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버린 명물(名物) - '쇳대'와 '자물통'
(작성 중)
‘쇳대’ ! 들어본 지도 참 오래된 이름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엔 ‘반닫이’나 ‘뒤주’ 등의 잠금 장치가 ‘쇳대’였기 때문에, 집집마다 ‘쇳대’ 없는 집이 없었다. 그리고 이때 집집마다 ‘쇳대’와 ‘자물쇠’가 있었던 것은 그만큼 양식(糧食)이 귀했고, 웬만해서는 구경하기조차 힘들던 현금(現金)이 생겼을 경우, 그리고 큰 힘들여 마련해 놓은 딸자식의 혼수품(婚需品)이나 ‘유름’으로 준비해둔 제수품(祭需品) 등을 온전하게 보관해 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하는 ‘유름’은 순수한 경상도사투리로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인데, 다행히도 재경외동향우회(在京外東鄕友會) 우희곤 회장님께서 참으로 오랜만에 이 카페에서 쓰신 말이라 그 의미를 잠시 새겨본다. ‘유름’이란 한마디로 ‘준비’ 또는 ‘예비(豫備)’, 나아가 저축(貯蓄) 또는 저장(貯藏)이라는 말이다.
명절이나 제일(祭日)을 위해 제수용품(祭需用品)을 미리 준비하여 보관하는 것, 딸을 출가(出嫁)시키기 위해 미리 혼수품(婚需品)을 준비하는 것, 보릿고개를 대비하여 미리 대용식(代用食)을 마련하여 비축(備蓄)하는 것 등이 모두 ‘유름’에 해당할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들어본다.
"금이네야, 살(쌀) 쫌 ‘유름’해 논 거(놓은 것) 없나?"
"사람은 그저 ‘유름’을 할 줄 알아야 됀돼이. 만날(맨날) 잘 묵고 뚝딱뚝딱 묵어 치우머(치우면) 그거너(그것은) 도독놈(도둑놈) 기집들이나 하는 짓인기라."
쇳대들

본래의 얘기로 돌아간다. 지금은 그토록 요긴하게 쓰이던 '쇳대'와 '자물쇠'도 그 시절을 누비던 '반닫이'와 나무'뒤주'가 점점 없어지면서 함께 없어지고 말았다. 먼저 그 시절 우리들의 집집마다 필수품이듯 갖추어져 있던 '쇳대' 얘기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쇳대'는 '열쇠'를 말하는데, 당시의 ‘자물쇠’는 앞쪽에 홈이 있어서, 그 홈에 '쇳대', 즉 열쇠를 끼어 맞춘 다음 쇠기둥을 옆으로 밀어내어 열도록 되어 있었다. 필자의 생가집에 있던 ‘쇳대’도 그런 모양이었다.
필자가 향리에 거주할 당시 필자의 할머니는 자신의 방에 있는 ‘반닫이’의 ‘쇳대 열쇠’를 언제나 치마끈에 차고 다니셨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가 아니고서는 그 반닫이 문을 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필자들은 할머니께서 치맛자락을 들추고 쇳대를 꺼내어 ‘반닫이’를 여는 날이면, 형제들이 그 반닫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속에 뭐가 있나 들여다보곤 했었다.
쇳대 꾸러미

여기에서 말하는 ‘반닫이’는 앞이나 위쪽의 반만 열리게 된 문짝이 달린 궤짝으로 구조는 두꺼운 통판의 천판과 옆널을 잇고 있으며, 천판과 뒷널, 천판과 옆널의 짜임은 맞짜임형식이고 옆널과 앞널, 옆널과 뒷널의 짜임새는 사개물림으로 우리나라의 독특한 결구법을 쓰고 있다. 앞으로 문이 있는 것은 '앞닫이'라고도 하고, 위로 문이 있는 것은 '윗돋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반닫이'란 문짝이 전체 넓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반쪽만으로 만들어졌다해서 붙인 이름이다.
앞면의 위쪽을 벼락닫이로 한 기본형 외에 '반닫이'와 장의 기능을 갖게 한 '반닫이장'과 문판을 천판에 단 것, 문짝이 매우 작은 '개구녕반닫이' 등도 있다. 또 크고 작은 층차와 안에 선반이나 서랍을 첨가해서 꾸민 것 등 그 모양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특징에 따라서 강화반닫이, 박천(博川)반닫이, 제주반닫이 등이 있으며, 치수나 구성의 비례, 나무의 쓰임새, 장식, 새김질 등 모든 요소에서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모양은 투박하거나 늘씬하고, 또 구성이 복잡하거나 단순하게 꾸며졌고, 칠과 새김질에서도 여러 가지로 변하며, 쇠장식도 무쇠, 놋, 백동 등 재료와 형상의 차이가 복잡하다. 주로 의류, 두루마리문서, 서책, 유기류(鍮器類), 제기류(祭器類) 등을 보관, 저장하는 기구로 사용하였다.
반닫이(앞닫이와 윗닫이)

