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웨이크 섬이 가까워질 무렵 40노트에 가까운 바람과 6-7미터쯤되는 파도가 만들어집니다..
간혹 후미에 삼각 파도가 만들어져 따라오기도 하고..이틀후부터 조금씩 수그러듭니다.
사온 루어는 작은 것은 줄이 터지며 잃었고, 큰 것은 도통 입질이 없어 바늘만 떼어내 과자 봉지에 은박을 오려
루어를 만들어 던지니 얼마 후 은빛 살코기가 올라오고 녀석을 손질하던 중 나중에 정리하려 다시 던져 두었던 루어에
또다시 한 마리걸려 질질 딸려오기도 했습니다.
육지에선 도저히 읽을수 없던 수면용 책도 망망 바다에선 훌륭한 무전력 미디어라, 내 것으로 만들수 있었습니다...
전력을 아끼기위해 야간엔 거의 헤드 렌턴에 의지했습니다, 어쩔 땐 완벽한 어둠이 도리어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보이지 않기에 두려움과 포근함이 공존하는...
어느 날 찾아온 청새치(블루 마린)..약 2.5 미터 정도에 천천히 따라 오다가도 순간적으로 빠르게 이동하기도 합니다.
처음보니 신기하기만 합니다..'노인과 바다'처럼 한번 잡아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다랑어도 다 먹지 못했는데,
잡아도 처치곤란...ㅋ 이후에도 종류별로 무척 많이 찾아옵니다,,,
또 다시 찾아온 무풍..하지만 너울 파도는 바로 죽지않아 배는 정신없이 뒤뚱거리고 세일은 펄럭여 세일과 리깅을 보호하기 위해
내려둡니다. 당초 강한 바람에만 대비했지 미풍에 대비는 전혀 없었던 것이 또한 실수였습니다,하와이를 출항할 때 빨래방에서
만난 세일러가 놀라움과 우려로 제게 했던 질문 중에 강풍과 미풍에 대해 각각 거론하였고 미풍에 대한 저의 답변은
no wind..no go... 하지만 저 자신은 생각만큼 진득할수도, 인내할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 오만함의 댓가를
눈물과 목청이 터져 나갈듯한 절규로 치루기를 3-4일 주기로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4일이 지나 내일도 바람따윈 불어오지 않을꺼야,,,! 바다에 소리지르다 지쳐 체념할 무렵 다시
바다는 긴 잠에서 깨어납니다,,,
선실에 있을 때 휘파람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돌고래든 다른 종류의 고래든,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래가 지난 후엔 대부분
바람이 강해지던 약해지던 변화가 왔던 것 같습니다..어쩔 땐 고래들이 그 길로 가면 해류나 바람이 편치 않을테니 우리를
따라올라고 끈질기게 메세지를 보내는 듯한 착각마저 들곤 했습니다....같은 포유류로서 느끼는 따듯함 같은것......
고기들도 수시로 따라옵니다..
파일럿 차트에 3일 단위로 표시를 해두어 수시로 한국과의 거리를 보며 스스로를 응원합니다..
그래, 이만큼 더 왔어.....
다랑어 떼들이 망망 바다에서 청새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킬과 러더는 훌륭한 숨박꼭질 구조였는지 잠잠한 바다의 선실 속에서
갑자기 강한 부서지는 파도에 충격이 느껴져 밖에 나가보면 어김없이 다랑어 떼들이 청새치를 피하기위해 촘촘이 뭉쳐
수면 위로 강하게 헤엄쳐 파도가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배가 들썩거리고 가끔씩 청새치가 러더나 선체를 스치는 것 같아
보다 못해 갈고리를 들고 바다에 내리쳐도 보고 휘저어보다 ,,어라? 한 마리 걸려듭니다...;;
이렇게도 고기를 잡을수 있구나 싶습니다,,,잡은 고기를 청새치에게 던져주니 쫄래 쫄래 달려가 잘도 먹습니다..
이후 잠깐은 조용해졌지만 또다시 찾아온 청새치에게 두 마리를 더 잡아 준 후에야 조용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날 뿐이었고 ..나중엔 다랑어 군단을 이끌게 되었습니다,,,그것도 고래들처럼 바다 생활에 일상으로 등록됩니다,,
마지막 남은 오렌지.. 점점 부식 목록에서 마지막이 많아집니다,,,,골뱅이도 얼마 없고..초코바,,몽쉘통통,,,ㅠㅠ
어김없이 찾아온 무거운 날씨,,,,,
어느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바람이 없으면 세일은 펄럭 배는 뒤뚱, 거리를 줄일수 없다 투덜,,
바람이 강하면 무섭다고 투덜,, 그렇게 바다에 투덜거린게 따라오는 다랑어 떼 수만큼 될 무렵...
