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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여성
1. 베샤카의 귀의
붓다가 제타베나에 오고부터 고사라 국은 갑자기 밝아졌다.
또 붓다의 이름이 알려져 귀의자도 계속해서 늘어갔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하 라잔인 파세나디와 제타가 사이좋게 붓다에 귀의한 것은,
다른 바라문종의 수행자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형제이지만 이복형제여서 사이도 별로 좋지 않고,
양국의 교류는 의례적인 것 이외는 두절된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동생인 파세나디는 형 제타를 좋게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이 있으면 형의 영지에 침입하여,
눈에 거슬리는 존재를 제거해야 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을 들은 후
지난 날의 잘못을 깨닫고 두 사람은 다시 옛날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마음 속의 응어리가 얼음 녹듯 녹아 버렸다.
이 불가사의한 현실에
바라문 수행자들은 당황하고 놀래서 붓다의 위대함에 겁먹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붓다의 출현으로
자기들의 입장이 희미해지고 제사가 환영받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러나 파세나디는 결코 바라문 종을 멸시하거나 냉대하지는 않았다.
바라문의 경전인 베타나 우파니샷드에도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이 쓰여있어,
붓다가 설법하는 중도의 정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바라문교는 묵은 전통 속에 화석화되어 있고
또 그것이 어려운 학문으로 변하여,
바라문 수행자가 그 경전에 편승하여 하나의 권력자로 되어,
특권의식을 휘두르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것만 없앤다면
경전 그 자체는 잘못이 없고,
오히려 붓다가 설법하는 법은
바라문 그 자체라고 해도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붓다는 말했다.
" 인류는 모두 형제이다.
누구나가 모두 평등하다.
카스트제도야말로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타락케 한다.
마음을 밖으로 돌리지 말라.
안으로 돌려라."
파세나디는 붓다의 설법을 믿었다.
나라의 정치는, 붓다의 자비를 원칙으로 삼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많은 중생에 대해서도, 바라문 종에 대해서도,
평등하게 다루고, 조금도 차별하는 일은 없었다.
파세나디의 생각은, 일부의 바라문 수행자로부터 불만을 샀으나,
그래도 대부분은 그의 시정에 반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파세나디의 사람됨이 점차 선명해져 감에 따라,
붓다의 명성은 더욱더 높아져 갔다.
광대한 제타베나는, 베르베나보다 녹지가 많고, 주위에는 큰 나무가 무성하였다.
땅은 밝고, 신록은 아름다웠다.
붓다의 설법은 낮에도 실시되었으나, 밤이 많았다.
재가의 중생은, 낮에는 들이나 밭에 나가 일하므로,
밤이 아니면 짬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양이 지면 밤은 선선해서 쉬기가 좋았다.
법을 설교하기에도, 법을 흡수하는 중생에게 있어서도,
다시 없는 기후를 제공하고 있었다.
설법하는 광장은, 중생들이 가져온 등불의 불이,
밤 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이 아름다운 광경을 이루었다.
많은 중생이 이미 마을이나 숲에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불사의 관례로 촛불을 켜지만, 촛불은 이 무렵의 이러한 습관이 전해진 것이다.
당시의 등불은 종유를 썼는데, 그것은 오늘날처럼 전기라고 하는 편리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광장을 밝히기 위한 것과,
빛인 붓다를 가까이 느끼고,
법등을 자신의 마음속에 길이길이 간직하기 위한 소원을 뜻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촛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불사의 관습으로 촛불이 없으면 불사가 되지 않는 것일까?
야외에 있는 등불에는 빛을 찾아서 여름 벌레들이 날아든다.
윙윙 소리를 내며 등불 주위로 떼지어 모인다.
등불을 켜면 몇십 몇백을 헤아리는 벌레들이 등불에 그을리거나 타서 죽는다.
날이 새면, 많은 벌레들의 시체가 광장에 떨어져 있어,
붓다는 설법한 다음 날 아침에는 꼭 그 여름 벌레들의 명복을 빌었다.
작은 생명에도 살아갈 권리가 있고 길이 있다.
그들은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것만큼의 사명과 역할을 지니며 살아가고 일생을 마친다.
벌레들의 일생은 짧고 허무하다.
빛을 찾아 죽음을 재촉하는 그들 생활에,
붓다는 가엾고 애처러운 생각을 금 할 길 없었다.
자연의 무상함이 전 요자나를 지배하고 있다.
누구도 그것을 방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큰 생물이라도, 현명한 동물일지라도,
전 요자나를 지배하는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법칙에 저항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이 무상을 넘기 위해서는 법을 깨닫는 수밖에 없다.
