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용소굴 이끼폭포(지도에는 ‘용소폭포’로 표시되어 있다)
무작위로 고른 풍경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초월하는 최상의 즐거움은 보기 드문 나비
들과 그들의 먹이 초목에 서 있을 때이다. 무아지경의 순간이며, 그 무아지경 뒤에는 또 다른
무엇,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 마치 내가 아끼는 모든 것들이 순간적인 진공상태로 빠
져드는 듯하다.
--- 나보코프, 『기억이여 말하라』(앤 패디먼, 『세렌디피티 수집광』에서)
▶ 산행일시 : 2009년 7월 18일(토), 흐림, 바람 세게 불었음
▶ 산행인원 : 10명
▶ 산행시간 : 10시간 39분(휴식,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약 15.8㎞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0 : 2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4 : 32 ~ 05 : 30 - 삼척시 노곡면 주지리(舟旨里) 수터, 산행시작
06 : 07 - 능선 진입
07 : 31 - 두리봉(頭理峰, 1,072.3m)
08 : 23 - 1,123m봉
08 : 46 - 1,105.4m봉, 육백지맥 ┬자 갈림길, 오른쪽으로 감
09 : 38 - 938m봉, ┤자 능선 분기, 왼쪽으로 감
10 : 00 - 이끼폭포(용소폭포)
11 : 12 - 성황골 땡비알
11 : 58 ~ 12 : 20 - 670m봉, 점심식사
13 : 24 - △1,085.7m봉
14 : 10 - 안부, 호랑장터
14 : 21 - 삿갓봉
14 : 52 - 1,051m봉, ├자 능선 분기
15 : 24 - 도화산(△925.1m)
16 : 09 - 삼척시 도계읍 마교리(馬橋里) 무시터, 산행종료
21 : 52 - 동서울 강변역 도착
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와 그 주변
▶ 두리봉(頭理峰, 1,072.3m)
0시 20분. 그악스럽게 퍼붓던 비가 멈췄다. 시시로 예보한 서울 중부지방 폭우 200㎜가 다
내렸을 리는 없고 혹 잠시 자는 것인 줄도 몰라 깨울까봐 살금살금 서울을 빠져나간다. 태백
통리 지나 준령을 연거푸 넘는다. 신리재(832m), 정거리치(751m), 문의재(835m). 특히 서고동
저(西高東底)인 문의재 (文義峙) 내릴 때는 하도 급속히 구불거려 곤한 잠 확 깬다.
주지리 주지천 물소리 괄괄거리는 주지교 앞에서 멈춘다. 04시 32분. 쪽잠 잘 틈 없이 산행
준비한다. 비는 오지 않고 먹구름만 부산하다. 스패츠는 아예 맨다.
자, 어디로 오를까? 당초 선 그은 데로 272m봉부터 오르기로는 너무 멀다. 오른쪽 느슨한
지능선을 탐색한다. 지도 읽어 실지의 산 주름을 정확히 대조하기란 무척 어렵다. 정각사 방
향으로 갔다 오기를 반복한다.
갔다가 왔다가 다시 갔다가 다시 오다가 도라지밭 지나고 산기슭 오르는 임도가 보여 그리
로 든다. 임도는 100m쯤 가서 끊기고 내 키 훌쩍 넘는 가시덤불숲 헤치자 절개지가 나온다.
절개지 위가 지능선이다. 오늘도 길 개척한다.
코 박은 사면에서 얼굴 화끈한 지열을 느낀다. 화산지대를 지나는 것 같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풀숲 적셨던 빗물은 바람으로 털렸다. 이에 스패츠 벗으니 온몸이 개운하다.
한 피치 올라 인원 점검한다. 스틸영 님이 토하다가 산행을 포기하고 하산했다고 한다. 차
뒷좌석에서 준령 넘고 넘느라 멀미나게 출렁거렸던 것을 근인으로 짐작한다. 그런 줄 뒤늦게
안 대장님과 송주 님이 스틸영 님 돌보러 되돌아가야겠다는 것을 애써 말린다. 김기사님에게
휴대전화 걸어 이런 사정을 알린다. (김기사님이 다행히 멀리 가지 않았는지 곧바로 스틸영
님을 찾았다.)
