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문학 4호, 가을호, 권두칼럼
아픈 것을 아프다 하는 게 문학이다
-광복 70주년에-
신 현 득

문학을 언어적 표현이라 한다면 기쁨은 기쁘다, 슬픔은 슬프다로 표현을 해야 문학이다. 아픈 것은 아프다고 표현해야 한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해야 문학인 것이다. 아픈 것을 기쁘다 한다면 이는 문학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랜 고통 속에서 아픔을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잊고 있다. 한심하구나, 하고 자책을 해야 한다.
바다 건너 일본이라는 이웃을 보자, 오늘 조석간에서 읽는 기사가 그렇다. 분명히 우리를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국모 황후를 침실에 들어가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그 국제적 범죄의 칼을 후꾸오까 쿠시다(櫛田) 신사에서 보물로 지니고, 관광 유물로 내놓고 있다. 그 칼집에 글을 새겼는데, ‘늙은 여우를 단숨에 베었다一瞬電光刺老狐’이다. 우리 국모를 늙은 여우에 견주고 있다. 국제간에 이보다 더한 실례가 어디에 있을까. 앞날 그 칼이 그 나라 국보가 될 것이다. 여기에 더 잔인하고 더 악랄한 이웃은 없다.
뒤이어 그들은 우리 황제를 독살했다. 통감부에 의해 강제퇴위를 당한 황제가 침략에 방해가 된다 하여 그들이 비밀히 취한 행위다. 독살의 증거는 시종 두 궁녀의 죽음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 밖에도 100%의 증거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바꾸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 나라에 가서 왕을 죽이고, 왕비를 죽이고 하여, 그처럼 국제적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들의 행동이 어떨까? 그들이 그 일을 당했다면 그들 전 인구의 그림자까지 이끌고 나설 게 아닌가. 우리는 이를 알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자. 항일기 말에 일제는 농사지은 것을 군량미로 빼앗아 갔다. 이것을 공출이라 했다. 자식들을 군인으로 빼앗아갔다. 사람들은 이를 자식공출이라 했다. 처녀들을 데이신따이挺身隊로 잡아갔다. 사람들은 이를 처녀공출이라 했다. 군량미공출, 자식공출, 처녀공출 3공출이다. 이중 가장 악랄한 행위가, 곧 어머니가 될 결혼연령 처녀들을 군위안부로 잡아간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쪽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며 거짓말을 둘러댄다. 죽을 수도 없는 인육의 지옥에 끌려간 우리 처녀의 하루치 울분을 민족의 귀로 들어보자.
정신대 위안부, 지옥 하루
아랫도리가 찢어지고 있다, 아야!
아랫도리로 무엇이 치받고 있다
“아야 아야!”
일본 가서 공장 다니면
집안을 도울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
열네살에 순사 나으리 손에 잡힌 것이
여기는 남양의 섬
달아난 주민의 집을 개조한 이동 위안소
벌거벗은 여체의 성노예들이 뒹굴고 있다
밖에는 게도루 풀고, 바지 벗고 줄을 선 침략군의 그림자
하루에 저 스물이 할당이다
급한 이들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문을 두드린다
“아야 아야!”
고향 만리에서 하루에도 세 번 고향이 보이다가
좋은 신랑감, 갑돌이 얼굴이
서너 번 씩 보이다가
갑돌이 얼굴이 찢어지고 있다, “아야 아야!”
부모님 모습, 고향 산천이 찢어지고 있다. “아야 아야!”
내 청춘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다. “아야!”
죽을 수도 없는 인육의 이 지옥에
적기 B29야 제발 제발
폭격이라도 때려 다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할까? 일제를 이야기한다면 끝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건 이것뿐이 아니다. 다른 이웃의 동북공정을 보자. 이 프로젝트는 8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해체를 본 다민족국가 중국이 자국의 민족문제를 우려해서 내놓은 역사침략정책이다. 위구르족을 다스리기 위한 서북공정, 티베트를 지배하기 위한 서남공정에 이어 우리 역사에 화살을 겨눈 것이다. 우리 남해 이어도 근해의 영유권 확보를 위한 엉큼한 마수가 뻗어오고 있어 우리는 이를 서남공정으로 이름 지어놓고 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의 역사를 송두리째 빼앗아다 중국 역사에 집어넣는 중국의 역사시책이다. 고구려 땅에 고구려 이전에 있던 부여의 역사는 물론 고조선의 역사를 몽땅 빼앗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 침략을 당하고도 입을 다문다면 어찌 될까? 우리가 역사 없는 민족임을 자인하는 것이 된다. 시인詩人은 참지 않는다. 동북공정 시 한 편을 보자.
동북공정 저 거짓을 쏘아라!
역사에 도둑 들었다
고구려 하늘에 띄운
동북공정東北工程!
비열한 저 표적을 쏘아라
도둑질하려고 부풀린
저 거짓을 쏘아라!
백두산 언저리를 거머잡고
놓아줄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고구려 본토를 역사까지
내놓지 않으려
손을 쓰자며
거짓을 띄운 거다
민족의 힘을 모아라
슬기를 모아라
이를 포탄으로
뭉쳐서 그 정신을 포탄으로
쏘아서 떨어뜨려
짓밟아라!
“도둑이야!”
