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을 맞은 67년생 양띠들은 갱년기라는 낯선 호르몬 때문에 저마다 힘들다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남편들이 초등 총동창 모임으로 집을 비운사이 그것을 빌미로 우울한 분위기 좀 바꿔 볼 겸 양띠들끼리 작당을 했다.
삶은 누구에게나 시련이고 고난이다. 현재 처한 나만 바라보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서로 터놓고 고민을 말하다보면 나한테만 가혹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비로소 알 것이다.
삶의 무게의 부피나 질량은 다를 수 있지만 살아 숨 쉬는 동안은 공통적인 것이니 조계산의 황톳길을 걸으며 수다를 떨다보면 서로 힘들어 하는 부분의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정산골 사는 희숙이가 계족산에 가서 황톳길을 걷자고 번개를 쳐서 양 다섯 마리가 길을 나서기로 했다. 집에 있는 간식을 배낭에 싸고 이 만 원의 회비를 걷어 공주시내 들려 김밥을 샀다. 오랜만에 나선 외출이 가랑비의 등장으로 불안 불안하다.
뭐 우리만 그러겠는가!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하늘을 이고 일 년에 한 번뿐인 총 동창회를 치르는 남편들도 질퍽한 운동장에서 게임을 해야 하기에 우리보다 더 심난하리라. 이런 상황을 쌤통이라 할 수 없는 건 우리도 비를 맞아가며 물에 젖은 김밥을 먹게 생겼기 때문이다, 오늘 만큼은 선한 마음으로 이 비가 그쳐주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비가 와서 인지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희숙이 말과 달리 계족산의 주차장은 한가했다. 차를 한갓지게 귀퉁이에 주차하고 신발을 들고 맨발로 계족산 황톳길을 걸으려고 하는데 유명세만큼 낭만적이고 건강을 부르는 황톳길이 아니었다. 질퍽한 기분도 거시기한 뭐 같아 발바닥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거기에 작은 돌멩이로 발 지압하는 길은 위에서 짓누르는 살의 무게 때문인지 아파서 통과하는 걸로 하고 그냥 슬리퍼를 신고 걷는 거만 했다.
비는 다행스럽게 소강상태를 보였고 나무들이 양팔 벌려 만들어준 터널를 접어드니 운치는 있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미스트 한다고 생각을 바꿔먹어도 습으로 인해 끈적임은 견디기 힘들었다.
우리처럼 온전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계족산에는 이외로 많았다. 이 구질거리는 날씨에 나와서 개고생이라니 동물들이 인간을 보면 혀를 찰 일이다.
희숙이 말에 의하면 비 피할 곳이 없어 우산을 쓰고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심은 소나무 숲이 배경이 되고 연꽃들이 사는 연못 옆 정자에서 먹을 수 있게 됐다. 저마다 손닿는 대로 배낭에 넣어온 것을 펼쳐놓고 보니 김말이 튀김, 김밥, 복숭아, 참외 등 진수성찬이다.
나는 그냥 입만 가지고 가려다가 그건 아닌 거 같아 아이스박스에 물을 가득 담아 갔다. 이럴 때 보면 참으로 놀랄 만큼 센스가 있다(?) 그렇다고 누구도 양심을 물 말아 먹었느냐고 반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일행 중 그 누구도 들지 못하는 부피와 무게의 최고봉인 자동차를 가지고 갔기 때문이다. 동행자라기보다 양떼들의 운전수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괘씸함에 계족산에 버리고 도망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건 그들도 본능적으로 안다.
계족산도 등산로 길을 타면 사찰을 볼 수 있겠지만 황톳길만 걸으니 그저 시골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들뿐이다. 나만 정서가 건조한 지 지루해 죽을 지경인데 다른 친구들은 좋다고 한다. 도무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왔던 거리만큼 되돌아가야 하는 현실 앞에 부아가 치밀려고 한다. 어느 지점에서 도저히 갈 수 없다고 하자 친구들은 이외로 많이 참았다며 대견해 했다.
진흙 발을 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에 오르면서 친구들은 차 시트를 더럽힌다고 걱정했다. 그건 온전히 개인 문제고 다음 행선지는 계룡도자기 마을이다.
계족산을 빠져나와 계룡면 상신리로 가는 갈림길에서 내비가 주춤거리는 바람에 도로 선택을 잘못하여 도착시간이 십분 더 늘었다. 친구들은 나를 못 믿겠다며 저마다 내비를 자청하고 나섰다. 사람내비4명에 차에 박힌 내비까지 차안은 시장 통이 돼버렸다.
계룡면 상신리 도자기마을에 도착하여 철화분청사기 전시장에 들어가 흙의 아름다움을 구경했다.
철화분청사기란 계룡도예촌의 뿌리이며 흑갈색의 추상화된 물고기나 초화 문이 힘찬 필지로 거침없이 장식된 서민적이면서도 예술성이 뛰어난 도자기로 유명하다. 흙에 따라 A급은 백자, B급은 청자,C급은 분청사기, D급은 옹기토를 굽는다. 철화분청사기는 C급의 흙으로 섭씨 1,100도에서 950도 사이의 온도에서 구워졌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철화분청사기는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 사기그릇이라고 보면 된다.
전시장을 나와 분위기 끝내주는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고 나오면서도 줄곤 먹는 얘기를 하는 양떼들, 저녁을 먹으러 공주 시내로 달렸다.
어느덧 노을은 금강 변에 서있는 공산성을 물 들리고 있었다. 공주에서 제일 번화가인 신관동에 도착해 닭갈비와 수다를 곁들여 저녁을 맛있게 먹고 다음 행선지는 집이라고 했다. 다들 간 큰 아줌마들 아니랄까봐 가족의 저녁걱정은 치마폭에 접어놓고 정자가 있고 음악실이 있는 희숙이네로 가자고 조른다.
희숙이의 승낙이 떨어지고 차는 이들을 태우고 정산골로 가서 바람에 술병을 넘어트리며 오늘의 이탈을 되새김질 했다.
어느 틈에 동창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희숙이 남편이 양들을 보자 화색이 돈다. 양들의 만류에도 굳이 분위기를 띄우겠다며 색스 폰 연주를 시작했다.
붕붕붕붕~ 우리가 술 취해서 모르는 줄 아는데 엇박자를 도돌이표로 내면서끝가지 태연하게 불어댄다. 아무리 술 취했어도 듣는 귀는 열려있건만 다들 모른 체 하며 앵 콜의 박수를 쳤다. 나를 비 롯 다들 참을성이 대단했다.
가교리 산촌마을은 어느덧 어둠의 적막에 쌓이고 하늘은 까만 융단을 펼쳐놓으니 아기별들이 하나둘 마실 나온다. 남편이 찾지 않아도 늙은 아줌마들은 더 지체 말고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아무리 먼 곳을 가더라도 본능처럼 가교리 산촌 마을로 돌아오는 우리는 가교리 붙박이 들이다. 계족산을 헤맨 양들은 오늘밤 어떤 꿈을 꿀까.
첫댓글 아, 67년 양띠로군요.
난 소띠 인데어울립니다요.
천천히 재미지게 읽기로 하고
아무튼 당분간 아니면 영영 이 몸은 글을 올릴 수가 없네요. 컴퓨터에선 다음 사용이 안 되고있답니다 . 뭔 통합 땜에.
그런것도 있어요.?
비로써____비로소
네.
한가지게____한갓지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