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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1:1-4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는 성경 중에 성경입니다. 로마서 성경 하나만 가지고도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는 모든 문제가 다 들어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로마서는 성경 중에 노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중요하느냐면 로마서를 바로 해석 하면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로마서를 바로 해석하지 못하면 바른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로마서의 어떤 서론 적인 것보다도 저는 성경 한 절 한절 로마서 속에 들어 있는 말씀을 세밀히 해석해 가면서 여러분에게 로마서를 쓴 목적이 무엇인가를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로마서를 왜 썼습니까? 로마서는 쓴 목적을 알지 못하면 로마서가 무슨 말씀인가를 잘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성경이나 마찬가지지만 로마서 가운데도 두 가지가 포함되어서 기록된 말씀들이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면서 이쪽을 택할 수도 있고 저쪽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은 성경에는 두 가지는 없습니다.
성경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이 구원을 시작하신 사(四)복음을 처음에 넣고, 교회가 태동한 사도행전, 다음에 로마서를 넣은 것은 교리정립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고린도 전후서는 교회에 생기는 문제와 은사와 이단과 신앙생활 문제를 다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연대순으로 따지면 데살로니가 전서가 앞에 넣어야 하는데 로마서를 앞에 넣은 것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연대순으로 보면 동(仝)시대 인물이고 창세기보다 욥기가 제일 먼저 기록했기 때문에 먼저 넣어야 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에 첫 장에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창세기를 넣었습니다. 사도행전이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는 것은 잘 알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신학과 교리가 정립이 안 되어서 이 사람이 이 말하고 또 저 사람이 저 말하면 이렇게 행하고 저렇게 행하고 중심이 없었기 때문에 교리를 정립해 주고자 로마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http://cafe.daum.net/ilmak
요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하는 이가 있는데 정신 없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로마서를 통해 교회 역사 가운데서 성취된 몇 가지 일들을 상기시켜 드리려합니다. 물론 그 때문에 오래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뛰어난 하이라이트의 경우들만 지적해 보겠습니다. 로마서의 저자는 바울입니다. 바울(이는 로마식 이름이며, 히브리식 이름은 사울)은 지중해 북동쪽의 길리기아(Cilicia) 지방의 다소(Tarsus)에서 태어났으며 혈통 상으로는 유대인(베냐민 지파 출신)이나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고향 다소는 헬라(그리이스) 문화의 중심지요 대학 도시였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헬라 문화의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었고 또한 어릴 때부터 예루살렘에서 가장 뛰어난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히브리 교육도 받았기 때문에 유대인으로서도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는 율법에 능한 바리새인었으며 유대 종교에 대한 열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이단으로 생각하고 그의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섰으나 '다마서커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후 택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전에 누구도 받지 못한 크고 완전한 계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계시는 감추어졌던 비밀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그 계시의 말씀을 따라 복음을 전하여 도처에 교회를 세우고 견고케 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적으로 이루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일컬어집니다.(골1:25)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따라 탁월한 지성과 강한 의지,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인내로 죽을 때까지 힘을 다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소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고, 그런 까닭에 그는 유대인들을 위해 봉사한 베드로 등의 사도들과 비교해서 이방의 사도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전도 여행을 통해서 직접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힘을 썼지만 서신들을 통해 교회가 진리 위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에도 힘을 썼습니다. 사실상 신약 교회의 영적 기초는 대부분 그에 의해 놓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로마 교회는 다수의 이방인들과 소수의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교회는 대규모의 단일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고 주로 가정이나 소규모의 처소에서 소수의 신자들이 모여 교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 어떻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져서 교회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일반적으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때 로마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온 순례자들 중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였지만 실제로 로마에 가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스페인에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에 꼭 로마를 방문하고 싶어했습니다.
로마서를 보고 회심한 사람은 많지만 첫 번째 실례로 어거스틴 (Augustine)이라는 주목할 만한 인물의 회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신약성경이 완성되고 나서부터 종교개혁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기독교회 내에 존재했던 인물 가운데 히포(Hippo)의 어거스틴 만한 큰 인물이 없었습니다. 많은 방면에서 그렇게 말해도 옳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그의 이야기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는 두뇌가 명석한 사람으로 교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심오한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도덕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이 어떻게 회심하게 되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는 영혼의 고통과 고뇌를 안고 어느날 오후 정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톨레 레게"(책을 들어읽어라, 책을 들어읽어라)라고 말하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나서 숙소로 가서 책을 펴서 읽었습니다. 그가 읽은 곳이 로마서 13장의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가 그를 강하게 비추었고, 그는 회심하여 구원받아 그리스도 교회의 등대가 되었습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양면성이 있다! 물론 양면성이 있다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성경은 양면성이 없습니다. 왜 양면성이 없느냐면 양면성이 있으면 우리가 진리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도 맞은 것 같고 저것도 맞은 것 같으면 어떤 것을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진리란 표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면성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신학교 교수들까지도 성경은 양면성이 있다. 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양면성이 있다고 말할 때는 복음을 확실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에 양면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면 성경은 양면성이 없습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하나에다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는 것이지 셋도 되고 넷도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오래 흘러도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입니다. 또 이 나라에서도 하나에다 하나를 더하면 둘이고 저 나라에서도 하나에다 하나를 더하면 둘 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에다 하나를 보태면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셋이라 말해도 하나에다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하나에다 하나를 더해서 둘이다 해도 그것은 맞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니다 해도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무엇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 나왔으면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내가 확실하게 알아야 복음을 확실하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면 이렇게도 전하고 저렇게도 전하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또 어느 말씀을 믿어야 할지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교단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어떤 특별한 문제만 나타나면 이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이단이 되느냐면 성경에서 양면성을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확실한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한 책입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말씀하는 책입니다. 성경전체가 복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기록 되었습니다. 그 중에 이 로마서는 복음에 가장 핵심 되는 부분을 설명해 놓은 말씀입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로마서 때문에 종교 개혁자 마틴루터가 일어났습니다. 칼빈이 일어났습니다. 이 로마서 때문에 어거스틴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것들은 이제 여러분이 로마서를 해석해 보면 얼마나 깊은 것들이 있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는 첫 번째부터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