민족분단은 더할 수 없는 아픔이다. 이 분단은 우리가 지니고 다니는 절망이요, 고통이며, 한시도 떼어놓지 못하는 짐이다. 그것이 70년에 이르렀다. 한국 분단의 원인(遠因)을 살펴보면 1945년 2월, 미(루즈벨트), 영(처칠), 소(스탈린) 3거두가 크림반도 얄타에 모여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에 대한 회담에서 시작된다. 이때에 소련의 대일참전이 논의되었는데 그 보상으로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게 배상한, 옛 러시아 영토와 러시아가 만주에 가지고 있던 이권을 돌려준다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1941년에 <소일 중립조약>이 맺어져 있었으므로 이 국제조약을 지킨다면 소련은 일본과 전쟁을 할 수 없었다. 이를 파기한 것은, 1941년 독일의 히틀러가 <독소불가침조약>을 어기고 180만 병력으로 대소전을 시작한 것처럼 국제법 위반이었다. 소련의 대일 참전이 없었다면 한국 분단이 있을 수 없다.
소련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미국이 이길 수 있는 전쟁이었다. 원자탄을 맞은 일본은 이미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소련은 1945년 8월 8일 대일전을 시작, 8월 14일 일본의 포츠담 선언 수락까지 불과 1주일 참전을 하고 일본에 잃었던 러시아 영토와 북한을 차지하는 소득을 거두었다. 소련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될 전쟁이었는데, 소련 참전으로 한국은 분단국가가 되었다.
한국 분단에는 여러 설이 있다. 당시 만주를 지키고 있던 일본의 관동군은 남방전선으로 군력을 빼돌려(北方靜謐策) 허약한 형편이었다. 소련군은 일군을 급속히 무너뜨리고 만주를 점령했으며, 개전 이틀째인 8월 10일에 한반도에 침입, 12일에 웅기와 나진에 진주하였다. 미군은 소군의 남하가 계속되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38도선 분할안을 제시하였다(동서문화사, PASCAL백과「한국분단 50년」항목, 1997)는 설도 그중 하나다. 소련의 북한 점령에 대해 미국측 항의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아서도 두 강국의 합의로 한국 분단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에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가 3차에 걸쳐 폴란드를 분할하여 마침내 그 주권을 없애버렸는데 역사가들이 이를 <18세기의 죄악>이라 한다. 한국분단은 2대 강국의 이기주의에서 시작되어 통일이 요원하게 되었다 . 미래에 역사가들이 한국분단을 두고 <20세기의 죄악>이라 부를 것이다.
6⋅25 전쟁은 3년간의 동족상잔이었다. 한국군, 유엔군이 18만 명, 북한군 52만, 중공군 90만이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동아출판사, 동아백과, 6.25 항목, 1988) 6.25는 공산당이 일으켰지만 그 원인은 조국 분단이다. 나뉘어 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전쟁이 일어나겠는가? 나눈 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후 한국 통일은 주변국의 이기주의 때문에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시인詩人은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삼팔선 긋기
힘센 놈은 그런 짓해도 된다
만세 소리 나는 땅에 삼팔선 긋기
들판이거나 학교 마당이거나
남의 안방 장롱 밑으로 경계선을 그어도
곧게만 그으면 된다
역사가 눈을 흘기며
“20세기의 죄악이다!”하고
외치거나 말거나
여기까진 네 차지
여기부턴 내 차지
곧게만 그으면 돼
남의 나라야 나누어지거나 말거나
한 고을이 두 쪽 나거나말거나
한 마을이 두 쪽 나거나 말거나
한 가족 앉은 자리가 나누어지거나 말거나
하나의 학교가 남북으로 쪼개져도
곧게만 그으면 돼
마당 끝으로 경계선이 지나고
장독대 복판으로도
외양간서 쉬던
송아지 등때기 위로도
경계선이 그어졌다
전쟁이 되거나 말거나
몇 백만, 쓰러져 죽거나 말거나
피로 강물이 되거나 말거나
전쟁고아 수십만이 생기거나 말거나다.
살펴본 바, 정의를 자기 국익에 맞추지 않는 나라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다. 매우매우 아프다. 세계사는 우리에게 너무 큰 시련을 주고 있다. 우리는 쓰리고, 아리고, 따갑고, 저리고, 뒤틀린다. 이 아픔을 어찌해야 할까? 아픈 것을 아프다 하는 것이 시詩라고 본다면. 이러한 민족시를 고집스런 국수주의로 몰아붙이며 “나는 그보다 순수문학쪽이야” 할 수 있겠는가? 아프기 때문에 씌여지는 시를 그렇게 보는 시각이라면 아픈 것을 기쁨으로 보는 무감각한 시인이 아닐까?
때는 마침 광복 70주년이다. 우리가 목 메이는 통일은 한 모서리도 해결된 것이 없다. 8월, 이 날을 기해 한국의 시인 3만 명이 모두<우리는 아프다>라는 한 테마로 민족시 한 편씩을 써서 문 앞에 내어건다면 세계인의 눈이 모이지 않을까! <끝>

약력 : 신현득申鉉得(경북 의성,1933), 안동사범, 대구교대, 한국사회사업대, 단국대 대학원(문학박사), 20여년 <아동문학론> 강의,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입선(1959년), 세종아동문학상(1971), 윤동주문학상(2003), 한국현대시인상(2009), 서울시문화상(2011), 동시집 : 《아기 눈》(1961), 《고구려의 아이》 등 29권, 국민시집 : 《우리의 심장》(1987), 《동북공정 저 거짓을 쏘아라》(2013), 《속 좁은 놈 버릇 때리기》(2015) 등 8권,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