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이 미행 중 수원성 고개 아래 쪽 냇가를 지나고 있었다.
그 날도 변복을하고는 시종 몇만 수행시키고 시찰을 나갔다가 개울가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허름한 시골 총각이 관 하나를 옆에 놔두고 슬피 울면서 땅을 파고 있었다.
상을 당해 묘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파는 족족 물이 스며 나오는 냇가에
묘자리를 파고 있던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음을 직감한 상감이 시종을 시켜서 젊은이를 불렀다.
"여보게 총각 여기 관은 누구의 것이요."
"제 어머님의 시신입니다."
"그런데 개울은 왜 파는고?"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합니다."
“여보게, 이렇게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어찌 묘를 쓰려고 하는가.”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자칭 지관(地官)이라는 노인이 찾아와 절더러 불쌍타 하면서
이리로 데려와 이 자리에 묘를 꼭 쓰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유명하다는 지관이라고 한 노인은 저 언덕 오막살이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상감이 버럭 화를 낸다.
"그런 못 된 늙은이가 있나, 저런 물구덩이에 어떻게 사람을 묻는단 말이냐?"
자세히 알아본 즉 젊은이는 땅한평 없는 알거지 였다.
숙종이 가만히 듣자하니 갈처사라는 지관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 일은 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 이 서찰을 수원부로 가져가게.
수문장들이 성문을 가로 막거든 이 서찰을 보여주게.”
숙종은 궁리 끝에 지니고 다니던 지필묵을 꺼내어 몇 자 적어준 것이다.
"어명!
수원부사는 이 사람에게 당장 쌀 삼백 가마를 하사하고,
좋은 터를 정해서 묘를 쓸 수 있도록 급히 조치하라. “
관청은 왕의 서찰을 받고 발칵 뒤집혔다.
어명대로 쌀 3백석을 주고 명당도 마련해 주었다.
"아 상감마마, 그 분이 상감마마였다니!”
그 젊은이는 하늘이 노래졌다.

숙종은 총각이 수원부로 떠난 뒤 괘씸한 갈 처사라는 자를 단단히 혼을 내 주려고
총각이 가르쳐 준 대로 가파른 산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단단히 벼르고 올라간 산마루에 있는찌그러져가는 갈 처사의 단칸 초막은
그야말로 볼품이 없었다.
"이리 오너라"
"..............."
"이리 오너라"
".............."
한참 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게 뉘시오?"
방문을 열며 시큰둥하게 손님을 맞는 주인은 영락없는 꼬질꼬질한 촌 노인네 행색이다.
콧구멍만한 초라한 방이라 들어갈 자리도 없다.숙종은 그대로 문밖에서 묻는다.
"나는 한양 사는 선비인데 그대가 갈 처사 맞소?"
"그렇소만 무슨 연유로 예까지 나를 찾소?"
"오늘 아침 저 아래 상을 당한 총각더러 냇가에 묘를 쓰라했소?"
"그렇소"
"듣자니 당신이 자리를 좀 본다는데 물이 펑펑 솟아나는 냇가에 묘를 쓰라니
당키나 한 일이요? 골탕을 먹이는 것도 유분수지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요? "
숙종의 참았던 감정이 어느새 격해져 목소리가 커졌다.
갈씨 또한 촌 노이지만 낯선 손님이 찾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비란 양반이 개 코도 모르면서 참견이야.
당신이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명당 터인 줄 알기나 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통에 숙종은 기가 막혔다.
(속으로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어디 잠시 두고 보자 하고 감정을 억 누르며)
"저기가 어떻게 명당이란 말이요?"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이 양반아 저기는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3백가마를 받고 명당으로 들어가는 땅이야.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발복을 받는 자리인데,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때?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으시오"
숙종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갈 처사 말대로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총각은 쌀 3백가마를 받았으며
명당으로 옮겨 장사를 지낼 상황이 아닌가!
숙종은 갈 처사의 대갈일성에 얼마나 놀랬던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공손해 졌다.
"영감님이 그렇게 잘 알면 저 아래 고래 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살지 않고
왜 이런 산마루 오두막에서 산단 말이오?"
" 이 양반이 아무 것도 모르면 가만이나 있을 것이지 귀찮게 떠들기만 하네"
"아니, 무슨 말씀인지"
숙종은 이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저 아래 것들은 남을 속이고 도둑질이나 해 가지고 고래 등 같은 기와집 가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도 여기는 바로 임금이 찾아올 자리여!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나랏님이 찾아올 명당이란 말일세"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이런 신통한 사람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
꿈속을 해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왕이 언제 찾아옵니까?"
"거, 꽤나 귀찮게 물어 오시네. 잠시 기다려 보오.
내가 재작년에 이 집을 지을 때에 날 받아놓은 것이 있는데,
가만.... 어디에 있더라" 하고
그 노인은 방 귀퉁이에 있는 보자기를 풀어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먼지를 털면서
들여다보더니 그만 대경실색을 한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 나가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시간이었다.임금을 알아 본 것이다.
"여보게.... 갈 처사, 괜찮소이다.대신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 묻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소?"
"대왕님의 덕이 높으신데 제가 신하로서 자리 잡아 드리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어느 분의 하명이신데 거역하겠사옵니까?"
그 노인이 잡아준 숙종의 왕릉이 지금 서울의 서북쪽의 서오릉에 자리한 명릉이다.
숙종은 그 노인에게 삼천냥을 하사했으나
노자로 삼십냥만 받아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이야기다.
이 노인이 풍수계의 전설인 갈처사(葛處士)이다.
첫댓글

이런 깊은 사연이.....숙
과 갈처사
잼난얘기 좋네요

쌩유

자주자주 올려주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