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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
박찬일(시인)
1. 배경, 그리고 개관
표현주의 예술의 배경은 ‘세기말 의식’,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가히 가위눌림의 상황이었다. 이 시대는 또한 산업화․도시화되는 과정에서 모든 가치 체계의 붕괴를 경험한 시대이기도 했다. 표현주의는 한계적 상황이 낳은 예술이었다. 한계적 상황을 표현한 예술이었다.
표현주의는 문학, 미술, 음악, 사진, 영화 등 예술의 전 부문을 아우르는 운동이었다. ‘국제적’ 현상이었지만 발생과정에서 보면 ‘독일적’ 상황의 소산이었다.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전후’에 펼쳐졌던 역사적 표현주의는 주로 독일의 표현주의였다. 표현주의의 유산으로서 영․미, 스위스, 프랑스, 러시아의 표현주의를 거론할 수 있다. 혹은 19세기의 여러 작품들에서 표현주의적 특징을 만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니체(1844~1900), 휘트먼(1802~1847)의 작품들이 ‘표현주의적’이었다. 이탈리아의 미래주의자 마리네티(1876~1944)가 1913년 베를린에서 행한 강연은 독일 표현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처음에는 회화예술과 관련 있었다. 프랑스의 세잔(1838~1906), 고흐(1853~1890), 마티스(1869~1954) 등 후기인상주의 및 야수파의 그림들이 표현주의와 관련 있었다. 독일에서는 ‘다리(파)’(1905), ‘청기사(파)’(1911)들의 그림이 표현주의와 관련 있었다. 1910년 이후 문학에 轉用되면서 - 특히 1911년 힐러(1885~1972)에 의해, 그리고 잡지 폭풍(1910~1932) 및 행동(1911~1932)에 의해 - 20세기의 몇 개 되지 않는 구획 가능한 문예사조 중의 하나가 되었다.
표현주의는 ‘표현의 예술’(expressionism, Ausdruckskunst)이다. 즉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내면의 예술이다. 표현주의는 그러므로 그 이전의 자연주의 및 인상주의에 대한 반대이다. ‘재현의 미학’에 대한 반대이다. 외적 현상을 표상하지 않고 내적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이 중요하다. 베데킨트(1864~1918)의 말을 빌면 “본질로의 집중”이 중요하다. 벤(1886~1956)의 말을 빌면 “사물의 뿌리로 가는 것”이다. 시인은 내면에서 본 진실의 고지자로서 ‘모사’하는 자가 아니라 ‘형성’하는 자이다.
표현주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표현의 예술’이었다. 표현주의를 통해 ‘표현의 기술’은 확장되었다. 1916년에 발생한 다다이즘은 표현주의에서 영향 받은 ‘새로운 표현 형태의 예술’이었다. 이후의 초현실주의 역시 ‘새로운 표현 형태의 예술’이었다. 이점에서 표현주의는 ‘현대예술’과 자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표현주의의 언어를 흔히 ‘비명’의 언어, ‘황홀’의 언어라고 하는데, ‘격정’의 언어라고 하는데, 이런 ‘비명’의 언어, ‘황홀’의 언어, ‘격정’의 언어가 ‘시 언어’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예를 들어 ‘탈문법’의 언어도 ‘시 언어’가 되었다. 율격을 무시한 ‘누더기 시행’, 병렬 양식(몽타주, 콜라주), 그로테스크, 절대 은유, 색채 상징, 소리시 등 역시 표현주의의 ‘표현’들이다. 현대적 ‘표현’들이다.
주제는 ‘양면감정병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절망은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 절망이었고, 종말은 새로운 시작을 내포하고 있는 종말이었다. 표현주의 문학의 주제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인간’이다. 새로운 인간에 대한 요구이다. 새로운 인간에 대한 요구는 특히 드라마에서 그랬었다. 초기 단계의 표현주의 문학에서 ‘시’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표현주의의 중요한 특징을 발휘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표현주의가 정치화하면서 드라마가 전면에 부상하였다. 드라마가 ‘새로운 인간’이라는 표현주의 문학의 주제를 강령적으로 제시하였다.
카이저(1878~1945)의 깔레의 시민들(1914)에서 우스타헤 드 생-피에르가 도시 깔레를 위해 자결하였을 때 그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나는 새로운 인간을 보았습니다. 오늘 밤 그가 태어났습니다.
(강조는 필자)
2. 시민사회에 대한 반대
표현주의 문학은 자본주의적 시민사회에 대한 반대이다. 독일 통일(1871) 이후의 시대를 ‘회사창립시기’로 명명하기도 하는데 수많은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창립되었기 때문이었다. 1888년 빌헬름 2세가 황제로 등극한 이후부터는 명실상부한 ‘제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독일제국’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적 시민사회가 정립되었다. 거의 모든 산업상의 지표에서 빌헬름 2세 시대의 독일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능가하였다. 1890년대 중반 도시 인구는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였다. 독일은 농경국가에서 산업국가로 완전히 변신하였다. 자본주의적 시민사회의 정립은 이후 제국주의 전쟁[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 다음은 판 호디스(1887~1942)의 「세상의 종말」(1911) 부분이다. 벤은 그의 유명한 시론 「서정시의 문제들」(1951)에서 표현주의 문학이 리히텐슈타인(1889~1914)의 「어스름」(1911) 및 판 호디스의 「세상의 종말」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시민의 뾰족한 머리에서 모자가 날아간다.
공중 모두에서 비명같은 것이 울린다.
기와장이들이 떨어져 두 동강난다.
그리고 해안에는 - 사람들은 읽는다 - 해일이 닥치고 있다.
판 호디스(1887~1942)
‘세상의 종말’은 “시민”사회의 종말이다. “모자”는 “머리”를 보호하는 모자이다. ‘시민’의 머리를 보호하는 모자이다. “기와장이”는 지붕을 고치는 기와장이이다. 시민의 지붕을 고치는 기와장이이다. 시민을 보호하는 “모자가 날아”갔고, 지붕을 고치는 기와장이들이 지붕에서 “떨어져 두 동강”났다. 위험해진 시민사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해일”이 시민사회를 더욱 위험하게 하고 있다. 판 호디스는 시민사회의 종말을 예측(혹은 소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시의 시민계급은 ‘빌헬름 2세의 독일제국’에서 성장하였으므로 시민사회에 반대한다는 것은 또한 독일제국과 빌헬름 2세에 반대하는 것이다.
