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김기리 사제
탈속(脫俗)과 재속(在俗) 사이에 그가 있다
“혹시 ‘토마스와 친구들’이라는 동화를 아세요?
그 동화를 지은 분이 바로 윌버트 오드리라는 이름의 성공회 사제님이세요.
당신의 아픈 아들을 위해서 동화를 썼는데 아이들에게 타인을 인정하고 배려하기, 협동하기 등을 기차 이야기로 풀어서 들려주신 거랍니다.”
뜬금없이 동화책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김기리 사제.
지하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바랜 석양을 담뿍 받아서 은은하고 영롱한 빛을 성당 안에 뿜어내는 가운데 사진기자의 주문에 따라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던 김기리 사제는 어쩌다 아이들 동화가 생각난 것일까?
당연한 일이다.
블랙앤화이트의 로만칼라로 목을 엄숙하게 감싼 30대 중반의 ‘그녀’는 지금 세 살 박이 딸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5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에서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은 여성이라고 하여 한때 일간지의 인터뷰 요청세례를 받은 주인공이다.
당시의 신문기사를 읽어보면 여성사제로서의 포부와 책임감을 담담하게 피력하면서도 은근히 이내 결혼할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인터뷰는 끝을 맺고 있었다.
그로부터 4년이 훌쩍 지난 지금, 김기리 사제는 한 남성의 아내이면서 한 아이의 엄마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타이틀을 붙이고 우리 앞에 섰다.
“사제서품을 받던 당시 어떠셨어요?
기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졌지요?”
“여성이라는 사실이 왜 그리 부각되어야 했는지 사실 좀 얼떨떨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자 할 일과 여자 할 일이 다르다고 배우지도 않았거든요.
그때는 한 사람의 사제로 보아주기 보다는 굳이 ‘여성 사제’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성직이라는 자리는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지요.
그 자체만으로도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게다가 서울교구에서는 첫 서품을 받은 여자사제라는 사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잘해야 한다,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라는 이중부담까지 안고 지내왔었습니다.”
성공회 사제들은 일선교회에서 활동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중앙기구에서 활동하는데 김기리 사제는 후자 쪽이다.
지금은 세간의 뾰족한 관심 속에서 어느 정도 풀려나 자신의 소명인 사제직에 충실하면서 중앙기구에서 성공회의 이모저모를 몸으로 부딪쳐보니까 왜 그토록 ‘여성성직자’가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했는지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제도적인 측면도 무시할 순 없지만 무엇보다도 여성들 본인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여자니까.. 라는 변명으로 지낼 순 없는 것이죠.”
성공회에서 여성들이 사제서품을 받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이미 영국과 미국 등지의 성공회에서는 수천 명의 여성 사제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열여섯 명의 여성사제가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성공회의 사제들은 결혼을 할 수 있다.
김기리 사제의 부군 역시 성공회 사제이다.
사제라고 하면 독신의 신부님이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다음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성직자에는 수도 성직자와 재속(在俗) 성직자가 있는데, 수도자 중에는 서약을 하고 수도 생활을 하는 수사, 수녀가 있고, 성직을 받은 수사사제가 있다.
재속 성직자는 세속 사회에 나와서 중생과 함께 중생을 위해서 일하는 주교, 사제, 부제들이고, 수도자들은 수사, 수녀, 수사사제로 종신서약을 한 사람들로서 독신이며 수도 단체에 머무는 한 결혼할 수가 없다.”
(<거룩한 공회> 김진만 지음/맑은 울림/ 88쪽)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느 여성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여성에게 ‘사제님’이라고 부르려니 어색하고 낯선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보통 사람들은 온갖 세속적인 삶을 훌쩍 넘어선, 저 높은 차원의 삶을 살아가는 금욕적인 사람들을 성직자라 부르고 그 때문에 그들을 존경합니다.
그런데 남들 하듯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살이를 하는 지금 사제님의 모습은 이웃 아줌마랑 다를 게 전혀 없잖아요.”
