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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Y A N M A R
가이드 북 ( 양 곤 편)
도시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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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이름
양곤(Yangon)은 -적이 없다-라는 뜻으로 1755년 꼰바웅 왕조의 알라웅 패야 왕이 몬족을 정벌하고 미얀마 통일왕조를 다지면서 몬족의 지배권이던 다곤(Dagon)을 정복한 후 붙여진 이름입니다.
1824년 영국과의 1차 전쟁에서 패배한 미얀마는 양곤을 강압에 의해 영국에게 개방할 수밖에 없었고 그 후 영국식 호칭으로 랭군(Rangoon)으로 사용하다가 1989년 현 군사정권에 의해 양곤으로 되돌렸으나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와 언론들은 지금도 랭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양곤은 미얀마의 수도라고 하지만 정부의 핵심 기구 들은 만델레이 성 쁘미나로 이전하여 핵이 빠져버린 수도라 할 수 있습니다
☐ 인구
양곤의 인구는 약 600만 정도이며 미얀마를 구성하고 있는 다 종족으로 마치 아시아의 인종 전시장 같은 다양한 인구 구성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점유율의 버마족이 기득권을 유지 하고 있으며 도심의 상공업과 사 금융업 등에 뿌리내린 인도, 중국계까지 혼합된 도시로서 겉으로는 종족별 분쟁 양상은 보이지 않지만 각 종족별로 고유의 문화와 종사하는 직종이 다르며 불교를 중심으로 기독교, 회교, 힌두교 등 신앙을 바탕으로 고유의 문화를 영위하고 있습니다.
☐ 지형 및 기후
양곤은 산이 보이지 않는 평원 지대로서 도시의 동쪽으로는 바고 강, 서족은 양곤 강이 마치 양곤 시를 품에 안 듯 감싸 흘러 양곤 남쪽에서 합류하여 앞바다인 안단 만에 이르고 있습니다.
양곤 시 주변은 기름진 삼각 델타 지역으로 논농사는 물론 다양한 농작물과 열대 과일 등 농업이 발달 하였으며 천혜의 수로가 양곤에서 뻐테인, 만델레이 바고까지 물류를 운반할 수 있어 상공업 역시 200년 전부터 활발하게 발전해왔습니다.
양곤은 미얀마에서 가장 쾌적한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열대성 무더위와 우기 등 특징을 보이고 있지만 주거환경과 경제활동,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유명 파고다 및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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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다곤 / 까바예 / 보타웅 / 로카찬타 / 쉐도 / 슐레 / 짜욱땃지 / 예래
국립 박물관 / 보석 박물관 / 아웅산 보조 마켓 / 아웅산 묘지 /
내셔널 빌리지 / 양곤 부두 / 인야호수 / 칸도지 호수 / 차이나 거리
쉐다곤(Shwe Dagon) 파고다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 불교문화와 신앙의 심장부와 같으며 세계 불교 3대 성지로 불려 지고 있습니다. 미얀마 국민의 정신적, 국민적, 정치적 상징으로서 연일 순례 객이 멈추질 않고 있으며 석양빛에 반사되는 파고다의 황금 빛은 미얀마 시민의 가슴에 신심을 고취하는 신비감을 더해 줍니다. 특히 미얀마 불교 홀리데이인 풀문 데이(보름)저녁 보름달이 쉐다곤 첨탑에 맺일 때 인산인해를 이루며 신비감에 도취된 순례 객들의 탄성이 밤공기를 흔들곤 한답니다. 쉐다곤 파고다는 Shwe + Dagon의 합성으로 쉐(황금) 다곤 (양곤의 옛 이름)으로 황금의 도시란 뜻입니다. 외국에서 양곤을 황금의 도시라 부르는 것도 이에 연유한 것입니다.
쉐다곤 파고다의 기원은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처님 당시에 세워진 지구상에서 유일한 불발(부처님 머리카락)사리가 모셔진 파고다 입니다. 현제의 파고다는 높이가 98미터, 파고다 영역 면적이 대략 만평 규모에 이르며 탑의 전신은 모조리 금판으로 덮여 있으며 금의 양이 무려 60,000Kg(금판 9000여개)나 되고 첨탑에는 수많은 보석으로 치장 되어 있는데 76 캘럿트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다이아, 루비, 금종, 은종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쉐다곤 파고다 남동쪽에는 거대한 인공호수가 양곤 중앙공원 역할을 하는데 이 호수는 쉐다곤 파고다 언덕을 높이기 위해 흙을 파낸 자리에 물이 차면서 갖춰진 깐도지 호수 입니다.
