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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조선 수군의 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메구라부네(장님배라는 뜻으로 거북배를 뜻함)는
보이지 않았다. 판옥석들이 줄지어 늘어선채 본국 함대를 향해 다고오고 있었다.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들이 내뿜는 공포 만큼은 벌써 본국 병사들을 침범하고 있었다. 무언가 사악하 존재가
조선군의 배 위에서 사악한 웃음을 뿜어내고 있는듯 했다.
'너히들은 다 죽은 목숨이다. 빨리 죽어라. 그럼 고통만은 덜할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일찍 죽으면 좀 더 편해진다.'
그 공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조선 수군이 다가옴에 따라 본국 병사들의 얼굴에는 공포의 빛이 역력했다. 이미 공포에 질려
오줌을 지리는 자도 보였다. 대장선인 나카타니의 배에서도 저릴진데 다른 배는 어떨까 생각하니
암담함이 밀려왔다.
"여기서 조선군을 죽이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조선군을 죽이고 살길을 찾아라.
내가 내리는 영이다. 이 영을 어기는 자는 결코 살아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주군이 내리는 엄중한 명이었다.
사쓰마 사나이들은 이 영을 듣고 다시 각오를 다잡은듯 했다. 적어도 대장선은 그러했다.
이번에 동원된 수많은 함선들 중에는 대마도 도주의 배들도 있었다. 그 자는 이 전투를 일으킨
장본인인 고니시의 사위였다.
"고니시...어쩔 수 없는 장사치놈인가..그 놈은 사무라이가 되기에는 애초부터 틀려먹은 놈인가.."
주군의 탄식이 들렸다. 부하들 앞에서 다른 영주를 욕하는 것은 주군을 모신 이후로 처음이었다.
나카타니는 잠시 주군을 바라보았다.
"고니시...그 놈은 자기가 모아들인 전리품이 아까웠던게지. 그러니 이 짓을 벌인게야. 장사치놈이
하는 짓이 그렇지."
라며 주군은 고니시를 힐난했다.
부하들 앞에서 다른 영주를 욕하고 있는 무례를 범한 주군이었지만 나카타니는 주군의 말이 모두
가슴에 와닿았다. 고니시는 모든 전리품을 버리고 육로를 통해 부산포를 거쳐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었다.
하지만 그놈은 장사치였다. 그동안 모아들인 조선의 도공이며 도자기, 조선의 보물들을 버리지 못했다.
이익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장사치의 본분인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막바지라고는 해도
전쟁 중이었다. 아무리 장사치 일지라도 사무라이로서의 본분을 지켜야했다.
대(大)를 위해서는 소(小)를 버리는 것은 당연했다. 갑주를 걸치고 전투에 임한자라면 말단의
병사일지라도 자신의 이익보다는 승리를 위해 싸우는것이 먼저였다.
허나 고니시는 그렇지 않았다. 그간 모은 전리품들이 너무 아까웠던 것이었다. 그 전리품을 버리지
못해 결국 이 사단을 일으킨것이었다.
조선 수군의 배에서 불꽃이 일었다. 이제 본국 병사들의 죽음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두려웠다.
공포가 밀려왔다. 선두에 서 있던 아다케의 철포병들이 쓰러지는게 보였다. 노량의 바다에 조선군이
쏘아된 포의 포성이 은은히 울려왔다. 그 포성은 본국 병사들의 비명이 넓게 울려퍼지는 소리였다.
"제 1대 주군을 방호하라."
나카타니는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즉시 갑주와 방패를 든 사쓰마 사나이들이 주군을 애워쌌다.
할수만 있다면 나카타니 자신이 직접 주군의 방패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카타니는 이 배를
지휘해야했다. 전쟁의 냉혹한 논리였지만 나카타니는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며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했다. 그 사실이 나카타니를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주군의 안위만
생각해야했다. 그리고...본능적으로 나카타니 자신의 목숨도 지키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나카타니의 깊은 마음속에 자리잡은 본능이었다. 주군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주저없이 주군의 목숨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나카타니는 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의 목숨에 대한 망설임이 생겼다.
나카타니가 잡생각을 하는 사이 조선 수군의 배들이 점점 다가왔다. 선두에 선 아다케와 세키부네가
연신 깨어져 나갔다. 속도를 높혀 조선 수군의 배에 다가가야한다고 명을 내린지가 언제인가...