처음에 젊은 표현주의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열광하였다. 황제와 시민계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도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914년 전쟁이 발발하고 1915년이 되어서야 표현주의자들은 그들이 황제와 시민계급의 ‘장사’를 대행해주고 있음을 알았다. 주지하다시피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이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를 차지해서 이득을 보려는 자본가들을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을 위한 전쟁에서 많은 표현주의자들이 전사하였다.
‘시민사회에 대한 반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세대 간의 갈등’을 들 수 있다. ‘회사창립시기’에 성장한 세대들은 그들의 아버지 세대와 반목하였다. 아버지 세대[시민계급]의 천박한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경멸하였다. 세대 간의 갈등은 표현주의 문학의 지배적인 모티브 중의 하나였다. 카프카(1883~1924)의 많은 소설들은 아버지와의 갈등에 기반하고 있다. 프랑크(1882~1961), 하젠클로버(1890~1940), 브로넨(1895~1959)들은 그들의 작품들에서 ‘선생님’과 ‘아버지’를 죽였다.
표현주의 문학은 또한 산업화 시대의 문학으로서 ‘대도시 문학’이다. ‘대도시 소설’ 및 ‘대도시 시’가 있다. 독일 ‘대도시 문학’은’ 표현주의 시대에 정립되었다. 산업화 시대의 자연주의 문학이 드라마․소설들을 주업으로 하여 산업사회의 노동자, 알코올중독자, 창녀들을 등장시키며 산업화 시대의 사회적 문제와 대면하였다면 - 자연주의 문학의 문학사적 의의 중의 하나는 문학사상 최초로 노동자들이 문학의 전면에 ‘집단적으로’ 등장하였다는 점이다. 졸라(1840~1902)의 제르미날(1885)에서는 광산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하였고, 하우프트만(1862~1946)의 직조공들(1892)에서는 직조공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하였다 - 같은 산업화 시대의 표현주의 문학은 시를 주업으로 하여, 특히 ‘대도시시’를 통해, 산업화 시대의 시민사회의 몰락의 징후와 대면하였다. 시민사회의 몰락의 징후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정점을 이루었다. 대도시시는 자연시와 대조된다. 표현주의에서 자연시로부터의 전회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3. 표현주의의 양식적 특징
표현주의 문학의 언어가 비명의 언어, 황홀의 언어라는 점에서 표현주의 문학의 양식적 특징으로 통사구조의 해체, 문법 위반, 신조어 사용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명을 지르는데 문법을 지키면서 비명을 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의 시는 문법 위반, 신조어 사용의 모범적 예이다.
돌들(이)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창문(이) 배반을 이죽거린다.
나뭇가지(가) (목을) 조른다.
산 덤불(을) 스치며 지나가는 소리
비명
죽음.
― 슈트람(1874~1915), 「척후」(1915/16) 부분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라는 ‘도착어’의 ‘출발어’는 독일어 feinden인데 사전에 없는 단어이다. 신조어이다. “이죽거린다”의 출발어는 독일어 grinsen인데 원래 자동사이다. 자동사가 목적어 “배반”을 거느리고 있다. “조른다”의 출발어는 독일어 würgen인데 원래 타동사이다.
슈트람(1874~1915)
타동사가 목적어를 - 이를 테면 ‘목’을 - 거느리지 않았다. 문법이 지켜지지 않았다.
표현주의 시의 또 하나의 특징은 명사, 혹은 명사구 위주로 짜여져 있다는 점이다. 표현주의가 앞서 얘기했듯이 ‘본질로의 집중’이라면 명사. 혹은 명사구가 본질로의 집중을 표현해내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명사가 가장 중요한 정보를 담기 때문이다. 명사는 실체(Substanz)이기 때문이다. 슈트람의 「척후」 또한 명사들의 파노라마이다. “돌”, “창문”, “나뭇가지”, “산”, “덤불”, “비명”, “죽음” 등 명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5행, 6행은 명사 하나 씩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접속사는 하나도 없고 전부 단문이다.
표현주의적 양식은 또한 ‘격정’이다. 격정은 ‘표현주의의 격정’이었다. 클롭슈톡(1724~1803), 쉴러(1759~1805), 횔더린(1770~1843), 니체 등에게 있어서 격정은 개인적 양식에 머물러 있었으나 표현주의에 와서 시대적 양식이 되었다. 힐러는 표현주의라는 말 대신 행동주의, 신격정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표현주의적 양식은 이미 질풍노도시대의 괴테(1749~1832)의 시 나그네의 폭풍 노래」(1772), 「마부 크로노스에게」(1774) 등에서 나타났었다.
나, 눈먼 자를, 비틀거리는 자를
어두운 지옥문 속으로!
― 「마부 크로노스에게」 부분
동사가 생략되었고[통사구조가 해체되었고], 명사의 연쇄 또한 나타났다(“나”, “눈먼 자”, “비틀거리는 자”). 무엇보다도 격정의 시였다.
표현주의 연극의 주요 특징은 ‘소리’에 있었다. 극단적인 소리들로서 ‘외침’과 ‘속삭임’의 소리였다. ‘말의 오라토리오’였다. 카이저는 감정을 최대한도로 폭발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자연주의적’ 심리 묘사는 완전히 포기되었다. 연극비평가 디볼트는 표현주의 연극을 개관하면서 ‘무정부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지금까지 통용되던 모든 형식의 해체를 두고 한 말이었다.
4. 표현주의 문학의 테마
4.1 새로운 인간에 대한 요구
안에서 밖으로의 표현, 그리고 새로운 표현 양식들은 표현주의의 ‘형식’에 관한 것이다. 표현주의의 ‘내용’이 아니다. 표현주의의 주요 내용은 ‘새로운 인간’에 대한 기대이다. 많은 표현주의자들은 문학(교육)을 통한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기대하였다.