영원의 생명을 아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상에 앉아 있는 붓다는,
등불에 비쳐진 많은 중생들을 앞에 두고,
시라바스디 고을에서 처음으로 설법하였다.
" 모든 중생들이여,
이 등불에 모여드는 벌레를 보라.
그 짧은 목숨에도 불구하고, 빛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고 잇다.
불에 가까이 가면 몸이 타서 죽는 두려움도 모르고,
많은 벌레들이 죽어가고 있지 않느냐?
낮에는 새나 그 밖의 다른 동물들의 밥이 되어
스스로의 몸을 다른 생물의 먹이로 되어, 공양하고 있다.
어떤 것은 땅의 비료로 변하여, 식물의 영양으로 되어, 봉사하고 있다.
동물도 또 자기 배설물을 대지에 뿌려, 식물의 비료가 되고,
또 식물은 동물에게 식량으로 그 열매나 잎을 제공하고 있다.
이로서 그 하나하나는 서로가 다른 것을 살리고 살아가며
피와 살과 뼈로 되어 서로가 도와가며 산다.
모든 것은 서로가 관계를 맺고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단독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생들이여!
많은 사람은 이 자연의 규범을 잊어버리고
자기만의 존재를 주장하며, 서로 양보하고 서로 돕는 것을 잊고 있다.
대 자연을 보라!
이 자연계는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치고 있다.
조화(調和)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만일 이 지상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초목은 마르고 동물은 식물을 잃어버리고
인간도 또한 살아 갈 수 없다.
비는 대지를 깨끗이 씻어 주고 비료를 땅속에 녹여 식물들이 성장을 돕고 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은 냇물이 되었다가, 다시 큰 강을 이루어, 대지를 적시고
끝내는 큰 바다로 흘러 합류한다.
어떤 더러운 물이라 할지라도, 큰 바다로 흘려들면 깨끗해지고
태양의 열에 의하여 증발해서, 다시 비가 되어 대지를 촉촉이 적셔 준다.
이 윤회의 짜임새는, 영원히 변치 않고 계속되고 있다.
여러 중생들이여!
자기의 존재를 직시하라.
모든 힘을 가지고 지상에 낙원을 만들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는 인간이,
자기 일만 생각하고 싸우지 않으면 질투하고 미워하는 데 미쳐서
스스로를 멸(滅)하고 있는데 이래도 좋은가?
자연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인간만이 단독으로 살려고 하고 있다.
종성(種姓)에 따라 인간을 차별하고 있다.
자기들 종성의 번영만을 원(願)하고
다른 종성은 멸해도 좋은 것인지 생각해 보라!
권력과 폭력으로 약한 자를 희생시키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어리석게 되거나,
다른 사람을을 비방하거나, 원한을 품거나,
질투하거나, 시기하거나,
욕정에 빠지거나, 만족함을 모르거나,
욕망에 사로잡히거나 하고 있는데
이래도 되는 것이냐?
이러한 여러 현상에 의해,
사람은 스스로 고뇌의 씨앗을 뿌려, 허덕이고 있다.
뿌린 씨를 거둬들이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중생들이여!
당신들의 육체는,
자기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자기 것이 아니다.
만일 육체가 자기 것이라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 주어야 할 것이다.
육체는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병을 앓고 싶지 않아도 병들어 눕게 되고,
나이를 먹고 싶지 않아도 육체는 틀림없이 노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냐?
제 아무리 좋은 영양을 섭취하여도, 장수약을 먹어도,
죽음은 틀림없이 찾아온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만들어도,
죽음이 찾아오면 그것을 가져갈 수가 없다.
지위가 높아도, 명예가 있어도,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처와 자식들까지도,
죽음은, 가혹하게 떼어 놓고야 만다.
대 자연계는 무상한 것이다.
일체의 것은, 무상(無常)이라는 틀에서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이여!
무서워하지 말라!
당신들의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마음은, 영원하고 불멸한 것이다.
개성을 지닌 혼은, 영원토록 살고 있어, 죽음을 모른다.
자연계의 무상이라는 틀로부터, 전혀 속박받지 않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혼(魂)인 마음속에는
과거와 현재의 전생(轉生)에 위대한 보물이 있어서
언제라도 도움을 주려고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
현세에 있어서 체험한 인생 경험보다도 막대한,
그리고 더 풍부한 바라밀다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 주어져 있는 생활환경은,
각자의 혼을 보다 풍부히,
보다 넓게 학습하기 위하여 주어진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입장을 고집하거나, 자랑하거나, 비하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그 혼의 보다 나은 수행을 위하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류는 모두 형제이며 평등하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빈부의 차가 가치의 기준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의 크기, 풍부함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많이 가진 자는
가난한 자를 위로하고 나누어 주어야 한다.