미얀마는 부처님 오시기 전에도 구 불교라 해서 부처님 오시길 열망하는 불교가 존재 하였는데 2500년 전에도 이곳은 부처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성전으로 꾸며 졌으며 미얀마 상인 두 사람이 부처님께 공양하고 뽑아준 8개의 머리카락을 이곳에 모시고 탑을 건립하였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불사 사리탑은 부처님께서 쿠시나카르에서 열반하신 다음 세워졌지만 쉐다곤 파고다는 부처님 재세 중에 진신 불발을 모시고 건립한 세계 유일한 진신 사리 파고다라 할 수 있습니다.
현제의 웅장한 파고다는 14세기 중엽 한타와리 왕조의 신소부 여왕이 자신의 몸무게만큼의 금을 보시하면서 만들어졌고 지진으로 무너진 파고다를 17세기에 다시 재건하였으며 계급 신분에 관계없이 헌금은 계속 이어져 지금의 신비하고 웅장한 파고다가 만들어 졌으며 이러한 불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의 군사정권 엘리트 역시 역대 왕조처럼 쉐다곤을 더 빛나게 하므로서 후세에 치적으로 기록되길 바라며 피의 업보를 내세에 보상 받으려는 행위로 이해됩니다. 쉐다곤 근처 경내에는 여러 개의 축소판 파고다가 많이 있는데 그중에는 미얀마 일인자였던 제너럴 네윈이 건립한 파고다도 있습니다.
- 쉐다곤 파고다 내부 주요 시설
1, 보리수나무 : 입구에서 눈에 띄는 이 나무는 야소카 왕 시절 스리랑카(세일론)에 불법을 전하러간 마헨드라 장로의 여동생인 상가미티가 세일론의 요청으로 부다가야의 보리수 남쪽 가지를 꺽어와서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프라에 이식하였는데 그 후 그 보리수의 종자를 가져다 바로 이곳 쉐다곤 파고다에 심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2, 관욕 동물 옥상 : 파고다 주변으로 돌아 둘러있는 것들로서 미얀마 출생요일에 따른 동물로서 자신의 출생요일에 해당하는 동물상에 가서 나이만큼 물을 뿌리고 몇 번 더 부우며 기원하면 장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수요일 오전-------코끼리(상아 유)
***토요일------------용
***화요일------------쥐
***수요일 오후-------코끼리(상아 무)
***금요일------------두더지
***일요일------------가루다(신비의 새)
***월요일------------호랑이
***목요일------------사자
3, 부처님 진생(28가지)을 묘사 한곳
4, 유리관 정령 : 쉐다곤 파고다 수호신
5, 와불 : 8미터의 와불이 모셔진 야카인에서 조성한 건물
6, 중국인들이 조성한 건물
7, 다양한 표정의 불상들로서 자신의 고뇌를 비교하면 표정이 변함
8, 마이라무상과 정령상 : 과일의 여인 설화---- 옛날 선인이 강변에서 열매 하나를 발견 했는데 돌연히 그 열매에서 여인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선인은 연인의 이름을 마이라무라고 짓고 돌봐주고 있는데 어느 날 하늘의신 시카가 그녀의 사랑에 빠져 지내다가 얼마 후 홀연히 떠나버립니다.
슬픔에 빠진 마이라무를 안타카이 여겨 선인은 까마귀를 보내 시카에게 알리자 세 방울의 물을 선물로 주었답니다. 한 방울 마시자 악어로 변하고 그다음은 호랑이로, 마지막 방울을 마시자 아이로 변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 후일 오킬라마라고 부르는 왕이 되어 쉐다곤 파고다를 짓기 시작 했다는 전설 따라 2000년 입니다.
8, 마하간다라의 종 : 크기에 비해 엄청나게 무거운 23톤의 무게로 영국군이 영국으로 가져가려다 양곤 강에 빠트렸고 미얀마 인들이 건지면 되돌려 준다 하여 수많은 대나무를 밑에 깔고 엮어 그 부력으로 들어올렸다 함.
9, 민돈왕의 마하띠카간디 종 : 무게가 42톤으로 특징은 내부가 유리 칠로 된 화려한 내부 장식이 특징임.