그런데 본국 군선은 조선수군의 판옥선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아니 다가가기 전에 모두 깨부수
어졌다. 군선이 부서지고 부서진 목재 파편이 다시 본국 병사들을 찢어 놓았다.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을 했기에 이 어두운 바다에서 저렇게 정확하게 쏜단 말인가....'
나카타니는 조선군의 사격 실력이 믿기지 않았다. 사쓰마 사나이들의 철포(조총)사격 실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직 본국 함선들의 사거리 밖이긴 하지만 사쓰마 사나이들의 사격실력을
생각할때 사거리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조선놈들엑 본 때를 보여줄수 있을것이다. 나카타니는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했다.
하지만 본국 배들은 조선 수군의 배에 다가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격군들은 미친듯이 노를 저었다.
철포병들은 사거리가 부족 했지만 그래도 조선 군선에 명중탄을 날리고 있었다. 역시 사쓰마 사나이들
이었다. 조선군의 판옥선에 철포탄이 부딪혔지만 조선군의 피해는 거의 없는듯 했다. 철포탄은
조선 판옥선의 격벽을 뚫지못했다. 탄을 개량했는데도 여전히 본국의 철포탄은 판옥선의 격벽을 뚫지
못했다.
반면 조선 수군의 총통탄은 본국 군선을 무자비하게 헤집어 놓았다. 뒤를 이어 조선군이 쏘아댄
불화살과 소신기전이라는 것이 본국 함선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본국 병사들이
쓰러지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나카타니는 조선군에 대한 분노에 떨었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의 차례가
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나카타니에게 밀려들었다. 조선군이 장군전이라 부르는 거대한 화살이
날아와-그것은 본국에서 집을 지을때 쓰던 기둥뿌리 만큼이나 굵고 튼튼한 병기였다.- 세키부네
한 척에 박히는 것이 보였다. 조선군의 판옥선이 연이어 총통을 쏘더니 아예 들이받아 버렸다.
세키부네 한 척은 순식간에 바다로 빨려들어갔다.
하지만 옆에 서있던 다른 세키부네 한 척이 재빨리 판옥선에 들러붙었다.
"주군..드디어 세키부네가 판옥선에 접근 했습니다. 이젠 단병접전으로 조선놈들의 목을 벨 것 입니다."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나카타니는 큰 목소리로 주군에게 보고했다. 모든 본국의 병사들이 이 사실을
들으라는듯이 외쳤다.
하지만 뭔가 좀 이상했다. 세키부네는 조선 수군의 배에 달라 붙은게 아니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이
세키부네를 장병겸(낫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자루가 긴 낫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를 이용해 세키부네를
자신의 옆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저..저런..빨리 저기를 벗어나야해. 판옥선 옆으로 다가가면..."
나카타니의 말이 끝나기 전에 판옥선의 옆에서 총통의 화염이 치솟으며 세키부네를 갈갈이 찢어 놓았다.
판옥선의 옆으로 끌려들어간 세키부네는 순식간에 바다로 빨려들어갔다.
"이런..낭패가...."
나카타니는 좌절했다. 힘들게 조선배들에게 다가가더라도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었다. 이래서야 싸울수가
없었다. 조선 수군은 본국 함대를 가지고 놀듯이 서서히 조여오기 시작했다. 선두의 배들은 이미 붕괴
되고 있었다. 후속 함선들을 투입했지만 선두의 함대와 다를것 같지가 않았다. 너무나 무서웠다.
철포병들이 연신 철포를 쏘아댔다. 조선군이 얼마나 죽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카타니의 눈에는 쓰러지는
본국 병사들만 보였다.
그 때 주군의 옆에 선 외눈 무사가 가만히 철포를 뽑아 조선군의 수장을 맞춰 쓰러트렸다. 수장이 쓰러지자
조선 수군의 군선이 흔들렸다. 하지만 다른 자가 다시 앞으로 나서 다시 장루에 올라 지휘하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사나운 괴물(치우 천황의 모습)이 그려진 방패가 장루를 막아서고 조선의 궁수들이 미친듯이
활을 쏘아댔다. 사쓰마 사나이들도 철포를 쏘아 그런 조선놈들을 연신 쓰러트렸다.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졌다.
"단 한척이라도 조선배를 부수어라. 그럼 이를 최고의 군공으로 치겠다."
