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14)
哭子(곡자)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玄酒奠汝丘(현주전여구).
應知弟兄魂(응지제형혼),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
浪吟黃臺詞(랑음황대사),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 許蘭雪軒(허난설헌 1563~1589)
아들 죽음에 곡하다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땅에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 불고
솔숲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지전을 날리며 너의 혼을 부르고
네 무덤 앞에다 술잔을 붓는다.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은
밤마다 서로 따르며 놀고 있을 테지.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지만
어찌 제대로 자라나기를 바라랴.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피눈물 슬픈 울음을 속으로 삼키네.
- 『허난설헌 시집』, 허경진 옮김, 평민사, 2007년(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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慘慽(참척)은 자식이 부모에 앞서 죽는 일을 말합니다. ‘巴江峽裏猿啼苦(파강협리원제고) 不到三聲已斷腸(부도삼성이단장)’ ‘파강 골짜기엔 잔나비 울음만 구슬퍼/세 마디도 채 못 듣고 간장이 끊어져요.’ 허난설헌은 참척을 당한 고통을 시 ‘竹枝詞’(죽지사 ) 두 번째 수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斷腸之哀(단장지애), 母猿斷腸(모원단장)이라고도 하지요. 시 ‘죽지사’의 문장은 이 사자성어의 원천이 된 이야기입니다. 이런 단장지애, 모원단장의 고통을 허난설헌은 연이어 겪습니다.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그리고 결국에는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도 잃습니다. 여자가 이름을 갖지 못하던 시대에 楚姬(초희)라는 이름을 받은 난설헌은 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廣寒殿白玉樓上樑文’(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신동이라고 이름이 납니다. 난설헌은 스스로 지은 自號(자호)이니 요즈음의 직업 작가의 관점으로 말하면 필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천여 수의 시를 지었으나 자신의 시를 다 불사르라는 유언을 남겨, 허난설헌의 시는 남동생 허균이 외우고 있던 시와 친정에 남은 시를 합해 210편만 남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시들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시들이 선계를 노니는 이야기를 읊은 ‘遊仙詞’(유선사) 87수를 비롯한 도가풍의 시들입니다. 이를 옮긴 이는 해설에서 여자로서의 재능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던 조선이라는 사회와 남편의 외도, 시모와의 갈등 등 가정에서의 불화에서 벗어난 현실 도피의 시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도피 외에 새로운 이상향을 그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어쩌면 남동생인 허균이 『홍길동전』에서 그렸던 율도국과도 닿아 있다는 생각입니다. 유언대로 시를 불사르지 않고 남겨 두었더라면 시인의 삶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내밀한 감정의 시를 더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일부 내밀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시는 ‘방탕한 데에 가까워 문집에 싣지 않았다고까지’ 하니, 남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결과를 맞았을지는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碧海浸瑤海(벽해침요해) 靑鸞倚彩鸞(청난의채난)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 紅墮月霜寒(홍추월상한)’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넘나들고/파란 난새가 채색 난새와 어울렸구나./연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詩讖(시참)이었을까요, 여성 억압의 사회와 가정불화, 자식들의 죽음 등 견디기 어려운 겹겹의 시련 때문이었을까요, 난설헌은 23세 때 꿈속에서 두 여인의 강요로 지은 ‘夢遊廣桑山詩’(몽유광상산시)에서의 예언처럼 27세에 홀연 죽음을 맞습니다.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서 …… 유연히 눈을 감았다.’ 신비를 둘러싸고 있기는 하지만, 결론은 돌연사인데 과연 아무런 병도 없었을까요. 질병이나 천재지변이 아닌 사회적 재난이라 불릴 참사로 참척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참척을 당하여 단장지애, 모원단장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에게는 위로의 말조차 선뜻 건네기 어렵습니다. 질병이나 천재지변이더라도 물론이겠지만 그 죽음의 원인이 사회적 재난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가리는 일대로 두고, 참척을 당한 이들을 향하여서는 직접 전하지는 못할지라도 진심으로 위로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싶습니다. (20231004)
첫댓글 2019년 6월에 영양 장계향연구회 회원들과 강릉 교산(허균)/난설헌선양회 회원분들을 만나고, 교산/난설헌의 유적을 답사한 적이 있습니다. 강릉분들이 사임당/율곡 선양은 물론, 교산/난설헌 선양도 열심으로 잘 하고 있었습니다.
유적지 난설헌 동상 앞에 위 시 <곡자>도 있었습니다. <아들딸을 여의고서>라 제목을 넓게 잡았더군요. 아무튼 천재 여류시인 난설헌의 시 소개 고맙습니다. 잘 정리해 놓은 어느 분의 답사기가 있어 첨부합니다. <곡자> 시 번역도 비교해 보시길요.
https://blog.naver.com/idbaik103/22198274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