내 속도 메슥거리려고 한다. 식은 땀 찔찔 흘린다. 연신 얼음물을 들이켠다. 속이 울렁울렁
거린다. 내 걸음으로 가자하고 뒤로 처진다.
넓은 평원 나오고 그 끝은 Y자 지능선으로 갈라진다. 왼쪽 지능선을 잡았는데 바윗길로 이
어지는 너덜이다. 자칫 빠지면 나오기 힘들 시커먼 수직굴도 지난다. 등로는 오를수록 잡목
가세하여 더욱 사납다. 오른쪽 지능선으로 갈아탄다.
주능선 올라서자 가파름이 한결 수그러든다. 광활한 초원길이다. 거센 바람으로 활엽 팔딱
팔딱 배 뒤집고, 풀숲에는 파고 높은 파랑이 끝없이 인다. 어지럽다.
두리봉. 2005년 11월 12일. 높은산 님 일행과 근덕초교 마읍분교 쪽에서 올랐었는데 도무
지 낯설다. 정상의 미역줄나무덩굴 숲은 그때보다 더 무성하다. 우리 말고는 찾는 이가 없었
는가보다. 정상표지석이나 표지판은 없고 산행표지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3. 도라지
4. 두리봉 주변
5. 일월비비추
6. 두리봉 정상에서, 송주 님과 챔프 님(오른쪽)
▶ 이끼폭포(용소폭포)
이제 이끼폭포까지는 태평하리라. 두리봉 벗어나 철쭉 숲 내리면 완만한 대초원이 펼쳐진
다. 사방 일월비비추가 한창이다. 일월비비추는 활짝 핀 모양보다는 꽃봉오리 다소곳이 맺었
을 이맘때가 보기 좋다. 이때의 모양을 두고 일월(日月)이라 이름 붙었을 것 같다.
표고 그다지 느끼지 않은 채 1,123m봉을 오르고, 펑퍼짐하여 1,105.4m봉 찾기가 까다롭다.
약간 지나쳤다. 사면을 트래버스하여 주능선 잡는다. ┬자 능선 분기봉인 1,105.4m봉은 육백
지맥의 노정이다. 등로는 신작로로 났다.
이끼폭포 보러가려면 얌전히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지도로는 사다리 성질상 1,105.4m봉에
서 냅다 서향으로 쭉쭉 내려버리고 싶은 욕심이 동하지만 그 끝은 깊은 낭떠러지라고 한다.
참는다.
뚝뚝 떨어진다. ┤자 능선 분기하는 938m봉. 왼쪽 지능선으로 내린다. 급전직하한다. 산허
리 돌아내리는 뚜렷한 길과 만난다. 길 따른다. 얕은 계곡 두 번 가로지를 때에는 까마득한 절
벽 내려다보며 잔도의 아찔함을 맛본다.
흙 담 무너진 양철지붕 폐가 지난다. 길옆 도라지밭 도라지꽃은 저절로 환하고 자두 또한
알알이 저절로 익어간다.
겁나게 내린다. 가는 밧줄잡고도 몇 번이나 움찔하며 내린다. 물소리 차츰 가까워지고 드디
어 급사면 베일 벗기자 상상하지 못했던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광경이 드러난다. 한참동안
할 말 잊는다. 병풍인가? 눈비비고 다시 보니 분명한 실경이다. 그간 수차례 남의 눈 빌어 보
았던 터라 낯익을 줄 알았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전혀 새롭다.
섬섬한 실폭은 수줍은 듯 주룩주룩 흐르고, 줄줄 대폭은 당차게 솨솨 쏟아 내리고, 물보라
인가 물안개인가 옅은 연무는 수면 위로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검은 암벽과 짙푸른 이끼와 더
불어 온 계곡을 한 올 한 치라도 가감할 수 없는 안배로 수놓는 것이 아닌가!
줄사다리 타고 암벽 오르고 밧줄잡고 암벽 내리자 한줄기 빛살의 조명으로 용소굴, 용소,
용소폭포가 찬연하다, 징검다리로 계류 건너고, 계류 옆 슬랩을 더듬거려 다가간다. 오싹한
냉기가 감돈다. 물보라, 이끼, 실폭, 암굴, 소(沼), 층층 낙차, 공명(共鳴)…, 이에 더하여 원근
의 명암은 태고의 신비를 한층 고조시킨다.