까바예(Kaba Aye)파고다
까바예 파고다는 세계 평화라는 의미의 이름으로 1956년 세계 6차 불교대회를 권위 있게 치르기 위하여 당시 수상이었던 우 누 수상은 인도 내루 수상에게 부처님 진신사리 등 불교 관련 보물을 기증 할 것을 요청하였고 인도 내루 수상은 수락하여 석가모니 부처님과 목련존자, 사리불 존자의 진신사리와 부처님 불발 등 불교관련 보물들을 보내옴으로서 봉안하기 위하여 우누 수상과 기부자들의 헌금으로 1952년부터 짖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변에는 1954년 완공한 마하 파타나 동굴이 있는데 동굴의 내부는 길이 139미터, 폭 113미터로서 굉장히 넓은 편이며 세계 6차 불교대회와 함께 1954-1956년 까지 진행된 제 6차 경전 결집이 이루어진 장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곳은 불교청, 승가대학, 불교 예술 박물관 등 불교 관련 시설이 배치되어 있어 독립 후 미얀마 정부의 신앙적 권위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세계 불교 대회를 전후로 세계 많은 불자들이 헌금을 하였는데 한국의 법화정사에서 불사한 불상이 봉안 되어 있어 한국 참배객들에게 친근감을 더해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보타웅(Bothataung)파고다
보따 타웅이란 천명의 장교란 뜻으로 2000년 전 인도로부터 부처님 머리카락과 보물을 천명의 군인들의 영접을 받으며 모셔 와서 이곳에 탑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탑은 높이가 40미터이며 특징은 탑의 돔이 유리 모자이크로 꾸며진 이색적인 파고다입니다.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붕괴되었으나 다행히 불발과 사리, 보물들은 유실되지 않아 보존이 가능했습니다. 진열된 보물과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부처님 불발도 진열되어 있습니다.
로카찬타 파고다
로카찬타 파고다는 가장 최근 조성된 파고다로서 지금의 군사정부가 2000-20001년에 증축하였습니다. 로카찬타란 로카찬타 아바야 라바무니 부처님을 모신 파고다란 뜻으로 역대 제왕들이 가장 경배하는 부처님으로서 미얀마 제1인자 탄쉐의 꿈속에 부처님이 나타나 이곳에 대리석 부처님을 모시면 나라가 융성하리라는 계시를 내렸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불사를 거행했다고 합니다.
이 로카찬타의 원석은 유톤 작이라는 사람에 의해 미얀마 내륙의 알라바스터 산에서 채석되어 철로와 수로, 육로를 거쳐 이곳 양곤 인샌 민다마 언덕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동하는 계절이 우기였는데도 비가 한번도 오지 않아 이 불상을 더 신성시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불상은 높이 11미터, 넓이 7미터, 두께 4미터로서 무게가 600톤 정도의 거대 불상 중 하나로서 미얀마 최대의 석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내 와불상 뒤에는 작은 스님상이 있는데 지금의 로카찬타 파고다가 들어서기 전 2미터 가량의 작은 탑을 만들고 지키며 살다가 118세에 입적하시고 그 시신을 밍글라돈의 출생지에 미라로 영구 보존하고 있다 합니다.
쉐도(Swedaw)파고다
쉐도 파고다는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가 봉안된 파고다입니다. 부처님의 진신 송곳니 사리는 미얀마 양곤과 만델레이에 각 각 1점씩, 중국에 1점, 스리랑카에 1점이 보관되고 있는데 1994년 4월에는 중국의 치아사리를 미얀마 국민들에게 친견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45일간 전시하였으며 두 번째로 1996년에는 만델레이 차아시리를 나란히 시민들을 위해 친견을 허락하므로서 많은 시민들에 경배하였습니다.
이 파고다는 순수한 국민들의 헌금에 의해 조성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1996년
11월 24일 탑의 상단 우산을 거양하면서 준공을 하여 거대한 의식행사를 거행하였습니다.
이파고다의 내부는 원형 돔 형태로 굉장히 아름다운 구조로 되어있으며 차아사리가 모셔진 중앙 실내 탑을 중심으로 8분의 불상이 있고 각각 손 자세가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부처님의 여러 형태의 수인을 감상 할 수 있는 곳입니다. [
슐레(Sule)파고다
슐레 파고다는 양곤시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화려한 황금빛 파고다 입니다. 영국 식민지 당시 이곳을 중심으로 지금의 양곤 도심을 설계 하였다고 합니다.
