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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http://blog.naver.com/loimos?Redirect=Log&logNo=20072229464
[민 4:15] 15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사무엘하 6:1-15
빼앗긴 법궤
법궤는 그 안에 있는 내용물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요, 말씀의 상징이었습니다. 법궤 안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의 돌비와 만나 담은 항아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히9:4).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가의 중요한 행사에 늘 법궤를 앞세웠습니다.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도 법궤를 멘 제사장들의 행렬이 선두에 섰습니다(수3:15). 또한 전쟁의 대열에서도 법궤는 늘 선두에 서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있어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힘이요 능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법궤만 있으면 언제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법궤가 엘리 제사장 때에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며 그만 이방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삼상4:11). 이 전투는 엘리의 두 아들이 전사하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이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는 참사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마저도 죽고 말았습니다(삼상4:17-22). 시부와 남편의 죽음, 나아가 빼앗긴 법궤로 인한 충격은 해산의 와중에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으로 짓고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라고 부르짖게 하였습니다.
기럇여아림으로 돌아온 법궤
이처럼 이스라엘에게 있어 법궤는 중요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요, 자부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은 오히려 법궤로 인해 재앙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다곤 신상에 두었다가 신상들이 넘어지고 부러져 독종 재앙으로 고통을 당하자 멍에 메어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을 가져다 새 수레에 법궤를 실어 벧세메스로 보냈습니다(삼상6:7-9). 벧세메스 사람들은 그 법궤를 들여다보다가 70인이 죽는 재앙을 당했습니다. 이에 놀란 벧세메스 사람들이 기럇여아림에 사람을 보내 법궤를 가져가게 함으로, 법궤가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옮겨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함으로, 20년간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던 것입니다(삼상7:1-2).
웃사의 죽음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20년 사이에 다윗은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권을 장악하고 이스라엘을 통일한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집에 법궤를 모셔오기 위해 아비나답의 아들(히브리어로 손자를 의미하기도 함) '웃사와 아효'에게 담당을 시켰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분명히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웃사는 웬일인지 법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참 운반하는 과정에 소가 뛰어 법궤가 수레에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에 다급한 웃사가 그것을 손으로 잡은 것이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켜 그만 웃사를 쳐서 죽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경사스럽고 축복된 국가적 행사에서 사람이 죽었으니 이 얼마나 큰 일입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법궤를 운반하는 실무 책임자가 죽고 만 것입니다.
웃사의 잘못
본문 7절에는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웃사의 잘못함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법궤를 운반할 때 어깨에 메지 않고 수레에 운반한 것입니다. 민4:15절 말씀을 볼 때 법궤를 운반할 때는 반드시 레위 지파 중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의 고리에 꿰어서 어깨에 메야합니다(출25:13-14). 그러나 웃사는 이러한 율법을 무시하고 블레셋의 혁신 개발품, 즉 황소가 이끄는 수레에 실어 운반한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어깨에 메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신속하며 편리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의 이면에는 하나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이 앉은 것입니다. 그래서 소가 뛰자 손을 들어 법궤를 붙잡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웃사의 잘못이었습니다.
법궤를 어깨에 매는 이유
법궤를 운반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운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법궤를 운반하는 웃사와 다윗의 태도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는 자신을 부정하는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남이 대신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레에 싣고 운반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어깨에 직접 짊어지는 '수고와 희생'을 담당하지 않으면 결코 '자기 부인'이 될 수 없으며 온전히 주님을 좇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상고할 때 우리는 법궤를 왜 '어깨에 메고' 운반하라고 하셨는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세상의 기업처럼 효율성과 편리성을 앞세워서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정 반대입니다. 때로는 느리고, 더디다 할지라도,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직접 희생하고 참여할 때 참된 감동과 은혜를 얻게 됩니다.
다윗의 법궤 운반
반면에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법궤 앞에서 기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고 춤을 추며 즐거이 노래를 불렀습니다(6:13-15). 웃사처럼 수레에 싣고 편리하게 오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 메고 왔습니다. 두번째 법궤를 운반하는 일을 준비함에 있어서 다윗은 실무자들을 단단히 준비시킵니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대상15:13)라고 원인 진단을 하였습니다. 웃사의 사건에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다윗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성결케 한 후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어"(대상15:15) 운반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법궤를 어깨에 메고 운반했을뿐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열고 기쁜 마음으로 경배하며 운반했습니다. 웃사를 침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여 감히 법궤 운반을 생각할 수 없었던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노가 풀리셨다는 징조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법궤를 메되 '기쁨으로 메고'(삼하6:12)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갔습니다. 가면서 여섯 걸음을 행한 후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며 진심으로 기뻐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웃사처럼 기뻐하지도 않고 춤도 추지 않으며 종교적 의무감과 편리성만을 생각하여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의 마음대로 제어하려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즐거이 헌신하는 주의 청년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웃사와 같이 하나님 앞에 서긴 했지만 내 의지와 생각대로 하나님을 조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다윗처럼 '기쁨으로' 법궤를 메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시편 기자는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110:3)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헌신'을 즐겁게 했다는 것입니다. 헌신이란 자신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몸을 드리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마치 법궤를 '어깨에 메는 것'처럼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들은 '즐거이 헌신' 했습니다. 다윗 왕과 같이 '기쁨으로 궤를 메고' 운반하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즐거웠는지 제물을 드리고, 춤을 추는 다윗의 모습에서 헌신의 참된 자세와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헌신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헌신'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블레셋의 혁신 발명품 '수레'에 법궤를 싣고 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윗처럼 '어깨에 메고' 헌신의 고통과 수고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즐기고 있습니까?
[출처] [다윗/07] 법궤 앞의 다윗과 웃사|작성자 loimos |
출처: 조용한백성 원문보기 글쓴이: 조용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