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2- 붓다의 과학 이야기
김성철 지음
2561. 9. 22
제1부 불교로 푸는 진화와 뇌
7 신 과일을 보면 침이 고이는 이유는?
(쉰 음식과 위산을 희석하고 중화하는 반사작용)
‘망매지갈(望梅止渴)’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풀면 “매실을 봐서 갈증을 그친다”는 뜻인데 ‘상상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은유한다. <삼국지>에서 조조(曹操)가 남쪽으로 정벌에 나섰을 때 날이 더워서 병사들이 갈증에 시달리자 “저 너머에 매실 나무가 있다”고 말하여 입에 침이 고이게 함으로써 갈증을 해소시켜주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다. ‘매림지갈(梅林止渴)’이라고 쓰기도 한다.
요즈음은 수입 농산물이 넘쳐 나기에 매실보다는 레몬이나 자몽 같은 외래 과일을 보면 입에 침이 고일 것이다.
신 과일을 보거나 먹을 때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너무 실 때는 진저리를 치며 얼굴이 일그러진다. 양 볼이 아릴 정도로 이하선(耳下腺)이 부풀면서 많은 양의 침이 분출되기도 한다. 침샘 가운데 큰 것으로
이하선 이외에 턱밑 양쪽의 악하선과 혀 아래 설하선이 있다. 레몬과 같은 신 과일을 씹었을 때 우리는 '독특한 표정'을 짓게 되는데, 기능적으로 보면 이는 안면근육으로 이런 침샘들을 쥐어짜는 모습에 다름아니다.
침은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도록 매끄럽게 만들고, 침 속에 있는 소화효소는 음식을 분해하여 쉽게 흡수되도록 한다. 윤활 작용과 소화 작용은 침의 일반적인 기능이다. 단 것이든 짭짤한 것이든 음식을 먹을 때에는 침이 많이 분출된다. 그런데 유독 신 음식이나 과일을 먹을 때에 침이 더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맛에 분출하는 침은 침의 일반적인 기능을 넘어서 입안의 유해 물질을 중화시키고 희석시키는 기능을 한다. 혀에 ‘신 맛’이 돌 때 침이 분출하여 입안을 씻어낸다. 몸에 해로운 독초나 덜 익은 과일 중에도 신맛이 나는 것이 있지만,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접하는 ‘해로운 신 맛’은 ‘상한 음식, 쉰 음식의 신 맛’이었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기에 상한 음식을 먹을 기회가 거의 없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여름날이면 밥이 쉬는 일이 흔했다. 쉰 정도가 약하면 물로 헹구어 어른들이 먹었고, 심하면 옷에 풀을 먹이는 데 썼다.
음식이 쉬면 신 맛이 난다. 우리 몸에 좋게 쉬면 “발효했다.”고 부르고, 해롭게 쉬면 “썩었다.”고 말하지만, 발효한 것이든 썩은 것이든 미생물의 활동으로 변질된 음식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김치, 요구르트, 청국장, 치즈, 식초 등이 대표적인 발효음식들로 몸에 이롭다. 그러나 상한 음식의 신맛은 얼른 뱉어내야 한다. 남아 있는 찌꺼기도 모두 씻어내야 한다. 이하선, 설하선, 악하선 등에서 침이 쏟아져 나온다. 침으로 희석된 유해물질을 퉤퉤거리며 뱉는다. ‘상한 음식의 신맛!’ 신맛에서 침이 많이 분출하는 가장 큰 이유다.
상한 음식 다음으로 우리 입에서 자주 느껴지는 ‘해로운 신맛’은 위액의 신맛이다. 음식물이 식도를 타고 위 속으로 들어가면 강산성의 위액이 분비되어 음식물을 분해한다. 혈액 속으로 흡수되기 쉽도록 만드는 것이다. '소의 위장(천엽)'을 먹으면 위산에 녹아 분해되지만, 우리의 위장은 스스로 분비하는 위산의 해를 입지 않는다. 계속 분출하는 점액이 위벽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서 위액이 과도하게 분비되거나 폭음(暴飮)으로 점액이 씻겨나가면 위산이 위벽을 직접 자극하여 염증이나 궤양이 생긴다. 속이 쓰리다. 맵거나 짠 음식이 헌 위벽에 닿을 때 더욱 그렇다. 위액의 원래 역할은 단백질을 소화시키는 것이지만, 용심(用心)이나 섭생(攝生)을 잘못하여 위액이 너무 많이 나오면 위의 내벽까지 소화하여 헐게 만드는 것이다.
또, 위액이 역류하여 식도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역류성 식도염’이다. 드물긴 하지만 그대로 놔둘 경우 ‘식도암’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위산이 역류하여 신맛이 느껴질 때 입에 고인 침을 삼키면 위산이 묽어진다. 침은 알칼리성이기에 다소나마 위산을 중화시키는 작용도 한다. 병변이 예방된다. 위산이 역류하여 식도를 타고서 목구멍까지 올라와서 신맛이 느껴질 때 보다 많은 양의 침을 삼킨 사람들이 오래 생존할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2세도 남보다 조금 더 많이 둘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 몸은 이런 식의 ‘적자생존’을 통해서 장기간에 걸쳐 개량된 유전자에서 발현된 것이다. “털끝만큼의 차이가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하늘과 땅처럼 벌어진다."는 격언이 있다. 진화생물학의 원리와 부합하는 ≪신심명(信心銘)≫의 가르침이다. 상한 음식의 신맛과 시큼한 위산의 역류. 털끝 같이 사소한 일이지만 신 맛에 침을 많이 흘리게끔 우리 몸의 미각 체계를 진화시킨 원인이다.
모든 것은 연기(緣起)한다. 조건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이나 감성, 습관 모두가 그렇다. ‘신 것에 대해서 특히 침을 많이 흘리는 반응’이 인간의 몸에 원래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다. ‘불변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욕망과 몸, 그리고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다시 말해 ‘진화의 솎아내기’를 통해서 점차적으로 우리의 DNA에 각인된 ‘무조건반사’의 한 예다. ‘거시적(巨視的)으로 진행된 연기(緣起)’의 결과물이다.
종진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