(1은 '앞닫이'(문을 앞에서 여는 것), 2는 '웃닫이'(문을 위에서 여는 것)라 한다)
앞서 말한 필자 할머니의 ‘반닫이’는 할머니께서 시집오실 때 가지고 오셨다는 비단 몇 필과 어머니가 나셨다는 ‘광목(廣木)’ 몇 필, 그리고 당신께서 돌아가시면 쓰라고 미리 준비해두신 ‘삼베’ 몇 필이 전부였다. 장날이면 곡식(穀食)을 이고 가서 장에 내다 팔아 번 돈을 광목 틈새에 넣어두시기도 했었다. 급한 일이 생기면 사용할, 이를테면 비상금(非常金)이었다.
평생 동안 논밭에서 흙투성이가 되어 농사일만 하시던 분이라 비단옷을 입을 일도 없었고, 어딘가로 나들이할 일도 없어 시집오실 때 갖고 오신 비단은 돌아가실 때까지 ‘반닫이’ 속에 그냥 넣어두시기만 했었고, 돌아가신 후 전가족이 서울로 이주하면서 누군가에게 줘버렸다.
그런데 할머니의 '반닫이'를 두고, 한 번은 집안에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초등학교(初等學校) 6학년 때의 어느 날, 학교에서 미납한 사친회비(師親會費)를 갖고 오라고 집으로 돌려보내자 한달음에 뛰어왔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들판에 나가시고, 집에는 할머니께서 동생들을 보고 계셨다.
왜 왔느냐고 추궁하시는 할머니에게 사친회비(師親會費) 때문에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는 얼른 반닫이 ‘쇳대’를 끌러 꿍쳐놓았던 비상금(非常金)을 찾으시는데, 그런데 그것이 감쪽같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동네가운데 살면서도, 그것도 항상 사립문을 열어놓고 살면서 지금껏 집에 도둑이 들었던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런 일이 생겼으니 귀신(鬼神)이 곡할 노릇이었다.
할머니 치마끈에 달고 다니는 ‘쇳대’ 열쇠를 누가 할머니 몰래 가져갈 수는 없는 일이고, 필자 할머니의 기억력(記憶力)은 동네서도 소문(所聞)이 났을 정도라 넣어두지 않은 돈을 넣어두었다고 생각하실 리도 만무하고,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동네 끝에 사시던 당숙(堂叔)께서 할머니 방에 들락날락하다가 ‘반닫이’ 속에 돈이 있다는 걸 알고서 집에 아무도 없는 새 쇠꼬챙이를 가지고 와 돈을 솔솔 빼가곤 했던 모양이었다.
쇳대와 자물통

옛적에는 목각(木角)이나 녹각(鹿角)으로 만들어진 패에 열쇠를 묶어 놓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거나, 열쇠에 대한 정보를 적어 놓아 많은 수의 열쇠를 효율적(效率的)으로 관리하는 ‘열쇠패(Key Charm)’라는 것도 있었다. ‘열쇠패’는 조선시대(朝鮮時代)의 공예 중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생활에 두루 사용된 공예품(工藝品)이다.
금속재질(金屬材質)에 용이나 봉황 등의 모양으로 패를 만들거나 목재에 원형 또는 팔각으로 만들어진 패에 길상문(吉祥文)을 새겨 집안에 걸어놓아 나라의 안녕과 가족의 영달(榮達)을 기원하는 장식품(裝飾品)으로 사용했었다.
열쇠패

‘쇳대’를 사전(辭典)에서 강원도 지방에서 쓰는 열쇠의 다른 말이라고 하나, 우리들의 고향 외동읍(外東邑)에서도 같은 말로 사용되고 있다. ‘쇳대’, 즉 열쇠(key)는 ‘자물쇠’를 열고 닫는 데 쓰이는 금속기구로 동서양(東西洋) 모두 예로부터 ‘자물쇠’와 함께 문단속이나 귀중품(貴重品)을 간직한 기물을 잠그는 데 사용하였으며, 단독으로는 재산이나 힘의 상징, 또는 장식품(裝飾品)으로 이용되어 왔다. 부잣집일수록 ‘쇳대’가 그만큼 많고 컸기 때문이다.
거북이 자물쇠와 쇳대

다음은 ‘자물쇠’에 대한 얘기다. 자물쇠의 사전적(辭典的) 정의를 살펴보면 자물쇠는 여닫게 된 물건을 잠그는 장치를 말하며, '자물쇠'는 '잠그다'라는 뜻의 '자므다'의 파생동사(派生動詞)인 '자물'과 '기물'을 뜻하는 명사인 '쇠'라는 말이 합쳐져 ‘자물쇠’ '자물통' '쇠통' 또는 소통'이라 하고 있다.
예로부터 자물쇠는 다양한 그 모습만큼이나 많은 의미와 정서(情緖)를 가지고 널리 사용되고 있는 중요한 실용공예품(實用工藝品)이다. 자물쇠는 소형함에서 부터 장, 농, 책장, 뒤주, 곳간, 대문에 이르기까지 도난방지 및 비밀유지(秘密維持)를 위해 사용되었다.
대문 자물통

이렇듯 실생활(實生活) 속에 깊이 자리한 ‘자물쇠’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이나 부귀다남 등 상서로운 글귀를 새겨 넣음으로서 사용하는 이의 번영과 장수(長壽)를 기원하거나 그 형태를 물고기와 거북과 같이 만들어 수호의 주술적(呪術的) 의미를 나타내기도 했었다.
‘자물쇠’의 일종인 빗장(Latch)은 조선시대 집안으로 들어서는 나무 대문의 잠금장치가 되었다. 대문(大門)을 가로 질러 잠글 수 있는 나무로서 이 빗장을 밀어 넣기 위해 덧대어 놓은 나무를 '둔테'(빗장걸이)라 한다. ‘둔테’는 사각의 각목으로 만든 일반적(一般的)인 형태가 있으나, 장식을 위하여 둔테 몸통에 여러 가지 문양(紋樣)을 새겨 넣기도 하였으며, 구복기원을 위한 거북이나 물고기, 베틀의 북 모양으로도 만들어졌다.
물고기 모양 대문 빗장

여기에서 잠시 박목월(朴木月)의 ‘자물쇠와 자물쇠 열쇠와’를 감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