가난한 자는
인생의 가치를 알아, 마음을 크게 가져.
서로의 이해(理解) 속에서 올바르게 일하는 것에 의해,
대 자연의 대조화에 동화되어 가는 것이다.
지혜를 짜내, 자애심을 근본으로 삼아,
서로가 봉사하는 정신이 소생하여 나온다면
보은과 감사의 유대는 한층 강해져서 밝고 윤택한 사회가 열리게 될 것이다.
중생들이여!
짧고 한정된 인생이다.
그 짧은 인생에서
추한 싸움이나 독점하려는 욕망으로 자기 마음을 스스로 해쳐서는 안 된다.
법과 더불어 영원한 걸음을 계속하는 것이다.
당신들 마음속에, 신불(神佛)의 자애(慈愛)가 엄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애(慈愛)의 위대함을 자기 자신의 생활 속에서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바라밀다는, 그런 선의(善意)가 가득한 생활 속에 살고 있을 때,
그 문은 열리고, 생전(生前)의 자기 자신을 앎에 의해,
보다 나은 현세를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아라한의 경지란,
그러한 심경과 생활이며, 누구나 법에 맞는 생활을 한다면,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붓다의 설법은 평이하면서도 힘이 강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놓았다.
광장은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광장 주위는 태양도 서쪽으로 저물어 어둠이 일면에 깔려 있었으나
광장만은 유독 등불의 밝기가 붓다의 언혼(言魂)으로 둥글게 퍼져
사람들의 얼굴을 붉게 비추고, 빛나는 붓다를 비추고 있다.
붓다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스며 나와 마치 진주처럼 빛나 보였다.
피로를 모르는 붓다의 열변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붓다의 설법을 한번 들은 자는,
그 힘과 충격에 의해, 무의미하게 보내는 일생의 꿈속에서 깨어나서, 잊을 수가 없었다.
세상 소문은 막을 수가 없듯이, 감동의 파도는 사람으로부터 사람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붓다가 가는 곳, 어디에나 사람들로 메워져서
감동의 폭풍은 화살처럼 빠르게 사방으로 전달되었다.
이런 속에서 베샤카는 한 번이라도 좋으니 붓다를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붓다의 설법을 들었고, 그때마다 감동으로 마음이 크게 쏠렸다.
그녀가 붓다의 이름을 안 것은,
아나타 핀디가(스닷타)가, 시라바스디의 교외에 제타베나를 기진하였을 때부터였다.
그녀의 집은 마하 베샤였다.
그녀는 그 집의 외동딸로 자랐다.
양친도, 그녀도, 신을 깊이 믿고 구원을 찾고 있었다.
많은 사용인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수드라(노예)라고 해서 차별하지 않았다.
아나타 핀디가와 그녀의 양친은 친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스닷타의 저택을 방문하게 되었다.
방문 목적은 붓다를 알기 위해서였다.
" 저는 베샤카라 합니다.
처음으로 스닷타님을 뵙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스닷타를 찾은 그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젊음을 발산시키고 있었다.
순백의 옷으로 단장한 그녀의 모습은, 기품과 지성이 넘쳐흘렀다.
나이는 갓 30을 넘어서고 있었으나
독신과 미모 때문인지 젊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 잘 와 주었습니다.
당신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있어서 당신이 오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당신 아버지 하고는 내 아버지 때부터 친숙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간 뵙지 못했는데 모두 잘 계신지-----"
" 네, 모두 별고 없이 잘 계십니다.
아버님은 이제 완전히 늙으셔서 지금은 제가 가업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 오, 그렇습니까?
당신 집에는 대를 이을 사람이 없지요?
당신은 여자이지만 아들 못지않습니다.
부모님께서도 마음 놓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오신 용건은-----"
스닷타는, 그녀의 용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연락받은 바가 없었다.
다만
' 딸이 찾아갈 것이니 잘 부탁한다'
는 말뿐이어서, 장사 관계로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 스닷타님께서 붓다에게 기진하신 제타베나를 밖에서 보았습니다.
실로 훌륭한 데 놀랐습니다'
스닷타님이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위해 봉사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부모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스닷타님과 같이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나는 칭찬받을 만한 아무 일도 못하고 있습니다."