당시의 사회는 위기에 처해 있었으며, 몰락으로 치닫고 있었다. 쇄신이 필요한 시대였다. 몰락과 쇄신, 절망과 희망 등 ‘양가치’[양면감정병존]가 표현주의의 특징적 양상이었다. 퇴락, 몰락, 전쟁, 세계의 종말, 침체 등의 형상이 있었고, 새로운 출발, 혁명, 계시, 행복 등의 형상이 있었다. 핀투스(1886~1975)의 유명한 표현주의 사화집 제목 또한 인류의 황혼과 여명(1920)이었다. 베허(1891~1958)의 산문집 제목은 몰락과 승리(1914), 하젠클레버의 시집 제목은 죽음의 부활(1917)이었다. 새로운 출발, 혁명, 계시, 행복 등의 형상은 ‘새로운 인간’이라는 테마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구체적 작품 분석이 아닌, ‘새로운 인간’이라는 주제를 낳게 한 정신사적 배경에 대해 서술하려고 한다.
o 베르그송과 그리스도
‘인류 변화’의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탐색된 곳이 바로 표현주의에서였다. 표현주의자들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걱정한 자들이었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미래학은 표현주의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사상 처음으로 인류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으로 앞으로의 기술적 발전이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무기를 생산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카이저는 드라마 가스 Ⅱ(1920)를 통해 인류의 몰락 가능성을 무대 위에서 실증해 보였다. 되블린(1878~1957) 역시 소설 산 바다 거인(1924)에서 기술 발전이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세계 종말은 표현주의 문학의 지배적 모티브 중의 하나였다(‘세계 종말’에 대한 시로는 앞서 부분 인용했던 판 호디스의 「세상의 종말」, 그리고 라스커-쉴러(1869~1945)의 「세상의 종말」이 있다. 전자는 시민사회의 몰락, 혹은 산업사회의 몰락에 대한 것이고, 후자는 신의 죽음, 혹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것이다).
베르그송(1859~1941)
아르놀트는 그의 연구서 표현주의 문학(1971)에서 ‘새로운 인간’의 이념에 대한 정신사적 배경으로 와일러의 연구(독일 표현주의 드라마에 나타난 새로운 인간)를 인용하면서 베르그송(1859~1941)의 ‘생의 비약’(élan vital) 이론이 표현주의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하고 있다. 생의 비약 이론의 요체는 생명체는 정신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즉 동물 세계는 식물 세계에서 발전하였고, 인류는 동물 세계에서 발전하였고, 인류는 완전한 정신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질로부터 벗어나자!”가 베르그송 철학의 기치였다. 베르그송은 ‘물질’이 극복되면 죽음도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쇼(1856~1950)는 드라마 메투셀람으로 돌아가라(1921)에서 인류가 육체에서 벗어나 ‘정신’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베르그송의 ‘생철학’에서 ‘생의 비약’과 함께 중요하게 간주되는 것으로 ‘직관’을 들 수 있다. ‘직관은 이성의 상대어로 사용되었다. 베르그송과 표현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이성은 낭만주의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다. 직관이 인류를 전진하게 하는 것이지 이성이 인류를 전진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직관은 영혼, 무의식, 꿈, 비합리 등과 인접의 관계에 있다. 직관과 영혼, 무의식, 꿈, 비합리 등이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수단 및 방법이었다.
‘새로운 인간’이라는 테제는 사실 베르그송에게서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기독교), 다윈(1809~1882), 니체, 마르크스(1818~1883), 프로이트(1856~1939) 등에게서 이미 나타났던 것이다. 영혼, 무의식, 꿈, 비합리 등은 특히 프로이트와 관련 있었다.
기독교에 의하면 인간은 낙원에서 쫓겨난 이래 ‘원죄’를 갖고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대속 이후 인간은 구원의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세례’는 인간의 원죄를 씻겨나가게 하는 의식이었다. 그리스도는 또한 ‘새로운 인간’의 모범으로 간주되었다.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를 따라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카이저의 드라마 메두사의 뗏목(1940~1943)에서 주인공 앨런은 마치 그리스도처럼 죽었다. 그리스도는 직접 인간들로 하여금 ‘변화’를 촉구했었다. 변화의 모범적 예는 바울이었다. 사울에서 ‘새로운 인간’ 사도 바울이 되었다. 바울은 골로새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 「골로새서」 3장 9~10절
바울은 “창조하신 자” 곧 그리스도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 사람”이 되기를 촉구하고 있다. 표현주의자들은 기독교인이든 기독교인이 아니든 성경에 나오는 “새 사람”과 “옛 사람”에 대해 알고 있었다. ‘새(로운) 인간’과 ‘옛 인간’의 비유를 표현주의자들은 즐겨 사용하였다. 메두사의 뗏목에서 주인공 앨런이 ‘새 인간’이고 앤이 ‘옛 인간’이었다(메두사의 뗏목은 기독교적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13인의 아이가 6일 동안 표류하다가 7일째 구조되는 이야기 설정이 그렇다. 13인의 아이는 최후의 만찬의 13인과 관계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을 취하셨다. 주인공 앨런은 맨 끝에서 십자가 모습으로 누워 죽음을 맞는다).
과연 그럴까. 기독교를 통해서 인류는 변화될 수 있을까. 서양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였고 전쟁의 역사였다. 기독교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지난 이천년 동안의 서양의 역사는 기독교를 통한 인류의 변화 가능성을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게 하였다.
o 다윈과 니체
(1859)이었다. 그리고 다윈으로부터 영향 받은 니체였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이후 차라투스트라로 줄임)였다. 진화론은 과거형의 진화론이기도 하지만 미래형의 진화론이기도 하였다. 진화론은 과거적 의미로서의 진화의 의미뿐만 아니라 미래적 의미에서의 진화의 의미에 대해서도 숙고하게 하였다.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숙고하게
하였다. 웰스(1866~1946)의 타임머신(1895), 헉슬리(1894~1963)의 멋진 신세계(1932), 베르펠(1890~1945)의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별(1945) 등이 인간의 변화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윈(1809~1882) 니체(1844~1900)
차라투스트라는 원숭이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이르는 길이 있다면 인간이 ‘위버멘쉬’[초인]로 이르는 길도 있다고 설교하였다.