“출산을 경험하고 나니 ‘생명’에 대해서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저 막연하게 생명은 존귀하다, 소중하다고 느끼며 살았었지만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생명이란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한 사제들의 장점이랄까 특징이라고 한다면 사람들 앞에서 가장 솔직하게 체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우리는 항상 저 멀리 높이 있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것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지상의 목숨은 미천하고 열악하며, 유한하고 가치가 없다. 이에 반해 궁극의 것은 고결하고 순결하고 무한한 가치를 지녔다.
그러니 세속의 우리는 이 몰가치한 것을 헌신짝 버리듯 어서 버리고 저 맑고 투명하고 영원한 경지를 향해 매진해야 한다!’
하지만 세속의 삶이 정말 무가치하기만 할까.
잔돈 몇 푼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을 속되고 허무하고 욕망에 찌든 열등한 경지라 비난할 자격은 또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어쩌면 모든 생명들이 추구해 마지않는 숭고하고 순결한 이상세계는 저 높은 곳, 저 먼 곳에 있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사람들 속에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볼품없고 조촐하기 짝이 없는 내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김기리 사제는 말한다.
“사람들 속에서 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편견과 선입견으로 이웃을 판단하고 배척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홀히 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편견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습니다.
편견이라는 것은 내가 내리는 일종의 판결입니다.
상대와의 충분한 교류 없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은 채 내가 저지르고 마는, 상대에 대한 최종결정입니다.
나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무시하고서 종교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사이 터지고 있는 모든 사회문제에도 그 저변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결여된 것이 가장 심각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내 가정을 지키고 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우리는 어느 정도 세상의 일에 눈을 감고 내 이익을 챙겨야 하지 않습니까?
성직자로서 그런 경우 어떻게 대처하시는지요.”
“사실 아이를 가진 아줌마로서 느끼는 갈등과 고민들은 여느 워킹맘과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성직자는 좀 더 특이한 경우이지요.
교회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야 하고, 내 아이보다 다른 아이들을 더 챙겨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예상 못하고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지는 않았습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하는 성직자로서 내가 타인에게 헌신하는 만큼 내 아이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믿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그걸 느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김기리 사제에게는 친정어머니가 역할모델이시다.
어쩌다 아주 잠깐 일을 쉬고 집에서 지내실 때 그게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직장생활을 오래하셨던 어머니이지만 단 한 순간도 오누이에게 소홀하신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도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여자가 가진 능력과 달란트(타고난 재능), 엄마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한없는 사랑을 내 아이가 나를 통해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머니가 내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따뜻하게 지켜봐 주셨듯이 나도 내 딸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면 내 딸도 자기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스스로 파악하고 올바로 행동하게 될 거라 믿어요.”
탈속(脫俗)의 삶을 선택한 수도 성직자와 지극히 세속적으로 살아가면서 종교에서 위안을 얻는 평신도들 사이에 김기리 사제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평소 궁금해 하던 것을 그가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신도들은 수행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사제님은 그 둘의 입장을 동시에 보고 계실 것 같은데요.”
“많은 신도들이 성직자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존경이라는 것은 같이 길을 가면서 그 사람이 좀 더 잘 갈 수 있도록 그 앞에 놓인 자갈을 치우고 가시덤불을 걷어주는 마음 같은 게 아닐까요?”
김기리 사제에게 성직자로서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
깨달음, 성불과 같은 내용의 대답을 기대하면서... 그는 대답한다.
“모릅니다.
제가 무엇을 의도하고 고집하겠습니까?
쓰이는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게 성직자의 소명입니다.
나는 나를 비우고 그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30대 중반의 아줌마 사제 김기리.
그는 원칙대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基理] 그대로 순리대로 삶을 풀어가고 싶다고 한다.
목숨을 흥정하며 극단적으로 대결하고 충돌하는 우리 사회, 성(聖)은 너무 숭고하여 도대체 속(俗)의 목소리가 닿을 것만 같지 않은 막막한 이 세상에서 내가 따라야 할 순리는 무엇일까.
미리 틀을 짜지 말고 편견을 비우고 사랑을 가득 채운 마음으로 세상 속을 걸어 다녀보자.
혹시 아는가.
어느 사이 순리를 따라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
(월간 여성불교 2009년 3월호)
첫댓글 덕분에 이 글 오랫만에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도선사에서 발행하는 잡지(여성불교)에 실렸더군요. 그러고 보니 이름의 뜻이 참으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