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구치 선생님의 절복 활동
(<제100회 본부간부회·부인부간부회, 1996년 5월24일 창가르네상스(77)>)
‘규슈의 벗을 위해서라면!’이라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열차에 흔들리며 머나먼 규슈까지 가셨다. 총회는 특별고등경찰의 음습한 감시를 받으며 개최되었다.
언제 체포될지 모른다. 자유롭게 박수조차 칠 수 없다. 전쟁의 암운(暗雲)도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 선생님은 당당히 총회를 개최하셨다. 나라를 구하고 민중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장엄한 모습인가. 군부권력은 나중에 마키구치 선생님을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고소한다. 그 기소장(起訴狀)을 소개하겠다.
“1942년 11월5일경부터 1944년 7월5일 사이에 10회에 걸쳐 지방지부 또는 지방에 거주하는 신도의 초빙에 응하여 후쿠오카현 기타 지방에 가서 약 15회에 걸쳐 후쿠오카시 후쓰카이치초 무사시야여관, 그밖에 좌담회 또는 강연회를 개최하고, 그 때마다 강연, 설화, 실험증명 등의 방법에 의하여 참회자(參會者) 수명 내지 수십명에게 절복 또는 신앙의 강화에 힘씀” 등이라고.
이 기소장 자체가 마키구치 선생님이 규슈를 얼마나 소중히 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체포 후에도 용감하게 행동하셨다. 그 의연한 행동은 취조하는 형사, 검사가 놀랄 정도였다. 이미 70세를 넘은 몸이다. 게다가 장소는 경시청이나 구치소(도쿄 스가모)다. 용감한 스승이셨다. 광선유포의 귀감이셨다. 마키구치 선생님 기원이, 순교를 각오한 기원의 일념이 오늘날 규슈의 대발전으로 연결된 것이다. 기원이란 이렇게 위대하다.
불법(佛法)에서는 공덕과 벌에 대해 현익(顯益)·명익(冥益)·현벌(顯罰)·명벌(冥罰)로 여러 가지가 설해져 있다. 중요한 것은 목숨을 건 참된 기원, 참된 신심이 있으면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자자손손의 시대에 반드시 꽃핀다.
그것에 절대 확신을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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