인간이 사랑 받을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의 단계이고 몰락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간이 몰락해야 내일의 인간이 올 수 있다. 위버멘쉬가 올 수 있다.
결혼 제도의 현재 모습에 대해 차라투스트라는 진저리를 친다. 하나의 결혼이란 위버멘쉬를 창조하기 위한 의식적인 두 인간의 결합일 때만 그 정당성을 갖는다.
많은 짧은 어리석음들 ― 그것이 너희들에게는 사랑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너희들의 결혼은 많은 짧은 어리석음들의 종착지로서 하나의 긴 어리석음이다.
차라투스트라의 말이다. 여성은 오로지 “위버멘쉬를 낳”는 것에 존재 의미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차라투스트라의 여성 폄하는 유명하다. 여성은 열등한 존재였다. 남성은 깊은 영혼을 가졌으나, 여성은 얕은 영혼을 가졌다. 남성은 위험과 놀이를 사랑하는 존재이나, 여성은 남성이 위험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때 필요한 존재이다. 여성은 남성의 장난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한편으로는 육체적 쾌락에 반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격정을 칭송하고 있다. 그는 묻는다: “한 욕정에 불타는 여성의 꿈속에 탐익하는 것보다 한 살인자의 수중에 빠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다. “동정(童貞)을 지키기 어려운 사람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후의 미래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성은 그들의 울타리 안으로 추방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회화와 문학의 역사가 보여주듯 사람들은 여성을 너무 오랜 세월 마돈나처럼 귀히 여겼다는 것이다. 마리네티와 미래주의자들, 벤, 청년 브레히트, 그리고 다른 표현주의자들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기껏해야 감각적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하나의 객체로 환원되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강조하려고 한 것 중의 하나가 ‘군주도덕’이었다. 군주도덕은 강자의 도덕이었다. 죽음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자가 아니라, 죽음 앞에서 ‘기꺼이 죽어주리라’라고 말하는 자이다. 군주도덕과 위버멘쉬는 인접의 관계에 있다.
차라투스트라 1부의 끝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 인간들이 동물에서 위버멘쉬로 가는 다리 한가운데 있을 때 다시 오겠다고 한다. 다음 역시 차라투스트라의 말이다.
모든 신들은 죽었노라: 이제 우리는 위버멘쉬가 번성하기를 원하노라.
차라투스트라 제2부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위버멘쉬가 미래의 신이며 인간들은 그를 몇 세대 안에 생산해내도록 애써야 한다고 분명히 밝힌다.
너희들 자신은 아닐 것이니라, 내 형제들아! 그러나 그대들은 그대들을 초인의 아버지나 선조들로 개조할 수는 있으리라: 그리고 이것이 너희들에게는 최선의 창조 행위니라!
니체는 위버멘쉬를 창조하는 법을 어느 곳에서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창조적 진화”를 믿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모들은 위버멘쉬를 생산해내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연’은 돌연변이를 통한 새로운 종류의 존재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러한 의지에 부응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쇼는 그의 드라마 메투셀람으로 돌아가라에서 장수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 두 경우에서 우리는 카이저의 깔레의 시민들과 전혀 다른 사건 진행을 본다. 깔레의 시민들에서 ‘새로운 인간’은 내적 변화를 통해 형성되었다.
4.2 사람의 사물화․사물의 사람화
벤(1886~1956)
의 사물화․사물의 사람화’에 대한 것이었다. 앞에서 인용했던 슈트람의 「척후」, 판 호디스의 「세상의 종말」도 사람의 사물화․사물의 사람화와 관계있다. 「척후」에서 ‘창문’ 및 ‘나뭇가지’들이 주체였고, 척후병들이 객체였다. 「세상의 종말」에서 ‘기와장이들’이 사물로 취급되었다(“기와장이들이 떨어져 두 동강난다”).
다음이 시체공시소․기타의 서시 「작은 과꽃」이다.
익사한 맥주배달원이 테이블 위에 받쳐져 있었다.
그의 이빨 사이에는 누군가 꽂아둔
담자색 과꽃 한 송이가 있었다.
내가 가슴에서부터
피부 아래로
긴 칼을 그어
혀와 구강을 끄집어냈을 때
나는 그 꽃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것이 꽃이
옆에 있는 뇌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구멍난 가슴을 봉합할 때 나는
대팻밥 사이에
그 꽃송이를 바르게 세워놓았다.
너의 꽃병에서 배부르게 마시려므나!
평화롭게 쉬려므나,
작은 과꽃(아)!
― 「작은 과꽃」 전문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인간학의 질문에 대답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답은 ‘피와 살의 덩어리’였다. 인간은 사물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한편으로 죽음으로부터 아우라를 걷어낸 시라고 할 수 있다. .
이중의 인간모독이 감행되고 있다. 첫째, “익사한 맥주배달원”은 사물처럼 “테이블 위에 받쳐져 있”다. 이성적․감정적 주체가 아니라, “이빨”, “피부”, “혀”, “구강”, “가슴” 등으로 구성된 의학해부용 객체이다. 의학적 자아는 마치 자동차 수리공이 자동차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듯 인간의 몸을 열고 닫고 있다.
둘째, 인간이[맥주배달원이] “작은 과꽃”과 비교되었으나 열등비교이다. 인간은 과꽃보다 못한 존재이다. 시적 화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은 과꽃에 주목하고 있다. “작은 과꽃”(제목)으로 시작해서 “작은 과꽃”으로 끝나고 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1.-3.행, 4.-12.행, 13.-15.행) 무게 중심이 점차로 작은 과꽃으로 이동하고 있다. 맥주배달원은 첫째 행에서만 등장하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기관’으로서만 등장하고 있다. 안식해야 할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인간의 주검이 아니라] 작은 과꽃이었다. “편히 쉬려므나, 네 꽃병에서 나의 아스터야!” 인간은 과꽃의 ‘꽃병’이었다.