약 2000년 전 인도의 아소카 왕 시절 미얀마에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 건너온 소나와 우타라가 모셔온 부처님의 불발을 모시기 위해 세운 파고다 입니다.
슐레라는 이름은 쉐다곤 수호신 정령의 이름에서 유래 했으며 미얀마 불교가 미얀마 문화에 보편적으로 녹아있는 정령신앙 즉 낫 신앙과 거부감 없이 융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탑 인극 거리는 인디아 타운이 형성되어 있고 탑 주변에는 점성술 상점과 인도 음식점이 많이 있습니다.
탑 높이는 46 미터이며 몬족이 지배하고 있던 다곤 시절에는 -성스러운 머리카락이 묻혀 있는 파고다라는 뜻의 짜익 아똑(Kyaik Athok)이란 몬어로 불려지기도 하였습니다.
짜욱땃지(Chauk Htat Gyee)파고다
이 파고다는 1907년 중계인 써보타에 의해 세워졌으며 1957년 재건축을 논의하였고 낡은 불상의 발부터 헐기 시작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머리와 왕관부분에서 유물방이 발견되었는데 많은 금은보석이 나왔다고 합니다.
1966년 지금의 64미터 와불상을 확정하고 1973년 두 사람의 기증자에 의해
드래곤 크리스탈의 눈이 부착되고 중국 유명 미술가가 그림을 마무리 하므로서 그 아름다움과 불자들의 경외심을 한층 고취시킬 수 있었습니다.
특히 와불 부처님은 휴식상, 열반상, 사후상, 중에서 조용히 쉬고 있는 건강한 부처님의 재세시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와불을 돌아 발바닥을 보면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108계(욕계28, 색계21, 무색계59)가 그려져 있어 호기심을 더해주는 파고다이며 아직도 와불상을 유지할 건축에 대한 불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108계란 부처님의 전생으로서 우주 만물이 윤회하는 모든 전생을 겪으시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부처님으로 태어나실 업을 쌓으신 것입니다.
1계란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시간으로서 알기 쉽게 말해서 10만겁의 세월이라 합니다. 그럼 1겁이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말하는 것 일가요?
하늘의 천녀가 동산 같은 바위에 일년에 한번 내려와 옷자락으로 바위를 스치는데 그 바위가 다 마모되어 없어지는 세월이라 하니 여러분의 명상에서 그 겁의 세월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현생의 친구의 인연은 전생의 1겁의 인연이요, 현생의 부부의 연은 현생의 전생의 2겁이며, 부모와 자식의 연은 전생 3겁의 인연이라 하니 이러한 필연의 업을 소중히 해야 함을 부처님께서는 가르침으로 남기셨습니다.
또한 한번의 옷깃 스침도 내세의 연이라 했으니 여러분과 자와의 만남도 부처님으로 법으로 본다면 정말 소중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예래(Keik Hmaw Wun Yey Rel)파고다
이 파고다는 2000년 전 남부 미얀마에 파다 라고 불리는 왕국의 뾰가떼나 왕이 있었는데 스승으로부터 부처님 불발 사리를 얻은 다음 이를 봉안하기 위하여 약 10피트의 조그마한 파고다를 짓고 짜익 묘 카또라고 파고다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후 10대인 때타나가 왕이 8명의 스리랑카 알라한 승려들로부터 추가로 부처님 사리를 기증받고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이행 해 줄 것을 부탁 받습니다. 첫째, 불당에 강물이 묻혀 들어오지 않도록 단을 만들 것. 둘째, 많은 참배객들이 오도록 넓게 할 것, 시주자 들에게 넉넉하게 상금을 내릴 것 등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율사인 우바 뚜와 부인 도 떼에 의하여 작은 파고다는 헐리고 4층 51피트의 파고다를 새로 짓고 이름을 짜익묘 운 예래 파고다로 명명 하였습니다.
국립 박물관
미얀마 국립 박물관은 1952년 건립 되어 1996년 현 장소로 이전하였습니다.