주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전투가 시작되기전 행했던 군략 회의에서 주군은 이 말이 이번 전투의
핵심이라고 누누히 강조해두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다시 한 척의 군선이 조선군의 판옥선에 다가갔다. 이번에는 조선군이 자루가 긴 낫(장병겸)으로 끌어들인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본국의 배가 조선배에게 다가간것이었다. 곧 사다리가 걸쳐지고 줄로 엮어서
조선배를 끌어들이는게 보였다. 이번에는 확실히 조선놈들의 목을 베고 그 배를 부술 것이다. 확실했다.
사쓰마 사나이들이 그간의 울분을 씻듯이 재빨리 조선군의 배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조선배에서 뿔피리 소리가 울렸다. 짧게 울리고 길게 울렸다. 그리고 다시 길게 울렸다.
배 갑판에 있던 조선군들이 재빨리 갑판 밑으로 달아나는게 보였다. 패주를 할 때 보이던 명군위 모습과
같았다. 조선놈이건 명나라놈이건 역시 무너지면 똑같다는게 나카타니의 생각이었다. 조선놈들은 도망치듯이
갑판 아래로 내려간 다음 갑판 아래로 내려가는 문까지 걸어 잠군듯했다. 본국 병사들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한건 조선놈들은 너무나 질서 정연했다. 한 명씩 차례로 마치 수 없이 이런 일을 연습해온듯이
너무 질서정연했다. 그게 너무나 이상했다. 본국 병사들은 조선군 배의 갑판으로 뛰어 들었지만 목표를
찾을 수 없어 당황했다. 텅빈 갑판 위에 본국 병사들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주변에 있던 조선군의 판옥선들이
다가오는게 보였다. 다가오던 조선 판옥선의 장루에 선 조선 장수가 고함을 고래고래 질러대었다. 곧 조선배들
의 화포가 불을 뿜어대었다.
"피령전(총통에 넣어서 쏘던 화살 입니다. 깃이 가죽으로 되어있고 현재 사용하는 플래쳇탄과 비슷합니다.)
)과 조란탄(지금의 산탄과 비슷 합니다.)을 쏘아라."
나카타니는 조선말을 알아들었다. 몇 년동안 조선에 있다보니 조선군이 내리는 군령을 알아들은것이었다.
그 군령에 판옥선 위에 올라탄 본국 병사들이 무수히 쓰러졌다.
'같은 편에게 포를 쏘다니...'
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갑판 아래로 피한 조선군이 다칠 일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고 피령전이니
조란탄같은 포탄에 조선군 배가 부서질일은 더더욱 없었다. 조선군 배의 갑판에 뛰어들었던 자들 중 무사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조선군배에 다가갔던 아다케도 곧 갈가리 찢겨나갔다. 배를 지휘하던 장수는 조선군의
노리개가 되었다. 목이 잘리고 사지가 찢겨 장대에 메달렸다. 본국 장수를 죽이면 조선군이 곧잘 저지르는
짓이었다.
'교활한 놈들....네 놈들 배는 안부서지고 네 놈들은 안죽다는것이지...'
나카타니는 조선군의 교활함과 잔인함에 치가 떨렸다. 당장에 조선군 배에 뛰어들어 장수놈부터 격군놈까지
모조리 목을 베어버려야했다. 당하는 자의 공포가 도를 넘어 이젠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조선수군은 본국의 배들을 가지고 놀며 천천히 숨통을 죄어왔다.
어떻게해서든 복수를 하고 싶었다. 죽어간 전우들을 위한 복수가 아니었다. 나카타니 자신의 복수심을
어떻게든 채우고 싶었다. 대장선에만 있지 않았다면.....그리고 주군의 영이 주군의 목숨을 지키라는것이
아니었다면 칼 한 자루를 들고 조선군의 판옥선에 뛰어들어 한 놈이라도 베어죽이고 싶었다. 조선군에 대한
공포는 분노로 바뀌었다.
뒷편은 4편과 5편으로 나눠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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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호~ 역시 배작가님! 술 한잔하니 글솜씨 살아났네요. 아주 실감나게 잘 썼습니다.
깨부시고 싶어도 못부수는 심정이 6.25 개전초 밀고내려오는 T-34전차를 상대하던 우리 국군도 저랬을 듯..
당하는 왜놈이면...왠지 즐겁습니다...^^
계속 잘 보고 있습니다.
다음 연재도 기다려지네요..
네...곧 올리겠습니다...
아닛! 이런 꿀재미가!
감사합니다...^^
진짜 심리 묘사 대박! 배작가 맞네~~~
아...형님....칭찬에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굿입니다... 등단을 한번 해보심이????
등단할 실력은 못됩니다...그냥 일상의 소소한 재미로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