그리고 인간모독은 신성모독이다. 인간은 ‘창조의 왕관’, 즉 피조물 중의 왕관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았었기 때문이다. 조물주에 의해 맨 나중에 창조된 존재로서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었기 때문이다. 그 인간이 사물과 같은 존재, 혹은 ‘작은 과꽃’보다 못한 존재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벤이 초기 시에서 ‘주체’를 육체(혹은 육체의 몰락)에 한정시킨 것은 전통적인 이원론을 부인한 것이다. 이점에서 벤 영시 니체의 영향권에 있었다. 니체에 의해 플라톤 및 기독교의 이원론, 즉 육체/영혼, 현상/본질의 이원론들이 부인되었고 니체에 의해 삶이(혹은 육체가) 전면적으로 긍정되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몸’에 대한 헌사였다. 니체는 “정신은 몸에 붙어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명칭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육체적 존재라는 것이다. 「작은 과꽃」들의 몸과 공통적인 것은 몸이 정신(혹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은 과꽃」들의 몸과 다른 것은 몸에 대한 전면적 긍정으로서 몸에 ‘위엄’을 부여한 것이다. 「작은 과꽃」과 시체공시소․기타에 실린 대부분의 시편들에서 인간의 몸은 하찮은 몸으로서 식물의 몸과 동물의 몸과 다를 바 없는, 심지어 식물의 몸과 동물의 몸보다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아름다운 청춘」 역시 시체공시소․기타의 시편이다. 서두에 여성, 물, 죽음이라는 삼박자를 제시함으로써 ‘오필리아 모티브’의 시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이전의 대표적 오필리아 모티브의 시로 랭보(1854~1891)의 「오필리아」(1870)가 있었다. 동시대의 오필리아 모티브의 시로 하임(1887~1912)의 「오필리아」(1910), 그리고 브레히트의 익사한 소녀에 관하여(1919)들이 있었다.
갈대밭에 한 소녀가 오랫동안 누워있었다.
소녀의 입을 무언가가 갉아먹은 듯했다.
가슴을 열었을 때 식도에는 구멍이 많이 나있었다.
마침내 횡경막 아래 한 정자(亭子)에서
어린 쥐들의 보금자리를 찾아냈다.
작은 암컷 쥐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다른 쥐들은 간과 신장을 먹고 살고 있었고,
차가운 피를 마시고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청춘을 여기서 보냈다.
그들의 죽음도 아름답게 그리고 빨리 왔다.
그들은 한꺼번에 물 속으로 던져졌다.
아, 그 작은 주둥이들의 찍찍거리는 소리라니!
― 「아름다운 청춘」 전문
마찬가지로 ‘이중의 인간모독’이 감행되었다. 인간은 주체가 아닌 (의학해부용) 객체로서 제시되었다. 「작은 과꽃」에서처럼 인간의 주검이 객체였다. 둘째, 인간은 쥐들보다 못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아름다운 청춘”은 인간의 아름다운 청춘이 아니라(즉 이 시는 소녀가 아름다운 청춘이었을 때를 회상하는 시가 아니라), 쥐들의 아름다운 청춘이었다. 시적 화자는 소녀의 죽음이 아닌, 쥐들의 죽음에 대해 연민하였다. “아 삑삑거리는 그 작은 주둥이들이라니”라고 한 것이 쥐들의 죽음에 대한 연민이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아닌 쥐들에 대한 연민인 것은 「작은 과꽃」에서 “평화롭게 쉬”어야 하는 대상이 인간이 아닌 과꽃으로 지정된 것과 같다. 「작은 과꽃」에서의 “꽃병”과 「아름다운 청춘」에서의 “정자”․“보금자리”의 비교도 흥미롭다. 인간이 과꽃의 꽃병이었고 인간이 쥐들의 정자․쥐들의 보금자리였다. 주목되는 것은 이 시에 나타난 ‘형식’으로서의 몸이다. 형식은 다른 말로 하면 ‘컨테이너’이다. 예전에 몸은 정신(혹은 영혼)을 담는 컨테이너였다. 지금은? 식도와 횡경막, 간, 신장의 컨테이너? 쥐의 컨테이너?
「작은 과꽃」과 「아름다운 청춘」은 둘 다 ‘그로테스크의 시’이다. 「작은 과꽃」에서 살아있는 과꽃과 살아있는 과꽃의 꽃병인 주검의 병치가 그로테스크하다. 과꽃의 꽃말 ‘모든 달콤함과 아름다움을 그대에게’를 고려하면 그로테스크의 극치이다. 아름다움․달콤함과 주검의 병치였다. 생명과 죽음, 미와 추의 병치였다. 「아름다운 청춘」에서 살아있는 쥐새끼들과 살아있는 쥐새끼들의 보금자리인 주검의 병치가 그로테스크하다. ‘죽은’ 주검과 ‘살아있는’ 내장의 병치가 그로테스크하다(“쥐들은 간과 신장을 먹고 살고 있었고,/차가운 피를 마시고 살고 있었다”). 쇼킹한 소재와 쇼킹한 소재에 대한 담담한 서술의 병치가 그로테스크하다. 즉 ‘주관적 내용’과 ‘객관적 어조’의 병치가 그로테스크하다. 무엇보다도 제목과 제목과 어울리지 않은 내용의 병치가 그로테스크하다.
그로테스크는 ‘현실의 특정한 상태에 대해 진술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그로테스크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 여기서는 ‘대도시적 현실’에 대한 인식이 - 그로테스크 예술을 낳는다. 쉽게 말하면, 그로테스크한 예술은 현실이 그로테스크하기 때문이다.
5. 표현주의와 다른 문예사조들
5.1 표현주의와 이상주의
세계의 상은 순수하고 왜곡되지 않은 모습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오로지 우리들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것이다.
1918년 「문학에서의 표현주의」에서 에트슈미트(1890~1966)가 한 말이다. “이것”은 “세계의 상”을 가르킨다. “내면”에 있는 “세계의 상”이 “순수하고 왜곡되지 않은 모습으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주의는 외적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내적 현실의 반영이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
사실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실들 배후에 있는 것을 […] 예술가의 손으로 포착할 때만이다.
