려가는 산줄기의 모습을 살피지만 구름 때문인지 월출산의 자취는 찾을 수가 없다.
국사봉에서 깃대봉과 노적봉을 한 봉우리마다 0.9km 거리의 산길을 20분씩 걸려서 넘는다. 산죽에 둘러싸인 삼계봉 부근에 닿으니 정상쪽에서 반갑게도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고 중간 후미팀들(13회 김진수, 22회 최택상, 25회 정인수, 29회 한영균)이 쉬다가 막 떠나려는 모습이 보인다.
삼계봉에서 형님, 아우들을 만났다는 것은 3 시간 정도를 홀로 걸은 최종 후미가 길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니 아주 다행이다.
노적봉을 지날 무렵 내가 곰치 이후 행방불명이라며 혹시 백토재에서 산길을 탈출했냐는 총무 아우(27회 김상일)의 전화를 받는다. 총무 아우에게 현재의 내 위치를 알려주며 조금 늦더라도 완주할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부탁을 했기에 삼계봉에서 등반대장 아우(29회 한영균)를 만나자마자 왜 탈출하지 않은 사람을 탈출하였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는지 따져 묻는다.
아마 배가 남산만하게 부풀어올라 봉미산을 넘어올 때부터 지치고 힘든 나의 표정에서 그렇게 짐작하였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자진해서 중도 탈출하였을 것이라는 말은 나의 산행 의지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침을 준다.
장흥의 장평면, 유치면과 화순의 청평면, 즉 3개면이 만난다는 삼계봉에서 충분히 쉬고 남쪽으로 90도로 꺾이는 산길을 따라 장고목재로 향하는데 나무에 달린 삼계봉 표식이 두어 봉우리에서 더 나타나니 어리둥절하다. 이정표와 표지판의 정비가 필요한 구간이다.
산길에 북쪽 화순쪽으로 화학산 5.5km 이정표가 보이니 이 부근 산길의 비극적 역사인 빨치산 토벌이 떠오른다.
화학산은 빨치산들이 진을 쳤던 곳이고 오른쪽 유치면은 6.25 전쟁의 와중인 1951년 4월에 대대적인 장흥, 유치 지구 토벌 작전의 전투가 벌어져 수 많은 인명이 희생 당한 곳이 아닌가. 아픈 과거는 흘러갔고 산길은 아무런 말이 없다.
급한 경사의 삼계봉 내리막을 내려오며 전망이 터지는 곳에서 앞으로 뻗어가는 정맥 산길을 살펴본다. 제왕의 왕관처럼 바윗돌 솟아난 저 산이 제암산인가. 꼭 정맥 산행이 아니더라도 산길 앞에 솟아난 장흥과 보성쪽의 제암산, 사자산, 일림산은 꼭 올라가 걸어보고 싶은 곳이다. 아마 단풍 곱게 물드는 10월이나 11월쯤 걷게 되지 않을까.
산길이 장고목재까지 내리막 일변도로 표시된 지도와는 달리 두어 곳 봉우리을 넘어가야 한다. 봉우리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밧줄을 잡으며 살살 내려오니 드디어 기다리던 장고목재의 임도가 나타난다. 경험칙상 산길이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산길이 끝나는 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병동리의 월곡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제일 후미를 마중 나와준 격려대(23회 남순호, 25회 김종무, 35회 홍대승)의 호의 덕분에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걸으며 콸콸 들이키는 맛이 너무 좋다. 마침 하늘에 구름 걷히기 시작하고 따가운 햇살이 내려쬐기 시작하니 老炎의 강렬한 햇볕에 얼굴이 익기 전에 내려온 것이 천만 다행이다.
인심 좋은 마을 어른의 배려로 우물가에서 시원하게 땀을 씻고 재빨리 옷을 갈아입으니 기분이 날아갈 듯 가뿐하다. 땀에 절은 나의 행색을 보고 농약에 물을 타던 작업을 멈추고 호스의 물길을 나에게 돌려준 어느 村老의 배려가 새삼 고맙다.
장평으로 나와 독지가 형님(17회 이정호)의 배려로 소주 한 잔 곁들여 구수한 쇠머리 국밥에 밥 한 그릇 말아 배불리 먹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흐뭇하다. 코끼리에 비스켓 주는 격이지만 꼭꼭 감추어둔 위스키 한 병 꺼내어 형님, 아우들과 병아리 오줌만큼씩 나누는 맛도 괜찮다.
章
2011. 8.
(광주를 지나며 바라본 무등산)
(공주 부근을 지나며 바라본 계룡산)
첫댓글 남령 부부 수고 많았습니다. 완주할 것이라고 본인이 다른 분들께 언제쯤 나타나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9월에 보도록 합시다.
이곳에서 호남산행에 join하는게 정말 마음대로 안되네요.
또 다음을 기약해봅니다. 모두 수고하셨읍네다~~~
남선생. 다락마루 구름 걷히는 소리는 어떤 소리인가? 모르겠네. 선비가 못돼서 그런가? 달 없는 밤 산길 걷다가 산자락에 보이지 않은 인가가
있어 멀리 짖는 개소리도 듣기 좋던데요.
나도 그 소리가 궁금한데 다락머리에 구름 걷히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겠지요. 아마도 고문학에서 다락머리는 바라보이는 높은 산마루를 뜻하는 듯.....西安에 잘 다녀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