미얀마는 전역의 역사 흔적과 유적으로 볼 때 약 5000년 전의 석기시대부터 문화를 형성하며 역사를 이어 온 것으로 미얀마나 세계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주종족인 버마족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1세기 중엽으로 바간 왕조 시대부터이며 한국사의 통일신라 말엽정도 시대입니다.
이 박물관은 한국 국립 빅물관과 비교하면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떤 나라를 여행할 때 박물관을 보지 않고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총 5층으로 되어 있으며 사료 유물이 부족한 탓인지 미얀마 현대 화가들의 그림이 많이 진열되어있습니다.
특히 일층에 전시된 마지막 왕 티보의 옥좌는 영국군에 의해 인도 칼카타로 옮겨졌다가 독립 후 반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시되어 있는 황금 장식등 각종 보물들도 영국에 약탈되어 빅토리아 박물관에 소장되었는데 1964년 되돌아와 지금처럼 전시되고 있습니다. 관람 초점은 미얀마역사를 이해하고 문화를 감지할 수 있지만 미얀마 문화정책과 수준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는 일체 사진, 비디오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휴대할 수 없으며 꼭 촬영을 원한다든지, 발견 되면 100달러의 취재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보석 박물관
미얀마는 황금의 사원 못지않게 보석의 나라라 할 수 있습니다. 양질의 루비와 사파이어, 에메랄드와 자수정 등 금, 은을 포함한 보석이 매장되어 있고 미얀마의 외화 주 수입원이기도 합니다. 세계 유수의 보석 전문가들도 미얀마 루비는 최상급으로 인정하고 있을 정도 입니다.
그러나 원석에 비하여 보석가공, 금속세공술이 뒤떨어져 셋팅은 한국 시장에 비하여 좀 떨어진 편입니다. 금은 24 캘럿 99.99 % 라 하지만 한국 금과 비교하면 90 % 수준을 밑돌고 있어 싸다고 사서 한국에 가져가면 24캘럿 감정 받기가 어렵습니다.
보석류는 미얀마 정부의 통제 품목으로 원석의 반출은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만약 원석을 구입하더라도 반출 할 수 없으며 영수증이 없으면 압류 될 수 있으며 영수증이 있더라도 입국 시 신고한 외화 소지 한도를 넘으면 부정 거래로 간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제품 소품이나 일반적인 악새사리 등은 휴대 출국 할 수 있습니다. 이곳 박물관에서는 제품을 구입할 수 있으나 시중 가격보다 비싸기 때문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웅산 보조 마켓
양곤을 대표하는 제 1 시장으로서 보석으로부터 의류, 각종 생활용품과 불교 관련제품 등 다양한 품목이 도매상과 소매상이 어우러져 있는 생동감 있는 시장입니다.
한국의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종로 보석 시장이 섞여 있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곳은 미얀마 실물경제의 바로미터로서 경기 활성도를 느낄 수 있고 관광객들이 기념품 및 보석 악새사리 등 구입하기도 하는 명소 입니다.
미얀마 달러 시세가 이곳에서 매일 매일 정해지며 환전상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이 시장은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26년 건설되었으며 돔 형식의 중앙 단층 건물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2층 건물 상가가 감싸고 있는 형태 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식민지 시대의 시장 이름인 스콧 마켓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웅산 묘지
미얀마 독립의 영웅이며 국부로 추앙받는 아웅산 장군이 3개월 후인 1948년 1월 4일 미얀마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7년 10월 17일 30인지사로 독립운동의 동지인 우 소가 보낸 저격병에 의해 암살 당하여 묻힌 곳이 바로 이곳 순교자 묘역 내 아웅산 묘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얀마 역사적 사실보다도 한국 현대사의 큰 사건인 아웅산 묘지 폭파 사건이 먼저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1983년 10월 9일 일요일 10시 28분 (한국 12시 58분) 이곳에 도열해 있던 전 두환 대통령 수행 각료와 수행원 16명이 현장에서 순직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은 강력한 폭발이 한순간에 아비규환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마침 일요일이라 쉐다곤 파고다 참배객이 많았는데 폭발음을 쉐다곤 파고다 폭파로 알고 놀랐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곳에서 순직한 분들의 명단을 기억해 보겠습니다.