계속되는 에트슈미트의 말이다. 이 문장이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사실”이 아니라 “사실들 배후에 있는 것”, 즉 사실들의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예술가의 손”을 강조함으로써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의) 재현의 미학을 거부한 것이다. 이점에서 표현주의는 서양 형이상학 전통 및 독일 이상주의 미학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 된다. 현상보다 현상 배후에 있는 본질을 중요시하는 것이 서양 형이상학이기 때문이며, 일차적 현실이 아니라 ‘이차적 현실’[가공된 현실]을 강조하는 것이 독일 이상주의 미학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손’을 통한 현실의 변용을 강조하는 것은 독일 이상주의 미학 이후의 독일문학의 꾸준한 전통이었다.
그는[표현주의는]는 보지 않고 관조한다. […] 재현하지 않고 형상화한다. […] 세계는 거기 있다. 그 세계를 반복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역시 같은 곳에서의 에트슈미트의 유명한 말이다. 여기에서 표현주의 문학에 대한 ‘중요한 요약’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내용과 형식에 각각 관계하는 표현주의의 두 가지 원칙이 확인되었다. 첫째, 내용에 관계하는 것으로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다(“보지 않고 관조한다”). ‘내적 현실’, ‘사실들의 정신’을 보는 것이다. 둘째, 형식에 관계하는 것으로서 “재현하지 않고 형상화하”는 것이다. 재현의 미학을 거부하는 것이다.
다음은 핀투스가 1918년 「미래를 위한 말」에서 한 말이다.
소위 현실이 정신과 정신의 이념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현실을 이념에 따라 형성하는 것이다.
표현주의는 정말 독일 이상주의 미학 전통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이 정신과 정신의 이념을 형성”한다는 것은 유물론적 미학이고, “정신이 현실을 이념에 따라 형성”한다는 것은 관념론적[이상주의] 미학이기 때문이다. 유물론적 미학의 반대로서 관념론적 미학을 강령적으로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현주의와 이상주의 미학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표현주의를 “현실로부터의 도피”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고전주의의 ‘완벽한 하모니의 공간’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핀투스 또한 빙켈만 식의 고전주의(‘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와 표현주의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예술은 사회․경제적 활동에서 독립된 무관심의 영역’이라는 칸트 미학과 표현주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표현주의에서 예술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외적 현실이 문학의 내용이 아니라, 인간이 내적 현실이 문학의 내용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 하겠지만.
인간은 비명을 지른다. ― 비명을 지르기 위해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옆에 있는 인간들을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끔찍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몸을 일으키면서.
― 핀투스, 「미래를 위한 말」
‘표현’(ex-pression, Aus-Druck)의 문학으로서 흔히 “비명”의 문학으로 간주되는 표현주의 문학은 ‘표현’으로서의 비명일 뿐만 아니라, ‘내용’으로서의 비명이기도 하였다. “도와달라”는 비명이었다. 살려달라는 비명이었다. 인류를 살려달라는 비명이었다.
‘비명’은 그러나 사회 경제적 연관관계에 대한 논리적 궁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추상적’ 비명이었다. ‘비역사적 선험적 도덕주의’의 비명이었다. 표현주의자들은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였던 ‘시민 계급’의 울타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점이 표현주의가 1930년대 ‘표현주의 논쟁’에서 비판받는 이유가 된다. 루카치(1885~1971)에 의하면 표현주의는 시민 계급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시민성’(혹은 시민 계급의 속물성)을 비판하였다. 시민성 비판은 추상적 비판이었다. ‘새로운 인간’에 대한 요구도 추상적이었다. 루카치에 의하면 새로운 인간은 ‘승리하는 프롤레타리아’이어야만 했다.
표현주의의 ‘새로운 인간’에 대한 요구는 물론 계몽적이다. 표현주의의 새로운 인간에 대한 기획을 마이어(1907~1998)의 말을 빌면 “루소적 정신”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주의의 계몽사상과의 밀접한 관련은 특히 전후의 드라마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톨러(1893~1939)의 드라마 변화(1917/18) 및 인간 대중(1921), 카이저의 가스 3부작(1917/20) 등은 ‘혁명적 사건들’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인간의 탄생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5.2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마이어는 다다이즘을 “표현주의의 막간극이자 초현실주의의 전주곡”이라고 하였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그리고 표현주의의 상호 연관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마이어는 표현주의는 ‘독일의 표현주의’이고 초현실주의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라고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전의 혼란한 상황에서 표현주의가 태어났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안정된 상황에서 초현실주의가 태어났다고 하였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표현주의의 상호연관성은 반시민적 경향 및 그 이전의 문학적 전통을 부인한 데에 있다. 그 이전의 문학적 전통은 칸트 미학에서 출발, 유미주의에서 정점을 이루는, ‘예술의 자율성’을 이념적 토대로 하는, 그 동안의 예술 양식 전부를 지칭한다.
표현주의를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하위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뷔르거에 의하면 ‘예술과 삶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것이, 즉 ‘예술과 삶을 서로 연결시키려는 것’이, 20세기 초엽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였기 때문이다(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하위 범주들이었다). 다시 말해 그 이전의 유미주의에서 정점을 이룬 “인간의 실제 생활로부터 유리된 제도 예술”의 극복이, 다른 말로 하면 ‘내용과 형식의 분리’의 극복이, 역사적 아방가르드였기 때문이다. 표현주의는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와 마찬가지로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예술, 삶을 위한 예술이었다. 표현주의 바로 직전의 인상주의, 자연주의들도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인상주의와 자연주의 또한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표현주의가 인상주의, 자연주의들과 다른 것은 표현주의는 ‘내적 체험의 표현’의 예술이고, 인상주의와 자연주의는 ‘외적 현상의 표상’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인상주의와 자연주의는 모방의 미학[재현의 미학]이고 표현주의는 ‘형성’의 미학이기 때문이다. 형성은 내부에서 통찰된 진실의 형성이다. 표현주의 이후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역시 모방의 미학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상주의 및 자연주의와 구별된다.
표현주의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의 시학상의 공통점은 병렬양식[동시성의 원리], 우연성의 원리, 콜라주, 그로테스크들이다.