스닷타는 겸허하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베샤카는 스닷타의 인품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았지만,
그보다도, 이런 분을 지도하시는 붓다는, 필시 보다 더 훌륭한 분이라 상상하였다.
" 스닷타님, 붓다를 소개하여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하였다.
스닷타는 당황하면서,
" 위대한 붓다를 만나게 해 달라고----
그것은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꼭 만나 보십시오.
그러나 지금은 제타베나에 계시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그녀의 목적이 붓다인 것을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 언제쯤, 돌아오십니까?"
" 글쎄----"
스닷타도 대답에 난처해지고 말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 붓다가 제타베나로 돌아오시면 말씀드려서 연락을 하도록 하지요---"
" 정말 번거롭게 해 드려서 미안합니다."
" 당신은 붓다의 설법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 네, 멀리서 들었습니다.
고을 밖이나 시라바스디의 공원에서 들었습니다."
" 어떻습니까?
붓다의 설법을 듣고,,,"
" 설법을 들으면, 나의 마음이 떨립니다.
그리고 평안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분이야말로, 진짜 붓다라고 생각합니다."
" 호오, 과연 과연.... "
저는 스닷타님의 소개로 만나고 싶어서, 오늘까지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니, 황송합니다."
그는 손을 머리에 얹고 웃으면서
" 당신 같으면 내 소개가 필요하지 않을 텐데'-----
어째서 내 소개를 받으려 합니까"
이렇게 말하며 짓궂게 그녀의 동정을 살폈다.
" 그 위대하신 붓다를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만나겠다는 것은
좀 당돌한 것 같이 생각되어서 그렇습니다."
" 그것도 그렇군요."
" 저도 스닷타님과 같이, 붓다와 그 상가의 수행자들에게,
식사와 의류의 보시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거 참 좋은 착안입니다.
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야말로 나라의 보배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법을 편히 설교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당신과 같은 마음씨가 중요합니다.
서로 중생을 위하여 봉사합시다."
스닷타는 이렇게 말하고 그녀의 얼굴을 직시하였다.
얼핏 보아 연약한 이 여성에게서, 어떻게 그와 같은 장한 생각이 생겨났는지 의아했다.
대개의 여성은 사람들로부터 귀여움과 사랑을 얻는 것으로 해서 뜻을 이루려 함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남자처럼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계획하며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실천하려고 한다.
외동딸로 자라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게 되면,
보통은 일시적 감정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을 여성은 하기가 십상이지만
베샤카에게서는 그런 느낌이 전연 전해오지 않았다.
남성과 같이 냉정하였고,
앞서의 대화나 태도를 보아도, 일시적 감정으로 자기를 찾아왔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 전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부리며,
여자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
이것만으로도 베샤카는,
확실히 남자 이상의 실력과 계획성을 가진 자질 있는 여성일 것이라고 스닷타는 생각하였다.
대화중에, 그녀는 때때로, 눈을 내리뜨리고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는 듯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놓고, 조용히 말하는 교양 있는 태도에 호감이 갔다.
스닷타는 말했다.
" 당신의 아버지는, 이때까지 불쌍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도와 왔습니다.
당신도 그 자식입니다.
잘해 봅시다."
스닷타는 이렇게 말하고 크게 수긍하며, 베샤카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녀도 또한, 스닷타와 같은 훌륭한 상담역을 얻어,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녀가 스닷타를 만난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지만,
왠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같이 생각되어 오빠처럼 느껴졌다.
손을 서로 잡고 있어도, 조금도 부자연함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치 동지 같은 친근감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큰 친근감은,
스닷타가 붓다의 정사를 기진한 것.
이 하나만의 사실로서도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스닷타의 사람됨을 선명하게 알 수 있어
그녀를 안심시킨 것이다.
베샤카는 기뻤다.
스닷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저도 하겠습니다.'하고 중얼거렸다.
베샤카는 그 후,
미가라ㅡ마다ㅡ(鹿母精舍)를 기진하고
사로몬들의 수행에 숨은 공로자가 되어 일한다.
그 일은 스닷타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붓다 상가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사람으로 되어간 것이다.
그녀는 스닷타와 헤어져 수십일 후, 염원의 붓다를 만나게 되었다.
스닷타로부터 사자가 와서, 붓다가 그녀를 만나겠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그녀는 무척 기뻤다.
챙길 것도 채 갖추지 못하고
붓다가 있는 시라바스디의 정사를 찾은 것이었다.
인간 석가 -- 다카하시 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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