서 석준 부총리, 이 범석 외무, 김 동휘 상공, 서 상철 동자,
함 병춘 비서실장, 이 계철 대사, 김 재익 경제수석, 하 동선 기획,
이 기욱 재무(차) 강 인희 농수(차) 김 용한 과기(차), 심 상우 의원
민 병석 주치의 이 재관 비서관, 이 중현 동아기자 한 경희 경호
정 태진 경호원
전 두환 대통령은 계획된 순방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다음날 아침 바로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한국과 미얀마 당국은 즉각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원경 체육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 조사단을 급거 미얀마에 파견하였습니다.
미얀마 당국은 사고 이틀 뒤인 11일 양곤 시 파준다옹 천에서 범인으로 보이는 코리언 1명을 생포하고 1명을 사살했다고 발표 하였습니다.
12일, 미얀마 당국은 추가로 범인 1명 체포를 발표 했고 한국 당국은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북한 소행임을 단정, 미얀마 정부에 즉각적인 북한과의 단교조치를 요구 하였습니다.
14일, 미얀마 당국은 양곤 근처에서 북한 선박 1척을 나포 하였는데 이미 미얀마 현지 언론은 북한 소행임을 단정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으며 ,
17일 미얀마 당국은 중간수사 발표를 통하여 북한의 공작임을 발표하게 됩니다.
중간 수사 발표이후 한국 취재 기자 출입을 막는 등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지연하는 등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미루다가 한 달 후인 11월 4일 북한 특공대의 소행임을 발표하고 북한과의 단교를 선언하며 48시간 내 출국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미얀마 의전 문제와 묘지 참배의 시행착오가 국가 원수의 유고를 막았는데 과연 무슨 일들이 있었을 가요?
( 미얀마 의전 문제 등 비사 생략, 현장에서 설명)
내셔널 빌리지
내셔널 빌리지는 미얀마 14개의 성(Division)과 주(State)를 구성하고 있는 버마(Burma)족을 포함한 8개 종족의 주택구조와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민속촌 같은 곳으로서 이름부터 다분히 사회주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얀마는 소수 종족까지 포함하여 100여 종족이 살고 있지만 국민을 8개 종족으로 대별하고 인구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각 각의 성과 주의 특성은 다음과 같으며 종족별로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전망대> 이 빌리지는 양곤 동남쪽 15Km 정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의 전망대 앞쪽으로 흐르는 강이 바고 강이며 양곤시를 서쪽에서 안고 흐르는 양곤강과 양곤시 남쪽에서 만나 앞바다인 안단만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바와 같이 산이 보이지 않는 평원에 위치한 양곤은 좌우로 두개의 강이 감싸 안은 기름진 삼각 뎉타로 형성된 옥토이며 동남아에서 가장 쾌적하고 환경이 좋은 지형과 기후 조건을 가춘 도시입니다.
전방에 보이는 바고강을 건너 양곤과 탄린을 연결하는 탄린 대교이며 길이는 2983m 로서 미얀마에서 가장 긴 다리입니다. 이 대교는 식민지 때부터 해양교역의 교두보인 탄린 물류 항과 신리암을 연결하는 중요 축선의 교량으로 놔우 2차선 차도와 양곤, 바고를 연결하는 철로가 중앙 선로에 단선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교량은 미얀마를 통하여 인도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전략적, 경제적 국익의 일환으로 중국의 자본과 기술이 참여하여 필요시 중국의 인도양 진출에 한몫을 하게 될 것입니다.
버마(Burma)족은 미얀마의 전체 인구의 68%을 점하고 있으며 이 종족이 역사에 등장 한 것은 10세기 바간 왕조가 태동하면서 몬족 등 디른 소수 종족의 부족국가들을 통일하고 미얀마 중,남부의 평야지대에 기득권을 뿌리내리면서 미얀마의 주 종족으로 등장합니다.
버마족은 미얀마의 14개 행정주 중에서 7개의 성에 정착하고 있으며 7갱의 성은 양곤, 만델레이, 샤가잉, 이야와리, 마그웨이, 바고, 탄린다리 등 입니다.
버마족의 주택구조는 다른 열대지방의 구조처럼 2층 구조로서 홍수와 열대 야생 동물의 피해를 줄이고 아래층은 창고 또는 가축을 키우는 등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건축 자제는 대나무 , 야자나무, 바나나 잎과 티크 목 등을 활용하여 통풍이 잘 되고 잘 건조될 수 있는 구조로 지어져 있습니다.