1. 검은 바람들이 별들의 사슬처럼 걸려 있다.
쇠갈고리들이 검게 칠한 벽들을 공격해 끌어당긴다.
도시들의 운동장들이 작열한다.
집들은 일곱 개의 루비들을 향해 달려가거나 다이아몬드들을 향해 팽이들처럼 빙빙 돈다.
2. 한 창문에 한 뚱뚱한 남자가 달라붙어 있다.
한 젊은이는 한 다감(多感)한 여자를 방문할 생각이다.
한 백발의 광대가 장화를 신는다.
한 유모차가 소리를 지르고 개들이 저주한다.
1의 시는 아르프(1887~1966)의 따로 제목이 없이 “검은 바람이 별들의 사슬처럼 걸려 있다”(1920)로 시작하는 시의 앞부분이다. 아르프는 표현주의자로 시작하였으나(1912/13년에 잡지 폭풍에 관여하였다) 1916년 이후부터는 스위스에서 다다 운동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였다. 1926년 프랑스에 정주한 이후에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아르프는 다다이즘의 ‘진정한 언어 창조자’로 간주되었다. 1의 시는 다다이스트 시절의 시이다. 2의 시는 리히텐슈타인의 시 어스름(1911)의 끝 연이다. 초기 표현주의 시라고 할 수 있다.
1의 시에서 “검은 바람들”, “쇠갈고리들”, “도시들”, “집들”로 시작하는 각각의 행들은 전통 서정시에서처럼 상호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신문을 ‘크로스 리딩’한 것같다. 행을 서로 뒤바꾸어 놓아도 상관없을 것으로 보인다. 상호 긴밀한 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서로 상관없는 것이 나열되어 있으므로, ‘병렬 양식’이다. 표현주의의 특징적 양식이다. 병렬 양식은 다른 말로 하면 ‘동시성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상관없는 것이 동시에 제시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서로 상관없는 것의 병렬은 행과 행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행 안에서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쇠갈고리들이 검게 칠한 벽들을 공격해 끌어당긴다”고 했는데 “쇠갈고리들”과 “검게 칠한 벽들”의 관계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집들은 일곱 개의 루비들을 향해 달려가거나 다이아몬드들을 향해 팽이들처럼 빙빙 돈다”고 했는데 “집들”, “일곱 개의 루비들”, “다이아몬드들”의 상호 관계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일곱 개”와 “루비들”의 관계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시 창작에 우연성의 원리가 개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의 눈에 다른 것이 먼저 눈에 띠었다면 - 예를 들어 신문을 크로스 리딩하는 중에 - 다른 것이 시행을 차지하였을 것이다. 서로 상관없는 것의 나열이므로 콜라주를 또한 말할 수 있다.
행과 행이, 하나의 행 안에서의 단어와 단어들이, 상호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지 않으므로 그로테스크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이질적인 것의 병존을 그로테스크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검은 바람들”, “쇠갈고리들”, “도시들”의 병존이 그로테스크하고 “집들”과 “일곱 개의 루비들”의 병존이 그로테스크하다.
2의 시는 어떤가. 마찬가지로 첫째 행과 둘째 행, 둘째 행과 셋째 행, 셋째 행과 넷째 행이 전통 서정시에서처럼 상호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역시 병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병렬양식의 시이다. 어느 행이 먼저 나와도 상관없을 것 같으므로 역시 동시성의 원리, 우연성의 원리가 개입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인용된 시행들 전부가 상호 이질적인 것의 결합이므로 역시 콜라주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상호 이질적인 것의 결합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준다.
사실 우연성의 원리의 가장 모범적인 예는 초현실주의의 ‘의식의 흐름’ 기법이다. 연상기법이다. 연상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모차’에서 ‘개’로 튈 수 있다. 초현실주의에서도 우연성의 원리뿐만 아니라, 병렬 양식이나 동시성의 원리가 개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모차가 중요한가, 개가 중요한가. 개가 먼저 나와도 상관없고 유모차가 먼저 나와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병렬양식, 동시성의 원리의 시는 벤야민(1892~1940)이 「보들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하여」(1939)에서 현대 대도시에서의 사물의 지각은 병렬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지적을 떠올리게 한다. 대도시인들에게 회상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은 불가능하다(“경험 상실”). 대도시인들에게는 순간적 체험만 존재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이다. 순간적 체험은 벤야민의 말을 빌면 “쇼크 체험”이다. 보들레르의 시는 쇼크 체험의 시이다. 대도시에서는 사물의 지각이 병렬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므로 대도시의 대중매체의 기본 구조 또한 단편성, 피상성, 동시성, 비연관성들이다. 아르프와 리히텐슈타인의 시의 구조는 현대 대중매체의 구조와 일치한다.
1과 2의 시의 차이는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다이즘의 시와 표현주의의 시의 차이는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표현주의의 ‘표현의 새로움’을 더욱 과격화시킨 것이 다다이즘이라고 하지만. 다다이즘에 ‘우연성의 원리’가 더 많이 지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음은 발(1886~1927)의 시 「대상(隊商)」(1917) 전문이다.
jolifanto bambla o falli bambla
großgiga m’pfa habla horem
egiga goramen
higo bloiko russula huju
hollaka hollala
anlogo bung
blago bung blago bung
bosso fataka
ü üü ü
schampa wulla wussa olobo
hej tatta gorem
eschige zunbada
wulubu ssubudu uluwu ssubudu
tumba ba-umf
kusa gauma
ba ― umf
“대상(隊商)”은 걸어가는 대상이다. 걸어가는 소리가 나는 대상이다. 걸어가는 소리말고도 있을 것이다. 짐승의 울음소리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코끼리의 울음소리이다. jolifanto를 코끼리(Elefant)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것이다. 혹은 낙타의 울음소리이다. 그러나 필자는 낙타의 울음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으므로 어느 것이 낙타의 울음소리인지 모른다. 시 전체가 어느 아프리카어의 의성어들의 나열일지 모른다. 하여튼 필자에게는 거의 모든 단어가 ‘소리’로서 간주될 뿐이다. “blago bung blago bung”, “wulubu ssubudu uluwu ssubudu” 등 비슷한 소리의 되풀이가 두드러진다. 예외는 둘째 행의 “großgiga”이다. groß는 ‘커다란’이라는 뜻을, giga는 ‘10억 배’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다이즘의 대표적 양식으로 소음주의가 있는데 - 이를테면 여러 곳에서 동시적으로 시 낭송하는 것도 소음주의이다. 소음처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기차의 소음처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이 시 역시 소음주의의 시라고 할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리시이다. 소리시는 표현주의에도 있었지만 다다이즘에서 정립되었다. 소리시는 낭송용 시이다.