바라봄을 바꾸어 봅니다,
바람이 없으면 편안해서 미루었던 빨래와 편안한 식사 시간.. 강하면 빠르게 한국으로 달려가 그도 좋다...
이후 아주 약간은 수시로 얼굴을 바꾸는 바다에 담담해질수 있겠다는 착각도 가능했습니다..
하와이에서 언젠가 시게 상과 술을 마시며 130여 일을 무역풍을 거슬러 일본에서 하와이로 온 그 분이
제게 해주었던 유꾸리(천천히)란 말엔 조금 더 많은 의미가 있었던 것만 같습니다,,,,
그냥 찍었는데 수중 촬영처럼 보입니다..^^
완벽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봅니다..
서서히 미쳐가는 모습..;;
정신적 방어책으로 자연스럽게 자아를 둘로 나누게 됩니다
혼자 묻고 답하는게 아니라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해 대화를 합니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너구리 먹을까? 야 그건 몇개 없어 아껴 먹어! 그래..?
그럼 신라면에 소세지 넣어 먹을까? 야..그냥 삼양 라면에 밥 말아 먹어 그건 많이 남았어!
그래...? ....알았다.....--
그렇게 동물의 왕국 오가사와라를 빠져 나갈 무렵 강한 바람일 때 찾아온 7 미터 이상의 백상아리로 추정되는 생명체는 오전 내내
배를 따라왔으며 9 미터 조금 넘는 제 배에선 거의 배만한 녀석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 흐느적거리는 음흉스런 움직임과
탐색,,,도살핀은 너무나 컸으며,나름 방어책으로 엔진 시동 걸고 동력을 연결해 네가 먹을만한게 아니다..알리고 ,,
1차 방어로 건전지 한 주먹을 그물에 담아 줄로 묶어 놓고 , 2차로 80암페어 예비 축전지에 전선을 각각 연결해 여차하면
물속에 담글 준비를 한 후, 더 이상 보고 있으면 공포심에 지칠 것 같아 선실로 들어가 가끔씩 고개만 내밀고 힐끔거리기도
했습니다,,이후 녀석이 보이지 않게된 후에도 홀딩 탱크로 돌려둔 화장실 밸브를 당분간 그대로 두었고,,몇일간 자연 방뇨는
할수 없었습니다..이틀간 꿈속에 같이한 그 시커먼 지느러미에 한기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혼자 바다를 떠도는 백상아리..어쩌면 저 자신도 그렇게 살아오진 않았나,,생각이 듭니다,,,
아..따듯한 심장을 가진 사람, 사람이 그립다.....!!
어느덧 일본의 섬들에서 떠내려온 해초와 쓰레기들은 영원할 것만 같던 항해에 희망처럼 느껴집니다,,
아주 잠깐 괌에 들러 볼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문득 바다는 육지에서 바라볼 때가 제일 두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럴 현실적 여유도 없었습니다,,저에 목적지는 구복입니다,,,
생각은 그냥 스쳐 지나가버렸을 뿐입니다,,,
이후 위도를 올려갈수록 떨어지는건 식량과 온도뿐 아니라 속도 또한 급격히 줄어듭니다..
점점 무역풍의 세력보다 북서풍과 동진 또는 동남진하는 강한 해류(흑조?)가 북서쪽으로 오르는 저에겐
시련처럼 느껴집니다...예상은 했지만 오끼나와 언저리까지 돌기에는 거리에 손실이 너무 커 그냥 좀 느려도
짧은 거리로 가보자 했던 것이 가끔씩 3-4 노트 까지 나오는 야쿠지마 아랫 바다에,, gps 바늘은 뒤로 가기도 하는
정말 느림을 맛보게 했습니다... 이 뭐야! 필리핀 수리가오 해협도 아니구,,,;; 해도와 파일럿 차트 등을
보며 아마도 가고시마부터 이시가끼까지 이어진 해저 경계선은 서와 동편을 경계로 100 미터대 수심이 절벽처럼 떨어져
3000 미터대로 떨어지고 야쿠지마 아래가 가장 급격하게 모이는 지점처럼 보입니다,,이미 윤선장님 책과 하워드의
[창의적 항해]란 책에도 충고됐던 부분이었지만, 바다엔 공식이 없다 느꼈던 저는 통계는 존재한다는 걸, 또 한번
느낍니다..그래, 돌릴순 없고, 하워드 씨도 이틀간 고생하셨다는데,,,
그나마도 북서풍마저 약해지면 엔진으로 가봐야 1노트도 나오지 않아 엔진을 끄면 3-4 노트로 다시 태평양으로 떠밀립니다,,
힘들게 오른 관문,,,상실감은 찾아오고 8000마일을 달려 왔다,,,여기서 못간단 말인가!!
바다는 제게 어쩔 땐 무자비할 정도로 인내심을 요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