빈부의 차이에 따라 침실 수라든지 크기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실내에 불상을 모신 불방이 있으며 취사장과 식당은 별채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샨(Shan)족은 전체인구의 9% 정도이며 샨이란 ‘자유로운 사람들’ 이란 뜻이며 미얀마 동부 산악지대인 태국, 라오스, 중국, 국경과 접해 있는 샨 주에 농사와 목축, 산림과 광업 등을 주업으로 하는 종족입니다. 이곳은 트라이앵글로 유명한 산악 고원지대가 포함 되어있어 아편 재배와 반군 활동 무대로 미얀마 정부군과 수시로 충돌하는 지역입니다.
최근에는 반군들이 무장을 해제하고 정부군에 귀순하는 등 분쟁이 해소 되는 듯 하지만 양곤 등에서 발생하는 테러의 배후로 지목을 받고 있습니다.
꺼인(Karen)(카랜)족은 전체인구의 7%이며 미얀마 동남부 꺼인 주를 중심으로 거주를 하고 있으나 지금은 미얀마 전역, 특히 양곤, 뻐테인 등 남부에 산재된 분포를 보이고 있습니다. 꺼인 족은 샨 족과 더불어 버마족의 지배권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반군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샨족은 샨 주의 자치권을 주장하는 반면 꺼인족은 꺼인 민족국가 독립을 위한 무장단체를 결성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태국과의 국경 무역을 장악하고 그 수입으로 반군 예산을 충당하며 정부군과 적절한 협상을 통하여 국경의 통제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종족의 종교는 80%이상이 개신교와 카톨릭을 포함한 크리스찬으로서 식민지 때 서양 선교사들의 집중적인 선교 영향도 있었지만 성서의 대홍수 때 성경 원본을 꺼인 족의 조상이 가지고 이곳으로 왔으며 구약 시대 신천지를 찾아 이주한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카인(Rakhine)족은 미얀마 인구의 4%정도이며 미얀마 서쪽 뱅갈 만 해안선에 위치한 야카인 주에 분포 되어 살고 있으며 야카인 주는 역사적으로 볼 때 미얀마 소수 종족 중에서 가장 늦은 200년 전에 버마에 점령당한 왕국이었습니다. 야카인 족은 인도와 해양으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불교의 전래가 빨랐으며 파고다와 불상 등, 인도 간다라 미술 영향을 많이 받은 불교 보물을 약탈하기 위한 버마족의 끊임없는 침입을 받았으나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악 준령의 지리적 이점 때문에 미얀마에 마지막으로 복속 되었습니다.
몬(Mon)족은 전체 인구의 2% 정도이며 버마족에 상당수 동화되었거나 인근 다른 나라들로 이주되어 소수 종족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몬족은 미얀마 고대 역사의 주역으로서 2000년 전부터 미얀마 남부에 정착하여 인도로부터 미얀마에 최초로 불교를 전래한 종족입니다. 1,000년 전 바간 제국이 미얀마를 통일하면서 몬족들이 가지고 있던 불법을 미얀마 불교의 경전으로 도입하여 지금의 미얀마 불교의 기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바간 제국이 무너지자 미얀마 남부에 바고 왕조(한타와리 왕조)를 재건하고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신소부 여왕 시절 에는 쉐다곤 파고다를 최초로 금탑을 만들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얀마 꼰바웅 왕조의 알라웅 패야, 보도패야 왕에 이르러 바고를 중심으로 하는 몬족의 왕조는 몰락하고 긴 역사 동안 꽃 피웠던 몬족의 문화 및 불교 유산들이 무참히 파괴 소실되어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몬족의 지배아래에 있던 다곤을 점령한 알라웅 패야는 지금의 수도 이름인 양곤으로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친(Chin)족은 총 인구 중에서 100만 정도의 분포를 점하고 있으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인도와 뱅글라데시 등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인도, 뱅글라데시와 접한 서북부 산악지대에 살아온 이들은 영국 식민 통치시기에 식민지 군대에서 용맹을 떨치기도 하였는데 버마족들로부터 영국군 길잡이를 한 종족이라 하여 한때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였습니다.
꺼친(Kachin)족은 중국과 국경을 연한 미얀마 최북단에 위치한 꺼친 주에 분포되어 있으며 미얀마 고산족들은 대게 꺼친 족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은 애니미즘(Animism)에 가까운 종교관습을 가지고 있으며 막내가 상속을 하는 특이한 가족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