「대상」 역시 ‘삶의 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므로 ‘삶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자연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좌표 상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미의 예술이 아니라는 점에서(소리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그 이전의 시적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유의미시가 아니라 무의미시라고 할 수 있다.
6. 한국의 표현주의
표현주의도 자연주의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개념이다. 이미 지나간 운동이다. 시간적/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던 운동이다. 즉 표현주의는 시기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전후, 공간적으로 유럽(특히 독일)에서 있었던 문학예술 운동이다. 역사적 개념에 상대되는 말이 초역사적 개념, 규범적 개념, 혹은 초월적 개념이라는 말이다. ‘표현주의적’이라는 형용사가 초역사적으로, 규범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20세기 초엽 유럽에서 있었던 표현주의 문학예술과 닮은 ‘지금 여기’의 어떤 작품을 두고 ‘표현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표현주의’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춘수
지금 여기의, 20세기․21세기의 한국의, 여러 시들에서 ‘표현주의적 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연구자들이 김춘수(1922~2004)의 무의미시․무의미시론에서, 이승훈(1942~ )의 비대상시․비대상시론들에서 표현주의를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차분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내면성’[비대상]을 강조했다고 해서, 무의미를 강조했다고 해서, 표현주의와 바로 관련시킬 수는 없다. 한 부분만을 보고 표현주의와 관련시킬 수는 없다. 지금 여기의 많은 시들이 내면성의 시들이고, 무의미의 시들이다. ‘과거’의 많은 시
들에서도 내면성을 찾아낼 수 있고, 무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표현주의를 인상주의․자연주의들과 구분해서 ‘안에서 밖에서 터뜨리는 예술’이라고 할 때 내면성의 예술 못지않게 ‘비명의 예술’을 강조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비명’의 시편들이 ‘역사적 표현주의’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세기말 정신’, ‘제1차 세계대전’들이 비명의 예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표현주의적 시편들을 ‘시대정신’과의 관련 하에서 고찰해야하는 이유이다. 중요한 시대정신 중의 하나로 ‘부르주아 시민 사회에 대한 반대’를 꼽을 수 있다. 물론 비명의 시편이므로 ‘명사의 시’, ‘탈문법의 시’, ‘신조어의 시’ 등 양식적인 차원에서 ‘표현주의적 시’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승훈의 「사물 A」, 김춘수의 「처용단장」들을 ‘비명의 시’들로 읽는 것이다. ‘분열된 자아에 의한 비명’(이승훈)과 ‘허무주의에 의한 비명’(김춘수)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분열된 자아 및 허무주의를 ‘시대정신’으로부터 접근해보는 것이다.
7. 맺음말
표현주의를 ‘모더니즘’(현대문학)과 동일시할 수 있다. 표현주의가 현대적인 것은 우선 그 이전의 자연시와 완전히 결별했기 때문이다. 사실주의 후기에서부터 쓰여지기 시작한 ‘도시 시’는, 자연주의 시대에 의식적으로 쓰여진 ‘대도시시’는, 표현주의에서 그 정점에 도달하였다.
중요한 대도시시들을 하임이 썼었다. 그의 「베를린」 연작들이 유명하다. 판 호디스의 「세상의 종말」, 슈트람의 「척후」, 벤의 「작은 과꽃」, 「익사한 소녀에 관하여」들도 대도시(시)와 관계있다. ‘세상의 종말’은 산업사회․시민사회의 종말이었다. 슈트람과 벤의 시편들에서 나타난 ‘사람의 사물화’가 대도시(시)와 관계있는 것은 대도시가 ‘익명의 대도시’이기 때문이다. 익명화와 사물화는 가까운 관계에 있다. 맥주배달부(「작은 과꽃」)와 한 소녀(「익사한 소녀에 관하여」)의 죽음은 ‘수많은 죽음들 중의 죽음’으로 취급될 뿐이다. 릴케가 말테의 수기에서 얘기한 것처럼 대량생산적 죽음일 뿐이다. 대도시 병원에서 사람들은 대량생산적으로 태어나 대량생산적으로 죽는다.
도시 시 혹은 대도시 시는 ‘인간의 문학’과 관계있다. 핀투스는 인류의 황혼과 여명의 서문에서 표현주의 문학은 “인간의 문학”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출발점, 중심점, 목적점”이라고 하였다. 핀투스는 인간의 문학의 ‘상대어’가 “자연의 문학”이라고 하면서 표현주의자들은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을 묘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자연은 인간화되었다. 예를 들어 숲은 “죽은 자들의 장소”이고 나무는 “신, 혹은 무한성을 찾으려는 손”이었다.
표현주의의 통사구조의 해체, 문법 위반, 신조어 사용, 내면성의 강조들 또한 표현주의를 현대적으로 부를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된다.
무엇보다도 표현주의가 현대적인 것은 병렬양식의 시, 동시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시, 콜라주의 시, 그로테스크의 시이기 때문이다. 전체를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전체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것이 모더니즘이기 때문이다. 병렬양식, 동시성의 원리, 콜라주, 그로테스크들이 전체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전체’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의 ‘의식의 흐름’이 전체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전체’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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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약력:
춘천 출생. 1993년 현대시사상에 「무거움」 「갈릴레오」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 시집으로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모자나무,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 시론집으로 해석은 발명이다, 사랑, 혹은 에로티즘, 근대: 이항대립체계의 실제, 박찬일의 시간 있는 아침, 연구서로 독일 대도시시 연구, 시를 말하다, 브레히트 시의 이해 등이 있음. 박인환문학상, 젊은시인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