7. 이끼폭포 가는 길
8. 물레나물
9. 도라지
10. 이끼폭포
11. 이끼폭포
12. 이끼폭포
13. 이끼폭포
14. 이끼폭포
15. 이끼폭포
16. 이끼폭포
▶ 도화산(桃花山, △925.1m)
많은 시간 지체했다. 가야한다. 뿌리쳐 돌아서고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다. 간신히 수습한
정신 또 아득해질지 모르므로. 성황골 계곡으로 내린다. 지지난주 설악 관터골과 독주골에서
계곡의 너덜과 암벽 트래버스를 오지게 맛보았던 터, 그 연장으로 내린다. 그래도 무명폭으로
내리는 절벽에서는 오금저리다.
굽이굽이 돈다. 오른쪽 사태난 산기슭도 지난다. 두건굴 지나고 땡비알 근처다. 왼쪽 산기
슭 절벽이 잠깐 느슨한 틈을 노린다. 갈지자 크게 그린 인적이 보인다. 우리의 의기에는 심히
못마땅하지만 못이기는 척하고 그에 따른다.
인적은 한 피치 오르자 자꾸 게걸음질 하더니 옆 지능선 넘어서까지 그런다. 버린다.
직등.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우리 산행이력에 또 한 줄 추가할 대목이다. 낙석이 비석
(飛石)이다. 서로 어긋나게 오른다. 입에 게거품 문다.
챔프 님은 아연 살판났다. 괜히 챔프가 아니다. 괴력이다. 숫제 난다. 제발 밥 좀 먹고 가자
하고 붙든다. 670m봉 올라 도시락 편다. 밥알 씹을 힘이 부쳐 물 말아 막 넘긴다.
670m봉에서 △1,085.7m봉까지 1시간 넘게 걸린다. 억센 잡목 비켜가는 것이 된 고역이다.
구렁이만한 독사를 본다. 똬리 틀고 버틴다. 내가 비킨다. 주능선에 가까울수록 더 가파르다.
△1,085.7m봉 정점에는 미역줄나무와 가시덤불이 하늘 가리게 우거졌다. 그래도 삼각점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310 재설, 77.7 건설부.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 평원의 연속이다. 호랑장터 지나고 1,057m봉을 왼쪽 산허리로 돌아
넘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등로에 ‘삿갓봉’이라는 팻말이 있다.
하늘높이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 숲길. 가랑비 뿌린다. 소나기로 퍼부어도 좋다. 도화산이
가깝다. 안부마다 ‘마교리’로 내린다는 갈림길이 유혹하지만 이겨낸다.
무시터재의 ├자 갈림길도 무시한다. ├자 능선 분기봉인 1,051m봉. 직각으로 꺾이기에 봉
우리 오르다말고 우회하려나 잔뜩 기대했는데 꼬박 오른다.
급사면 제동하며 내리다가 안부 즈음해서는 제동 풀어버리고 그 추동으로 안부 획 지나 오
른다. 도화산. 산에 복숭아꽃이 많이 핀다고 하여 도화산이라 부른다고 한다(국토지리정보
원). 김문암 씨가 정상표지판을 만들어 나무에 달아놓았다. (여기 말고도 이분이 만들어 단 정
상표지판을 종종 본다.)
무시터로 내린다. 두수골로 빠질 뻔하다가 길게 트래버스 하여 능선 잡는다. 야트막한 봉우
리 오르기도 지쳤다. 사면 질러 내린다. 개망초밭 지나고 계곡 건너 농로. 곧 무시터다. 마당
너른 민가가 한 채 있고 그 옆 육백산 들머리에 커다란 등산안내도가 있다.
차 부른다. 그리고 수도꼭지에 머리 들이댄다.
17. 이끼폭포 아래로 계곡 타고 내리다가 만난 이름 없는 폭포
18. △1,805.7m봉에서, 왼쪽부터 챔프, 메아리, 인샬라, 베리아, 대간거사 대장
19. 도화산 가는 길
20. 도화산 정상에서, 멀리는 백두대간 대덕산
21. 무시터 아래
첫댓글 선배님 시원한 폭포에 더위를 식히고 갑니다....좋은자료 감사 합니다...^^
가끔 선배님 정 모습 한장씩 끼워주세요.....후배들이 선배님 글 덕분에 여행을 많이해 만나면 인사정도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